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귀신이 출몰하는 곳으로 근방에서 꽤나 알아주는 학교다.
TV에서도 몇번인가 나왔었고, 내가 다니는 3년동안에도 3류 공포잡지따위에 여러번 실렸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학교괴담은 현실의 일부분일뿐이란 말이다.
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 있다. 우리 학교엔 귀신이 출몰한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다. 목격자가 있기 때문이다. 교직원들은 물론, 전교생들은 대부분 그 귀신들을 모두 목격하고서야 졸업하니까.
그 둘은 우리들의 선배 귀신들이다. 죽지만 않았다면, 아마 이 생긴지 얼마 안되는 학교의 제 1회 졸업생들이었겠지.
이 귀신들이 뭐 후배들을 아껴주고 공부를 가르쳐주거나 도와주거나 이런 친절한 일 따위들을 하려고 기어코 이 세상에, 그것도 학교에 남은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봐서 안다. 그들을 만난다는것은 매우 위험하다.
말했지만 전교생들 대부분이 귀신을 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뭐 하나하나 말하려면 밤을 꼬박 새야하니, 오늘은 내가 겪었던 일만 말하려한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나무를 본따만든 플라스틱 패턴이 붙어있는 창틀에 하영이 턱을 괴고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비를 맞는것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오늘 비는 왠지 찝찝하다는 기분을 저버릴수 없었다. 비의 상큼함도, 쾌적한 공기 따위도 없었고, 그저 눅눅했다.
"에이.."
그녀는 혀를 차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자, 이거 빨리하고 가자. 오늘은 너무 빨리 어두워졌으니까."
승호가 걱정어린 눈초리로 한껏 먹구름이 끼어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기..우리 그냥 이거 나중에 하면 안돼? 어두워지면 학교에 있으면 안된다는거 알잖아.."
종원이가 포스터를 대충 옆 책상으로 치워넣으며 승호에게 물었다. 그는 쥐같이 귀가 컸고, 실제로 목소리도 잘 들어보면 쥐의 찍찍거림을 들을수 있을 정도로 특이했다. 고양이를 본 쥐마냥 고개를 휙휙 빠르게 돌려대는 모습은 가히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영, 승호, 종원이는 그룹활동 때문에 완성해야하는 포스터를 만들고 있었는데, 급작스레 먹구름이 끼면서부터 그들의 정신은 매우 산만해져서, 사실 지금 진짜로 완성되고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임마 쫄았냐?"
승호가 하영이 쪽을 곁눈질로 살피며 종원에게 당당히 말했다. 하영이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그도 걱정되서 미칠 지경이었다.
"저..저번에 철우도 어두워질때까지 혼자 있다가 다친거 알잖아.."
종원이 말을 흐렸다.
"철우는 혼자였잖아. 우린 셋이니까 괜찮을거야."
승호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폐교 안하는지 모르겠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영이 뾰로통하게 말하면서 불안한 눈길로 교실을 둘러보았다.
"지은지 얼마 안되니까 돈 아까워서 그렇겠지 뭐. 사립이잖아."
"그래도 그렇지, 애들이 이렇게 많이 다치는데 어떻게 그냥 놔둘수가 있어?"
"귀신 때문에 폐교한다고 그러면 이상해보이니까 그렇겠지 뭐.."
종원이 조심스레 제안했다.
"뭐가 이상해보여?! 이 학교에 귀신 나온다는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전교생 중에 그 귀신들 안 본 애들이 몇이나 돼?"
답답하다는듯 하영이 발을 쿵쿵 굴렀다.
두 남자아이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영이 한번 신경질을 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걸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이 사실이었다. 그 귀신들을 본 아이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학교가 어두워졌을때 혼자 있으면 안된다는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귀신을 목격한 애들 중의 상당수는 손가락이 베는것부터 뼈가 부러지는것까지 다양한 고통을 경험했었다.
"정말, 학부모들이 소송을 안 거는게 난 더 이상해."
하영은 화가 나면 이거고 저거고 눈에 뵈는게 없는 타입이었다. 그녀는 슬슬 혈압이 오르며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뒤졌으면 곱게 뒤지기나 할것이지, 왜 애들은 다치게 하고 지랄이야?"
"하..하영아!!"
종원이가 다급하게 하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승호 역시 공포에 질린 얼굴로 교실을 미친듯이 둘러보았다.
숨을 고르고 난 하영 역시,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새파랗게 변해버렸다.
"어..어떡해.."
"씨발.."
승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자..다들 가방 같은거 그냥 놔두고.. 셋 세면 같이 교문으로 뛰는거야, 알았어? 하영이 넌 내 손 잡아."
잠깐의 생각 끝에 승호가 굳게 다짐한듯 나머지 둘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하영이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굳게 닫힌 교실문 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교실문은 학교에서 그 안의 죄수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칠해놓은 시든 시금치 색이었고, 눈위치 쯤에는 유리로 되어있어 복도를 내다볼수 있게 만들어져있었다.
