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별세, 롯데 창업주 명예회장 재계 5위 대기업 1세대 막내렸다
-신격호 동생 농심 회장, 아들 신동빈 회장, 사실혼 미스 롯데 서미경 등 가족사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 별세..대기업 '창업 1세대' 막내려(종합)
일본서 시작해 국내 제과·관광산업 기틀 마련..재계 5위 그룹 일궈
아들간 경영권 분쟁 등으로 순탄치 않은 말년 보내
장례는 롯데그룹장, 발인 22일 오전 6시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이신영 김보경 기자 =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
신 명예회장은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 중 전날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으며 이날 오후 4시 29분께 신동빈 롯데 회장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고인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거인'으로 평가받는다.
1921년(주민등록상으로는 1922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으로 고학 생활을 했다.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 때 공장이 전소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뒤 껌 사업에 뛰어들었고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이후 롯데는 초콜릿,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특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으로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명예회장이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고인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롯데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지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롯데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과 한 편에 선 신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고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하면서 형식상으로도 완전히 경영에서 손을 뗐다.
경영권 갈등 속에 정신건강 문제가 드러나고 90대 고령에 수감 위기에 처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법원은 정상적인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며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법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이후 건강이 악화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장례는 롯데그룹장으로 치러진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롯데지주 황각규·송용덕 대표이사가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2일 오전 6시다. 발인 후 22일 오전 7시 서울 롯데월드몰 8층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결식이 열린다.
신격호 의절한 동생이 농심 회장.. 대물림 된 롯데 '형제의 난'
2015년 신동빈(64)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65)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자 “롯데는 ‘형제의 난’도 대물림하느냐”는 말이 회자됐다.
5남 5녀 중 맏이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껌으로 크게 성공을 거둔 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8년 롯데제과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삼남인 신춘호(83) 농심그룹 회장, 막내 남동생 신준호(78) 푸르밀 회장, 막내 여동생 신정희(73) 동화면세점 사장을 경영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그룹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형제 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동생들이 분가하며 신 명예회장의 곁을 떠났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일본 롯데에서 일하다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신격호 명예회장이 라면 사업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신춘호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두 형제는 의절했다. 신춘호 회장은 선친 제사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오랜 기간 신격호 명예회장을 보좌했다. 신준호 회장은 롯데건설과 롯데제과에서 대표이사를 지냈고, 1996년 롯데햄·우유 부회장에 올랐다. 그러나 30년 형제애는 1996년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되며 깨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본인과 신준호 회장의 이름으로 반반 나눠 갖고 있던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가 화근이 됐다. 이전까지 신격호 회장을 잘 따랐던 신준호 회장은 이 부지는 아버지에게 직접 물려받은 땅이라며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해 법정 소송을 치렀다. 결과는 맏형의 승리였다. 신준호 회장은 이후 그룹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됐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에 취임했다가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신 명예회장은 24살 차이가 나는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법적 싸움을 벌였다. 신정희 사장과 남편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명예회장의 허락 아래, 롯데그룹과 아무 지분 관계가 없지만 ‘롯데’라는 이름과 원 안에 로마자 ‘L’ 3개가 겹쳐진 롯데 마크를 사용한 롯데관광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2007년 일본 관광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롯데관광이 롯데 이름과 마크를 쓰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냈다. 결국 롯데관광은 롯데 마크 사용만 중지하고 이름은 그대로 쓰고 있는 중이다.
