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대형클리퍼를 함장으로한 적업 상대갤 풀팟이 해안선에 바짝 붙은채로 곡물해안을
거슬러 유럽으로 귀향중이었다. 배에는 육두구와 메이스가 그득그득 실려 있고,
숫자가 매겨진 상대갤 4캐릭은 전형적인 작업장의 모습이었다.
사실 하는 짓은 작업장이...맞다. 5클로 향신료, 보석을 싣고와 또 다른 다인클 장사
캐릭에 옮겨 리스본에서 바사로 팔고, 바로 동남아로 내려간다. 오로지 두캇을 벌기
위한 플레이를 하지만, 그는 작업장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파워유저였다.
에스파냐 단일길드 [하늘아래내가최고]의 수장으로. 영지외 모든 동맹항을 잃고
떨어지는 것엔 날개가 없다를 몸소 보여주던 시절. 홀연히 떨치고 일어나 에스파냐를
동맹항수 1위로 복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전 서버 최초로
65/65/65 달성에 백작작위를 따,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비록 나중에
채집과 대해전 승률조작행위가 드러나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대항해시대
최고의 유저 중 하나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아이디조차 BestofBest. 상인부캐들은 차례로 Best1,2,3,4.
막강한 다인클로 벌어들이는 두캇도 두캇이지만, 최고의 접속율을 자랑하는 그의 길드가
가지는 파괴력은 실로 어마어마해, 독고다이 유해들조차 한 수 접어주고 넘어갔다. 단지
털렸을때 개때깥이 몰려와 복수하는 정도라면 다른 길드도 할 수 있겠지만, 알고보니
진짜 조폭이라더라. 누가 누가 거기 길원 건드려 현피 떴다가 이빨이 몽창 나갔다더라
하는 흉흉한 소문은, 아무리 위험해역에 있더라도 유령선이 나타나나지 않는한 그의
파티를 안전하게 해주었다. 안전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막 시에라리온을 지나치는 그의 파티 전면에 빨간 아이디가 떴다.
콧방귀도 끼지 않던 BestofBest(이하 BoB)는 그 실체가 바사라는 사실에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항로를 변경할 생각도 않고 쭉쭉 앞으로 나가는데 이게 왠걸. 전투가 걸렸다.
아무리 상대갤팟이 1인항해 중이라 해도, 함장인 대클의 자신이 전투선을 넘어 버리면
무사히 탈출이다. 그러나 정면에서부터 달려온 바사의 절묘한 주차는, 선회가 느린 대클과
바사의 초기가속을 생각하면 앞일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BoB가 아무리 비무장 상태고 선원30의 대클을 타고 있다 해도. 바사에게 쫄아 도망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그는 백병스킬 만랭의 군인이 아닌가. 상인이라 해도 10랭크
라면 모험용바사 대여섯명 썰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BoB는 진로를 바꾸지 않고 접현을 쓰고 다가오는 바사를 기다렸다. 놈이 미묘하게 빠르다는
기분에 배를 확인해 볼까 하는 순간 백병이 걸렸다. 곧바로 굉음탄이 사용됐다. 혼란!
다급한 마음에 선수상이라도 사용해볼까 하는 찰나, 돌격 한턴에 30명이 다 썰려 나갔다.
그리고 난파.
"......"
그제서야 BoB는 상대 캐릭터 정보를 열어 스샷을 했다.
그동안 메이스 20개(고작! 바사의 적재란!), 진주목걸이를 강탈한 상대는 공개챗창에
"ㄱㅅ"
한마디를 남기고 시에라리온을 향했다. 이대로 있을순 없다. BoB는 바로 귓말 러시에 들어갔다.
교묘하게 필터를 피한 쌍욕을 딱 한마디 전달한 순간, 띠링. 대화가 차단됐다. 당황해 부캐로
말을 걸었지만, 차례로 당할 뿐이었다. 시에라리온으로 쫓아갈을땐 이미 접종후였다.
BoB는 서둘러 스샷한 캐릭터와 배의 상태를 열었다.
20, 20, 65의 기형적인 레벨. 그리고...방어 323, 공격 120의 경이로운 수치!
중키의 평범한 인상의 캐릭가 걸친 모습과, 수치로 예상하자면 그가 걸친 장비는 감히
두캇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옷은 생긴것과 능력치를 봐서 은장갑옷따위가 아닌 복각 백은식 갑옷이었다.
연금술 10랭크를 달성한 사람이 몇이나 되더라? BoB의 길드에서조차 가진 사람이
드물어 알아보는데 한참 걸렸다. 연금술 10랭도 10랭이지만, 만드는 과정이 엄청나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투구는 차라리 쉽다, 스키피오 투구. 무기는 100공 위전창.
