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한효동 과수원 방문기(2)
대전지부 동기 모임은 하다 보니 이제는 만나서 먹고, 마시고, 수다 떠는 모임이 되어버렸다. 된 게 아니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져서인지는 몰라도 옛날부터 그랬던 거 같다.
대전에서 뭍은 먹물이 멀리 봉화 깊숙이 왔다고, 그리고 14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그리 쉽게 빠지겠어요? 먹고, 마시고, 수다. 대전지부의 DNA. 동 뭐시기 대학, 정 거시기 교수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붙였다 뗐다가 안 됩니다. 공학적?으로 얘기해서 그런 기술이 아직 개발 안됐어요. 나, 공돌이 . . .
영주시내 조금 벗어나서 고즈넉한 매운탕집으로 갔습니다.
효동 형이 어련히 알아 잡아 놓았겠어요. 우리 모두 바로 그 집 분위기에 금방 동화되고 흡수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초록이 동색, DNA濃於血(>血濃於水).
그러고 보니 무섬마을 긴 외나무 다리 건너 갔다 왔더니 우리 모두
“고독한 미 식 가 . . .” 꼬로록 하라가 헸다 A !
상이 꽉 찼다. 가운데 냄비에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와 !
우선 술 한잔부터 . . . 하고 상 위?, 어! 아래?, 엣! 밑?!을 보아도 없다. 상 위에 잔마저도@?! 없다. 자연히 효동형 얼굴로 시선이 집중할 수 밖에 . . . 무슨 말이 있겠지 . . .
그런데 曰 오늘 와줘서 반갑다네 . . . 아니 그거 말고. . .
그리고 가라사데, 오늘 오후 일정이 백두대간 수목원에 가야하고, 그곳 바로 옆에 효동형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만산고택에서 숙박한다는 설명에 붙여, 줄곧 차로 운전하며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 . .
아! 그놈의 음주운전 단속.
그래도 그렇지 매운탕 먹을 때는 시작할 때 술 한 병, 수다 떨면서 또 한 병, 수다 떨다가 보면 국물이 거의 쫄아 붙을 때 거기다 밥 비벼서 꼬들꼬들해지면 이를 안주로 또 한 병이 典範인데, 이 ‘매운탕 삼병’ 명분을 헌신짝 버리듯 패대기치다니 . . .
그러나 상황은 뱃속에서 폭동 일보 직전이다. 명분과 현실의 갈등과 싸움. 역사적으로 절박한 현실 앞에선 명분은 휴지조각에 불과 했었다.
순식간에 상 위가 초토화 되었다. 오랜만의 훌륭한 매운탕이었다. 그러나 술 없는 究極의 매운탕은 고문이기도 했다. 효동형의 장난기 어린 고문 . . .
백두대간 수목원! 뒤로 병풍처럼 둘러 있는 소백산 줄기의 위용이 우리들의 수다를 막아버렸다. 매표소 입구 건물을 경노 프리패스로 통과해 다리 하나 건너니 수목원이 저 멀리 계곡 끝까지란다. 경노 프리오토패스(Venarable senior free auto pass)가 절실 했다. 다행이 사파리 전동버스가 중턱 까지 유료 운행되고 있었다. 중턱에서 호랑이 사육사 까지 걸어갔다가 내려오기로 했다. 그 정도는 운동 삼아 걷고 수다 떨기에 적당했다. 태풍이 지나간 후라 하늘? 높고, 공기? 청정 상쾌, 계곡? 물 맑고 소리 높고, 이런 곳에서의 수다? 낭랑하고 고고하고 쉬임 없었다. 딱 하나 호랑이만 게을러터져 포효를 안 한다. 며칠 굶겨야 하는데 여기 까지도 복지가 넘쳐나는가 보다.
효동이 형 과수원이 저기 보이는 데도 수다가 안 끝나 화장도 고칠 겸 입구 건물 2층 카페로 이동 하였다. 볼일 다 보고 주문한 음료수 다 마셨으면 일어나 가야 하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여직원의 모습이 초조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이윽고 그 여직원 대충 정리하더니 그냥 조용히 칼 퇴근해 버린다. 복지시대의 주 52시간 칼 퇴근. 그래도 경상도 양반 마을이라 그런지 우리 경노 수다에는 칼을 들이 댈 수가 없었나 보다. 어느 집 양반 댁 규수인가 . . . 얼굴도 예쁘장하고 . . .