롯데그룹에서 분가해 나온 신 명예회장의 동생들은 독자 경영을 펼치며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은 ‘국민 과자’ 새우깡과 ‘국민 라면’ 신라면을 탄생시키며 농심을 매출 4조5,000억원 규모의 우리나라 대표 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1970년대 초반 한국에는 가볍고 간단하게 먹을 만한 과자가 거의 없었다. 농심은 1971년 고소하고 담백하며 기름과 설탕이 거의 함유되지 않은 새우깡을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새우깡은 그 이름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신제품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심하던 신춘호 회장은 유치원에 다니던 막내딸이 아리랑 발음이 어려워 혀 짧은 소리로 ‘아리깡’이라고 하는 걸 듣고 당시 개발 중이던 새우 스낵 이름에 ‘깡’을 붙였다. 이후 감자깡, 양파깡, 고구마깡이 나오며 ‘깡’은 스낵의 동의어가 됐다. 농심은 1983년 안성탕면, 1986년 신라면을 각각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신 회장은 새우깡을 비롯해 너구리, 둥지냉면 등 농심 ‘효자 상품’들의 네이밍을 직접 한 ‘작명의 달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준호 회장은 푸르밀로 사명을 바꾼 뒤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푸르밀은 1995년 대표 상품인 요구르트 ‘비피더스’, 2003년 ‘검은 콩이 들어있는 우유’ 등을 내놨지만, 이후 기존 제품을 파는 데 주력하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다. 작년 초 신준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49) 대표이사가 취임해 푸르밀은 다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신정희 사장이 이끌고 있는 동화면세점은 1973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빌딩에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내 면세점이다. 중견 면세점이지만 3대 명품이라 불리는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을 입점시키며 급성장해왔다. 2015년까지는 국내 시내 면세점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신세계와 한화, 두산 등 대기업 면세점이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동화면세점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수년간 실적이 떨어져 명품 브랜드들이 철수하고 영업시간도 단축되며 2017년에는 경영 악화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 3번의 결혼과 복잡한 가족사
10남매의 장남..3명의 부인에게서 2남 2녀 얻어
신 명예회장의 첫째 부인은 고(故) 노순화 씨다.
신 명예회장이 19살이던 194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복잡한 가족사는 신 명예회장이 일제 강점기였던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됐다.
당시 노 씨가 임신 중이었지만 신 명예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로 일본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신 명예회장이 일본에 있을 때 태어나 부친 없이 어머니 노 씨와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신 명예회장은 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던 탓에 큰딸 신영자 이사장에 대해 유독 애틋한 감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지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46년 와세다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히카리(光) 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해 비누 등 유지제품을 제조하다가 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껌 사업이 확대되면서 이후 ㈜롯데를 설립하고 종합제과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신 명예회장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던 1952년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씨와 결혼했다.
하츠코 씨가 일본 유력 가문의 딸이어서 이후 일본 내 사업에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기도 했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는 하츠코 씨와 사이에서 출생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일본식 이름은 시게미쓰 히로유키(重光宏之), 시게미쓰 아키오(重光昭夫)로, 두 사람은 출생 이후 성년이 될 때까지 줄곧 일본에서 자랐다.
신동빈 회장은 1985년 일본 대형 건설사인 다이세이(大成) 건설 부회장의 차녀인 오고 마나미(大鄕眞奈美) 씨와 결혼했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1992년 재미동포 사업가의 딸 조은주 씨와 결혼했다.
신 명예회장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했다.
이후 70년대 하이틴 스타이자 미스 롯데 출신인 서미경 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었다.
신 명예회장과는 30살이 넘는 나이 차였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과 서 씨는 한동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았다.
10남매의 장남인 신 명예회장은 사업 과정에서 동생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사업 초기에 남동생들과 함께 롯데를 운영했으나 크고 작은 분쟁이 이어지며 동생들이 모두 각자의 사업체를 갖게 된 것이다.
신선호 일본 산사스 회장을 제외하고는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과 넷째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이 모두 롯데를 떠났다.
신 명예회장은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법적 싸움을 했다.
신 사장의 남편 김기병 회장이 운영하는 롯데관광이 있는데 롯데그룹이 2007년 일본 관광대기업 JTB와 합작해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재계 5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롯데를 일군 신 명예회장이지만,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말년은 쓸쓸히 보내야 했다.
2013년 집무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받은 뒤 거동이 불편해졌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끝없이 흘러나왔다.
더구나 장남과 차남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법원의 한정후견 결정을 받아야 했고 경영 비리 의혹으로 세 부자가 나란히 법정에 서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 10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고법에서 징역 3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되지는 않았다.
재판을 받던 중인 2017년 9월에는 계열사 중 마지막까지 등기임원직을 유지해오던 롯데알미늄 이사에서도 물러나면서 창업 70여년 만에 한일 롯데의 모든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도 했다.
신격호 회장 고향사람들 "큰 어른 가셨다..금의환향 어제 일 같아"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마을 주민들 고인과 인연 추억하며 "깊은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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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knight4시간전
가족들 끼리는 일본어로 대화하던데. 그게 정체성이다.
rin4시간전
신격호는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맞고 한쪽 다리 잃은 일본 A급 전범 사위이다.롯데는
일본 기업 숙주노릇을 자처하고 살아옴.(유니클로, 아사히 맥주, 무인양품,다이소 모두 롯데가 들여오고 유통을 맡음)
신격호 (이중 국적) 부인 :일본인
신동빈 부인 :일본인 시게미츠 마나미
신동빈 아들 :일본국적에 이름 시게미쓰 사토시
신동빈 아들 부인 :일본인
샤우파4시간전
죽었다고 무조건 추모해주고 용서하는 한국문화는 싫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죽은 후에도 심판이 마땅...
