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오페라 창작으로 마르지 않는 노래의 샘, ‘강 건너 봄이 오듯’의 작곡가 임긍수
01/09/2021
가곡·오페라 창작으로 마르지 않는 노래의 샘‘강 건너 봄이 오듯’의 작곡가 임긍수
제9회 작곡가 임긍수 가곡의 대향연 ‘강 건너 봄이 오듯’
대담한 목표는 더 큰 열정을 품게 하고 무사안일주의를 타파하며 혁신을 촉진하고, 포부를 높이며, 삶의 지평을 넓혀 성공의 씨앗을 뿌린다. 그칠 줄 모르는 창작의 열정으로 매 해 한국가곡 무대를 선보여 왔던 작곡가 임긍수의 이야기다. 지난 3월 초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제9회 작곡가 임긍수 가곡의 대향연 ‘강 건너 봄이 오듯’이 펼쳐졌다. 제9회 작곡가 임긍수 가곡의 대향연 ‘강 건너 봄이 오듯’은 2020년 2월에 기획되었던 정기음악회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일 년 만에 다시 오르게 된 것으로 예술가곡, 오페라, 성가 등 클래식 음악 작곡가인 임긍수의 다양한 음악적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무대였다. 대형 공연장에서 자기 이름으로 음악회 타이틀을 사용하는 음악가가 흔치 않은 국내 음악계 풍토에서 작곡가 임긍수는 본인의 이름으로 공연 제목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독보적이고 특별하다.
대개 작곡가들의 작품발표회는 아카데믹한 성격이 강해서 자칫 지루하고 감상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한국가곡 작곡가의 발표회 역시 작곡가의 곡을 여러 명의 성악가가 무대에 나와 부르고 들어가는 형태의 무대가 만연한데 반해 지난 ‘제9회 작곡가 임긍수 가곡의 대향연’에서는 게스트로 출연한 합창단만 360명이고, 오케스트라 65명, 성악가 12명 정도가 참여한 그랜드 콘서트였다. 거의 400여명이 넘는 대규모 콘서트는 오프닝과 엔딩송의 성가합창, 각 섹션마다 성악가들의 독창과 이중창 그리고 남성중창 등의 다채로운 콘셉트로 무대를 이끌었다. 2시간이 넘는 공연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임긍수 특유의 웅장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였던 공연 프로그램은 오프닝과 엔딩송의 합창곡을 포함해서 사랑과 이별, 그리움 그리고 자연과 시대를 표현한 특징들이 곳곳에 묻어나는 레퍼토리들로 구성된 무대를 선보였다.
열정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
“누구에게 배울 것도 없이 혼자 열심히 풍금을 치다보니 차츰 악보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워낙 많이 치니까 저절로 연주가 되고 생각한 것을 악보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지요. 멜로디가 악보로 그려진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워서 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독학은 느리고 답답하지만 깊이가 있다. 또한 독학은 선물로 열정을 준다. 열정은 작곡가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이다. ‘그대 창밖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 등 대중적 가곡 레퍼토리로 한국 가곡 사에 영향력을 발휘해온 작곡가 임긍수가 작곡가가 되기엔 사회 전반이 척박한 1960년대였고 음악적으로 불모지 같은 환경이 만연한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가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경위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산토끼, 다람쥐 등의 노랠 배웠어요. 그것이 시초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라면서 음악을 계속 좋아했어요. 중·고딩 때 밴드부가 있어서 다른 친구들은 가기 싫어하는데 난 자진해서 하다가 바리톤 악기로 밴드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죠. 중학교 시절부터 음악이 너무 좋아 학교에 일찍 가서 풍금을 차지하고 치는 게 좋았어요.”
병천 초중고를 졸업한 임긍수는 고2 때 서울대 대학원생이던 문호근과 서울대교수인 김달성에게 배우고 서울음대에 입학했다. 김달성 교수에게 4년간 사사한 그는 서울음대 작곡과, 단국대학교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환교수를 역임했다. 은광여고 재직 시 처녀작으로 만든 곡 ‘그대 창 밖에서’가 KBS 가곡제에서 대상을 받고 테너 박인수가 부르면서 가곡과 작곡가는 유명세를 탔다. 이후 KBS 방송국에서 전속 작곡가로 위촉되어 수많은 곡을 작곡했는데 송길자 시의 ‘강 건너 봄이 오듯’도 KBS 방송국에서 위촉받은 곡이다.
