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 때문에 안산시를 다녀 왔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상록수 역이라는 곳이 있었다
상록수? 심 훈의 그 '상록수'인가? 이 곳이 상록수의 무대였던 곳이었나?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 보니 상록수의 모델이 된 최용신의 활동 무대 '샘골마을'이 바로 상록수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네
상록수는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도 그 내용이 실린 적이 있다
<....교실로 쓰는 교회 건물이 좁고 낡았으니 학생을 80명만 받으라는 주재소의 명령에 따라 영신은 배움에 굶주린 학생들을 억지로 내쫓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 영신은 깜짝 놀란다.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담에 매달려 있는가 하면 나무에 올라가 교실 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격한 영신은 아예 칠판을 밖으로 옮긴다. 그리고 칠판에 커다랗게 적는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영신이 칠판에 적었다는 '아무나 오게'라는 말은 아직 내 기억에 남아 있다
190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최용신은 1931년 YMCA에서 파견한 농촌계몽운동가로 지금의 안산 본오동(당시에는 샘골마을)으로 파견된다. 그로부터 1935년, 26세의 나이에 과로로 숨을 거둘 때까지 그 곳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펼친다
사실 그녀가 활동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고 시골 벽지에서 그런 활동을 한다고 해 보았자 그 혜택을 받은 사람이야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이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슈바이처가 '밀림의 성자'로 추앙을 받지만 그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의 숫자야 얼마나 되겠는가? 그 정신이 위대하니 슈바이처가 성자로 대접받는 것과 마찬가지.
영원히 잊혀질 뻔 하였던 최용신의 생애는 동시대 작가 심 훈이 그녀를 모델로 <상록수>라는 소설을 쓰고 그 소설이 히트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된다. 최용신은 소설 속에서 위에 본 것처럼 '채영신'으로 나온다. 결국 최용신은 심 훈에게 큰 신세를 진 셈이고 심 훈은 최용신을 모델로 소설을 써서 큰 돈을 만지게 되었으니 서로가 윈-윈 게임을 한 셈이다
심 훈은 왜 소설 제목을 '상록수'라고 지었을까?
상록수가 의미하는 바는 '변하지 않음'이다
심 훈은 소설을 구상하면서 최용신이 활동한 샘골마을을 찾았는데 천곡학원에 서 있는 향나무를 보고(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하네) 평생을 변심하지 않고 교육사업에 매진한 최용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으로 '상록수常綠樹'를 착상한 모양이다
결국 소설 '상록수'는 천곡학원 마당에 서 있는 향나무를 가리킨다는 말.
남아 전하는 최용신의 사진이다. 젊어 죽었으니 젊을 적 사진 밖에 없을 것인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1933년, 최용신을 직접 대면한 류달영 교수(최용신의 평전을 쓰기도 했다)의 글을 보니 '나이는 24세 정도로 키는 중키에 날씬한 편이었으나 얼굴은 마마로 얽은 것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되어 있다
실제로 최용신은 곰보 자국이 심해 한 때에는 이를 비관하기도 하였으나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육신은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정신만이 오래도록 남는 것'임을 느끼고 당당해졌다고 한다
최용신의 무덤도 상록수 역 인근에 있다고 한다
처녀로 죽은 최용신의 무덤 곁에는 다른 남자의 무덤이 있다.
최용신의 약혼자로 알려진 김학준의 무덤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최용신의 고향 마을 사람인 김학준과는 동갑내기로 두 사람은 16세 때 약혼을 하였단다
그들은 10년 후 결혼하여 함께 사회활동을 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최용신이 그 10년을 못 채우고 사망하였다 한다
16세 때, 10년 후에 결혼하기로 약속하였다는 말은 사실 믿기 어렵다. 그들이 16세 때 약혼하면서 부모의 허락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고 설사 부모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어느 부모가 10년 후에 결혼하라고 허락하겠는가?
사람들이 조혼하였을 당시, 26세면 지금의 40세 이상일 것이다.
진위야 어쨌든 그 후 다른 여자와 결혼한 김학준이라는 사람은 이 곳을 자주 찾았고 최용신이 만든 천곡학원 이사장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는 죽으면서 '최용신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니 평소 최용신에 깊이 경도傾到된 사람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야기거리는, 그의 처가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하네
빈 껍데기만 안고 살아온 자신의 한 평생이 한스러워 그랬는지, 아니면 죽어서라도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다시 이루라고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왼쪽이 최용신, 오른쪽이 김학준이 누워 있는 곳이다
9월 하순에 다시 안산을 찾아야 한다.
그 때에는, 젊어 죽어서도 저렇게 이야기거리를 많이 남긴 최용신이라는 여인의 무덤을 한번 찾아 보아야겠다
80이 넘어 살면서도 10분 이야기거리가 안 되는 인생도 많은데..하여간 특이한 여인일세
첫댓글 그렇군요~ 잘 읽어보았습니다. 늘 푸르름을 생각하게 하는 상록수의 숨겨진 이야기들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글 참 맛깔나게 쓰시네. 재미나게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