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雪嶽山) 대종주 4일차
● 일자: 2020. 06. 01 ~ 06(토) / 5박 6일 / 20-18차
● 날씨: 맑음(6/2 저녁무렵 약한 비)
● 대상: 설악산 일원 / 강원도 고성군, 인제군, 속초시, 양양군 소재
● 코스: 진부령~새이령~신선봉~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대청봉~대승령~안산~12선녀탕계곡~남교리
● 주요지점 통과 시각 (도상 55.4㎞ / 5박 6일)
[4일차, 06/04 목, 10시간 40분, 맑음]
08:20 노인봉 야영지 떠남
10:40 희운각대피소 / 햇반 2, 휴지 구입, 세면, 휴식
13:15 중청대피소 / EPI가스 1, 생수 1.8리터 구입
13:40 대청봉 / 중청대피소에 배낭 두고 맨몸으로 오름
14:25 ~ 15:45 끝청 가는 도중 능선 적당한 곳 / 점심식사
18:35 능선 안부 / 한계령 갈림 직후 도둑바위골과 곡백운계곡 능선 상의 들, 날머리
19:00 도둑바위골 중상단 / 박, <하늘빛>님, <미산>님 두 내외 도둑바위골 경유 위문 차 방문
4일차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오늘은 설악산 최고봉 대청봉에 서는 날이다. 강풍에 밤잠을 설치긴 하였지만 아직까진 팔팔한 기운을 유지하고 있다. 아우의 컨디션도 괜찮아 보인다. 희운각대피소에서 소청으로 오르는 가풀막이 1차 고비일 성싶다.
08:20 노인봉 박터를 떠나려는데 바람이 멎었다. 배낭을 멘 채로 1275봉과 그 주변 기암들을 챙겨보았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해 설악골을 타고 올라와서 하룻밤 묵고 가야동계곡을 따라 내려 가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1275봉의 웅자.
노인봉.
박터 주변엔 솜다리도 눈에 띄었다. 무지 반가웠다. 에델바이스라고도 부르는 꽃이다. 서양 사람들은 '알프스의 별'라고도 하고, 오스트리아 국화(國花)이기도 한 이 꽃은 지난날 설악산에선 발에 밟힐 만큼 많았다. 그런데 60년대에 상영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영향으로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탄탄히 짜인 맛은 금강산이 더 낫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산이 도리어 낫다. 금강산은 너무나 드러나서 마치 길가에 술 파는 색시 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 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견주어,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으되 고운 모습으로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듯이 있어서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할 것이다"라고 했다. (설악기행 - 육당 최남선)
내설악과 용아장성.
내설악 가야동계곡.
앞으로도 수난 당하지 않고 지금처럼 당당하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보고 또 보았다. 뒤돌아본 1275봉과 공룡능선.
가야할 능선과 신선봉 방면. 설악산 공룡능선은 마등령에서 신선봉(대)에 이르는 구간으로 능선 모습이 공룡을 닮은 듯하다고 이름이 붙었다. 이 능선 곳곳에는 날카로운 기암괴석과 단애(절벽)들이 즐비하고 각가지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연초록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붉은 단풍 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갖고 놀고 싶은 그런 사내들 같다. 내가 여자라면 말이다.
09:15 범봉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배낭을 내렸다. 천화대릿지와 석주길의 정상이 범봉인데 석주길은 고(故) 송준호 씨가 개척했다. 석주길의 석주는 엄홍석, 신현주의 끝 글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 요델산악회원이었고, 68년 여름 설악산에서 사고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엄홍석의 자일 파트너로 형제의 결의를 맺고, 혈육처럼 어울려 지낸 산친구가 송준호였다. 의형제이자 자일 파트너인 친구가 연인과 함께 세상을 떠나자 송준호는 미친듯이 천화대의 암릉을 치고 올랐다. 설악골에서 왕관봉과 범봉 사이를 올라 붙는 성곽 같은 암릉 하나가 눈길을 끄는데 이 암릉을 송준호가 최초로 오른 뒤 '석주길'이라고 명명했다.
