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마라톤 갑장들과 의기 투합하여 대전 엑스포 시민광장에 모였다. 작년에 컨디션이 무척 안 좋은 상황임에도 12시간 30여분에 골인했으니 혼자 달리면 12시간 전후해서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께 달리기도 했으니 기록 욕심은 내려놓아야 했다.
출발신호와 함께 함께 온 고재훈과 희종형님은 앞서 나가고 어느새 흥태친구도 희종형님을 따라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송암과 경희, 셋이서 발을 맟췄다. 6분에서 6분 30초 사이 꽤 빠른 스피드로 대전 시내를 돌다가 어느 순간 신탄진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게 왠 일일까? 작년과 코스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왜 다들 이 방향으로 움직이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앞서 가던 무리들이 알바라고 하면서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전체 참가자의 70~80%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4~8km 대형 알바를 하고 말았다.
경희가 무척 허탈해했다. 그냥 포기해버릴까 말하면서 의욕을 상실한 모습이다. 내가 포기는 하지말고 7km를 더 뛰었으니 7km를 덜 뛰고 100km만 채우자고 했다. 그러자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실 혼자 뛰었으면 107km를 다 뛰었겠지만 같이 뛰기로 한 이상 경희를 데리고 완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했다.
다른 대회와 비교했을 때 대전 울트라의 특징은 먹거리 종류도 많고 훌륭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파워젤과 같은 먹거리를 짊어지고 갈 필요가 전혀 없다. 10km cp는 사실상 17km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배가 고픈데 맛있는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콜라와 함께 두 덩어리를 집어서 먹었다. 익숙한 갑천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19시 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흩뿌리던 비는 시간이 흐를 수록 꽤 많이 내렸다. 별 수 없이 우비를 걸쳐 입었다. 펄렁이는 비닐 때문에 걸리적 거리자 여기저기 잘라내고 묶어서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50km 반환점이 있는 4cp에 이를 무렵 송암은 1차 반환점까지 갔다오겠다고 했다. 공사현장을 지나 1차 반환점보다 3.5km 덜 간 지점에서 경희와 터닝을 했다. 문제는 이 즈음부터 발생했다. 경희가 무릎이 아파 속도를 낼 수 없다고 한다. 경희의 보폭을 맞추다보니 숱한 주자들이 우리를 앞질러 갔다. 안장수와 여자 1등도 우리를 추월했다.
60km 지점 근처에서 100km를 신청했다가 50km로 바꿔 뛰고 있는 외국인 여성주자와 동반주하게 됐다. 프랑스인이고 한국에서 6년을 살았으니 한국말도 꽤 했다. 한국에서 100km 울트라대회를 세번이나 참가했고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친한파 여성이었다. 갈림길에서 헤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마치 Anett 영사를 보는 것 같았다.
65km 지점 황태어글탕은 이 대회 백미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대회에서는 그저 밥 몇 숫가락에 미역국을 부어주면 그만인데 어글탕은 그렇지 않았다. 걸쭉한 어글탕만 먹어도 배가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두 그릇을 비우고 커피를 마시며 일어섰다. 천변을 빠져나오자 드디어 초반에 알바했던 지점을 다시 반복해서 지나게 되었다. 경희와 함께 걷뛰 모드로 천천히 진행한 다음 관평천으로 길을 바꿨다.
갑천과 관평천 두물머리에 위치한 78km cp에서 음료수만 마시고 대청댐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고재훈이 1등과 100m 간격을 두고 돌아오고 있었다. 경희에게 내가 근무했던 곳이라고 하며 이곳 지리를 설명해줬다. 두번째 반환점에서 돌아 나올 때 드디어 송암과 흥태가 올라오고 있었다. 송암은 팔팔한데 흥태는 자꾸 뒤쳐졌다. 경희와 전북죽을 먹고 함께 출발은 했다. 그렇지만 숱하게 앞서가다 기다리길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 85km 지점부터는 보이질 않는다. 따라올 때까지 걸을 수밖에 없었다.
91km cp에서 흥태와 경희 포함하여 넷이 다 모이자 마지막 9km를 뛰어보자고 했다. 그 둘은 어렵다고 했다. 별 수 없이 송암과 둘이서 뛰다가 안 보이면 둘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반복했다.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듯 수많은 주자들이 우리를 추월했다. 오늘 몸 상태로 봐서는 12간 안에도 완주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14시간을 넘기는게 안타까웠다. 그 기분은 송암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회까지만 함께 뛰고 다음 대회부터는 각자 주력에 맞게 달리기로 했다. 희종형님은 이번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중도 포기하고, 고재훈은 2등으로 완주했다. 1등은 알바를 하지 않은 반면 고재훈은 5.5km를 알바했으니 사실상 1등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4km를 넷이서 걸어서 14시간2분으로 골인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사우나에서 몸을 씻은 다음 평촌팀과 헤어졌다. 두어시간 잠을 자고 식사를 마친 후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친 간병을 위해 이틀째 밤을 세우다시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