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소설가 한승원<전남 장흥 덕도 신덕리>
내 고향의 추석날은 하늘과 섬마을을 둘러싼 바다와 푸른 산과 벼가 익어 노랗게 물든 들판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오곡백과는 넉넉하게 무르익고, 사람들은 모두 추석빔을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송편을 배불리 먹고 마냥 즐겁게 뛰어놀았다.
‘1년 열두달 365일 내내 오늘만 같아라’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다.
우리 민족의 전통 대명절인 추석에는 넉넉하게 정과 음식·사랑을 나누고, 화해를 하고 성묘를 하며 친지들을 찾아 인사를 차린다. 그 전통으로 인해 추석에는 오래전부터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곤 한다.
밤에는 동녘에서 양푼만 한 달이 둥실 떠오르고, 새악시들과 처녀들은 마을에서 마당이 가장 드넓은 집에 모여 강강술래를 하고, 청소년들과 장년 남자들은 뒷동산 너른 벌에서 씨름을 했다.
유자 팔아 추석빔으로 산 검정 고무신
불볕더위 속에서 배롱나무 꽃이 빨갛게 피어 있는 음력 칠월 백중(15일)이 지나면서부터 어린 시절의 나는 추석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면서 집 뒤란의 커다란 유자나무에 열린 유자들이 어서 빨리 노랗게 익어주기를 빌었다. 유자는 해마다 노랗게 주렁주렁 열렸으므로 추석 전에 한구럭씩 땄다. 탱자는 얼굴이 고와도 발길에 차이지만, 유자는 곰보여도 향기로워서 제사상에 오르므로 감이나 배·사과·밤 못지않게 비싸게 팔린다. 어머니는 그것을 장에 이고 가서 팔아 자식들의 고무신을 사주곤 했다. 말랑말랑하고, 코를 눌러놓으면 톡 소리를 내면서 튀어나오는 새 검정 고무신은 동무들에게 자랑거리였다. 마을 아이들은 대개 짚신이나 짚으로 삼은 게다 모양의 슬리퍼를 신었다. 어머니는 무명길쌈을 해서 하얀 바지와 저고리를 새로 지어주었고, 나는 그 추석빔을 추석날 아침에 입었다.
그날은 송아지의 꼴을 베지 않아도 좋고,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뜯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일은 아버지가 모두 해주었다. 할아버지 앞에 앉아 글을 읽지 않아도 되고 학교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고향은 바다 한가운데 둥실 뜬 섬, 덕도이다. 덕도는 득량만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디귿(ㄷ)자 모양인데 동쪽으로는 고흥반도와 소록도·금산섬이 뻗어 나갔고, 북쪽에는 보성과 장흥·강진·해남땅이 연이어 있고, 남쪽에는 완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널려 있다.
달이 떠오른 밤바다는 여느 대처의 강이나 호수보다 광활하고 아름다웠다. 달빛은 대낮처럼 밝았다. 바다의 수면은 수억만마리의 물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달빛을 즐기며 퍼덕거리는 것처럼 은빛으로 빛났다. 어쩌면 물속에 수많은 등불을 밝혀놓은 듯싶기도 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사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추석날 밤 달몸살을 이기지 못했다. 달몸살이란 달이 밝으면 몸속에 잠재해 있는 열정을 감추지 못한 채 들썽거리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예술적인 흥과 끼가 많은 것이다.
남자들은 씨름, 여자들은 강강술래
달이 떠오르면 남자들은 술 한잔씩을 걸치고 씨름판으로 모여들고, 여인네들은 강강술래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씨름판에서는 “어구야!” 하는 함성이 터져나오고, 강강술래 마당에서는 “술래” 소리가 달빛 너울을 타고 수묵으로 그려놓은 듯한 앞산과 뒷산에 메아리쳤다.
씨름판은 유치원생 또래의 아기씨름부터 시작되었다. 다음은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의 씨름으로 나아갔다. 한번 이긴 사람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질 때까지 계속 다른 사람을 상대하여 씨름을 계속했다. 그것은 점차 초등학교 고학년 또래를 거쳐 중학생 또래의 씨름으로 나아가고, 고등학생 또래로 발전한 다음 청장년의 씨름으로 나아가면서 장정에 이르렀다. 맨 나중에 이긴 사람에게 더 이상 도전할 다른 사람이 없게 되었을 때 씨름판은 끝이 났다. 걸어놓은 상품도 없었지만 출연한 사람들은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분투했다.
집안일에 갇혀 살던 여인들은 강강술래판에서 한풀이를 했다. 새댁들은 시집올 때 입고 온 다홍치마에 노랑저고리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었고, 처녀들은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다. 그들은 마당이 꺼지도록 강강술래를 했다. 마을에는 목청과 기억력과 세설이 좋아 선소리를 잘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구구절절 구슬프면서도 즐거운 사설을 늘어놓았다.
강강술래는 추석 전전날부터 시작되었다. 대개 철부지 소녀들이 시작을 했는데, 추석날 밤에 절정을 이루었다. 그것은 친정에 온 새악시들이 참여하면서 성황을 이루었는데, 둥근달이 서산머리에 얹힐 때까지 계속되었다.
추석 명절의 전통적인 씨름이나 강강술래는 전통사회가 허물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민속 씨름대회나 강강술래 보존회에 유물로 남게 되었다.
추석을 앞둔 대목장에는 마을 아낙들이나 어른들이 모두 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들을 사왔다. 제찬을 사오고, 곶감·대추·밤을 사오고, 고무신을 사오고, 비단 옷감을 떠왔다. 소를 뜯기거나 꼴을 베거나 땔나무를 하는 아이들은 해 저물녘에 한재 꼭대기의 길목에서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정겨운 추석 풍속이 꿈엔들 잊힐리오
나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추석이 돌아오면 가슴이 설렌다.
추석에는 시집간 고모나 누님들이 친가에 왔다. 그들은 떡이나 과일 같은 것으로 이바지를 푸짐하게 해왔다. 추석날 아침부터 어머니와 친정에 온 누님과 고모들은 송편을 빚었다. 그날은 이바지로 들어온 떡·과일과 새로 만든 송편을 먹고 또 먹고 형제들과 장난질을 치면서 뛰어놀았다.
시집가지 않은 누님과 나는 마을의 이 집 저 집에 큰누님이 가지고 온 이바지 떡과 송편을 돌렸다. 대개의 경우 이바지 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접시를 보내지 않고 송편을 담아 보냈다.
아, 그 사랑하는 내 고향의 아름답고 정겨운 풍속을 어찌 꿈엔들 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