내면의 방 13도
최돈선
밖은 혹한이었다 지난여름 질펀했던 색채의 번성이 허물을 벗고 꽁꽁 얼어 있었다 명자꽃도 모란꽃도 숨어버린 바깥은 참혹했다 나의 방 내면은 13도에 맞춰져 처형의 고드름을 늘어뜨렸다 살갗에 돋는 소름, 나는 의식이 더욱더 맑아졌다 그리하여 무언가를 향해 불특정한 살의를 품게 되었다 나는 그때만큼은 능동적이었다 저녁이면 겨울 척후병이 몰래 숨어들어 냉기를 뿌렸다 어차피 다시금 수동태가 될 수밖에 없는 생이어서인지 문풍지가 밤새 울었다 때로는 아팠으며 때로는 어디선가 목 쉰 만가를 듣기도 했다 천장을 지나는 오색 깃발을 쳐다보는 건 환영이었다 아무 글도 써지지 않았다 밥은 세끼 잘 먹었고 탈도 없었다 유효기간이 훨씬 지난 음식들만이 오직 냉장고 속에서 굳건했다 살날과 살아온 날이 뒤엉켜 목구멍이 메어왔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대로 삼백예순날 썩어 있어도 냄새조차 없을 듯했다 시골 버스정류장엔 막차가 서지도 않고 지나갔다 얼어붙은 별빛이 나목의 그림자 위로 신음처럼 떨어졌다 그림자는 되도록 의연히 땅을 포복하고 있었다 내면의 방 13도는 아직도 벌판처럼 유효했다
―《시와 세계》 2024년 봄호 ------------------------ 최돈선 / 1947년 강원 홍천 출생. 196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 당선. 시집 『칠 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허수아비 사랑』 『물의 도시』 『사람이 애인이다』 외 기행문집과 희곡, 동화 등 다양한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