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09
11.
스포티지는 그들이 종알 종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캔디 시내로 들어왔다. 스리랑카의 관광중심지라 하지만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으며 비교적 편안하였다.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코끼리를 보며 피춘자는 어린아이 처럼 손뼉까지 치며 좋아하였다. 그들이 도착한 숙소는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움막같은 집이었다. 들어서니 비교적 깨끗하였다. 바닥은 밝은 초록 유성 페인트로 칠해져서 반들 반들 윤이났다. 우측편 침실에는 일인용 침대가 두개 벽에 붙어있었고 서쪽으로는 1미터 높이의 회벽위에 유리창이 있었다. 그 유리창을 통하여 맑고 큰 호수가 보였다. 그 호수 끝쪽에 하얀불사가 보였고 그 불사가 불치사였다. 침대 다리쪽 공간에는 탁자가 있어 여행용 가방이나 컴퓨터를 사용할수 있게 해 놓았다. 주인의 배려가 돋보였다. 거실에서 좌측편은 취사를 하는 공간이었고 탁자도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호수를 볼 수가 있었다. 따라 들어온 40대의 여인은 공손히 인사를 하며 열쇠를 주었지만, 알렉스가 다시 주며 짐들을 잘 봐 달라고 하였다. 한국의 독립된 팬션같은 형태였다.
“여보! 알렉스. 저 이집 마음에 들어요. 2틀만 쉬었다 가게 해주면 안될까요? 부탁해요.”
“당신이 맘에 들어하니 나도 좋아. 그렇게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에이~ 그렇게 하겠다 말해줘요~ 네?”
춘자는 이런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침일찍 일어나 불사를 보며 잠깐 명상에 잠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내일 아침에는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알렉스는 모를거야. 이런 내 마음을...’ 춘자는 흘깃 알렉스를 보며 혼자 생각하였다. 춘자는 유리창 밖에 칡나무 줄기같은 것으로 만든 두개의 의자가 있는 테라스 같은 곳으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참 좋았다. 어느 세월에 와 볼까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안온한 곳에 지금 실제로 와 있다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춘자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의 명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깨운 것은 역시 알렉스였다.
“춘자야. 이제 준비하고 가야지.”
아. 그렇구나. 내가 할 일이 눈 앞에 닥쳤구나 생각하니 긴장되었다.
“예.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밖에서요.”
춘자는 알렉스가 나가자 호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생각이 알렉스와 연관된 것들이었다. 그녀는 생각해낸 것이 있었다. ‘알렉스가 조금만 더 키가 컷다면 더 잘 어울릴텐데...’너무 아쉬웠다. 춘자는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는 일단 175쎈티 이상은 되어야 한다 생각했었다. 22년전 남편을 만났을 때도 그의 키가 172쎈티였다. 그때는 다들 작았기에 그 정도는 큰 키에 속했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기대고 걸을 때가 한없이 좋았었다. 자기보다 8쎈티나 크니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정말 좋았다. 그떄는 외형만 보고 그에게 넘어갔었다. 별 문제없이 사랑하며 잘 살아왔었다. 10년동안은. 소방관이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두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오다 5년 전에 만난 남자도 역시 키가 컷다. 그와 2년을 살았다. 그도 심장병으로 죽자 이제는 영원히 혼자 살 것이다 하며 두 아이와 함께 삶의 전장에 들어 온 것이다. 피춘자를 잘 지키며 험난한 삶의 파고를 잘 견디고 넘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사람. 내실을 따지기 이전에 자기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에이. 조금만 더 커지 173쎈티가 뭐야!’ 춘자는 후다닥 놀랐다.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여기로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하여. 춘자는 황급히 머리를 세로로 젖고 생각을 털어 버리려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얼른 세수하고 옷을 빽쌕에서 찾아 갈아입었다. 출발때 부터 가볍게 하리라 생각했기에 별 다른옷은 없었다.
"으와. 이렇게 이쁘고 아름답고 게다가 싱싱한 모습의 피춘자 시인이라니, 다른 곳으로 납치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네요."
"여보. 알렉스. 정말 그렇게 보이고 느껴져요?"
"느껴져요? 라니. 이건 생생한 팩트(fact)야. 느낌보다 더 강하게 현실화하는 욕망의 불꽃이야. 정말 대단해."
"됐어요. 당신이 그렇게 놀라시니 최소한 차림새는 됐어요. 이제 그만 놀리세요."
