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칼럼] ‘비전 프로’는 제2 스마트폰 시장 빅뱅 신호탄?
스마트폰 다음의 컴퓨터는 머리에 쓰는 형태(Head Mount Display)로 예측돼 왔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런칭하면서 ‘HMD’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애플 주가가 12일(현지 시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면서 관심 또한 급등하고 있다. 정지훈 필자는 이 부분을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AMMGS) 간의 시장 경쟁에서 바라본다. 과연 세계 정상급 빅테크 기업들의 향후 10년을 좌우하는 한판의 승자는 누구일까? 특히 생성형 AI와의 결합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편집자 주]
✔ 애플, 차세대 컴퓨팅 디바이스 ‘비전 프로’ 선보여… 파급력 상당할 것
✔ 시장 커질 조짐 보이면 제품 내놓는 애플… XR 디바이스 출시는 시그널
✔ ‘공간 컴퓨팅’ 용어 활용해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 포지셔닝 하는 중
✔ 생성형 AI 기술·서비스 뒤처지는 애플로서는 꼭 유리한 환경은 아니야
✔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쟁사… 애플 참전으로 시장 확대될 가능성 커
애플의 XR(확장현실) 기기 ‘비전 프로(Vision Pro)’를 착용한 모델 (사진: 애플 홈페이지)
‘One more thing …’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WWDC(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를 할 때마다 막바지에 이 말을 하면서 놀라운 제품을 하나씩 발표했었다. 이 대사가 팀 쿡의 입에서 드디어 터져 나왔다. 팀 쿡은 이 말과 함께 애플의 새로운 차세대 컴퓨팅 디바이스인 비전 프로(Vision Pro)를 선보였다. 꽤 많은 사람이 제품 발표가 있으리라 예측하고 있었고 일부 사람들이 테스트한 경험들에 대한 입소문이 있었지만, 기존에 발표되었던 숱한 확장현실 HMD(Head-Mount Display, 머리에 뒤집어써서 보는 웨어러블 기기)와는 확실히 다른 방향성을 제시했기에 이로 인한 파급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타, XR 디바이스의 선두 주자
이와 같은 차세대 컴퓨팅 하드웨어 디바이스를 가장 열심히 개발하고 보급해 온 기업은 단연 메타이다. 기업명을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바꿀 정도로 메타버스에 진심인 이 기업은, 연구와 상업화 모두에 많은 투자를 해오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과거와 같은 수준의 속도와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 못하지만, 여전히 가장 앞서있는 수준의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시장을 선도해 왔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이번에 애플이 발표한 비전 프로의 가장 핵심적인 기술들이나 기능들은 메타의 퀘스트 제품군들을 고급스럽게 만든 것에 가까운 수준이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애플 비전 프로에 대해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우리가 아직 연구하지 못한 물리적 법칙에 대한 해결책은 없었다. 애플의 제품은 더 높은 해상도의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지만, 이를 공급하기 위해 약 7배 이상의 비용과 배터리, 전선 등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메타의 최신 VR·AR 통합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 프로 (사진: 메타 홈페이지)
애플, 비슷한 기술로 다른 디바이스를 이야기하다
애플을 혁신기업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의 행보는 공격적으로 제품을 먼저 내놓고 시장을 선도하기보다는 시장이 커질 조짐이 보이면 수년 내에 대규모 판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기에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애플이 움직인다면 그로 인해 다른 수많은 기업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전체 판매량이 늘기 때문에, 시장에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를 공급할 유인 요인이 커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해당 디바이스들을 가지고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더욱 판매량이 늘게 되고 해당 디바이스 시장이 정착하게 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그렇게 진행되었고, 스마트 시계 시장도 그렇게 성장했다.
스마트 시계 시장이 커진 사례를 되짚어 보자. 애플은 삼성전자와 소니 등의 기업이 먼저 제품을 출시하고 난 뒤 스마트 시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3년 9월, 삼성전자가 갤럭시 기어(Galaxy Gear)를 출시하면서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소니와 퀄컴 등이 경쟁 제품을 출시했다. 구글은 2014년 6월 스마트 시계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웨어(Android Wear)를 발표하였고, 뒤를 이어 이를 운영체제로 채택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 시계가 제품화되면서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장이 확대되자, 드디어 애플이 뛰어든다. 애플 워치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애플의 스마트 시계는 2015년 4월 출시되었는데, 2015년 420만 대가 판매되었고, 아래 그림과 같이 매년 큰 폭으로 판매가 늘면서, 2020년 12월 기준으로 1억 1,100만 명 이상이 애플 워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애플 워치 선적량 통계 (사진: HEADPHONES ADDICT, https://headphonesaddict.com/apple-watch-statistics/)
시장 커지면 뛰어드는 애플식 마케팅
출시 초기만 하더라도 마니아층에서만 활용했었는데,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시계의 기능 이외에 운동 목적, 수면 측정 등에 활용하면서 나아가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과 연계되는 다양한 기능들도 부각되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스마트 시계를 생활필수품처럼 매일 같이 차고 다니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애플이 보급이 확대되기 시작한 XR 디바이스 제품을 출시했다는 것은 해당 산업의 성장 사이클에 매우 강력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다. 애플의 비전 프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XR 디바이스들과는 다른 기술적인 부분, 그리고 기능을 위한 다른 선택지들이 보인다. 착용할 때 조금이나마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를 별도의 팩으로 분리해 연결하게 하였고, 안경을 쓰는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도록 자석으로 맞춰지는 시력 교정 삽입물을 통해 안경이나 콘택트렌즈가 필요하지 않게 만들었다. 메타의 퀘스트 프로와 같이 패스스루(pass-through) 기능을 지원해서 카메라로 디스플레이를 시뮬레이션하는데, 이런 기기를 VR과 AR을 모두 지원한다고 하여 MR(Mixed Reality, 혼합현실) 기기라고도 부른다. 시선 추적과 손의 움직임을 추적해서 디바이스를 조작할 수 있다.
