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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한국의 美_ 달
ysoo 추천 0 조회 133 16.02.23 18: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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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달 / 오정방(시인, 1941~)


지난 해 찾아왔다
말없이 떠나버린


대보름 둥근 달이
올해도 높이 떴네


그 모습
변함 없음에
님 본듯이 반갑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둥글고 큰 보름달의 원만하고 덕스러운 아름다움을 사랑했고, 풍성하고 넉넉한 만월을 바라보며 한 해의 풍년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첫 만월이 온 누리를 비추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의 깊고 고아한 정취를 담았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보름달처럼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2월 맞이하십시오.


에디터 조민진

사진 최충식, 최갑수(속표지) 어시스턴트 박혜미 촬영장소 도봉산, 영덕(속표지)




한국의 美_달


달,우리네 삶을 밝고 넉넉하게 채우다


둥근 달을 보면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오고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향한다.

우주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달만큼 사람에게 친근한 대상이 또 있을까.
이제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낭만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두둥실 떠 있는 달은 우리 마음속에 아련한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보기만 해도 넉넉해 우리네 심성과 닮은, 보름달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만월(滿月)에 소망을 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에서 달은 사람과 무척 친밀한 존재다. 그만큼 우리나라 세시풍속에서 보름이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그렇고, 큰 명절로 여기는 중원절(음력 7월 15일, 백중)과 음력 8월 15일 한가위를 보면 우리 선조들이 보름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정월 대보름은 음력을 사용하는 전통 사회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녔다. 농경을 기본으로 한 우리 민족은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보면서 날짜의 흐름을 알았고, 달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의 농사일을 수행했을 정도로 달은 선조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였다.

또,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은 풍요와 번영과 생명력에 대한 믿음이자 꿈이었고, 여기에 보름달이 둥글고 밝은 만큼 우리들의 믿음과 꿈도 부풀고 또 빛을 더하였다. 그래서일까. 우리 민족은 한 해의 처음으로 뜨는 보름달을 ‘대(大)보름달’이라고 부르면서 이날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이날 행하는 각종 풍속은 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을 빌고 재앙과 액을 막는 풍속을 행했는데, 보름달 아래서 풍요를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고 달집을 태워 점을 보는 것이 대표적이다.

달점이란 정월 대보름날 떠오르는 달의 모양을 보고 그해의 농사를 점치는 세시풍속으로, 달빛의 표정을 보고 길흉을 점쳤는데 달빛이 붉으면 가물고, 황토색이면 대풍이라고 믿었으며, 북쪽으로 치우치면 산골마을이 풍년이요, 남쪽으로 치우치면 바닷가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대보름날에 행하는 달집태우기는 달집 속에 짚으로 달을 만들어 걸고 달이 뜰 때 풍물을 치며 태우는 풍속으로 달집이 잘 타면 풍년, 도중에 꺼지면 흉년,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또 달집 속에 대나무가 타면서 터지는 소리와 빨간 불길이 부정한 것과 악한 것을 소멸시켜준다고 믿었으며, 달집을 태울 때 남보다 먼저 불을 지르거나 헝겊을 걸면 아이를 잘 낳고, 논에서 달집을 태우면 농사가 잘된다고 생각했다.

음력 8월 15일 한가위 역시 달의 명절로, 보름달을 상징으로 삼는 큰 명절이다.

한가위 저녁에는 마을 동산에 올라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달맞이를 한다. 이날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불길한 징조로 삼았고, 구름이 끼어 달을 못 보면 보리와 메밀이 흉년이 들고, 토끼는 새끼를 배지 못해 번식하지 못하며, 개구리는 알을 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한가위가 달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보름을 단위로 초승달에서 반달로 이어 만월로 옮겨가는 과정이 연속적이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생명이 성장하고 퇴조하여 죽음에 다다르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과 한가위날 달 밝은 밤에 둥근 달을 보며 마을의 처녀와 아낙들이 모여 둥근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춤추는 놀이로 문학 평론가 이재선 교수는 강강술래를 ‘달을 찬미하는 춤’이라고 했다.


