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가 심상치 않다.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카파라치 제도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하얀색 번호판이 달린 차량을 타고 배송하는 기사들을 찍으면 포상금이 주어진다. 반대로 기사들에게는 7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택배업체는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지만 뚜렷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여기에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선언하면서 정부는 택배보다 화물운송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라는 게 택배업계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카파라치의 표적이 될 택배기사들의 심정은 어떨까? 물류신문은 6월 25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택배기사 5명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각각 다른 회사에 다니는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 한탄부터 정부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말을 쏟아냈다.
|
|
|
|
△카파라치 시행을 앞둔 지난 6월 25일 밤. 서울 시내 모처에서 택배기사 5명을 만나 그들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봤다. 두 명은 일 때문에 자리를 일찍 떴으며 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
|
|
갈 곳 없어 시작한 택배
어렵게 택배기사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택배기사들이 일손을 놓을 것이라는 제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불러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소속된 택배회사는 달랐지만 서로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고, 이 자리에 나오기 싫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다들 고단한 표정이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씩 걷히자 그들은 하나 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A : 난 택배한지 10년이 다 됐다. 그 전에는 모은 돈에 빌린 돈까지 쏟아 부어 치킨집을 운영했지. 잘될 줄 알았는데, 결국 말아먹었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시달리며 힘들게 살다가 주변에서 택배하면 그래도 밥은 먹고 산다는 말 들어서 하게 됐다.
B : 누군 안 그런가. 택배 하는 사람치고 돈 많아서 시작한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고 마땅히 돈 벌 자리가 없으니까.
C : 내 부모님이 70이 넘으셨다. 내가 일 안 하면 집세도 못 내고 부모님은 굶어죽는다.
D : 내가 아는 한 택배기사들은, 아니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 실패한 사람들이다. 어떤 이유든 뭐든 그곳에서 잘못했든 잘했든 실패해서 먹고 살 방도가 없고 다 그렇다. 노가다판 가보니 자신은 없고, 대한민국 남자치고 운전 못하는 사람은 없잖나. 회사 마크도 붙어있고, 만만해보여서 들어왔지. 들어와서 보니 일은 엄청 힘들고, 그렇다고 다시 나가기도 뭐하고.
E : 나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래도 택배비가 2,500원 가져갔어. 그런데 지금은 더 떨어져서 1,500원인 곳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기름값도 엄청 뛰었지. 물가는 안 오르나? 그래도 이거 말고는 할 게 없다. 기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대출도 못 받는 처지다. 노가다판에 가봐야 할 수 있는 게 잡일이다. 그나마도 자리가 없다는 거 텔레비전에서 떠들어대지 않나.
B :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젊은 애들 일자리 없다고 아무리 그래도 택배기사 한다고 오는 사람 정말 드물다. 힘든 거 다 아니까.
A : 내가 차 할부금이랑 기름값이랑 일하면서 들어가는 돈 빼면 한 달에 집에 가져가는 돈이 최고 많아야 150만 원이다. 보통 120~130정도다. 그걸로 생활비랑 애들 등록금으로 나가는 돈에 보탠다. 마누라도 일한다.
C : 나는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벌 때도 있었다. 내가 몸이 좋지 않다보니 물량이 조금 적은 곳에서 뛰니까.
E : 택배라는 거. 일이 너무 힘들다. 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많으면 12시간 정도다.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하루에 절반 넘게 여기에 쓰는 거다. 법적 근로시간이 8시간 되지 않나?
B : 그렇다고 사람대접 제대로 받지도 못한다. 배달 늦었다고 화내는 건 물론이고 뒤에서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는 거 가족 생각하면서 참고 사는 거다.
‘파업’이 아니라 ‘폐업’
택배차량이 하얀(일반)번호판을 달고 영업을 해온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노란(영업용)번호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트럭이 필요했고, 결국 하얀번호판은 우리가 흔히 보는 택배차량이 됐다. 하얀번호판은 점점 늘어나서 이제 택배업계에서는 없앨 수가 없게 됐다. 그런데 서울시는 7월 1일부터 하얀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량을 대상으로 카파라치 제도를 시행한다고 예고했다.
B : 카파라치. 그거 때문에 택배기사들이 전부 미칠 지경이다. 과태료가 700만 원이다. 결국 일 못하게 하는 거다.
A : 일 못한다. 우리가 파업한다고 하는데, 파업이 아니라 폐업이다. 한 달에 100만 원 좀 넘는 돈 버는 사람이 미쳤다고 나가서 사진 찍힐 일 있나. 하고 싶어도 못하는거다.
C : 정말 너무 하는 거다. 우린 먹고 살려고. 생계가 걸린 문제다. 다 실직자 되는거다. 카파라치 뜨면 우리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나?
B : 우리만 죽는 게 아니다. 생각해봐라. 우리는 정말 온갖 물건 다 가져다가 배달해드린다. 대형 쇼핑몰만 있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시장에서도 택배를 이용해서 물건 보낸다. 요즘 누가 밖에 나와서 물건 사들고 집에 가나? 택배만큼 싼 값에 배달해주는 거 봤나? 화물? 용달? 그 사람들이랑 우리랑 운임이 똑같나?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비싸도 단 돈 5,000원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음날 갖다 주는 서비스가 어디 있나?
A : 벌금은 700만 원인데 카파라치한테는 고작 20만 원만 준다더라. 그럼 나머지 돈은 다 누가 가져가나. 다 높으신 양반들이 가져가는 거 아니냐. 정부가 힘없는 서민들 때려서 자기들 이익 챙기는 거 아니냐.
