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꼭대기에서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서해 쪽으로 비스듬하게 누그러들었다. 멈춰 있던 대기가 미묘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바다에서 포구로 강하게 불어 들어왔다. 바람과 함께 바닷물도 밀려왔다. 뱃고동 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고깃배 네댓 척이 인천 소래포구를 향해 차례차례 미끄러져 들어왔다. 배들은 포구 맞은편 둥그렇게 파인 지점에서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몸을 틀더니 선착장에 뱃머리를 붙였다. 어부들이 밤새 잡은 생선이며 조개 따위 해산물을 선착장에 바쁘게 쏟아 내렸다. 모든 일이 순식간이었다.
밤샘 작업으로 고단하지만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어부가 선착장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에게 "왜 이렇게 배들이 갑자기 몰려 들어오느냐"고 물었다. "물때니까 그렇지요. 조업 나갔던 배들이 물때 맞춰서 포구로 들어온 거잖아요." "그럼 소래포구는 매일 이맘때 배들이 돌아오나요?" "나 원 참. 물때는 매일 40분씩 늦어지는 것 아니요." 어부는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도시사람을 쳐다봤다.
소래포구
그나마 서두르길 잘했다. 휴일 오전 11시쯤 인천 소래포구는 벌써 복잡했다. 어시장 좁은 길 양편으로 다닥다닥 붙은 생선가게 주인들이 "언니" "오빠" "사장님"을 연발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유도한다.
유성펜으로 '소래산 꽃게'라고 쓴 팻말이 유독 눈에 띈다. 5월 1일 현재 1㎏당 암게 2만5000·2만8000·3만원, 수게 1만8000원이다. 연안부두에서 본 연평도 꽃게보다 약간 비싸다. 시장통 '대복수산' 주인은 "원래 꽃게는 소래포구가 유명하다, 옛날부터 알아줬다"면서 암게 배 쪽 껍데기를 벌려 보였다. "게장 담글 거면 암게를 사가세요. 이것 봐, 알이 꽉 찼잖아? 삶아 드실 거면 수게도 괜찮아. 살이 많으니까. 살 맛이 약간 싱겁긴 하지만요."
"조개구이 해먹으려고 하니 섞어서 달라"고 하면 10여 가지 구워 먹기 알맞은 조개를 섞어서 스티로폼 상자에 바닷물과 함께 담아준다. '삐삐수산' 주인은 "해감 다 해서 파니 굳이 따로 할 필요 없지만, 찝찝하면 바닷물 정도로 소금을 탄 물에 담가두었다가 구워 먹으면 된다"고 했다. 5월 1일 현재 모둠조개 4㎏ 3만원이다. 4㎏이면 4명 한 가족이 먹기 적당하다.
생선가게들은 대개 각종 생선회를 모둠으로 담은 접시를 앞에 내놓고 팔았다. 병어, 밴댕이, 전어 따위 작고 저렴한 생선으로 구성된 작은 접시는 5000원, 여기에 도미, 광어 등 비싼 생선을 추가한 큰 접시는 1만원 받는다. 이 생선회 모둠 접시를 들고서 시장 바깥 아무 빈 곳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봄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다.
상도 없이 땅바닥에 접시와 소주를 놓고 먹기 뭐하면 '초장집'에 들어가 먹는다. 매운탕과 술값, 밥값만 받고 회는 자기가 고른 것을 들고 가 먹는 곳이다. 대개 횟집 2층에 초장집이 있다. 회를 떠서 번호표를 받아 초장집에 주면 15분쯤 뒤에 앉은 자리로 생선회가 배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