드디어 關心의 과수원에 다다랐다. 우선 과수원을 둘러보았다. 園長님의 설명을 들으며 뒤를 따랐다. 과수원 구석구석 나무 가지가지마다 손 안 거친 곳이 없었다. 시름없었던 그간의 삶이 아니라 땀으로 점철된 하나의 개척사였다.
존경!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내 손이 부끄러웠다. 나도 여주에서 농사 하는 데.
그런데 사과나무에 사과가 하나도 없다. 옆집 사과나무에는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 . .
품종이 달라 이미 수확을 마쳤단다. 그러면 올 추석이 빨라 사과가 귀해 재미 좀 보았을 텐데 틀림없이 . . .
긍정도 부정도 안하고 여유롭게 웃음 짓는 주인 영감 마님의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 . .
집 앞 넓은 데크 위 야외 탁자에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우리를 내 몰았다. 이걸로 입막음하려는 의도가 역역하다. 통장에 벌써 들어간 거 누가 어쩐다고.
그런데 그게 아니고 차려 놓은 음식 마를까봐. 그리고 느그들 ‘고독한 미식가’눈이 풀린 듯 해 불안해서라네 . . . 아! 대전지부 DNA!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에 밥이라더니 밥과 된장찌개는 side dish. Main dish 는 과일이었다. 텅 빈 사과나무를 보고 걱정했는데 ‘느그들 먹을 과일은 냉장 창고에 그득하다’는 효동 형님의 한마디에 대전지부 DNA 중 굶주린 늑대 DNA는 OFF, 순한 양의 DNA는 ON! 대전지부 다루는 효동형의 솜씨는 신의 경지!
그러나 술은 한 방울도 안 나왔다. 그놈의 음주운전 단속 때문에 . . .
배가 차고 먹을 게 널려 있으니 대화가 진지해졌다. 사과 영농, 부르베리 영농, 범홍형의 고구마 영농, 봉화군 영농 정책, 귀농자 실태 등 각종 복지 정책과 맞물려있는 상황, 많은 참고가 되었다. 나도 당장 농업경영인 자격취득 신고부터 할 것이다. 수당도 타고 보조금도 타야지 . . . 얏호!
우리는 어느 듯 만산고택으로 갈 준비를 하고, 범홍형은 내일 여주 출사가 있다고 서둘러 제천으로 떠났다.
빛사냥 여러분! 여주 터줏대감이 없는 데 오면 어떻게 해. 사냥감 정보는 어디서 받았나? 출사와서 출출했겠네. ㅉㅉ. 사냥감은 나무꾼이 어데 있는지 잘 알지.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곳도 알 걸 . . .
만산고택에 당도하여 행랑채 좌측 방에 인암 부부, 우측 방에 장, 성 두 싱글, 별당 翰墨淸緣 방에 달하늘 부부가 입실 했다. 이어 한형이 행랑채 마루에 다과상을 차려놓고 다들 모이게 했다.
와! 이런 세상에 . . . !
한효동 표 봉화 포도주와 부루베리주 ! ! ! 라벨도 제대로 . . .
매운탕 집에서 억눌렀던 분노, 술 한 방울도 없는 저녁상의 배신감, 한순간에 봉화 계곡물에 떠내려갔다. 헌데 마나님들 그동안 웬 술이 그렇게 늘었나 . . . 한잔 더 하려니까 눈치가 보이네.
자식과 남편, 그들로 인해 이 나이에 허전한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 텅 빈 부분을 술아! 너라도 대신 채워 드려라.
오늘의 climax 포도주는 비어가고, 만산고택 가을 밤은 깊어가고, 소백산 봉하마을 가을은 짙어가는 데 . . . 우리들 수다는 잠꼬대로 이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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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漸入佳境 !!
방문기(1)과는 다른 분위기의 글체.. 방문기(3)이 또 기대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