달빛을 배경으로 정월 대보름날이나 추석날 곱게 단장한 마을 부녀자들이 ‘강강술래~강강술래~’를 합창하고 그 가락이 흥으로 변해 어깨가 너울거리고 외씨버선의 발이 달빛 속에 뛰며 달과 춤과 노래가 하나가 되어 빛을 더 은은하게 만드는 강강술래. 우리네 여인들은 강강술래를 추면서 마음껏 달에게 애소하고 하소연함으로써 가슴에 맺힌 슬픔도 한도 달빛 같은 고요한 그리움으로 빚어낼 수 있었으리라.


한편, 보름달은 날마다 뜨지 않아 더 귀하고 날카롭지 않아도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은근하며 서정적인 것이 우리 민족의 성정과 딱 맞아떨어진다.



둥글고 탐스러운 달을 노래하다
강강수월래


여울에 몰린 은어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빙빙 돈다
가아웅, 가아웅 수울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수월래


-이동주 시인의 ‘강강수월래’



한편, 보름달은 날마다 뜨지 않아 더 귀하고 날카롭지 않아도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은근하며 서정적인 것이 우리 민족의 성정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 이유로 달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예술가들은 시와 노래로, 그림으로, 춤으로 저마다 지닌 재능으로 달을 그려내고 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왔다.

달의 모습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푸근한 어머니의 품을, 고향을, 설레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낸 것이다.


그 가운데 소설가 김동리는 그의 수필 ‘만월’에서 ‘산도 물도 수풀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라도 좋다. 머리 위에 보름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고 세상은 충분히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有感)한것이다. (…) 나는 보름달의 꽉 차고 온전한 둥근 얼굴에서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며 보름달
을 예찬했다.


때론 보름달이 작품 속에서 희망과 기원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라고 노래한 백제의 가요라고 알려진 ‘정읍사’에서의 달은 먼 옛날 백제의 한 아낙이 장사 나간 남편이 몸 성히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달님이 하늘 높이 돋아 멀리멀리 환하게 비추어 남편이 오는 길을 무사히 지켜주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전통화에서도 달빛의 명암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달빛의 명암법은 넓은 여백감이라고 할 만한 여유있는 개방적인 공간감을 빚어내고, 동시에 은은한 암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것은 미처 화면에 표현되지 않는 숨어 있는, 깊이 가려진 잠재적인 심층을 넌지시 시사한다.
이와 같은 달의 명암법은 신윤복(申潤福)이 달밤에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를 그린 ‘월야밀회’에서 잘 나타나고, 한가위 보름달과 가을의 쓸쓸함을 그린 김두량의 ‘월야산수도’ 도 그런 정서를 빼어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김두량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 조선 후기 화가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이 1744년 한가위에 그린 작품으로
한가위의 보름달은 크고 둥그나, 그 아래 나뭇잎이 떨어진 나무와 안개 너머 숲은 가을의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는 태양에 비해 달은 구름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예쁘기로는 별에 뒤질지 모르지만 달은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 정월 대보름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낮에 보이는 달과 밤에 보이는 달의 색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빛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색은 덧칠할수록 검은색으로 변하고, 빛은 더할수록 흰색으로 변한다. 색의 삼원색인 빨강·파랑·노랑을 섞으면 검은 색이 되고, 빛의 삼원색인 빨강·파랑·녹색을 섞으면 흰색이 되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

밤에 달이 노랗게 보이는 이유는 태양이 노란색 별이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는 달은 노란색 햇빛을 받아 그대로 반사시키기 때문에 밤에는 당연히 노랗게 보인다. 하지만 낮에는 이 달빛이 파란 대기를 통과해서 우리 눈에 보이기 때문에 원래 노란 달빛과 파란 하늘빛이 섞여 거의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달의 색깔에 따라 풍년인지, 흉년인지 정말 알 수 있을까?


달의 색깔이 달라지는 이유는 달빛이 지구로 들어올 때, 지구의 대기 상태에 따라 퍼지는 빛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사의 풍년이나 흉년과는 관계가 없다.

대기가 맑고 깨끗할 때는 모든 빛이 지표면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흰 달이 보이고, 대기에 먼지가 많거나 달이 낮게 뜨는 경우에는 붉은빛이 많이 퍼지기 때문에 붉은 달로 보인다.
또 아주 드문 일이지만 화산이 폭발해서 화산재 등으로 지구의 대기가 더러워졌을 때는 푸른색이 많이 퍼져서 푸른 달로 보인다.


