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신경 쓰이는 게 있다.
동과 동을 연결하는 주차장 통로에
자동차 몇 대가 늘 주차돼 있는 것이다.
통행에 큰 지장은 없지만
사람들이 지나다니거나 차량이 오갈 때는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 넉넉한 주차 공간이 있는데도
거기까지 가기가 귀찮아 통로에 차를 대는 것 같다.
1년 반 전에 누군가 검은색 차를 세운 뒤부터
다른 차들도 슬금슬금 이곳에 주차를 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매일 차들이 서 있다.
차 한 대가 오래 지켜온 질서를 무너뜨린 셈이다.
범죄 심리학의 유명한 이론 중 하나인
'깨진 유리창 이론'이 떠오른다.
건물에 깨진 유리창 하나를 그대로 방치하면
머지않아 나머지 유리창도 모두 깨진다는 내용이다.
갈아 끼우지 않은 유리창 하나는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며,
더 많은 유리창이 깨져도 내버려 두리라는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방치된 쓰레기 더미, 허물어진 건물,
폐차 직전의 자동차 등도 같은 이유로
사람들의 범죄 충동을 부추긴다.
법학자 애덤 벤포라도의 책 ≪언페어》에 실린
한 실험의 결과도 비슷했다.
도로 옆에 낡은 자전거를 불법으로 세워 두자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사람이
인근 통행금지 지역을 무단출입했다.
이를 보면 사람은 다른 이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적 동조'라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깨달았다.
주차장 통로에 주로 세워져 있는 차는
검은색 차를 포함해 네다섯 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부분의 주민은 통로가 비어 있어도
그곳에 차를 세우지 않는다.
몇 대의 차만 계속 주차를 하는 것이다.
심리적 동조가 인간의 뿌리 깊은 성향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깨진 유리창을 보고도
다른 유리창을 깨뜨리지 않는다.
길거리가 지저분하더라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일상에서 질서를 지키는 이런 선량한 이들의 작은 행동이 모여
우리 사회를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 아닐까.
더 적극적인 사람들도 있다.
깨진 유리창을 직접 바꿔 끼우는 이들이다.
미국 뉴욕 지하철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지하철역 계단 중 한 개의 높이가 살짝 높아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안고 있던 아기를 떨어뜨릴 뻔한 엄마도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자신이 부주의했다고 생각하거나 바빠서 그냥 넘어간 것이다.
그러다 통근길에 이 계단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한 시간 동안 무려 열일곱 명이 계단에 걸려 비틀거렸다.
이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자 뉴욕시는 즉각 보수 작업에 돌입했다.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말했다.
"세상의 선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위들을 통해 자라난다.
우리가 그렇게 나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의 절반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사람들 덕분이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 묻힌 사람들 덕분이다."
얼마 전,
네 살 아이가 엄마의 학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몸무게가 7킬로그램으로 또래의 절반밖에 안 됐다고 한다.
그 작은 아이가 어둠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며
우크라이나의 시가지와 사람들 위로 떨어지고 있다.
참혹한 일들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나의 자리에서 내 일을 올바르게,
정성껏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
위대한 사람과 큰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일상을 온전하게 살아 내며
바로 서야 세상을 받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오늘 집에서, 일터에서,
심지어 병상에서도 세상을 지키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윤재윤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