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든 이발소(有情理髮所)
陋室不知有交情(누실부지유교정)-더럽고 매력 없는 이발소 나도 모르는 사이 정들어
十六七千老待遇(십육칠천노대우)-16년을 칠천 원 노인 대우 받았는데
離新彌阿移徙行(이신미아이사행)-신림동 떠나 미아리로 이사를 옮기니
惜情不斷禁煙要(석정부단금연요)-옛정을 끊지 못해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만 하네
농월(弄月)
16년 단골 이발소 몸은 이사해도 마음은 머물러
오늘 미아리에서 신림동 16년 단골 이발소를 가서 이발을 했다.
아직 이발사에게는 필자가 이사(移徙) 갔다는 말을 안했다.
1시간 20분 간 전철 버스를 타고 가는 단골 이발소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하기야 굳이 특별한 것을 말한다면 아마도 관악구 전체, 아니 서울에서는
제일 지저분한 이발소일 것이다.
우선 이발사의 몸 차림새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발소에 달려 있는 안방에 있다가 손님이 오면 웃통을 벗은 채로 나오는 것이 예사다.
잠옷(파자마)차림 등,
그리고 금방 식사하고 나와서 입에서 음식냄새를 풍기면서 이발을 한다.
그때마다 필자가 호통을 친다.
웃통을 입어라.
절대로 잠옷차림으로 이발소에 나오지 말라
반드시 칫솔질을 하고 이발을 하여라.
그리고 명색이 이발사 머리 꼴이 그게 뭐냐
마치 부엌 아궁에서 나온 강아지 털 같다.
복장을 좀 단정히 하라
예, 죄송합니다 !
그리고 이발하면서 기침좀 하지 마라
예,
제가 해수 천식이 있어서---
뭐 이런 이발소에 특별히 사연이 있고, 또
시경(詩經)의 관저(關雎)라는 노래처럼 아리따운 아가씨가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16년을 단골로 다닌 것은 더욱 아니다.
7천원 이발료가 싼 이유도 아니다.
신림동 아파트 바로 앞에도 깨끗한 이발소가 두 개나 있다.
그냥 한달 두달 가다 보니 16년이 되었다.
또한 이 이발사에게 보이는 필자의 모습도 젊잔고 넉넉한 노인이 아니고 그냥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늙은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접을 특별히 받는 것도 아니었다.
기본적인 이발료는 면도 안하고 그냥 이발만 하는데 1만원 인데
한 2년 되는 어느 날
어르신 어디 사세요?
저기 윗동네,
프르지오 아파트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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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어르신에게는 3천원 활인하여 7천원 받을게요.
고마워요.
그래서 16년이 지난 오늘까지 7천원을 낸다.
약 6평정도 되는 이발소 내부가 복잡다단하다.
특히 겨울에는 가운데 연탄난로가 자리잡고
전혀 매력도 없는 화분들이 구석구석을 차지한다.
거울 밑 화장대는 이발용 각종 화장품이 정리정돈이 전혀 안되어 있고
분가루 머리카락이 사방에 널려 있다.
벽에는 197,80년대 술광고 포스트 카련다에 비키니 여자 모델들의 사진이
누렇게 탈색이 되어 온벽을 장식하고 있다.
또 이사 가면서 버린 쓰레기장에서 주워왔는지 싸구려 붓글씨로 쓴
가훈(家訓), 한시(漢詩) 족자 액자,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를 흉내 낸
에로틱한 그림등,
스님이 목탁 치는 조각품,
금강경 구절을 목각한 것들 등등---
이발사는 이런 서화(書畵)품들을 모으는데 취미가 있나봐요?
예, 나는 이런 글씨 그림들을 걸어 놓고 보면 기분이 좋아요.
한번은 한시(漢詩) 족자의 글자를 몰라 입맛을 다시기에 내가 짐짓
그것 혹시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라는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는 그 모습이 빼어나다”는 것 아닌가요?
하였다.
이발사가 나를 흘깃 보고 저 노인이 뭘 안다고 하는 눈치다.
그래서 내가 한말 더 덧붙였다.