보름달은 반달보다 실제로 얼마나 더 밝을까?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것이 바로 달이다. 보름달이 반달보다 두 배 정도 크니까 밝기도 그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보름달은 반달에 비해 약 10배 정도 밝다.


한가위 보름달과 정월 대보름달 중 어느 것이 더 클까?


달은 지구 둘레를 약간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따라 돌기 때문에 같은 보름달이라도 지구에서의 거리는 최고 10%까지 차이가 난다. 따라서 보름달이라도 지구에서의 거리에 따라 조금씩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한가위 보름달과 정월 대보름달과 지구의 거리는 매년 다르기 때문에 어느 달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달에도 산과 바다가 있을까?


달에도 산과 바다가 있다. 달 표면에서 높은 곳을 산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햇빛을 잘 반사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밝게 보인다. 달 표면에서 낮은 곳을 바다라고 하는데, 바다처럼 낮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지구의 바다처럼 물이 출렁거리는 것은 아니다. 달의 바다는 움푹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둡게 보인다.



서양에서 보름달은 ‘공포’의 대상이다


달에 대한 감정은 나라와 문화에 따라 크게 다르다.

특히 우리나라와 달리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가장 무섭고 싫은 존재라고 한다.


이는 사람 안의 사악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전설이나 속설 때문으로 달 속에 늑대인간이 산다는 오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드라큐라 백작, 늑대인간 같은 서양 귀신들이 항상 보름날 밤 달이 가장 높이 뜨는 자정 무렵에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보름달을 싫어하는 것은 블루문(Blue Moon)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다.
블루문이란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의미하는데 음력에서 한 달은 29~30일이기 때문에 양력으로 1일에 보름달이 뜨면 마지막 날쯤에 보름달이 한 번 더 뜰 수 있다.

기분 나쁜 보름달을 한 달에 두 번이나 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좋을 리 없을 터. 여기서 블루문은 우울한 달, 기분 나쁜 달이란 의미로 쓰였다.


또, 서양에서는 보름달이 잠재된 범죄 심리를 자극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서양의 통계를 보면 다른 날에 비해 보름날에 범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에디터 조민진

일러스트 최광민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세시풍속과 우리 음식>(조후종 지음, 한림출판사 펴냄) <별가족 태양계 탐험을 떠나라>(김지현 지음, 토토북) <전통문화를 찾아라>(한혜선 지음, 거인 펴냄) <달을
찾아서>(이희주 지음, 창비 펴냄) <우주견문록>(이태형 지음, 사이언스주니어 펴냄) <달은 어디에 떠 있나?>(정창훈 지음, 웅진주니어 펴냄)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사전 ‘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환기 ‘산월’ (캔버스에 유채, 132×162.5cm, 1962).


한국의 美_달


예술에 깃든 달의 아름다움,
달에 비친 세상 이야기


풍요로움이 가득한 꿈과 희망의 상징인 정월 대보름달과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 가장 소장하고 싶은 우리의 대표 미술품으로 꼽는 달항아리는 서로 닮은꼴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친숙하게 상징하는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둘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한국적 미감의 아이콘을 만나본다.

달과 달항아리의 이미지를 주인공으로 삼은 흥미로운 작품들을 소개한다.


정월 대보름인 음력 1월 15일은 달이 태양과 지구의 서로 반대쪽에 위치해 만월(滿月, full moon)을 이룬다. 이때의 보름달 밝기는 금성이 제일 밝을 때의 1,500배에 달하며, 태양 다음으로 밝은 등급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름달을 바라보는 시각은 상반될 때도 있다. 가령 서양에서의 보름달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악의 상징이나 무서움과 두려움을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면으로 비칠 때가 많다.