부츠는 당연히 100방이겠고. 방어300을 넘기려면...끄응....광대의 손 100방짜리가
필요하다! 이걸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400억? 나머지 남는 공방을 봐선 군신
부적이 아닌 이벤트 아이템 서광의 브로치다.
배는 더 가관이다.
티크제 바사에 지금은 레벨업 이벤트로밖에 입수할 수 없는 강화풀그리드세일.
대해적문장. 강화키까지 붙어 있다.
아이디 '손가락내놔'
BoB는 그 이름을 사무치게 곱씹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가 수탈당하는 스샷은 찍히지도, 공개되지도 않았고, '손가락내놔'
는 국적, 길드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털어댔다. 익명은 상한가를 달렸고, 전세계
주점에서 그의 이름이 불려졌다. BoB는 이때다 싶어 척살령을 내렸지만 어떤 군인도
그를 포격이 아닌 백병으로 이긴 스샷을 찍지 못했다. 위력적인 공방도 공방이지만,
그는 아이템 사용과 돌격, 방어, 전술의 가위바위보에 귀신같이 능숙했다.
바사백병유해. 그는 전설이 되어갔다.
덩달아 바사유해가 늘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아류일 뿐이었다.
그의 캐릭터 스샷이 공개되고 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런 캐릭을 키우고 굴릴 수
있는지 궁금증은 높아만 갔다. 아무리 수소문해도, 그에게 아이템을 대고 있는 유저나
부캐의 존재는 캐지지 않고, 길사도, 친등도 없었다. 털리고 말을 걸면 바로 차단에,
그가 한말이라곤 오직 두 음절. 털었을땐 'ㄱㅅ', 포격으로 퇴치당했을땐 'ㅅㄱ'였다.
가는 놈은 다 잡고, 오는 놈앞에선 도망안간다는 그의 쿨한 태도에, 진정한 백병군인의
표상이라며 우러러 보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아이디 '손가락내놔'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는 가운데, 동섭 최고의 토벌군인. 'LOVE윈체스터'가 행동에 나섰다.
'LOVE윈체스터'(이하 그냥 윈체스터)는 '손가락내놔'가 나타나기 전, 가장 유명하던
군인이었다. 백병유해는 백병으로, 포격유해는 포격으로 잡는 컨트롤의 귀재로, 전랩
65가 되기 훨씬 전부터 토벌군인 활동을 해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유저였다.
전섭 통틀어 카사도르(확장팩2 이후 유저해적 50척 이상 격침)와 마레샬(배틀 캠페인 100승
달성) 호칭을 가장 먼저 따기도 했다. 아템빨보다 컨트롤로 승부하는 그는 군인의
모범이었고, 모든 가난한 군인의 우상이었다. '손가락내놔'가 떴을때 물론 그도 그를
잡으러 곡물해안으로 출동했었다. 그러나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번번이 타이밍이 엇갈려 놓치곤 했다.
모두가 윈체스터와 손가락내놔의 대결을 학수고대 하는 가운데,
그를 찾다 못한 윈체스터가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그는 대항해 최대 커뮤니티인
인벤과 미르, 공식홈에 결투장을 남겼다. 시간은 일주일후 주말, 그가 자주 나타난다는
새벽3시. 안전해역인 마데이라 앞바다. 아이템 사용금지 해상 모의전 7전과, 육상전투
15전을 신청했다.
결투가 예고된 시간.
새벽 3시에도 불구하고 서버는 혼잡을 띄웠다. 마데이라 항구앞은 결투를 관전하기 위한
유저로 아이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손가락내놔'가 접속하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될 그때. 대해적 문장을 단 모험용바사 한대가 유유히 마데이라를
향해 들어왔다.
관전자 가운데 붉거나 주황색인 유해도 끼어 있었지만, 그의 아이디는 누구보다 짙은 핏빛
이었다. 윈체스터가 속한 포루투갈 길드 [내가슴에3000원]이 나서 공개챗과 외치기를 자제
시키는등 질서를 유지했다. 군인대화방이 개설되고, 승패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갔다.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해상에서 대면한 윈체스터는 자신 역시 바사를 탈것이며 포격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투를 받아줘서 고맙고, 정정당당히 승패를 가리자는 장문의 인사말에
'손가락내놔'는...
"ㅇㅇ"
라고 답했다. 유저의 정신력까지 게임에 반영될 수 있다면 윈체스터의 공방은 50이 더 올라
갔을리라. 서로의 공방은 엇비슷했다. 윈체스터가 준비하지 못한 것은 백방 광대의 손과
복각백은식 갑옷뿐이었다. 하지만 사자왕의갑옷과 70방 광대의손만으로 공방은 해볼만 했다.