추구(推句)라는 한시 책에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이라 하여
가을 달은 그 빛을 밝게 빛내고, 겨울 산마루에 외로운 소나무는 그 모습이 빼어나다 라는 글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손님이
“저 어르신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 훈수를 한다.
(그 손님도 모르면서 내 말만 듣고 그냥 하는 말이다)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을 넣으니 그 족자의 한시가 해석이 된다.
이발사는 나를 보고 연신 고개를 걔웃등하며 “저 노인이 어떻게 저 한문을--”하고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 후로 이발사는 모르는 한자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묻고
나는 아는 대로 가르쳐 주었다.
한 4년 전인가
이발사가 해수(咳嗽) 천식(喘息)으로 기침을 자주하면서도 담배가 골초다.
내가 해수 천식에는 담배가 사람 죽이는 것이니 끊으라고 하면서
기관지 계통질병에는 도라지를 반찬으로 장복을 하는 것이 담배 피우는 것도
훨씬 좋을 것이라 했다
예,
대답은 찰떡같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무슨 한의사나 되는 것처럼 하는 표정이다)
그 골초가 끊을 리가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발 할 때마다 담배 끊으라고 한다.
역시 “예” 하면서 피우고 있다.
한번은
“담배 안 끊으면 나 이제 이발하러 안 온다”고 했다.
한 달에 7천원이 뭘 대단하다고--
그래서 한번은 머리도 좀 길러볼겸 두 달을 이발을 안갔다.
두 달 후에 가니까 “춘향이 이도령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이발사 담배 피우는 것 더러워서 안 왔다”하니까
이번에는 내 건강을 위해서 꼭 끊겠다 하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담배를 안 피운다.
기침도 훨씬 덜하고 있다.
이제는 “어르신”하는 말투가 처음하고는 많이 다르다.
“저 노인이 보기는 저래도 공부를 좀 한 사람인가
그 어려운 초서(草書)붓글씨를 어떻게 잘 알지?”
하는 눈치다.
작년 겨울에 안사람이 중이염으로 귀가 많이 아파서 이발소 옆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치료를 받는데 그날은 날씨도 춥고 하여 차를 타고 가자고 하였다.
그런데 길가 병원이라 주차장이 없어 차세울데가 없다.
순간 언 듯 생각에 이발소 앞에 바짝 차를 부쳐 세우면 될 것 같아서
이발소에 들어가서 “내 이발소 앞에 잠깐 차좀 세우고 치료 받고 올게요”
하니까 이발사가 엉겁결에 “예”한다.
이발요금을 7천원 받는 노인이 차가 있을 리 만무한데---
나중에 들었지만 이발소 문을 열어보니 어떤 놈이 그랜저를 이발소 앞에 세워놓았다.
그런데 어르신 차는 어디 세웠지?
생각했는데 치료를 끝내고 그것이 내 차인 줄 알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16년만에 프르지오 아파트에 사는 것도 말했다.
그 뒤부터 “어르신” 하던 호칭도 “형님”으로 바꾸었다.
이발사는 올해 63세다.
지난번 아내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에 이발사가 문상을 왔는데
부의금을 십만원 내었다.
내가 1년을 이발해도 84000원이다.
오늘도 반바지 차림으로 이발을 하는데
이발사가 하는 말이 “내가 형님 여자 친구 소개 해 드리려고 작업중”이라한다.
이발사의 말과 성의는 고맙지만
나는 재혼도 안하고 여자 친구도 필요 없다.
그래도 말벗이라도 있어야지--
일없다 !
내 여자 친구 찾는 시간에 이발소 청소나 좀 깨끗이 하고 이발사 머리 정돈이나
좀 잘해라--
16년간 알게 모르게 “정(情)이 든 이발소”다.
차마 미아리로 이사 갔다고 말할 용기가 안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든, 강아지를 키우든 “참정(진정眞情)”이 중요하다.
참정(眞情)이 없이 돈으로 권력으로 맺어진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요즘 신문 방송을 보면 명색이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사람들이 배신하고 반목하는
것을 보면 “정(情)”이 없는 사회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질(物質)은 사람 사이를 이간(離間) 시켜도
정(情)은 가난한 이발사가 3천원을 깎아 준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