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傲慢)’이라는 장님 병, 공감 능력을 상실한 그 천박한 삶의 태도> 고영화(高永和)
우리는 지난한 일생 동안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속된 사람, 편한 사람, 까칠한 사람 등등등. 물론 어떤 기준에 따라 또 다른 여러 유형으로 나눌 수도 있겠지만 한평생 살아보니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엄청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여럿 있었지만, 그 중에 지금 경남 삼천포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나는 졸업 후, 40년 동안 그를 아직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전화는 두어 번 한 것 같다. 그런데 한번 통화하면 두 시간은 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다보니 어제 만난 듯 서로 정신이 없다. 그 친구의 말과 태도 성격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질 않았다. 물론 그 친구도 나보고 그렇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성격이나 본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 한편 눈에 뵈는 게 없다는 장님 병에 걸린 오만(傲慢)한 사람과 어쩌다 마주칠 때면, 마음에 가시를 찌르는 듯,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런 오만한 사람은 상대를 내려다보며 우쭐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에다, 자신이 잘났다는 특권의식이 잠재되어 있어 남을 평가절하 하는 경향이 짙다. 다들 경험 해봐서 알겠지만, 이런 유형의 놈들은 자신이 아주 잘난 줄, 특별한 줄로 알고 있는지, 말투와 태도가 아주 거만하며, 상대에게 자신을 과신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때론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비꼬듯 속삭인다.
우리네 사회가 경쟁이 기본인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중장년층에서도 거만(倨慢)하고 오만(傲慢)한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 성공이나 막대한 부를 축척한 이들이다. 반면 TV에서 비치는 오만한 이들은 정치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권력에 취하여 오만방자하게 되면서, 그의 주변에는 완장을 찬 소인배들이 설치고 일탈하며 불행을 재촉하는 건, 역사가 증명한 주지의 과정이다.
○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부하는 보통 시민들 중에 대부분은 추측건대, 어떤 분야에서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 극히 일부지만 자신도 모르게 거들먹거리고 오만하게 굴면서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과대망상(誇大妄想)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으로 인한 오만함은 그의 주위 사람들의 책임도 한 몫을 한다. 옆에서 매번 굽신굽신 거리며 아부를 행하니 스스로 자신이 마치 신의 영역에나 올랐는지 착각에 빠져 오만함이 생활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이런 분들에게 충고건대, ‘나의 존재뿐만 아니라 타인도 인정하며 사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좋겠다.
● 그렇다면 오만(傲慢)에 대한 교과서적인 의미들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오만의 사전적 의미는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하다. 또는 그 태도나 행동’이라고 되어 있다. 보통 오만(傲慢) 하다는 것은 “건방지거나 자기만 잘 난 체하며 남을 무시하는 독선적 태도나 행동”을 의미한다. 비슷한 말로는 거만(倨慢), 교만(驕慢), 방자(放恣) 등이 있고, 반대말은 겸손(謙遜), 겸양(謙讓), 겸허(謙虛), 겸공(謙恭)등이 있다. 근데 오만함(Hubris)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과신, 타인에 대한 경멸,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폭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니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편 한자어(漢字語)로 오만(傲慢)은 머리에 깃털을 꽂고 손에는 악기를 들어 한바탕 놀아 제치며 맘대로 남을 희롱하는 거만한 태도를 뜻한다. 반면 거만(倨慢)은 높은 데 걸터앉아 건방지게 멋대로 뻐기는 형상이고, 교만(驕慢)은 키 큰 말 위에 앉아 우쭐대며 맘대로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태도이며, 방자(放恣)는 소를 몽둥이로 마음대로 내치면서 멋대로 입을 놀린다는 뜻이다.
거만과 교만, 방자를 떠는 중심은 상대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래서 거만과 교만, 방자함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보통은 모른 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만은 거만과 교만을 더해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김으로써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건방진 독선적 행동이나 태도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의 방점(傍點)이 상대방에게 전이(轉移) 되는 불편함을 안고 있다.
◉ 어찌되었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도 존중하기에 남을 깎아내리진 않지만, ‘오만(傲慢)’은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 내가 특별히 뛰어나다고 여기는 우월감에서 나오는 일종의 ‘자기중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속하다보니 타인에게 늘 불편함과 피해를 끼친다. 특히나 자기중심성 때문에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을 평가절하 하고 남을 컨트롤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나만 귀하고 나만 특별하니 자신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 그리고 오만한 놈과는 결이 좀 다른 거만하거나 교만한 놈은 지 혼자 그러다가 말겠지 싶어 사람들이 별로 신경을 안 쓰지만, 오만한 놈은 좀 다르다. 알고 보면 니나 나나 다 똑 같은 놈들이, 자기만 옳다고 여기고 나를 업신여기니, 심히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니 ‘오만이 독선을 낳고 독선이 오만을 부추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나라이든 간에 교만하고 오만하면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삶의 진수다. 그러니 명심컨대, ‘이 세상에 어느 하나 쓸모없는 존재도 없고 누구 하나 혼자서 잘난 삶도 없다’는 점에 각인하자.
