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글쓰기의 세계
네이버블로그/ 글쓰기를 가르치는 마음
②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글쓰기 피드백에 있어 당근과 채찍 중 어느 게 더 좋을까? 나는 “당근이지!”라고 대답한다. 글쓰기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글로 혼나면 글이 아닌 나를 혼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자신감을 상실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좋은 글은 나올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이 초고를 가져오면 “소재는 좋은데요? 한번 발전시켜 보죠”라고 한다. 작은 소재가 부풀어올라 어떤 멋진 글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칭찬은 자신감과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처음 글을 쓰겠다고 사방팔방에 말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잘할 거야”라고 응원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도저한 믿음이 맞았던 것 같다. 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인데 무일 때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직 아무 글도 안 썼는데 손에 펜을 쥐고 있는 그 순간 말이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라고 해주면 진짜 잘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먹고 자란 학생이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22년 2월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수업을 의뢰했을 때 내가 코로나에 걸려서 부득이 일주일 뒤에 시작하게 됐다. 그때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며 더 천천히 봐도 된다고 했다. 의뢰 당시 내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수업에 임하기 위해 그 책을 사 읽었다.
격리가 끝난 후 우리는 쉑쉑버거에서 만났다. 학생이 햄버거를 먹으면서 수업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수기 대여 회사에 다니는 50대 부장님이었다. 20년 간의 회사 생활 끝에 부장이 됐다고 했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구나.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나는 학생에게 “저도 부장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흔쾌히 그렇게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후 나는 학생을 늘 부장님이라고 불렀다.
부장님이 쓴 소설 제목은 「구독인간」이었다. 갑자기 좌천을 당한 ‘김 부장’이 구독 서비스를 통해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고 사내 정치를 정리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글의 주제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무언가를 구독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구독하고, 플라리스 오피스를 구독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 돈이 나가는 것으로 기분이 살짝 우울해지려 하니 여기까지 하겠다.
부장님은 「구독인간」을 두 달 동안 계속 고쳤다. 공부하듯 수업에 열심이었다. 회사원이라 중간에 짬을 내 나와서 카페에서 수업을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퇴근하고 나면 이미 지쳐 있기도 했고, 회사 컴퓨터에는 보안이 걸려 있어 딴짓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장님은 내가 알려준 대로 핸드폰에 폴라리스 오피스라는 앱을 받아 틈이 날 때마다 핸드폰으로 글을 수정해 왔다. 거의 핸드폰으로 완성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사실 부장님은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보통 학생들은 제목 짓는 걸 어려워해서 내가 대신 지어주는데 부장님은 「구독인간」이라는 제목도 스스로 지어왔다.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장님은 진짜 잘 쓰세요.”
“이 부분 좋네요. 계속 써보세요.”
내가 계속 칭찬만 해주니까 부장님은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심지어 나를 의심하기까지 했다.
“아니, 선생님! 너무 칭찬만 해주는 거 아니예요? 정말 잘 쓰고 있는 거 맞아요?”
「구독인간」이 완성되자 이 글이 당선될 거라는 각이 보였다. 다른 학생들 작품에 비해 완성도도 높았고 주제도 참신했기 때문이다. 결국 내 예언이 맞아떨어지고 난 뒤에야 부장님은 의심을 거두게 됐다.
물론 칭찬만이 정답은 아니다. 칭찬만으로는 작품의 퀄리티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열고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칭찬을 수용하는 한편, 작품의 개선을 위한 비판적인 피드백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칭찬을 먹고 자란 부장님은 다음 작품도 잘 썼다. 내가 베스트로 꼽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경력사원」은 삼성에서 갓 이직해온 경력사원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물이다. ‘삼성에서 왜 더 안 좋은 회사로 오지?’ 하는 의심을 품고 뒤를 캐보니 직전 회사에서 연애 경력이 화려했던 ‘경력사원’이었다는 이야기다. 칭찬은 이처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자신감이라는 단어에는 자신을 믿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쓰자.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더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믿고, 자주 칭찬해 주자! < ‘잘 쓰겠습니다, 일탈 강사 김연준이 들려주는 솔직담백 글쓰기 라이프(김연준, 서교출판사, 2024.)’에서 옮겨 적음. (2024. 3.21. 화룡이) >
첫댓글 칭찬은 이처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저도 지적 보다는 칭찬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래도 춤추게 만드는 칭찬!
우리 오늘도 한번 늘어지게 해보십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