하지만 동양에선 정반대의 의미가 강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름달은 친근함과 풍요로움이 가득한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그래서일까, 보름달을 표현한 세시 풍속이나 문학, 그림, 설화가 우리 역사에는 차고도 넘친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어찌하여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


보름달과 그를 빼닮은 달항아리 그림으로 유명한 우리 현대 미술의 거장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역시 이처럼 한민족의 감성을 백자 달항아리에서 찾았다. 소박하고도 한국적인 미를 담은 하얀 원형의 도자기는 온
화한 백색, 유려한 곡선, 넉넉하고 꾸밈없는 형태로 아무 장식도 없이 서민 특유의 소박하고 진솔한 멋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에 깃든 달의 아름다움은 다시 달항아리로 승화되어 우리의 세상살이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달에 비친 우리 산하, 우리 민족의 감성


누가 뭐래도 달을 테마로 한 그림으론 김환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61년 유화 작품 ‘달 2개’를 보면 그가 달을 어떤 감성으로 바라봤는지 잘 나타나 있다. 2m에 육박하는 대형 화면을 2개의 큰 원형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보자마자 한 쌍의 만월(滿月)임을 알 수 있다. 2개의 원은 세상의 대자연을 품고 있다. 산이며 강과 구름 그리고 무지개까지 온 세상의 축소판이다.

그 아래로는 평화로운 지평선이 낮게 깔려 있고, 그 경계엔 한 쌍의 굵은 점이 놓여 있다. 마치 하늘의 쌍월(雙月)이 대지로 내려와 나란히 걷는 부부가 된 듯하다.

다음 해인 1962년에도 2개의 달을 그린 ‘산월(山月)’이 있다.

이것은 춤추듯 부드러운 곡선으로 가로누운 산등성이를 경계로 2개의 보름달이 걸쳐 있다. 아마 하늘에 뜬 달과 강에 비친 달을 동시에 표현한 작품일 것이다. 이 역시 앞서 소개한 작품 ‘달 두 개’에 등장한 쌍월이나 지평선에 얹어 있는 쌍점을 그린 감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김환기에게 달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며, 동시에 자신을 비춰준 거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희중 ‘Honeymoon’ (캔버스에 유채,50×72.7cm, 2009).



이희중 작가만큼 달을 맛깔스럽게 표현한 화가도 드물다. 그림에는 전통 민화에서 차용한 듯 온갖 형상이나 이미지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잘생긴 소나무나 활짝 핀 갖가지 꽃, 산·구름·물고기·달, 등 굽은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감성으로 되살려낸 현대 민화의 대표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거의 모든 그림의 배경이 달밤이란 점이다. 분명 꽉 찬 보름달은 떴는데 전혀 어둑하지 않다. 오히려 오방색 축제라도 벌어진 듯 오색찬란하다.

계절이나 특별한 시간대일 때도 멈춰버린 것처럼 몽환적인 인상을 자아내는 것이 이희중 달 그림의 특징이다. 그 신비함을 더하려는 걸까, 작가는 유난히 30년 가까이 청색을 즐겨 사용한다.

“청색은 심오해질수록 인간을 더욱더 무한한 곳으로 이끌며, 인간 속에서 초감각적인 동경을 일깨운다”는 칸딘스키의 청색 예찬론을 구현한 듯하다. 이희중의 청색 달밤이 유독 차분하면서도 미묘한 깊이를 자아내는 것은 유화 물감을 동양화 물감의 석채처럼 사용하는 특유의 채색 기법을 응용하기 때문이다.

분명 소재나 조형성은 전통성에서 출발하되, 마지막 순간의 발색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마치 억겁의 시간을 이겨내고 항상 새롭게 비추고 있는 달빛을 닮았다.



김덕용 ‘결-달이 흐르다’ (나무에 단청 기법, 80.5×80.5cm, 2011).



이보다 더 감미로울 수 있을까. 잠길 듯 드러난 보름달의 형상은 사색에 잠긴 달빛의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김덕용은 버려진 나무(판)에서 진한 생명감을 찾는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나무야말로 오랜 벗에서나 풍기는 진득한 정을 느낄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보일 듯 말 듯 자극성이 없는 묘한 색감은 바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단청 기법이다. 천연 안료나 독자적으로 만든 채색 재료를 칠하고 지우길 수차례 반복하고서야, 어느 게 나뭇결의 자연 문양이고 어느 것이 그려진 이미지인지 모르게 둘은 하나가 된다.
거친 나무판이 작품의 화면으로 되살아나자면 오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사포로 문지른 나뭇결의 깊이만큼 올린 색조의 농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묵은 때만큼 수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의 나무(판)는 단순히 평평한 판자가 아닌, 전통적인 정신 세계의 근원이며, 사유의 샘이다. 그림자처럼 스민 김덕용의 달빛이야말로 우리 민족만의 정감 어린 보름달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아닐까.


