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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론방 스크랩 임진왜란때 진주성대첩을 이끌어낸 학봉 김성일 종택을 찾아서(1편),원주변씨 간재종택
약포 정탁 추천 0 조회 57 14.05.09 16:5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안동 가볼만한곳,안동 1박2일 여행코스 9편

 

어제 2014,5,8 급하게 안동을 다녀왔다.그동안 역사공부하는 도중 막히는 부분도 있고 참고할 책과 자료는 많은데 한꺼번에 다녀온 것이다.

안동 가볼만한곳,안동 볼거리로 진주정대첩을 이끌어낸 학봉김성일 선생 종택과 기념관을 소개한다.

 

 

 

예천에서 안동 방면으로 가다보면 송야사거리가 있고 거기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원주변씨 간재종택이 있고 조금 더 가면 학봉 김성일선생 종택이 우측에 있다.어제일정은 간재종택-학봉종택-안동국학진흥원-광복회안동지회('임청각'후손 이항증 선생 면담)를 다녀왔다.아침일찍 이항증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예천은 비가 오는데 안동은 안온다고 한다....그래도 날씨는 안좋아서 비가 오락가락 햇다.

 

 

원주변씨 간재종택 충효문 안내문....죽기전에 역사공부도 해야하고..답사도 해야하고....서예도 배우고 싶고...클났다...시간도없고..돈도 없고...왜 젊엇을때 못했을까?만시지탄이지만...지금이라도 하는데 까지 해보자...

 

충효문(홍살문)이 있는 저기가 바로원주변씨 간재종택이다.간재공 변중일선생은 임진왜란때 경상도순찰사 학봉김성일선생을 도와 쌀 100섬을 군량미로내놓은 인물이다.진주성대첩은 학봉선생의 지도와 활약..그리고 뜻있는 양반과 선비들의 충효정신과 후원,백성들의 의리가 집합한 결과였다.

숙종 12년(1686년)에 간재 변중일 선생의 충성과 효행을 기려(경상감사의 보고) 충효의 정려(旌閭)를 하사하고 정충효각(旌忠孝閣)을 세웠다. 변중일(邊中一, 1575~1660)의 충성과 효행 변중일 선생의 성은 변(邊)이요, 이름은 중일이다.

 

 

 작년에 원주변씨 간재종택에서 음악회를 보고 즐기다가 필자는 하룻밤을 에서 묵은 적이 있다 자료는 여기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196556563

간재종택 고택체험숙박은 010-8829-5223(주영숙 종부님)

 

 

 

간재 변중일 종택의 위 일본도와 아래 충효고가 편액(현판)은  안동 국학진흥원에 있다.

 

 

 

간재종택을 나와서 학봉종택방향으로 가던중에 안동버버리찰떡 체험장이 있다.

 

 

안동,예천,의성,영주,봉화,문경,영양,청송은 골골이 마을마다 고택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문중에서 향사를 지내고 종손과 종부를 중심으로 똘똘뭉쳐서 가문의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학봉기념관이다.

 

 학봉선생구택의 솟을대문과 현판

 

학봉선생구택 편액(현판)글씨는 가족중  5분이나 독립유공훈장을 받은 향산 이만도의 손자인  이동흠선생이 쓰셨다.

 

 

퇴계종택에 걸린 '퇴계선생구택'이나 '추?한수정'편액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gaetuel/20202287677

 

 

 

학봉종택 전경이다.

종부님과 종손인 김종길님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집안 형수되는 미산고택 박정로님의 부인과 종부님은 이종사촌간이라 한다. 학봉종택 사랑채에 걸린 이동익선생 글씨이다.이동익선생님의 호를 춘파로 쓰신 것을 보니까 일중 김충현선생님이 지어주셨다는데 초창기작품이라 합니다.(이동익님과 통화)

유천 이동익님은 서예대전심사위원장도 하셨고 현재는 사단법인 퇴계학연구원 원장으로 계신다.유천서실(02-733-6565)

 

금서다고의(거문고와 서책은 옛 뜻을 많이 품고 있고) 수석담유거 (돌과 물=산수는 담박하여 그윽한 곳에 살고있네)

 

 

김군진종길 자사

위 내용은 뭔가 하면  양반이나 선비들은 자를 지을 때도 의미를 두고 지엇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명은 김종길인데 자를 군진으로 쓴다는 내용입니다.

 

 

'효제충신'이란 = 어버이에 대한 효도(孝道), 형제(兄弟)끼리의 우애(友愛), 임금에 대한 충성(忠誠)과 벗 사이의 믿음을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유천 이동익 서

 

 위사진은 중국에서 온 공자와 맹자의 종손과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입니다.한복을 입은 두분이 바로 김정길 종손님과 종부인 이씨여사(퇴계종손인 이근팔님의 여동생이시다.

학봉종택 고택체험 :예약안내 : 054-852-2087

조식제공여부 : 가능(숙박료에 포함)

 

김종길선생과 부친이셨던 고 김시인선생

 

 

 

안동의병장을 하셨던 서산 김흥락 선생과 손자인 김용환공의 독립유공훈장증

 

서산김흥락선생은 퇴계학통의 적통을 이어 받은 분이죠.을미의병때 안동의병장을 하셨고 김용환공은 도박을 가장하여 파락호 행세를 하면서 전답을 팔아서 독립운동자금을 대신 분입니다. 서산 김흥락은 제 6대조인 박한광할배의 갈장을 쓰신 분이죠....박한광할배의 손녀(박주대,박주학 형제의병장의 누이)가 의성김씨  도사댁(내앞마을,천전리)으로 시집갔고 김대락,김락여사의 어머니이신데 김락여사가 향산 이만도의 며느리이시고 김락 여사의 사위가 바로 김용환공이시다. 김용환공의 처외가가 백하구려(도사댁)이고 처외외가가 우리집안 '미산고택'이죠.김락 여사의 아들이 '학봉선생구택' 편액(현판)을 쓰신 분이죠.

