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사람들 가운데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통해 감사의 의미를 깨닫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 자녀의 눈에 비친 부모님의 감사는 마치 DNA 처럼 자녀의 영혼에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 부모님 영향 아래
성장한 자녀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은호 목사 역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명입니다.
이 목사는 어머니로부터 감사를 배웠습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느라 모진 고생을 했지만
이 목사의 어머니는 결코 감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목사의 기억 속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 목사가 목회자가 되어 감사의 길을 걸을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찬송으로 흘러나온 감사!!>
이 목사의 어머니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이 목사가 알고 있기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실제로 결혼 생활을 했던것은 1년이 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덜컥 홀몸이 된 어머니가 느꼈을 막막함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도 이 목사의 어머니는 좌절하지
않고 신앙의 힘으로 역경 앞에 당당히 맞섰습니다.
이 목사의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아들을 키우느라 공장에도 나가고 보따리 장사, 옷가게
소 사육 등 안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 어려운 과정들을 묵묵히 잘 견뎠습니다. 또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가 기도
기도를 통해 얻은 지혜로 사업도 잘 꾸려나갔습니다.
그런 이 목사의 어머니가 가장 기뻐했던 날은.. 자신의 집을 마련한 날이었습니다.
1971년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변두리에 마련한 무허가 주택이었습니다. 이 목사의 어머니가 생애 처음으로 마련한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이 목사의 어머니는 감격에 겨워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고는 친정 부모님과
대학에 다니는 여동생까지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어머니의 감사는 날마다 찬송으로 흘러나왔습니다.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이 목사의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목사의 어머니가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옷을 팔러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깊은 산골에 가서 옷을 팔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기 몇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그만 버스가 출발해 버렸습니다. 예정 시간보다 먼저 출발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눈앞에서 타야할 버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혹시 백미러를 본 기사가 버스를 세울지도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버스를 따라 달렸습니다.
무거운 옷 보따리를 든채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몇 시간을 정류장에서 기다린
뒤 다음 차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단한 삶과 서러움에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산길을 내려가던 중에 먼저 출발했던 버스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진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가 난 버스의 잔해는 계곡 밑에 엉망진창
다음날 조간 신문에는 그 버스에 탔던 승객 운전사 전원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만약 그 버스를 탔더라면 이 목사의 어머니도 다른 승객들과 같은 운명을 맞았을 겁니다.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간섭 섭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보너스 인생으로 생각하며 절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기로 다짐
<놀라운 치유의 은혜!>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은 성장 과정에 있는 자녀로서는 참 힘든 일입니다. 특히 아들의 경우에는 롤모델의 부재가 큰
상실감으로 다가올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큰 걸림돌로 가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 목사가 살던 동네의 풍경은 궁핍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대부분의 아버지는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라
술에 찌들어 폭력을 일삼는 폭군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녁 늦게 이 목사의 집으로 찾아온 동네 아낙들은 이 목사의
어머니에게 그런 하소연들을 한없이 풀어놓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어머니 옆에서 자주 들었던 이 목사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큰 상실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좌절의 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더 꿋꿋하게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삶의 장애는 그것을 장애로 여길 때만 장애가 됩니다. 게다가 이 목사에게는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든든히 채워 주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 목사의 어머니에게 또 다른 시력이 닥쳐왔습니다. 이 목사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폐병에 걸리신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3개월을 넘길 수 없으니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가장의 역할까지 하며 억척스러울 정도로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절박한 상황...
그러나 이 목사의 어머니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이 목사의 어머니가 기도한 것은 자신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아들을 맡아 돌봐 줄 사람을 보내 달라는 기도.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놀라운 치유 긍휼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목사는 이를 지켜보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한 이후 어머니의 찬송 소리는
더욱 커졌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
이 목사는 초등학교 시절 학급에서 늘 반장이었습니다. '착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학년 때는 전교에서 단 한명을
뽑는 착한 어린이 상도 받았습니다. 이 목사는 당시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그 상의 후보로 추천한 이유를 어려운 삶의
여건 속에서도 결코 환경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고 늘 밝은 표정으로 학교를 다녔기 때문일 것으로 추즉.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어머니의 영향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
아들이 너무 귀한 상을 받은 것이 감사해서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학교 앞에 있는 초라한 국수집에서 국수한 그릇씩을 대접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가난한 살림에 그것은 최선의 대접.
그렇게 어머니는 감사를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상담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목사의 어머니는 늘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궂은일에도 발 벗고 나서는 '감초 아줌마'
늘 자신을 찾아와 신세 한탄을 하는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아픈 사람은 한의사에게 보내 주고 약값까지 대신 지불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에게는 결코 보약 한첩도 지어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보약이 뭡니까? 오히려 스스로 양말을
빨아 신게 했고 운동화도 직접 빨아 신고 집안 청소까지 시키는 엄격한 어머니였습니다.
독자라서 응석받이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했기 때문.
그렇게 성장한 아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잊지 않고 늘 감사하는 사람.
이 목사는 옥인교회를 담임한지 10년을 넘겼고, 부임할 때와 비교해서 평안하고 든든한 교회로 세워졌으며, 무엇보다
감사로 소문난 교회가 되어 주변의 목회자 성도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 목사에게 얼마 전에 안부 전화를 했더니
몇번을 연락해도 연락을 받지 못해 많이 답답했었는데,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이유와 근황을 대신 문자로 알려왔습니다.
" 전 목사님 연락 받지 못해 죄송해요. 성대 결절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달 동안 설교도 쉬고 있습니다.
그 대신 동역자들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못하는 대신 몸으로 아파트 주민들과 탁구 모임에 나가서
어울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교회 부임 후 10년 만에 장로 부부 동반 수련회로 제주도 2박 3일 다녀왔습니다.
덕분에 목회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호 목사의 문자를 받고 얼마 전 읽은 안희환 님의 칼럼이 생각났습니다.
"서울 독산동에 있는 한 교회의 종탑이 새벽 예배 시간에 엄청난 바람이 불면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16M 되는 높은 종탑인데 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채 옆으로 넘어진 후 교회 전면으로 떨어졌습니다.
종탑이 전선에 걸리면서 불꽃을 일으켰고 정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쁘게 꾸며 놓은 교회 화단의 소나무가 종탑에 의해
부러졌습니다. 그 옆에 세워 놓았던 자동차 한대는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교회 앞 도로에서 교회를 올려다 보니
교회 전면의 유리도 몇 군데가 깨져 있었고 종탑이 세워져 있던 곳의 대리석도 부서져 있었습니다.
종탑 끄트머리의 십자가는 완전히 구겨져 버렸고요. 그런 광경을 보면서 갑자기 감사의 내용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