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
삼국지의 한 대목에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라는 말이 나옵니다.
장비의 군사들이 조조 군사들에게 쫓기다가 수풀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뒤쫓아 가던 조조에게는 화공(火攻)으로 장비의 군사를 일시에 전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조는 그의 지략으로 수풀에 불을 질렀고, 장비의 군사들은 꼼짝없이 전멸될 수밖에 없는 바로 그때였습니다. 하늘에서 한 점의 검은 구름이 피어 오르더니 난데 없이 장대 같은 소나기를 마구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대승을 바로 눈 앞에 두었던 조조는 이를 보고, "지자막여복자(智者莫如福者)" 라고 탄식했습니다.
"아무리 지략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복받은 사람만큼은 못하다." 는 말이 바로 ‘지자막여복자’ 입니다.
"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하늘이 주시는 것이지, 사람의 소관은 아닐 것입니다.
십 년이 넘도록 수도하고 하산하려는 제자가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하직인사를 하면서 “스승님, 떠나는 저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부탁하옵니다.” 라고 간청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만하면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복"받은 사람에게는 절대 함부로 덤비지 말라.” 라고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복"은 그 만큼 위력이 있는 것임에 틀림 없어 보입니다.
"복"은 모름지기 동양적 감성이 들어있는 단어이지만, 서양에서는 이것을 "행운"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가 좋은 예가 아닐까요? 본래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권력의 핵심으로 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아 자리를 지키기도 버티기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사표를 던지고 1년이 채 안되어 대통령이 되었고 취임 20일이 되기 전에 바이든 미대통령이 찾아와서 큰 선물을 주고 갔으며, 미국 타임지 표지 모델로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확실히 그리고 분명히 복있는 인물입니다.
어찌 윤대통령만 복있는 인물이겠습니까?
복있는 윤대통령을 가진 대한민국도 분명 복받은 나라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도 복받은 백성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 "복의 위력"을 알았으니 새로운 날, 이 아침에 "넉넉히 받은 복"을 확인하시고, 만사형통하는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펌 )
**[암소 잡은 요량 하소•••!]
1980년도에 입적(入寂)하신 경봉(鏡峰) 대 선사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이시다.
때는 조선시대 말쯤이다.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주막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서 대들보에 소의 불알을 삶아서 달아 놓은 것을 보고 주모에게 썰어 달라고 하여 술안주 삼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값을 치를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험상궂은 주인 남자까지 뛰쳐나와 삶은 소불알과 술값 내 놓으라고 난리가 났다. 이 나그네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지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근데 참 이 나그네 태연히 하는 말씀 좀 들어보소. “주모, 암소 잡은 요량하소. 암소 잡은 요량...” 애당초 암소를 잡았으니 소불알이 어디 있겠으며, 그래서 어디 내가 암소 불알 삶은 것을 먹었다는 사실이 있겠느냐 라고 완전 똥배짱을 부렸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뒤집어진 남편이 행동을 착수하려고 하는 찰나에 나그네가 자기 신분을 밝혔다.
“나 정만서요.” 참 그 시대에는 이 '정만서' 라는 사람이 조선 천지에 꽤나 유명했던 모양이다. 바로 “천하의 잡놈 정만서”였던 것이다.
이 말에 그 험악한 주막 주인 남편도 돈 받을 생각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아예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기 값 대신에 소리나 한 번 해보시오.”라고 하니까 이 천하의 정만서가 춤추고 노래를 했다.
이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어서 술과 안주들을 모두 먹어서 그 주막을 연 이래로 최대의 매상을 올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원래 암소를 잡았는데 삶은 불알이 어디 있겠는가? 암소에게는 불알이 원래 없지 않은가? 왜 없는 불알을 가지고 시시비비(是是非非)하는가 라는 말씀이시다.
주막 주인이 이렇게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 시비(是非) 붙을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원래 없는 것인데...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사람이든 물질이든 모두 다 본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면 아무런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이 원래 없다고 하는 것이 불법(佛法)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 모든 것이 공(空)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다 꿈이고 환영(幻影)일 뿐이다.
원래 암소 불알이라는 것이 없지 않은가? 없는 것을 자꾸 있다고 생각하면서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우리 중생살이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무(無)요, 공(空)인데 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고통스러운 중생살이를 하는가? 하여튼 이 천하의 잡놈 정만서의 말과 같이 “암소 잡은 요량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암소 잡은 요량 하소.” 참 좋은 말씀이시다. 도인(道人)들이 마음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허상(虛相)이고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도(道)를 깨달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 텅 빈 공(空)이라는 것을 증득(證得)하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포함한 일체의 세상만사가 원래 다 없는 것인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생기겠는가?” 이렇게 마음 비우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진리, 무상(無相)의 진리라는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원래로 아무것도 없는 텅 텅 빈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실은 다 꿈이고 허상이고 환영인 것이다.
없는 것을 가지고 왜 시시비비(是是非非)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 가는가?