그나마도 군인길드 [내가슴에3000원]에서 눈물나는 노력끝에 자체제작 한것이었다. 교역은
절대 하지 않는 [내가슴에3000원]은 타길드의 지원마저 거부했다.
윈체스터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의 컨트롤과 감을 믿었다.
백병 가위바위보에서 그의 감은 자신을 배신한 적이 없었다. 번쩍! 모의전이 시작됐다.
비장한 배경음이 흐르고, 두 대의 바사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두 척다 중장선미루를 달았다.
어차피 선원은 다섯. 한턴에 결정된다!
마데이라 광장.
늘씬한 장신캐릭터의 윈체스터와 중키의 평범한 '손가락내놔'가 드디어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대면했다. 손가락내놔의 국적은 프랑스. 최소유저, 최빈약국. 유해의 온상.
잉글랜드등과 함께 항상 동맹항 2,3위를 다투는 포루투갈의 윈체스터. 가재는 게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유저가 얼마 없는 손가락내놔는 자제부탁에도 불구하고 온갖
야유를 받았다. 귓말도 쉬지않고 갔지만, 하는 족족 차단됐다.
해상전 7전. '손가락내놔'는 4전을 먼저 이기고, "ㅅㄱ"를 날렸다.
한번도 그의 수를 읽어내지 못한 윈체스터는 약속된 7전을다 요구했지만, 이미 전체
승패가 난 이상 비굴한 요청일 뿐이었다. 이제 남은것은 육지전 15전 뿐이었다.
사실 윈체스터는 해상전보다 육지전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다.
저격 15랭. 저격의 파괴력이라면 총합랩이 높은 자신이 유리하다.
그는 방어력을 포기하고 저격+1콜트를 입고 이해도 100을 올린 저격+2 카라바인을 들었다.
'손가라내놔'의 장비는 해상전과 큰 차이가 없이 검만 바꾸었다. 생긴것과 공격력을 봐서
십중팔구 엑스칼리버다. 이왕 검을 쓸거면, 응용검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텐데 말이다.
윈체스터는 귓말을 날리려다, 행사진행을 맡은 길원마저 귓차단이 됬다는 소리를
전해듣고 대화를 포기했다. 피칭! 음악이 바뀌었다. 와라!
15전 중 8전이 끝났다.
"ㅅㄱ"
그 많은 유저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공개창에 달랑 흰 글씨가 올라왔다.
그것을 기점으로 기다렸다는듯 온갖 소리가 귀따갑게 챗창을 채웠다. 경악과 환호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윈체스터는 그렇게 잘하던 말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길원들의 귓말이 쇄도했지만, 그에겐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듯 했다. 이때가 기회
라는듯 유저들이 몰려와 '손가락내놔'와 윈체스터에게 결투를 걸어댔지만 둘다
받아주지 않았다.
외치기와 귓말, 공개말, 결투신청. 윈체스터와 손가락내놔가 받아주지 않자 자기들끼리
결투를 벌이기도 하는등의 난장이 벌어진 가운데, 손가락내놔와 똑같은 모습을 한
캐릭터가 불쑥 뛰어들었다.
"기다려라, 손가락!!"
BestofBest! 그가 손가락내놔와 똑같은 아이템을 장만해 나타났다!
유저들은 그가 윈체스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놓는다며, 욕을 하면서도 백방
아이템을 마련한 그의 재력과 능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손가락내놔는...그의 말은 콧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접종했다.
BoB는 괜히 끼어 들었다, 그동안의 두캇지랄에 대한 지탄까지 합쳐 욕만 지질라게 쳐먹었다.
손가락내놔가 사라져 판이 깨지자, 유저들은 언제 열광했나 싶게 빠르게 흩어졌다.
오직 윈체스터와 BoB, 두 캐릭터만이 그 자리에 못밖힌듯 움직일줄 몰랐다.
갠상도 하지 않았던 둘은 띠링. 30분이 지나 강제접속해제 됐다.
쌍칼과 곰은 그저 멀찍이서 폭주하는 그를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두목이 온라인게임에 빠지면서 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온라인은 넓고 폐인은 많으니까...
박창이가 아무리 밑엣것들을 시키고 오토를 돌려 캐릭터를 키워놔도 어딘가에선
그를 능가할 놈이 나오게 돼있단 말이다. 그러나 박창이를 이토록 날뛰게 만든
것은 상대의 능력이 아닌 태도였다. 놈은 개무시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박창이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놨다.
본체까지 모조리 박살내고서야 간신히 목소리가 나오게 된 박창이가 분을 삭히지
못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찾아내..."
"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새끼가 누구인지 찾아내란 말이다!!"
길드고 친등이고 없는 그를 추적하는 것은 게임상에선 불가능했다.