1 권대섭 ‘백자 달항아리’.


우리 민족 체취 담긴 공예품, 그 이상의 달항아리


한민족은 유독 흰 색깔을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흰색의 미감을 가장 잘 드러낸 예술품으로 달항아리가 첫 번째로 꼽힌다.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한국의 폭넓은 흰빛의 세계와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不定形)의 원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달항아리는 세계 각국 박물관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 하는 한국의 미술품이라고 한다.

한 예로 영국의 대표적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Howell Leach, 1887~1979)가 1935년 우리나라에서 달항아리를 구입해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좋아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도자기는 1997년 대영박물관에서 다시 구입해 한국실에 영구히 전시 중이다.


둥근 모양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조선 백자인 ‘달항아리’의 이름은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붙여진 것이다.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의 “보름달같이 환하면서 열사흘, 열이레 달 같은 매력이 있다”는 표현이나 고고학자 김원용 선생의 “조선 백자에는 허식이 없고 산수와 같은 자연이 있다”고 말한
것은 모두 달항아리엔 공예품 그 이상의 인간적인 체취와 친근감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장식이나 기교가 없는 단순한 형태의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가 시공을 초월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조선의 유교적 분위기와 어울려 질박하고 검소하며 실용성을 띤 생활 철학까지 반영됐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한국적 미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달항아리 미감을 현대에 들어서도 새롭게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40대의 도예가 강민수는 촉망받는 달항아리 작가로 주목받는다. 그는 20여 년간 묵묵히 전통 방식만을 고집하며 달항아리를 만들어오고 있다. 장작 가마에 쓸 국산 소나무도 직접 강원도에 가서 고른다. 장작을 만들어서 다시 1년 정도 햇볕에 잘 말리고, 강원도 양구나 경남 산청과 하동의 흙을 가져올 정도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그만의 좋은 도자기를 만드는 비결이라고 한다. 어린시절 열병을 앓아 청각 장애가 있는 작가에게 달항아리는 오로지 손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에 다름 아니다.


대중적인 인기도가 가장 높은 백자 달항아리 도예가로는 60대에 접어든 작가 권대섭이 꼽힌다. 어느 미술사학자는 권대섭의 달항아리를 두고 “흙색을 존중하고 본질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불필요한 곡선과 면이 최소한으로 표현돼 우리 민족 정서의 실용성과 견실성을 엿볼 수 있다. 지극히 전통적이면서 창조적인데, 이 2가지가 현대 미학의 맥락과 어울려 큰 멋이 우러난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다.

그의 달항아리에 대한 철학 또한 남다르다. “백자 달항아리를 두고 단순·소박·무작위성(無作爲性)만 말하는 건 편견이다. 백자를 유백·설백·회백으로 나누지만 실제 백자 색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다양함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강조한다.

달항아리의 흰색은 그냥 흰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화가들이 쓰는 먹색이 서양화의 검은색과 다른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수작업에 의존하며, 1,300°C가 넘는 온도도 온도계 하나 없이 순전히 불색깔이나 녹아 있는 유약의 상태를 보고 판단한다.

풍만한 달항아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조형미 대신 약간 일그러진 모습으로 사람을 묘하게 끄는 매력은 결국 이성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의 감성으로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달항아리에서 우러나오는 멋은 한국인의 마음, 한국인의 정서, 한국인의 삶과 정신이 된다.



2 김환기 ‘항아리와 매화’ (캔버스에 유채, 45×52cm, 1954).


달항아리의 매력에 매료된 예술가들의 프러포즈


달과 달항아리. 둘은 원래부터 한 몸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김환기의 그림에선 그렇다. 하늘에 뜬 달이 지상으로 내려와 달항아리에 스며든 것처럼, 김환기 그림의 달항아리는 많은 사연을 품은 듯하다. 그가 달항아리에 관심을 집중적으로 쏟았던 시기는 광복 이후부터 파리로 건너가기까지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우리의 것을 그려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발휘된 듯 민족적 정서가 담긴 소재를 탐닉한다. 산, 달, 학, 새와 같은 한국적인 소재부터 매화와 항아리, 달빛과 항아리, 여인과 항아리 등의 작품을 통해 달항아리에 대한 극진한 러브홀릭에 빠진다.