주요 작품
한국가곡, 한국창작오페라 그리고 음악관련 저서 및 음반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적 활동으로 한국가곡의 역사를 일궈온 작곡가 임긍수의 주요 작품으로는 <그대 창 밖에서>, <강 건너 봄이 오듯>, <안개꽃 당신>, <사랑하는 마음> 등의 가곡과 오페라 2000년 오페라 “탁류”채만식문학관 개관기념 위촉작곡공연, 2003년 오페라 “메밀꽃필 무렵“ 위촉작곡 공연, 2005년 오페라“권율”위촉작곡공연, 2006년 오페라 “행주치마전사들” 위촉작곡공연, 2012년오페라“천년의사랑”위촉작곡공연(국립오페라단공모최우수작 당선) 등이 있다. 그리고 가곡집과 음반으로는 ‘강 건너 봄이 오듯’, 심응문 시에 의한 크로스오버곡집 ‘안개꽃 당신’, 소프라노김영선의 임긍수가곡집 ‘연못속의 달’, 다산 정약용의 시에 의한 음반 ‘눈 내리는 등불아래’, 전덕기 시로 작곡된 음반 ‘영혼이 내 영혼이’ 등이 있고, 성가곡으로는 찬송가 합창곡집, 성가합창곡집(혼성. 여성. 남성), 찬송가편곡합창곡집(혼성합창곡집) 등이 있다.
작품 세계, 한국 가곡의 르네상스를 염원하며
20세기 무조음악의 영향을 받아 무조로 작곡된 많은 가곡들은 작곡가 자신들의 지성은 만족시켰지만 관중을 잃었다. 관중이 없는 음악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기법보다는 감성이 우선하는 가곡을 작곡하여야한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감상하고 어느 정도는 흥얼거릴 수 있어야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작곡가 임긍수가 피력한 작곡 시 염두에 두고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한편, 임긍수의 음악적 색깔은 서정적이면서 애수에 차 있다. 슬픔에 찬 면도 있고, 발랄하고 해학적인 면도 있는데 이는 작곡가의 의지라기보다 시인들의 작시 내용들이 대부분이 그렇다. 임긍수의 작곡 초기엔 본인의 철학과 음악적 지성이 이끄는 대로 곡을 창작하다가 최근까지 작곡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위촉받은 곡들을 만들어 왔다. 그렇기에 본인의 의지만큼의 창작을 못 했는데 추후엔 좋아하는 시들로 곡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제9회 임긍수 곡의향연(롯데콘서트홀)
음악의 변화와 진보
매 해 ‘평화음악회’ 및 ‘가곡의 향연’ 콘셉트로 정기연주회를 할 때면 음악의 변화와 진보가 느껴진다. 임긍수의 작품 세계의 변화와 특징은 무엇일까? “제 공연의 처음 5회까지는 솔로 곡 위주로 공연을 했어요. 그러다가 굳이 콘셉트가 바뀌게 된 이유는 관객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거죠. 많은 볼거리, 들을 거리를 제공하고 싶어 연출을 가미하게 된 겁니다. 여기에 프로그램의 변화를 주거나, 작품 변화의 의도는 딱히 없고요. 시에 따라, 음악회에 따라 변화가 있는 거지 기획을 특별히 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것이라면 제가 기획한 평화음악회나 가곡의 향연을 통해 무대 경험을 하고 늦은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연주자로 도약하고 지금까지도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연주자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제 공연과 작품을 좋아하는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협력하여 무대를 세워간다는 것이 참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네요. 더욱 감사한 것은 최근까지 칸타타와 오페라가 계속 위촉이 오고 있는 중이어서 작곡가로서 감사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인사말하는 작곡가 임긍수
애착 작품과 곡에 대한 에피소드
사랑하는 마음 (임긍수 작시·작곡)
나 가진 것을 모두 다 드리고
그대 앞에 그냥 홀로 서리라.