"하나.."
승호가 딱딱히 굳은 목소리로 말하며 교실문을 열 준비를 했다.
"둘.."
셋은 모두 귀신이 언제 나타나나 싶어 교실을 다급히 둘러보고 있었다.
"셋!"
"아악 !!!!!!!!!!!!!!!!!"
승호가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복도 저 편에서 빠르게 무언가가 다가와 아직 닫겨있는 교실문에 철썩! 하고 붙었다.
"열어."
유리 반대편으로 보이는 귀신이 웃었다.
"열라고!!"
덜컹!덜컹!
교실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미닫이식 문이라서, 승호는 죽어라고 문을 밀고 있었다.
귀신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피부가 귀신 특유의 푸른색을 갖고 있는것을 제외하고는), 눈매가 매우 날카로운 여자학생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잔뜩 줄인 교복을 입고 있었고, 그 교복 주머니에는 반쯤 비어있는 담뱃갑이 꽂혀있었다.
"열어 씨발 새끼들아! 문만 닫아놓으면 내가 못 들어갈줄 알아? 엉?"
얇은 문을 사이로 두고, 유리를 통해 귀신이, 필사적으로 문을 밀고 있는 승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흰자위가 번뜩였다. 그리고는, 하은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개같은 년, 감히 선배를 욕해? 너 내가 거기 들어가기만 해봐. 아주 갈갈이 찢어버릴테니까."
덜컹! 덜컹!
"악!"
드르륵.
귀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승호가 뒤로 나자빠지면서 문이 거칠게 열렸다. 열린 문으로 귀신이 입꼬리를 말아올려 웃으며 걸어들어왔다.
"자, 이제 니년은 어떡할까. 니가 골라봐. 담배빵? 칼빵? 아님 그냥 맞을래? 뭘로 할래?"
문가에 쓰러져있는 승호의 손을 귀신이 지져밟았다.
"으아악!!"
"그니까 저년은 왜 도와줬어 병신같은 새끼야."
귀신은 교실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구석에 기절해있는 종원을 발견하고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라? 큭큭, 이 병신같은 새끼는 또 뭐야? 기절했네? 푸하하!"
하영은 귀신에게서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교실이 그리 큰건 아니라서, 귀신이 몇걸음만 더 다가오면 쉽게 하영이를 괴롭힐수 있을 정도였다.
"너. 넌 선배존중같은것도 몰라, 엉? 이리와 이년아. 어딜 토껴?"
귀신은 아까 복도 저편에서 다가오던 그 속도로 하영에게 다가가 미친듯이 울부짖고 있는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아악!! 아파요, 아파!!"
"그니까 말하기 전엔 생각을 하고 말해야지 이년아."
"자..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아아악!!"
하영의 길고 예쁜 생머리가, 귀신의 힘에 의해 이리저리 뜯겨나갔다. 한웅큼씩 떨어져나갈때에는, 두피의 조각같아 보이는 핏덩어리가 머리카락 끝에 붙어있기까지 했다.
"이미 늦었어. 킥킥."
인정사정없이 하영을 인형처럼 내팽개치는 귀신. 하영의 몸은 넝마조각처럼 힘없게 책상과 의자들에 이리저리 부딪히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으아악!!"
승호가 문가에서부터 고함을 지르며 귀신에게 돌진했다. 자신도 하영이만큼 맞을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 혼자 저렇게 당하도록 내버려둘순 없었다.
"꺼져!"
귀신이 쉽게 옆으로 피하며 비웃었다. 승호는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교탁에 부딪히고는 쓰러져버렸다. 머리를 다친듯했다.
"잘못했..컥..잘못했어..요!"
여기저기 맞아 피멍이 들어있는 하영이 끝까지 애원했다. 배를 잘못 맞았는지, 그녀는 말하는것도 힘겨워보였다.
쿵!
무언가가 문을 통해 빠르게 다가와, 하영을 반 죽이고 있는 귀신에게 냅다 부딪혔다.
덕분에 하영은 귀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흐느끼며 승호쪽으로 달아났다.
"애들 그만 괴롭혀."
학교의 두번째 귀신이었다. 그녀는 헐렁한 교복을 입고, 층없이 단정한 생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채 서있었다. 아까의 귀신과는 달리 명찰을 교복에 달고 있어서, 한은지라는 이름이 보였다.
"미친년. 참견하지마."
"너도 이제 그만해. 우린 죽었잖아. 이제 그만 가자."
"착한척하고 있네."
"벌써 오년째야. 이제 가자 미혜야."
"재밌잖아? 너도 벌써 뒤지지만 않았음 아직도 괴롭힐텐데. 킥킥."
말마따나, 은지의 하복을 입은 몸에는, 군데군데 담배빵 자국이 남아있었다.
"너때문에 죽은 사람은 나 하나면 됐어. 이제 그만해."