송준호는 토왕성폭포가 보이는 노루목의 '석주 무덤'을 자주 찾았다. 1973년 1월 1일 아침에도 석주의 무덤을 찾은 그는 석주에게 재배하고 나서 토왕폭을 보며 단독등반을 결심했다. 73년 1월 2일 송준호는 영하 5도의 날씨 속에 토왕폭의 중단을 오르다 추락사를 당했으며, 그 또한 석주와 나란히 노루목에 묻히게 되었다. (참고 자료 : 설악산 - 최화수)
신선봉 쪽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풍경. 뭐라 형용할 수 없다. 그냥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혹자는 설악산을 ‘옷을 입은 금강’으로 일컫기도 한다. 옷을 벗은 미인 금강산보다 옷으로 부끄러움을 감싼 백옥 같은 살결의 처녀 설악산이 더 아름답고 매혹적일 것이다. 진주의 산악인 성락건 씨의 첫 시집 <산 올라 삶이 기쁘고 산 있어 죽음마저 고맙다>에서 ‘황홀함에 죽고 싶은 몸부림으로 솟아오른 설악’이라는 표현대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산중미인이 아닐까.
나도 다음 글을 보면 이곳 암릉에 붙을 기회가 있었다. "비선대 직전 통제소 앞 다리를 건너면서 장군봉과 형제봉, 적벽을 바라본다. 장군봉과 적벽엔 클라이머들이 붙었다. 적벽에 눈길이 멈춘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황홀함을 맛보려면 연습이란 고통이 따라야 하는데, 연습은 하지 않고 부러움만 느끼다니. 내일은 동문인 부산등산학교 OB팀이 이곳 유선대릿지에 붙는 날이다. 그래서 주중까지는 1박 3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 서울 선배의 전화를 받고 그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주말 선배네 산악회에서 영남알프스에 온다는 것이다. 무박 2일로 취서평원 억새를 포인트로 잡은 것 같아 기점인 배내고개에서 동행키로 하고 서-울산 톨게이트에서 새벽 4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바위는 바로 다음이 있지만 선배와의 산행은 다음을 기약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0년 10월 9일, 오색에서 대청에 올라 천불동으로 하산했던 산행기 일부다.
이 풍경을 찬찬히 감상하고 난 뒤 희운각대피소로 내려가서 희운각 음수대 옆에 배낭을 내렸다. 세수하면서 머리도 감고 땀에 절은 스카프와 수건 등을 간단히 씻었다. 그러는 사이 아우는 휴지와 햇반 2개를 샀는데 점심용인 햇반은 둘 간의 소통 부재로 벌어진 증거물이다. 그 덕에 아우는 햇반 2개의 무게까지 보태 힘든 소청 구간을 올라야 했다.
소청 오름 구간에 뒤돌아본 공룡능선.
신선봉과 희운각대피소(우측 아래 숲 속).
화채봉.
공룡능선.
12:50 봉정암 갈림목인 소청에 올라섰다. 소청 도착 직전 선식으로 허기를 달래놓고 담배를 태우며 휴식하고 있는데 수녀님이 올라가면서 물통에 담긴 것이 뭐냐고 묻길래, 먼저 죄송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당귀라고만 짧게 대답했는데 손에 든 담배 때문이었다. '당귀차' 한 잔 대접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평소 담배를 피지 않는데 술을 먹고 바둑을 두거나 산에서 야영할 때면 한 개비씩 물곤 한다. 하지만 이번 산행엔 작정하고 챙겼다. 설악의 깊은 맛에 제대로 빠져 보려면 그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잠시 후 바로 위가 소청이라는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후에 아우가 올라왔다.
내려다본 용아장성 능선이다. 중청에서 분기하여 소청을 거쳐 봉정암 뒤를 지나는 이 능선은 날카로운 기암절벽으로 생겨 마치 용의 잇빨 같다고 얻은 이름이다. 구곡담과 가야동계곡을 가르며 아래로 진행하다가 수렴동대피소에서 주행을 마친다.
나는 용아장성을 두 번 오른 적이 있다. 각각 작년 6월과 2007년 6월이다. 모두 6월 초순에 찾았는데 이번 대종주도 6월이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작년에는 소청 아래서 숙영하고 가야동계곡을 건너 오세암 거쳐 내려갔고, 2007년에는 소청산장에서 하룻밤 묵고 대청봉에 올랐다가 화채봉~집성봉~권금성을 지나 설악동 소공원으로 하산했다. 능선 풍경은 연무에 또렷하지 않지만 당시의 산행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고도를 제법 높였다. 대청과 중청이 큼지막하게 다가 서 있다.