비어있는 이 마음 그냥 그대로
오직 그대만을 바라 보리라.
낙엽은 지고 비바람 불어와도
기다리는 봄날이 꿈에 있듯이
한 송이 꽃보다 고운 이야기
그대 품속에 안겨 주시리라.
“내 작품의 처녀작은 ‘그대 창 밖에서’이고,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서울국제콩쿠르 지정곡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갈 수밖에 없는 곡들이지요. 그리고 크로스오버 곡 ‘사랑하는 마음’은 내 작시, 작곡으로 테너 임웅균의 대표곡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사별한 제 아내의 묘비에 ‘사랑하는 마음’ 1절 가사를 새겼지요. 텍스트가 애잔한 시죠. 보통의 크리스천들은 묘비에 성경 구절을 쓰는데 말이죠.(웃음) ‘그대 창밖에서’가 특히 애착이 가는데 아무래도 처녀작의 의미도 있겠지만 오늘날 제가 있기까지는 그 곡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한국가곡의 방향은 어떻게 진화하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
“우리 가곡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곡이기에 작곡가들과 시인들은 의무감을 갖고서라도 좋은 작품을 남기려면 책임감으로 임해야 합니다. 초기 민요나 동요를 보더라도 거기엔 우리 민요만이 갖고 있는 민족의 얼이 담겨있어요. 그런데 지금의 작곡가들을 보면 상당히 어렵게 곡을 쓰거나 동요는 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가곡을 만들더라도 일반인들이 따라 부르기 어렵게 만들기에 그런 점은 아쉬운 점이고요. 가곡은 자기 음악성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애창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야 할 곡이지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부탁합니다.”
대형 프로젝트, 창작오페라 ‘고려 아리랑’의 비전
최선을 다한 여정으로 지금에 이른 작곡가 임긍수. 작곡가로서 그는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던 장르들과 시들로 작곡을 해 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거의 타에 의해 곡을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시에 곡을 만들고 싶다며 그의 꿈을 거듭 강조한다.
“제가 꿈꾸고 있는 오페라가 있어요. 2019년 1월에 연해주를 갔었죠. 우리나라 이주민 3,4세들이 많이 사는 우즈베키스탄이란 지역에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었어요. 우리나라 고려인들이 매우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데 러시아에 버려진 것이지요. 우즈베키스탄에 우리 민족인 고려인들을 다 버렸는데 거기에서도 우리 민족들은 강인하고 질기게 잘 뿌리내리고 살아온 거죠.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될 때 그들을 다시 연해주로 데려갔고, 지치고 힘들지만 강한 우리 민족은 다시 일어난 것이죠. 그들이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얼굴들이 러시아와 우리 민족과 섞여서 얼굴로는 어느 민족인지도 모르고, 우리말을 할 줄도 몰라요. 오직 할머니 세대만이 할 수 있죠. 그들을 위해 음악가로서 제가 할 일은 우리나라에서 고려인의 삶과 애환을 기리는 오페라를 작곡하는 것이에요. 오랜 동안 그걸 꿈꾸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 일이 성사되려고 하는 중입니다.
오페라를 창작하려고 하는 첫 번 째 이유는 우선은 오페라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한을 달래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결성된 오페라단과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순회공연도 하고 싶고요. 이 프로젝트는 공연 자체가 비용도 많이 들고 국가적 차원에서 해야 가능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요. 오페라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러시아에 가려면 수 백 명이 해외에 가는데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 현재 이야기가 진행 중이구요. 고려인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비사이지만 우리나라의 이 비극적인 역사가 세계인의 공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에, 예산 문제가 해결되면 곧 대본 공모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짧지 않은 긴 세월동안 쉼 없이 활발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는 한국가곡 작곡가 중에 오페라를 쓰는 작곡가는 작곡가 임긍수가 유일하다. 우리 가곡에 대한 비전과 창작오페라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가슴 벅차게 느낄 수 있었던 1시간 동안의 대화 속에서 그의 한국가곡과 작곡계에 대하여 쏟아낸 제안들로 한국가곡의 중흥은 이미 가까이 와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글 김순화
사진 제공 김문기의 포토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