한은지, 정미혜가 왕따시켰던 학생. 은지는 어느날 학교 옥상에서 자살했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미혜는 얼마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후로, 미혜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괴롭혔고, 그것을 막기 위해 은지 역시 내키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 남았다. 아닌게 아니라, 은지가 아니었다면 학교에서는 벌써 몇명이 죽었을것이고, 아마 이미 폐교 되었을것이다.
"비켜, 찌질한 년 주제에."
은지는 저 쪽에 기절해있는 승호와, 승호의 머리를 감싸안고 피투성이인채로 넋놓아 울고있는 하영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는 아이들이 도망갈 정도로 시간만 끌어주었지만, 저 둘이나 구석에 진즉부터 기절해있는 종원이는 절대 도망갈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은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년이 지났다, 벌써. 언제까지나 이런걸 보고만 있을순 없다.
"나도 이제 예전의 한은지는 아니야. 못비켜."
"뭐?"
미혜는 피식 웃고는, 다시 은지를 지나쳐 하영이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퍽.
"뭐..뭐야."
자신의 볼을 부여잡고, 미혜는 믿기지 않는다는듯 은지를 바라보았다. 살아생전과는 다른 모습. 점심시간마다 맞고 울던 은지는 이제 없었다.
사실 미혜는 딱히 잘하는게 있는건 아니었다. 그저 애들이 찔찔 짜면서 잘 당하니까 재밌어서 괴롭혔을뿐이었다. 한마디로 뻔할 뻔자인, 약자 앞에서만 강해지는 그런 유형이었다.
자기 밥이라고만 생각했던 은지에게 이렇게 맞고나자, 미혜는 순식간에 재미가 없어졌다.
사실, 하영이도 때릴만큼 때렸고, 다음 기회가 있을것이다. 그럼 그때는 은지가 못 볼때 얼른가서 괴롭히면 되는것이다.
"이제 가. 얘네 냅둬."
은지가 단호히 말했다.
"미친년.."
미혜는 조용히 중얼거리면서도, 더 이상 맞아가면서까지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애써 괜찮은척하며, 담배를 하나 빼어물고 교실에서 나갔다.
"괜찮니?"
은지가 안쓰럽다는듯 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귀신을 보면 으레 무서워해야 정상이건만, 하영은 이미 몸이 잔뜩 미혜에 의해 망가진 후라, 은지가 반가웠다.
"네..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다녀.."
은지가 피에 잔뜩 물든 하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은지는 쪼그리고 앉아서, 기절해있는 승호의 머리를 건드렸다. 귀신 특유의 냉기가 전해져, 승호는 벌떡 일어났다.
"아.."
일어나자마자 승호는 귀신의 새파란 얼굴을 보고 혼란스러웠지만, 명찰을 보고는 그 유명한 은지 귀신이란걸 알았다. 후배들을 도와주는, 저세상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미혜를 멈추어야하는 불쌍한 귀신.
"안녕하세요, 선배님."
승호가 싹싹하게 인사했다. 은지는 빙긋 웃었다.
지금은 내 동생이 그 학교에 다닌다. 아직도 가끔 다치는 애들이 있긴 하지만, 그 수도 정도도, 확연히 줄었다는걸 알수있다.
은지선배는 아직도, 역시나 그 학교에 머물고 있다. 불쌍한 선배님. 명복을 빌어요.
내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는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간동안 승호가 자주 병문안을 와주었다.
지금 우리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신혼여행에 다녀오면, 그 학교에 잠시 들려 은지 선배에게 인사할 작정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거지만, 그 학교는 그 끔찍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게도 승호에게도 나쁘게 기억되지 않았다.
서로를 지켜줄 사람이 있었고, 남을 위해 희생할줄 아는 선배님도 있었으니까.
첫댓글 혹시 실화? 와아 정말 소재가 !구성이 독특해요 잘읽었어요 :)
실화였으면 정말 무섭겠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
머랄까 코믹스러운 호러?ㅋㅋ 신선해요! 잘읽고가요
네네 , 이번 단편은 그냥 웃고 넘어가지는 의미에서 써봤습니다 -
ㅋ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아 은지 귀여워요 ㅎㅎ 이런거 너무좋아 왠지 서로 괴롭히는데 나중에 정들 것 같다 ㅋㅋ 미혜도 왠지 센척하는 여고생 같아서 못 미워하겠어여 ㅋㅋ 어 근데 이거 고등학교 맞죠?
네 , 고등학교 맞습니다^ㅇ^
ㅋㅋㅋ 내가 미혜인데 내가 귀신이다 ㅎㅎㅎ 잘 읽었어요
이름이 미혜시군요 ㅋㅋ
와아,재밌어요!저보는데 뒤에가 오싹해서 뒤돌아보고 그랬어요ㅋㅋㅋㅋㅎ~공포소설보면서그런적이없는데ㅜㅜ잘읽구가요'ㅂ'~
와아 , 정말요 ?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
저도 귀신이었나봐요(한씨는 아니지만-_-;) 근데 제 댓글 너무 뒷북이 심한...
하하 아니예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쌩쥐족장님^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