◉ 덧붙여 현대의 우리나라 정당 중에, 진보정당의 당헌 강령이나 민주주의 합리성이 보수 정당보다 더 정의롭고 더 유익한 것 같은데도 왜? 수십 년 째 우리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보수정당의 지지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전후(戰後) 세대들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사실 진보정당의 오만함 때문이다. 이념과 사상이 훨씬 더 민중을 위해 정의롭다고 떠들면서, 서로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해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폐쇄성으로 인해, 스스로 프레임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보수 정당은 말 그대로 오만한 꼰대 그 자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아 그만 두겠다.
어찌되었건 미국의 심리학자 대커 켄트너 교수는 “견제 없이 권력을 누린 자는 뇌 손상을 당한 사람처럼 공감 능력을 상실한다.”고 말했다. 역사와 삶의 내공을 쌓지 못한 이들이 한번 권력을 맛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을 배려하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마약에 취한 듯, 독선은 물론 몰락에 대한 인식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공감능력 부족 등의 현상을 우리는 ‘오만(傲慢) 증후군’이라 부른다.
사실 아시다시피 권력과 명예, 금전을 쥐게 되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지기 때문에 그 맛에 취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한때 고위직에 올랐던 인물이 어느 날 자신을 몰라준다면서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면서 나 좀 알아달라고 난리다. 또한 주변 소인배들 중에 완장만 채워주면 안하무인 설치고 일탈하는 자(者), 돈 좀 있다고 떠벌리면서 남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거드름을 피우는 자(者) 등등의 자아도취적인 인격 장애의 괴상한 사람들이 늘 생겨난다. 이는 역병처럼, 도꼬마리처럼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인간에게 겹겹이 달라붙는다. 이 괴물의 이름을 오만(傲慢)이라 부른다. 오만은 자신에게 유일한 최선의 삶을 구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 오만(傲慢)이라는 장님 병에 걸려 말년이 불행하게 되었던 인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엄청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 프랑스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2차 대전 전에는 국방부 차관을, 2차 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지도자로, 종전 후 임시정부 주석을, 그리고 6개월 총리로 전권을 행사했고 1959년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965년 대선에서 재선하였던 유명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는 1961년 알제리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감사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측근들의 조언에 “프랑스가 어떻게 프랑스에 감사하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짐이 곧 국가”라는 루이 14세와 같은 생각이랄까. 어찌되었건 그는 오랜 시간동안 최고 통치자로 있다가 생겨난 오만이라는 장님 병으로 인해 결국 오만한 지도자로서 불명예퇴진까지 이어졌다.
○ 고로 오만은 비극적 인간의 첫 단추다. 자신이 누리는 현재의 혜택이나 특권을 스스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이다. 또한 오만은 자신의 초심을 잃고 난 뒤, 반드시 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확신이다. 사람이 오만함이라는 병에 걸리면, 곧 장님이 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자신 앞에 다가온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장님 병이다. 이로부터 비극적인 불행이 시작된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오만방자(傲慢放恣)한 인물들은 주로 정치인들을 통해서 많이 접한다. 국민의 대리인이 자만심에 빠져 털끝만한 알량한 권력으로, 천하를 한번 호령하겠다고 오기(傲氣)에 빠져 있는 위정자를 종종 본다. 자기만이 절대 선이라는 오만과,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이 그들을 사특한 소인배로 만든다.
● 마무리 하겠다. 영국 속담에 '오만(傲慢)이 앞장서면, 치욕(恥辱)이 뒤 따른다'는 교훈적인 말이 있다. 게다가 프랑스 격언은 좀 더 구체적이다. ‘오만이 앞장서면, 망신과 손해가 뒤 따른다.’면서 오만함이 지나치면 결국 불행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해가 지면 반딧불이, 자신들이 이 세상에 빛을 준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 오만함이 고착되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님 병에 걸리게 되고 이어 독선(獨善)으로 옮겨가게 되어, 종극에는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오만함에 물든 사람은 대개 삶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거나, 삶의 철학에 대한 내공(內空)의 깊이가 얕거나, 또는 자존감(自尊感)이 약한 사람일수록 권력과 명예의 장식물로 자신을 치장하게 되면서 오만의 탈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참고로 속이 꽉 찬 사람이 마음을 적당히 비운 것을 내공이라 하는데 이 내공은 그물을 통과하는 바람처럼 걸림이나 머무름이 없이 인생의 번거로운 온갖 상념을 벗어버린 텅 빈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삶의 경험에서 나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감성 능력, 곧 이러한 내공(內空)이야말로 장님 병을 예방할 수 있다.
이에 사람은 각기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고 삶의 목적과 자신만의 몫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삶을 관조하고 성찰하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자연과 더불어 대상과 교감하며 사랑과 배려, 공감하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글쓴이 "고영화" 는 거제 지세포 출신의 고교동기입니다)
첫댓글 글잘쓰시는 분들은 타고나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시간될때 마다 마저 읽도록 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