가야동계곡 상류와 희운각에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백두대간), 그리고 외설악의 천불동과 기암들. 본디 능선 만을 제대로 타려면 물을 건너지 않아야 한다. 백두대간도 마찬가지다. 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대간 길은 희운각에서 대청봉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이다. 하지만 이 구간은 무슨 이유인지 출입 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일반 등산로는 희운각 앞에서 가야동계곡을 건너 소청에서 분기한 지능선을 타도록 되어 있다.
13:20 중청 안부에 헬기가 착륙하는 사이 아우는 대피소에서 EPI가스 한 통과 생수 1.8리터를 구입했다. 그리고 둘은 맨몸으로 대청봉으로 올라갔다.
13:40 마침내 설악산 최고봉인 대청봉에 올랐다. 세찬 바람이 불었고, 운무 때문에 조망은 별로였다. 아우가 인증샷을 남기자고 하여 응했다.
오색으로 하산하는 분이 촬영한 것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무엇보다 한적해서 좋다. 이곳에 여러 번 올랐지만 부모님과 함께 오른 대청봉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의 봉정암 참배가 목적이었다. 백담마을에서 자고 다음날 구곡담으로 올라 봉정암에서 하룻밤 묵은 뒤, 두 분의 컨디션이 전날처럼 가벼워서 대청에 올라 오색으로 하산했었다. 당시 부모님은 동갑으로 일흔 셋이었으며 아내도 동행했었다. 2008년 10월 19일의 일이다.
보호 수종인 눈잣나무와 털진달래.
14:10 다시 중청대피소에 돌아와서 햇반을 데우고 끝청을 향해 출발했다. 점심은 가는 도중 능선 적당한 곳에서 먹기로 했다.
14:30 얼마 안 가서 마침 적당한 점심 터가 나왔다. 라면 1개와 중청대피소에서 데운 햇반 2개, 반주 한 잔이 전부였다. 아우는 위장 컨디션이 별로라며 라면은 입에 대지 않았다. 1시간 15분 동안 여유 있는 점심을 하고 일어섰다.
15:58 끝청에 올라서 조망을 하며 쉬었다. 중청 정상엔 군사시설물이 가설되어 있고, 우측은 대청봉이다.
구곡담계곡과 용아장성. 이것을 끝으로 끝청을 떠났다.
진달래와 저 멀리 귀떼기청봉.
16:07 가야 할 서북능선.
17:22 점봉산.
가리봉과 주걱봉, 그리고 귀떼기청봉.
독주골과 한계령.
17:35 가야동계곡과 공룡능선.
18:27 뒤돌아본 대청봉 방면.
내설악과 황철봉 방면.
18:37 한계령 갈림 이정목. 오늘 산행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 내일 대승령까지의 이십리 길도 만만찮다.
18:38 한계령 갈림목에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안부가 있다. 도둑바위골과 곡백운계곡의 능선 상의 들, 날머리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좌측(동쪽) 도둑바위골로 내려가서 야영하고 내일 다시 올라와야 한다. 도둑바위골 숙영지에는 두 명의 산꾼이 위문 차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이틀 전 아우에게 연락이 왔었다. <하늘빛>님이 용대리 점심에 출장으로 불참한 것이 그 이유였다. 어쨌거나 고맙고 감사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산꾼들의 정은 참으로 도탑다. 그 산정을 이번 산행에서 찐하게 느꼈다.
18:48 당초 계획했던 야영지다. 능선 안부에서 10분쯤 내려온 지점이다. 바로 옆에는 물도 있다. 설악산 산꾼들이 기다리고 있는 박터는 여기서 15분 정도 더 내려가야 나온다.
도둑바위골 주변 풍경.
이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초면인 <하늘빛>님을 먼저 만났고, 이내 박터에 도착했는데 만찬 준비를 하고 있던 <미산>님과 여성 두 분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남편을 따라온 여성들도 대단한 산꾼이었다. 우선 집부터 짓고 밤늦도록 산정을 나누었다. 설악산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 밤이었다.
23:40 도둑바위골 야영지. 왼쪽부터 곰돌, 미산, 하늘빛 님이며 여성들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4일차 밤을 보냈다. [끝]
※ 5일차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첫댓글 즐거이 감상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아..솜다리.... !
네 오랜만입니다.
잘 계시지요?
오랜만에 보이시네요^~^
네 그러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