애플이 출시한 비전 프로 (사진: 애플 홈페이지)
이번 비전 프로가 그동안 출시된 다른 XR 디바이스들과 가장 달랐던 점은, 메타의 퀘스트 등의 제품들처럼 게임이나 시뮬레이션, 메타버스 등의 활용을 위한 기기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차세대 컴퓨팅 환경으로서 포지셔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팀 쿡은 발표하는 내내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VR·AR·XR·MR 등의 기술 용어도 쓰지 않았다. 3D 게임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애플의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을 등장시키지도 않았다. 그가 발표를 위해 선택한 용어는 바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용어다. 즉 비전 프로와 함께 사용자 주변의 공간이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며, 이렇게 바뀐 환경을 제어하고 사용자가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비전 프로를 차세대 컴퓨팅 디바이스로 차별화했다. 이런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애플의 맥 컴퓨터들을 거대한 디스플레이처럼 사용하고 트루뎁스(TrueDepth) 센서로 사용자의 얼굴을 스캔해 페이스타임 통화를 위한 가상 아바타 및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또한 공간 오디오 최적화를 위해 트루뎁스로 귀도 스캔했으며, 외부에서 보기에도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얼굴이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를 활용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게 했다.
생성형 AI 기술과의 시너지를 주목하라
여기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기술과의 시너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챗GPT는 자연어를 중심으로 하는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AI 기술인지라 이번에 발표된 비전 프로와의 연관성을 간과하기 쉽다. 그렇지만 비전 프로 같은 새로운 디바이스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디바이스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동작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풍부하게 컴퓨터와 소통할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공간 컴퓨팅’이라는 구호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것이 음성으로 자연스럽게 컴퓨팅 디바이스에 입력하고, 사운드와 디스플레이로 AI의 답을 받아보는 형태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입출력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는 동작이나 키보드 등의 액세서리에 의존하는 과도기적인 상황도 예상된다.
또한 생성형 AI 기술의 다음 단계인 멀티모달(MultiModal) AI 기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주로 챗GPT와 같은 대형 언어모델들이 관심의 초점이지만, 강력한 이미지나 사운드, 동영상 등을 간단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성형 AI 기술들이 공개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서는 메타버스 공간이나 캐릭터 등을 창조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3D 아바타나 디지털 트윈 등의 소프트웨어 플랫폼과의 연계성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본다면 생성형 AI 기술과 서비스가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애플로서는 양대 신기술 융합 기기 시대의 도래가 꼭 유리한 환경은 아닐 수도 있다.
사진: 셔터스톡
경쟁은 이제 시작일 뿐…
애플이 움직이자 경쟁 기업들도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소니의 경우 플레이스테이션 VR의 차세대 버전인 플레이스테이션 VR2를 발매하면서, 게임기 시장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 퀄컴은 2023년 2월 갤럭시 언팩 행사를 통해 삼각동맹을 맺으면서 연대하여 확장 현실 기기를 개발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퀄컴의 반도체와 구글의 운영체제를 결합해 XR 기기 시장에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홀로렌즈(HoloLens)라는 제품을 출시하면서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기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 수정도 흥미롭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OpenAI와의 협력을 통해 인공지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며 일부 사업을 정리했는데, 그중에 홀로렌즈 사업부가 포함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미 메타나 애플, 삼성전자 등이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을 키워나갈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본인들이 잘하는 플랫폼이나 콘텐츠, 생성형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하면서 충분한 주도권을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제조하지 않는 것뿐이다. 실제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메타가 구축한 메타버스 공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오피스 제품군,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솔루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협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미 많은 판매량을 가지고 있는 메타의 헤드셋에 자사의 솔루션을 공급하여 시장 확대를 노리는 것으로, 과거 PC 시장에서 소프트웨어로 대결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통적인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삼성전자 노태문 사장은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서비스 제휴도 언급하였다. 이처럼 애플의 참전은 시장을 크게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애플 강세는 분명한 현상이지만 이번에 발표한 비전 프로만 보고 1년 후, 3년 후의 미래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빅테크 기업간 초대형 레이스의 출범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글쓴이 정지훈은
모두의연구소 최고비전책임자. 정부 기관과 수많은 기업체에서 미래 트렌드와 전략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미국 남가주대학(USC)에서 의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미래자동차 모빌리티 혁명》, 《거의 모든 IT의 역사》,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내 아이가 만날 미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