천하의 잡놈 정만서의 말과 같이 “암소 잡은 요량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방하착(放下著)하는 마음 비우는 진리인 것이다.
자! 우리 모두 천하의 잡놈 정만서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갑시다!
***경복궁 찻집 ‘다원(茶苑)’에서 태어난 ‘슬프며 아릿한’ 가요詩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
그 겨울의 찻집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 1985년)
이 노래는 1985년 양인자 극본에다 박건삼이 연출하고 왕영은이 주연으로 출연한 MBC 라디오 드라마 <그 겨울의 찻집>의 주제곡이다.
작가 양인자 씨가 경복궁 안에 있는 ‘다원’이라는 찻집에서 그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쓴
‘슬프며 아릿한’ 가요시가 한국대중가요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가요로 탄생되었다.
특히 ‘아름다운 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가사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멋진 시적(詩的) 표현이다.
우리 가요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사로 정평이 난 노래 <봄날은 간다>와 <가슴 아프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 겨울의 찻집>의 가사가 좋다.
이 드라마가 방송될 때에는 주인공으로 활약하던 왕영은이 직접 이 주제가를 불렀다.
1985년 인기가수 조용필이 지금까지 부른 노래와 “다른 노래를 하고 싶다”며 꼬냑 한 병을 들고 김희갑 작곡가의 집으로 와서 작사, 작곡을 부탁하였다.
조용필이 제 8집 음반을 만들 때 이 노래를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함께 그의 음반에 넣었는데 엄청나게 히트하였다.
또한 시인들이 뽑은 한국 10대 가요에 <킬로만자로의 표범>은 2위, <그 겨울의 찻집>은 9위를 차지하였다. 이 노래를 작곡한 김희갑은 1936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평양 광성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의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월남(越南)하였다.
북에 남았던 어머니와 그의 누이 둘은 뒤늦게 월남하여 10년 뒤 대구에서 만났으나, 이미 그때는 김희갑 씨의 권유로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만난 이후였다. 그러자 새 살림을 차린 아버지를 포기한 친어머니는 93세까지 딸과 함께 살다가 돌아가셨고, 새어머니는 남동생 둘을 낳고 대구에 살고 있다고 한다.
6·25 전쟁으로 이처럼 기막힌 일이 작곡가 김희갑의 가족에게 일어났다. 그는 15세에서 18세까지 대구에서 성장하며,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순의 <목포는 항구다>라는 기타 연주를 듣고 감흥을 받아 그 악기를 배우기로 결심하여 새벽 3시~4시까지 열심히 연습했다고 한다.
곧 기타 연주의 명인(名人)이 된 그는 고교생 신분임에도 미군클럽에서 1주에 3~4회 공연을 했다고 한다. 고교 졸업 후 고교 동창들과 김희갑 악단을 결성하여 연주를 하다 박춘석 작곡가의 권유로 음반 녹음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후 오아시스 레코드 손진석 사장의 부탁으로 대중가요를 작곡하기 시작하여 1967년 태원의 <사랑아 내 사랑아>라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한편 한명숙, 윤복희, 윤향기 등과 함께 미8군 에이원쇼 악단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작곡가로 그곳에서 활동하던 이봉조가 <밤안개>로 히트하는 것을 보고,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이대 음대 이교숙 교수로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 노래를 작사한 양인자는 1956년 함북 나진 출신으로 유복자이며, 어릴 때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그녀는 부산여중 3학년 때 학교 숙제로 쓴 소설 <돌아온 미소>가 선생님의 주선으로 우연히 출판되어 히트하였다. 그 후 그녀는 서라벌 예대 문예창작과에 수석입학하면서 김동리 소설가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릴 때 글 쓰는 것으로 쉽게 성공했지만, 성인이 된 후 그녀가 도전하는 신춘문예의 벽은 높아, 30세까지 계속 낙방하였다. 어쩔 도리가 없어진 그녀는 <여학생>이라는 잡지에서 후일 드라마 작가로 이름을 날린 김수현과 같이 기자로 근무하면서 한국문학에 <외항선>이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 후 그녀는 방송국 드라마 작가로 전신(轉身)하여 <제 3의 교실>, <혼자 사는 여자>, <하얀 달> 등 300여 편의 드라마를 집필하였다. 두 사람은 1985년 작곡가와 작사가로 만난 이후 1987년 결혼하였다.
<우린 너무 쉽게 헤어 졌어요>, <그대는 나의 인생>, <타타타>, <사랑의 미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양인자가 쓴 가요시를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김희갑의 작곡으로 탄생한 명작은 너무 많다. 김희갑은 부부 간에 합작하여 만든 400여 곡을 포함하여 모두 4500여 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명성황후>, <몽유도원도> 등 뮤지컬도 작곡하고, 300여 편의 영화음악도 작곡하였다.
https://youtu.be/EA6PLfDueP0
https://youtu.be/V4MyEo74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