결국 쌍칼등, 박창이의 부하들은 전문크래커를 고용해 아이디를 해킹하고 개인정보를 빼냈다.
주민번호와 이름을 알아낸 그들은 박창이가 폭주할때보다 더 놀랐다. 밝혀진 이름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전설적인 유해, 손가락내놔의 정체는...
윤태구.
박창이의 구역에서 버젓이 장물아비 짓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3류 좀도둑이었다.
대체 어떤 면에서 박창이의 호감을 샀는지 보호세 한푼 내지 않고 제 장사를 하던 놈이,
바로 그 놈이라니...
결과를 받아든 박창이 역시 기가 막혔다. 살다 살다 윤태구한테 뒷통수를 맞는 일이 생길줄은...
정체를 알고 맥이 빠지긴 했지만, 그 분노가 깨끗이 사라지는건 아니어서. 박창이는 대낮
부터 윤태구의 아지트를 습격했다. 어차피 밤새 게임하느라 집에서 쳐자고 있겠지. 아니나 다를까
콰앙! 자물쇠 채로 부수고 들어간 집에선 담배와, 컵라면이라는 키쾌한 밤샘의 냄새가 진동했다.
날 그 꼴로 만들고 너는 잠이 오더냐?
"으득!"
창이는 이를 갈았다. 귀엽다 귀엽다 봐주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저 방문안에 자고 있을
윤태구를 당장...!
"윤태구 여깄나!"
"?!"
갑작스러운 외침. 인생 패배자들이 모여 사는 이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끔한 복장에,
머리가 천정까지 닿는 놈의 뜬금없는 등장에 제아무리 창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역시 잠시 혼란스러워 하는거 같더니, 영 자신없는 투로,
"...윤태구?"
하고 물어온다. 아무래도 태구에게 관심이 있던건 박창이 하나만이 아닌듯 하다.
무언가의 예감이랄까, 직감이 둘 모두에게 스쳐 지나갔다. 허공에서 둘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혔다. 거의 동시에. 둘의 입이 열렸다.
"Bestof...?"
"윈체스터...?"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자 마자 둘은 또 다시 동시에 뒤로 돌아서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만 날뛸땐 몰랐는데, 어쩐지 닮은꼴인 놈을 보자 걷잡을 수 없이 한심해 진다. 더군다나
둘은 게임상에서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윈체스터는 다클에 필요하다면 현질도 하는 BoB를
노골적으로 경멸했고, 그의 플레이를 지탄하는 글도 몇번이나 올렸었다. BoB가 염색만
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토벌해주겠다고까지 했었다. 에스파냐인인 BoB도 어줍잖게
영웅흉내를 내고 다니는 포루투갈 윈체스터가 마음에 들리 없었다. 하지만 딱히 부딪칠 접점도
없기에 서로 소 닭보듯 하며 으르렁대기만 했었다.
그러던 그들이, '손가락내놔' 윤태구라는 접점이 생겼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마지못해 눈을 마주친 윈체스터, 박도원이 방을 향해 눈짓했다.
저안에 윤태구가? 박창이 역시 껄끄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딱. 박창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모인 사람 중 가장 덩치가 좋은 곰이 불쑥 나서 그의 팔뚝
만큼 두꺼운 쇠파이프로 콰앙! 방문을 박살내 뚫었다.
"무식하긴..."
박도원의 작은 목소리에 창이가 발끈하려는 순간.
"으음...뭐야아...?"
아직 잠이 덜 깬 쉰 목소리가 그들 사이로 끼어 들었다.
문이 날아가면서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걷히며 막 침대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윤태구가
보였다. 늘어진 러닝셔츠는 침대를 지지한 팔쪽을 향해 미끄러져 있고, 허리아래를 덮은
이불사이로 줄무늬 트렁크가 보였다. 까칠한 머리는 공중으로 붕뜨고, 얼굴은 반질거렸다.
윤태구는 눈도 제대로 못떠, 슥슥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흐아암~!" 태평하게 기지개를 켰다.
깜박깜박, 작은 동물은 연상시키는 표정을 짓더니 배시시 미소를 뿌린다.
"어, 언제왔어?"
"......"
"......"
기묘한 감각에 쌍칼은 자신의 두목과 정체불명의 침입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잡히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뜨릴것 같았던 두목이 입을 헤 벌린채 앞만 보고
있었다. 박도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창문을 통과하는 아침햇살에 무수히 보이는 저
먼지가 보이지도 않는지 입을 다물줄 모른다. 츄룹. 누구였을까. 침을 삼킨 것은.
에휴...쌍칼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윤태구한테 목매는 변태가 두목 하나뿐인줄 알았더니, 이제 하나 더 생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