그중에서도 1954년에 발표한 작품 ‘항아리와 매화’는 둥근 달과 이를 닮은 백자가 같은 형태로 반복되면서 오
묘한 구성과 색의 조화를 연출한다. 김환기가 한국적인 소재를 달항아리로 말미암아 어떤 빛을 내게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강익중 ‘Happy Moon Jar’ (Mixed Media on Wood, 118×118cm, 2011).



일명 ‘3인치 작가’의 별명을 얻으며 뉴욕에서 활동 중인 강익중은 새로운 시각으로 달항아리를 표현한다.

바로 한글과의 접목이다.


“달항아리와 한글의 비슷한 점은, 따로 만들어지는데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모음과 자음이 붙어서 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달항아리도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따로 만드는데 불가마를 통과하면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큰 주제는 평화다. 특히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달항아리는 남과 북으로 분단된 우리 민족의 현실과도 닮았다.

원래 하나의 민족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있고, 다시 한 민족을 염원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겉보기엔 한 몸이지만, 그 안에는 위판과 아래판이 합쳐진 달항아리.

둘로 태어났지만 숙명적으로 하나일 수밖에 없는 달항아리의 운명은 바로 우리 민족의 통일 염원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강익중의 최근 달항아리 작품은 심오하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우리의 산하 이미지 소재와 어우러지게 하여 더없이 친근함을 자아낸다.



3 구본창 ‘Vessel (HA 05-1)’ (C-print, 154x123 cm, 2005).



4 오관진 ‘채움과 비움(소원 성취)’(혼합 재료, 90x73cm, 2011).



사유적인 사진가로 잘 알려진 구본창은 조선 시대 백자의 미학을 카메라 렌즈로 담아 낸다. 그의 도자기 사진은 관조적이고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사진이 현실을 기록하는 사진의 전통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구본창은 동양의 ‘빈 공간’ 소위 여백의 정신성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두고 ‘만드는 사진’이라고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백자의 하얀 속살 같은 표면 위에 시간의 상처를 통해 긁힌 흔적들”이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국내외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그 단아함 속에서 비울수록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조선 백자의 남다른 미감을 사진으로 옮긴 것이다.


한국화가 오관진은 균형이 빗나간 달항아리의 일그러진 표정이나, 불길이 스쳐 지나간 막사발의 검은 흔적, 그리고 작은 균열까지 극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달항아리가 등장하는 풍경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느끼기 어려운 입체적인 질감은 탁월한 묘사력과 만나 특유의 생명력을 뿜어낸다. 작가 오관진은 “채움과 비움 그리고 비워진 달항아리가 들려주는 순수한 울림을 전하고 싶다”며 ‘달항아리의 소박한 멋은 결국 백의민족의 또 다른 표상’이라고 강조한다.



2 김중식 ‘모나리자와 달항아리’(캔버스위에 아크릴릭,112x112cm, 2010)


1 오영숙 ‘수렵’ (나무에 혼합 재료, 60x60cm, 2011).



같은 달항아리라도 김중식의 것은 좀 색다르다. 얼핏 실루엣으로 달항아리가 비쳤지만, 그 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상인 모나리자·성모 마리아·부처·오드리 헵번 등이 겹쳐 보인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영(幻影), 성(聖)과 속(俗) 등이 어우러진 이중적 변주다. 이 역시 달항아리가 태생적으로 지닌 이중적 재결합의 속성을 시각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몽환적인 이미지의 연출은 캔버스 위에 수많은 원형의 입자들로 분열과 응집을 반복하며 조화와 상생을 노래한다.


오영숙의 달항아리 작업은 언뜻 퍼즐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기하학적 모양이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흔히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로 잘 알려진 도상을 통해 화면의 역동적인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한글의 자음이 기하학적 육각형이나 오각형에 찍혀 있고, 자음 표면이 투명하게 도포되어 있어 반짝인다. 하지만 그 눈부심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감정을 전한다.

이유는 바로 화면엔 혼자서는 글자를 완성할 수 없는 한글의 자음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음의 역할로서
우리의 따뜻한 시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김윤섭(미술평론가ㆍ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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