E : 일 못하면 단순히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다. 노란번호판 갖고 있는 기사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물량이 집중될거다. 그 사람들이 돈 더 잘 번다고 좋아할 것 같나? 명절 때가 아니면 물량은 비슷비슷하고, 박스를 더 실어봐야 얼마 못 싣는다. 게다가 이동하는 기름값은 더 큰 부담이다.
D : 할당량이라는 게 있다. 영업소, 회사마다 다르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하얀번호판은 노선 계약(싸업권)을 한다. 노선에 떨어진 물건은 잃어버리든 파손되든 기사 책임이다. 우리가 배달 안하면 결국 문제가 된다. 그거 책임은 우리에게 올거다.
A :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이런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아마 본사에서도 고민하고 있을 거다. 분명 물량이 영업소에 쌓일 거다.(이 부분은 업체, 영업소마다 정해진 것이 없어서 기사들끼리 의견이 분분했다)
화물ㆍ용달 이해 못해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는 강경 대응을 표명했고, 화주들은 대책을 세우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 ‘택배대란’이 이슈가 됐는데 ‘물류대란’이라는 단어와 자리를 바꿨다.
A : 용달이나 화물연대나 정말 섭섭하다. 그 사람들이 압력 넣어서 카파라치를 시행한다는 거 택배기사들은 다 안다.
E : 하얀번호판 기사들은 다 개인이다. 동네에서는 경쟁사 기사들도 안면이 있고, 좀 멀리 떨어진 기사들도 안다. 그렇지만 조직화되진 못했다. 우린 힘이 없다. 화물연대야 파업하면 뭐라도 얻겠지만 우리는 네트워크가 없어서 집회도 못한다.
D : 파업을 하면 얻는 게 있겠지. 우리는 파업한다고 하루라도 쉰다고 하면 다음날 물건을 받을 수 있겠나. 그 노선은 다른 기사 차지가 될 거다. 노선을 잃으면 다른 동네로 가야한다. 택배가 시간이 생명인데 다른 동네 가서 지리 익힐 시간이 쉽겠나.
B : 택배가 용달이랑 화물연대 일감이랑 겹치나?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운임 차이가 커서 고객들이 찾지 않는다. 똑같은 운송이지만 우리랑 영역이 다르다.
D : 신문에서 화물연대 기사를 보니 증차를 반대하더라. 증차 대신 자기네들이 일할 수 있게 해달라더라. 그럼 택배로 오느냐. 그것도 아니다. 용달차가 택배 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근로환경이 열악하다고 거의 없다. 그럼 우리가 하게 그냥 내버려두면 될 것 아닌가. 우리는 열악해도 해야 된다. 우리가 하겠다는데 왜 옆에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E : 우리 돈 못 번다. 오히려 용달이나 화물 쪽은 수입이 적더라도 우리처럼 하루에 백 번 넘게 내렸다 타는 것 안 해도 되잖나. 그리고 우리는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스트레스도 심하다. 화물연대가 파업하는 건 자유지만 택배와는 관련이 없는 것만 했으면 좋겠다.
|
|
|
|
△택배기사들은 이번 카파라치 단속대상에 우체국 택배차량이 빠진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공기업 특혜라는 것이다. |
|
| 우체국 택배는 제외라고? 특혜 아닌가?
카파라치 제도 시행 예고는 택배업계는 물론 유통업체 등 관련 업계에서도 큰 이슈로 떠올랐다. ‘택배대란’이 현실화되면 이들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란 경고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지만 국토부는 아직까지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가 나서서 불법행위를 단속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관련법을 개정하기에는 용달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A :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번호판이 없는 거다. 번호판 값이 얼만지 아나? 1,000만 원이 넘는다. 비싸기도 하지만 신규 발급이 안 되니 살수도 없다. 번호판 사고파는 것도, 가격 매기는 것도 다 불법 아닌가.
E : 정부가 불법을 방치해놓고 이제 와서 이러는 건 잘못됐다. 우리는 번호판만 없지 사업자등록도 제대로 하고 부가세나 소득세, 국민연급 같은 각종 세금도 꼬박꼬박 다 낸다. 세금 떼먹는 것도 없고, 도로교통법 위반하면 범칙금도 낸다. 우리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
C : 택배 하는 건 신고만 하면 되지만 번호판은 허가제다. 어차피 허가도 나지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제도 자체가 모순이다.
B : 우체국택배는 공기업인데 카파라치 적용을 받지 않는다더라. 이건 공기업 특혜다. 똑같은 일 하는데 왜 차별하나.
A :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택배는 정말 서민들이 하는 거다. 서민 챙긴다는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증차 얘기도 옛날부터 나왔던 거다. 차라리 서비스업으로 해서 누구나 세금내고 사업할 수 있게 하는 게 현실에 맞다.
E : 용달 업체한테 번호판 사는 제도도 있었다. 그때 우리 영업소 기사들도 미소금융에다가 제대로 서류 넣었지만 한 건도 되지 못했다. 애초에 해줄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 번호판 다 지입회사에 간 거 아니냐.
C : 우리도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다. 노란번호판을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다. 세금내고 받을 수 있게 정부가 해줘야 한다. 시장에 도는 비정상적인 번호판값은 낼 수 없다. 서민들이 떳떳하게 일하게 해달라는 것 하나면 된다.
B : 카파라치가 시행되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나온다. 기사들 분위기 정말 장난이 아니다. 당장 굶어죽게 생긴 사람들 중에는 엄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기사들 사이에서도 불신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 같아도 당장 일 관두고 카메라 사서 찍으러 다니겠다. 우리는 택배차가 어디에 서는지 다 알지 않나. 거기서 기다렸다가 매일 한 장씩만 찍어도 택배보다 남는 장사다.
D : 정부가 제발 서민을 위해 맘 놓고 일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한다. 우리는 파업이 아니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폐업이다. 우리도 생존권이 걸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