아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객관적으로 봐도 같은 놀라움을 가질 것이다. 특히 그녀의 나이를 알고있는 제임스에게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화려한 것이 아니다. 요란한 것도 아니다. 부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꾸민 것도 아니다. 그녀는 이직 마르지 않은, 젖은 머리가 검고 윤이 났다. 얼굴은 해맑았다. 배내미인이어서 인지 우유빛 마블같았다. 두 눈동자는 이미 말했듯이 맑고 까맣고 커다란 신비한 진실의 연못같았다. 그녀는,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제대로 인지 아니면 제발 독자들이 거부반응을 가질 정도는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그녀는 검은색의 7부 스니커 반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제임스의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었으며그 위에 짙은 커피색의 면 조끼를 입었다. 와이셔츠 끝자락이 조끼밑으로 나와 엉덩이를 반쯤 가렸다. 어느 누가 봐도 절대 50이상으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언급했듯이 더운 열대 기온속에 풋풋한 향내를 풍기는 신선함이 나폴거렸다. 조끼와 같은 짙은 커피색 부드러운 가죽 앵글부츠를 신었다. 안쪽에 지퍼가 달려있고 앞에는 여섯줄로 검은색의 굵은 끈이 매어져 있었다. 구두바닥은 천연고무로 된 짙은 커피색밑창이 대어져 있었다. 신발과 조끼가 일체색이 된 잘빠진 몸매에 하이얀 셔츠는 잘 배색되어 그녀를 더욱 싱싱하고 경괘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보이게 하였다. 그런 그녀 피춘자 시인의 모습은 알렉스를 기절시키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알렉스는 심장마비로 죽지 않은 것을 그나마 감사해야 할 것이었다. 그녀가 정신이 몽롱해져 가는 알렉스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야 하거나 요란스럽진 않죠? 알렉스. 정신차리고 대답 좀 해봐요."
이 얼마나 당당한 자신감의 발로인가. 그녀는 의식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느끼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타입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맑고 진솔한 아름다움의 한 조각이다. 게다가 청아한 목소리가 그녀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곤 하였다. 그녀와 잠시만 이야기하여 보라. 그대도 모르게 이미 피춘자 시인의 광팬이 되어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후회 할 일도 없겠지만, 알고 난 후 스스로 놀랄 것이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흡인적 매력에 빠졌음에. 그것들은 모두 자의적이 아니라 인지상정으로 그렇게 되고 있었다. 아직 사랑시와 사랑글에 대하여는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응. 한개도 야 안하다. 한개도 안 요란스럽다. 그렇지만 참 대단한 멋짐이다. 당신은 했다하면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다 죽이는 자연스러운 멋과 아름다움이니 누가 험 잡을까 걱정스럽지만 어서 가야지. 자! 갑시다. 걱정아."
"후후흣. 다 좋은데 걱정아는 뭐에요?"
"이그~ 그런게 있어. 저쪽 불치사 뒤에 가면."
춘자가 가볍게 운전석 옆자리에 뛰어 오르자 차는 서서히 움직여 동네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켄디 보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정각이었다. 보건소는 맑은 냇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을 낀 언덕의 자락에 있었다. 입구에는 대문 같은 것은 없었다. 담장도 없었다. 시내를 벗어난 한적한 곳이었지만 버스는 다니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서너명이 보건소를 향하고 있었다. 불과 백미터 정도 거리였다. 평화로웠다. 보건소 옆 작은 단층 건물이 그 장소였다. 챤다나 데 죠이샤와 통역인듯한 젊은 사람이 나와 두 사람이 도착하자 걸어와서 인사를 하였다.
"처음 만나게되어 반갑습니다. 아리수 죠이샤 한국이름으로는 조이사입니다."
"아. 알렉스에게 들었어요. 조이사씨. 멋져 보이네요. 한국말 하시는 것이 듣기 좋아요. 있는동안 잘 도와주세요. 부탁해요."
"와. 정말미인이십니다. 들은 것 보다는 더 요. 피춘자 시인님에게 도움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춘자는 기분좋았다. 처음부터 무리없을 것 같은 통역자를 만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되었으니. 춘자는 알렉스를 찾았다. 허나 그녀의 주변에 그는 없었다. 대신 챤다나가 한손을 들며 미소지었다.
그때에도 부모나 형제들의 보호를 받으며 지적장애우들이 들어와 자리잡고 있었다. 스리랑카 전국에서 올 수 있는 사람들은 와서 참석한다고 하였다. 졸지에 전국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이 모임에 조건은 없었다. 분주할 것 같았지만 모두가 배려하고 조금이라도 희생하는 모습으로 질서 정연했으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100여명이 들어 설 수 있는 실내를 꽉채우고도 허리쯤 가려지도록 1m높이 정도로 둘러 처진 하얀 천 경계 넘어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춘자는 연단 뒷편에 정부기관 참가자들과 몇몇의 콜롬보대학 교수들과 인사를 나눈 후 그들과 같이 자리에 앉았다. 숨소리가 들릴 가까운 시야에는 맑은 눈망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뒤로 지적장애우를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는 전국의 관계자들이 와서 자리하고 있었다. 특별나게 구별되지는 않았다. 다들 검소한 것인지 보통 그런 차림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그들 일부는 전통적인 흰색 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때 알렉스가 옆에 왔다. 그는 이곳 사람들과 특별나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수수하였다. 다르다면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검정부츠를 신은 것이다. 그는 그 부츠가 호주에서 만든 것인데 토론토에서 샀다고 하였으며 사계절 내내 범세계에서 신는다 고 하였다. 웃기는사람이었다.
"춘자야. 당신 시를 몇 개 조이사가 번역한 것이 있어. 이것이야."
그가 건네준 시는 자기의 시가 맞았다. 아끼는 시였다. 한글로 스리랑카어를 번역하여 그 시의 문장 밑에 적어 놓았다.