 

★김락여사와 이동흠공은 요기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206981486

 

 종손께서 입으시는 두루마기....

 

종가 안채입니다....종부님의 사생활이 있기에 시선을 차단하였습니다.

 

 

안채 마루의 집사분정기

 

 학봉종택 사랑채입니다.

 

사랑채 옆에 있는 풍뢰헌 현판

 

 

 

 풍뢰헌 쪽에서 본 학봉종택

 

분량이 많아서 학봉종택은 두부분으로 나누어야 겠군요....다음포스팅은 학봉 기념관자료와 학봉김성일과 선생이 임란에 임한 자세입니다.

 

  

 

학봉 김성일의 한글편지

김성일이 경상우도 감사로 산음에 있을 때 부인 안동권씨에게 보낸 한글편지.

 

안동 납실이란 분가하여 초창기에 지낸곳이다.거기에 부인이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피난 가잇었던 것이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아래 편지내용)

(경상도 사나이는 무뚝뚝한 것이 아니다.촐싹대지 않을 뿐.얼마나 마음속으로 서로를 그리워 했을까?)

그 애틋한 심정을 오늘 날의 우리가 눈치챌 수 있을까?

학봉은 1차 진주성대첩을 이루어 낸후 성안에서 과로로 쓰러졌고  병사했다.

 

호남 광주땅에 제봉 고경명 의병장이 있다.

학봉은 나주목사로 유일하게 외직을 지넷는데 당시에 나주에서 서원을 지을 때 제봉선생과의  협조와 교류가 있었다.

 김성일의 인품을 그 때 겪어 본

제봉 고경명선생은 장자와 차자를 데리고 임진왜란때  의병전쟁에 나가면서,

 16세난 셋째아들이  따라 나설려하자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우리는 죽으러 간다.집에 어머니와 누이,할머니도 계신다 .

가족들을 데리고 경상도 안동땅으로 피난가되 학봉댁으로 가거라.

학봉선생은 의리가 있는 분이니까  너의 가족들을 지켜줄 것이다.

그래서 고인후는 가족 50여명을 대동하고 안동 학봉댁에서 피난 생활을 3년을 했고,

임란이 끝난후 한양의 과거시험장에서 학봉의 아들과 반갑게 해후햇다.

학봉아들은 과거에 실패하였으나 고인후는 과거를 합격햇다. 

그뒤 10년뒤에 고인후가 안동부사가 되어  안동에 왔을때

학봉의 부인과 며느리와 아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어 주었다고 한다.

"그 때 그대들이 없었다면  오늘 어찌 내가 있으리오"하면서...

 

제봉 고경명의 동생은 제주도에 군마를 구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순절했고,

고경명과 장자,차자가 금산전투에 유정대사와 같이 참전하였다.

관군이 먼저 무너지고 의병과 승군은 금산전투에서 전멸을 했고 '칠백의총'에 붇혔다.

금산에서 억지로 살아나온 장남인 고종후는 남은 전답을 팔아서 '복수의 의병'다시 일으켜서 진주성으로 간다. 호남을 지킬려면 남으로 후퇴한 왜놈들을 진주성에서  막아야 하는 때문이었다.

권율장군은 진주성을 비우라고햇으나 의리가 있는 최경회,고종후 ,김천일 장군등은

왜군과의 3일간의 혈투끝에 분하게도  전멸한다.

그 원혼을 달래려고 진주 유등축제가  생긴 것이다.

 

광주 제봉 고경명의병장 종택(제봉종택)과 포충사는 요기참고

http://blog.naver.com/gaetuel/20201698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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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5.09 22:50

    첫댓글 학봉선생께서는 왜란이 없다 주장하시다 큰일을 치를 뻔하시었지만...

    전란 중 너무도 열심히 국란을 극복하시고자 노력하시었죠!

    안동에 의사들이 참으로 많사옵니다!

    의기로 군량을 주신 분!
    의병!

    그리고 비록 고향은 아니나 안동에서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신 장군의 후원자 서애선생까지...!

    저와 관련있는 하회탈춤놀이..!
    맛난 간고등어와 전통주..!

    다음에 가족과 오붓하게 안동나들이겸 역사탐방을 해보아야겠사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리옵니다!

    읍!

  • 작성자 14.05.12 08:47

    여행은 아는 만큼 보입니다.....하하

    그지역을 먼저 조사좀 해가면 많이 보이는데...현대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가는 차안에서 검색들을 주로 하더군요....젊은이들은....

    저는 안동을 가면 광주와 진주가 생각나고....광주를 가면 안동과 진주가 생각나고....진주를 가면 안동과 광주가 생각납니다...


    위의 제봉 고경명의병장의 3부자 순절정신(충효정신)이 광주정신이라 생각됩니다....

    위사진중 6번과 7번은 임진전쟁(그리고 420년의 기억)이라는 7주갑기념도록에 있는 자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꾸벅

  • 작성자 14.05.12 08:49

    학봉선생이 왜란이 없다고 주장햇다는 것은 그당시의 전개상황이나...나중의 경과등을 보면 조금 왜곡된듯합니다.....앞과 뒤를 생각않고....일부러 글자 몇개만 부각시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자료는 나중에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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