신격호도 그렇고 아직까지 신격화되는 기회주의자이자 민족반역자인 다카키 마사오도
뽀식4시간전
롯데 쓰지도 가지도 말자
불매운동만이 돕는거다
롯데 카드 쓰지말자
HID4시간전
시게미츠 타케오, 이름은 본명으로 씁시다 제발.
솔향기4시간전
롯데 그룹에서
임직원들 임금은 5대그룹이 아니라 500대 기업에서도 밀리는 임금......
모든 이익은 일본으로~~
친인척 아니면 발 붙일 팀도 없게 운영 했던 기업의 총수로 기억되는데
나만의 생각일까요~~????
컴투코리아4시간전
고인의 명복은 빌지만
살아생전에 주변사람에게
나눔을 하지 그러셨어요
어차피 갈때는 빈손으로 가는것을
쯔ㅡㅊ 쯫
빛나는4시간전
친일기업 창업주 죽은걸 어쩌라고? 지들 나라로 가라해
퍽스틱4시간전
울 나라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지 잘먹고 잘살려고 살다간것 같다...
스파이더맨4시간전
신격호 할아버지가 히로시마 원폭 떨어지고 항복싸인한 전범 중에 킹 오브더 전범집안이다, 역사나 알고서 고인 어쩌구 말하는거냐, 한국 사람 내장 뽑고 강간에 강제징용에 그 수장들중 집안이다
카이로스3시간전
국익에 도움되는 제조업과 기술관련업은 전혀 안하고 일본기업들 한국경제침략의 유통 전초기지로 대한민국 초토화시키고,
백화점과 호텔을 앞세워 각종 부동산 투기로 돈만 일본으로 퍼나른
그대오르는언덕4시간전
너무 오래사는게 복이 아니라는걸 증명한 사람
아빠4시간전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돈벌어서 일본에 돈갖다 바치고 한국에는 1도 도움안되는 롯데♩~들
그런대도 사람들은 롯대롯대하며 이용하고 돈벌어서 롯대서 돈쓰고...저하늘에서 독립운동하셨던 분들이 보고 얼마나 열받고 계실까...
목숨바쳐 나라 지켜놓았더니 후손들이 뭔지도 모르고 도와주고 있는 꼴을보고 얼마나 답답해 하실까...
TOMKID4시간전
신격호 37세연하 애첩
서미경이 뭐하나
23세 은퇴해서 60세 신격호회장 첩되서
종로 유니플렉스
서울경기 롯데시네마 팝콘사업 유원실업
롯데백 식당 유기개발
김해 펜타곤개발
수천억원대 자산받고 잘사는 서미경이
모두의마블4시간전
일본 국적 사람입니다. 한국인이 아니죠...
나야 나3시간전
농심 불매!!
오뚜기 대박!!
seafood3시간전
남북으로 찟긴 대한민국을 동서로 갈라놓은 기업이지. 박정희 vs 김대중이 무려 55 대 45였었는데 전두환 집권이후 롯데가 경상도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쒸워 장사하려고 롯데 vs 해태를 경상 vs 전라로 이미지를 덧쒸워 껌과 사이다를 팔아먹으며 남남갈등을 만든 기업이지. 친척들은 번 돈으로 농심을 만들어 삼양 vs 농심을 하려다 실패하니까 공업용 기름이라는 오명을 덧쒸워 일본기업만 살아남았지. 결과적으로 롯데는 스스로 큰건 없고 일본기업답게 어둠속에서 뒷담화로만 크는 일본 기업임. 이게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살아남음.