"이 시를 낭송하라는 거예요?"
"응. 그들이 바라고 있어."
"예. 제가 이곳 사람들을 생각하며 피춘자 시인님의 시를 제대로 번역하고자 했는데, 야단 듣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옆 의자에 앉아있던 조이사가 끼어들었다. 피춘자 시인은 프리전테이션(presentation)동안 3개의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3분동안 통역에 의하여 현재의 한국 지적장애우 정책과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체험적 이야기를 했는데, 재 요구에 의하여 20분을 넘겼다. 이것은 시낭송을 뺀 시간이었다. 사랑시도 원래는 한개만 낭송하기로 하였는데 듣던 사람들의 간절한 요구로 3개를 낭송하였으며 그 시에 대한 복사본이 제임스에 의하여 영어 한국어 싱할리어로 4백장이 그 자리에서 그 시간 전에 만들어져 배포되었다. 피춘자 시인이 사랑시 하나를 낭송하고 난 후 그 다음은 모두 함께 낭송하였다. 이러기를 세번. 그 장소에는 감격과 감동에 의한 울음과 눈물이 넘쳤다. 사정을 모르고 지나가다 이런 광경을 본 사람들은 무슨 종교행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것은 누가 인도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개별적으로 느낀 감정이 모여 감동의 폭포수가 되었다. 나중에 알렉스가 그 상황을 재연해서 이야기해 주며 참석한 관계 주요 인사들이 ‘한국에서 온 피춘자 시인은 척박한 땅에 후두둑 몰아친 소나기였다’ 라고 말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였다. 그것은 소나기가 되어 내린 그 소나기도 다시 감동되어 물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오후 8시에 끝날 프리젠테이션은 공연장같은 넘실대는 감동으로 9시에야 끝이났다. 그들과 일일히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지적장애우 한사람 한사람은 피춘자 시인과 악수하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제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쳐다 보기도 하였고 어떤이는 피춘자 시인의 볼을 만지기도 하였다. 피춘자 시인은 쉬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수건으로 그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잘 알지 못할 정도였다. 침대에 걸쳐 앉은 후 피춘자 시인은 그제서야 자기의 몸을 추스리기 시작하였다.
"아아아~"
춘자가 샤워 할 수 있게 샤워실에 타월과 비누를 놓아두고 있던 알렉스가 놀라 달려왔다.
"왜 그래. 춘자야?"
"알렉스. 나 지금 팔을 들 수 없어요. 손바닥과 손목이 부었어요. 어떻해요. 옷을 벗어야 하는데."
"잠깐 기다려. 옷은 내가 벗겨줄께. 나, 벗기는거 부전공야."
"어휴- 저 늑대. 틈만나면 본색을 드러낸다니까요."
"ㅎㅎㅎ 여탈본능이 내 속에 꽉 차 있는가 보다. 오직 당신에 대해서만."
"그 마지막 말 안했으면 알렉스 나에게 아주 죽었을거에요"
"큰일 날뻔했네. 근데 춘자야. 왜 이렇게 되었어?"
그제서야 걱정되는 얼굴을 하며 알렉스는 춘자에게 와서 손바닥과 어깨를 가만히 조심스럽게 만졌다.
"알렉스. 이것은 보람의 아픔일거에요. 들어봤어요. 보람의 아픔?"
"춘자야~"
알렉스가 감격한듯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즈막히 불렀다.
"아아잉- 왜 이래요. 알렉스. 왜 가만이 있는 모성본능 건드리려고 그런 얼굴로 보는거예요. 안되요. 지금은. 나 아퍼단 말이에요."
"나 모성본능하고 관계없이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 그 마음에 감격해서 이러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춘자가 입고 있는 알렉스의 와이셔츠를 벗기기 위하여 단추를 끌렀다. 와이셔츠가 벗어지자 뽀얗고 매끄러운 맑은 피부가 드러났다.
"알렉스. 나 이럴 때 누가 꼭 안아졌음 좋겠어요."
"나는 안돼?"
"어휴- 분위기 깨시네. 그런 것 말 안하고 하는거에요. 나는 안돼? 하고 물으시면 당신은 되니까 해줘 하고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해? 하고 묻고... 이렇게 판은 깨어지는 거예요. 아셨죠? 어서 오른쪽 팔 마져 벗겨주세요."
알렉스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춘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는 하려다 말고 말려다 하려하고, 도저히 종 잡을 수가 없어. 연구대상인 수상한 남자야' 그때 알렉스가 생각을 깼다.
"춘자야. 다음부터는 당신이 직접해야 하는데..."
와이셔츠를 벗겨 한손에 든 알렉스가 춘자의 눈길을 허리에 둘지 젖가슴을 가린 브레지어에 둘지 엉덩이를 쎅시하게 감싼 스니커에 두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물었다. 춘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여는 순간 알렉스가 조금 빨랐다.
"아. 생각났다. 잠깐 기다려봐."
그는 급히 침대옆 싸이드 테이블 밑에 둔 빽색에서 뭔가 꺼내서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맑은 물을 담은 유리컵을 가지고 왔다. 춘자는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