에프킬라3시간전
롯데 일본광윤사가 지주회사인 일본회사.한국에서는 사실상 부동산회사로 일본지주회사의 자금줄임 신격호 회장의 경우에도 일본 내에서 시게미츠라는 이름을 쓸 뿐 자신이 한국인임을 따로 밝히지 않고 철저히 일본식 이름을 쓴다. 그는 한국 정서로는 용납이 안 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빈축을 사는 일이 잦았다. 기본적으로 신동주,신동빈 두사람은 30대때까지 일본국적을 유지하며 한국에선 외국인 대우받다가 40대가 되어 병역의무에서 완전히 사라질때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신동빈의 아들 역시 시게미츠 사토시라는 일본인으로 한국명 신유열
윤혜정1시간전
롯데가 일본에서 롯데껌을 전범기로 상표로 해서 팔았다면서. 그리고 우리나라 김연아 선수가 있는데 대놓고 아사다 마오 후원해주고. 일본 기업 롯데가 우리나라를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수치로 여기는데 물고 빨고 하는 사람 제정신인가
클로킹레이스3시간전
일본 불매운동...꾸준히~
그늘이필요해4시간전
누구나 죽는다.
말년을 아름답게 하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식들이 경영권 다툼을 하는 것만큼 자식교육에 실패한 것은 없다.
돈에 예속된 인간들의 말로는 대체로 편안하지 못하다.
철학이 없는 경영 3세와 4세대들은 부디 공부하는 인간이되길...
............
유협5시간전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기업인냥 세탁하려고 한다.
김경진5시간전
신격호씨..돈은 많이 벌었지만,,
존경스러운 인생은 아닌듯,,
붉은 노을4시간전
저렇게 생겨난 농심은
이날 이때까지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살아남았지!
대표적인게 희대의 똥통 정치인
김기춘이를 사외이사로
앉혀놓고
온갖 특혜는 다 누려온 기업!
신라면보단
오뚜기가 진리이다!
굴비먹고4시간전
농심이 이렇게까지 큰이유는
잘나가던 삼양을 공업용우지라고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경쟁사를 죽게만든 농심의
비열하고 치촐한 공작이 있었기 때문이지
당시만해도 삼얌라면이 업계 부동의 1위
ailin4시간전
이걸보니 LG, GS가 참 모범적이네
짱이4시간전
나는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일본에 이득되는 회사 제품은 절대 안산다
haneul3시간전
신격호 장인 =시게미쓰 마모루
(윤봉길의사의 도시락 폭탄에 다리잘린 대역적놈
맥아더장군 앞에서 항복문서에 사인)
신격호 마누라=시게미쓰 하쓰코
롯데는 신사참배우익의원14명에 간접적후원과 우익역사교과서 만드는곳에 후원하고 있으며
독도는 일본땅을 주장하고 홍보하는곳에 엄청난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롯데는 결코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강마을4시간전
새우깡, 감자깡, 양파깡의 ~깡이 자식이 일본말만 알아서 한국 발음을 잘못해서 붙인 이름이라고요...?
~랑의 우리말 발음을 잘못해서 붙인 ~깡...
이런 이름을 우리가 좋다고 사먹었다니.....
memo4시간전
아리랑 발음을 못해서 아리깡 그래서 새우깡이라고 하고 몰핬다면 모를까 알고나니 더 못쓰겠네 이제 새우깡도 바이바이~~
둘리동생3시간전
전두환 사위였다가 이혼하고 신준호 푸루밀회장 맏사위된 자한당 윤상현 기회주의자!! ㅋ
신 양수4시간전
어이가 없네. 새우깡은 일본의 국민과자 에비셍을 그냥 카피 한건데. 일본인들도 새우깡 봉지보고 웃던데. 이놈의 롯데 패밀리는 뭘 하나 해도 전부 일본꺼 베껴 들어오는거 이상 할줄 아는게 뭐있나? 라면에 새우에 빼빼로에 .
굿바이4시간전
맏이가 되어서
심지어 24살 아래 여동생도 품지 못한 사람.
돈에 앞서 인간이 되어야지.
돈으로 목숨은 연장했지만
노숙자나 재벌이나 100년 내외에
죽는다는게 유일한 평등이자 경이로움이다.
여하튼 잘 가시오.
네리마4시간전
새우깡은 일본에 똑같은 과자. 에비센. 이름까지 베낀거고
너구리는 일본 타누키우동. 그대로 너구리도 베낀건데.
뭘 작명의 달인????
뮤직매니아3시간전
롯데불매가 정신차리게 해야하는데..유니클로 한국본사가 롯데타워 안에 있는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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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치없는' '값없는'…
어떻게 살아도
삶의 발자취는 남는것!
고귀하고 고결한 뜻
독립군의 자손으로
자랑스럽게 살아가자
소시민으로 살아가도
분별이 무엇인지는 안다
선택은 나 자신의 몫
떳떳하고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