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교구 가톨릭교육관은 산속 언덕에 있어 피정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아침 일출을 볼수 있어 순례자들에게는 창조주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시간 이었다.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듯하다.
유섬이처자묘
1801년 신유박해로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가족들이 모두 순교한 후 당시 국법으로 처형할 수 없었던 15세 미만의 세 자녀(유섬이 9세 거제도, 유일석 6세 흑산도, 유일문 3세 신지도 유배)가 있었다. 유섬이는 노비신분으로 초남이에서 머나먼 거제도까지 유배의 길을 떠나 거제 관아에 도착하였다. 그 후 거제부사의 호의로 읍에 사는 노파의 수양딸로 71세까지 독신으로 고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유섬이는 비록 순교자는 아니어도 하루아침에 호남 갑부의 딸에서 노비신분으로 전락하여 어린나이에 거제도로 유배당하여 독신으로 정결한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이다. 백호신부님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씀하시며, 특히 백색순교의 모습을 유처자를 통해 유추해 볼수 있다고 하신 말씀에 순례자들에게는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 이었던거 같다.
복자윤봉문요셉 성지- 경상남도 거제시 지세포3길 69-22
거제도에 믿음의 씨앗을 뿌린 순교자의 피 1888년 순교 자유로운 신앙샹할을 하기 위해 거제도로 건너와 진목정(옥포)에 정착 거제사도로 회장직을 맡아 전교에 힘썼고 1886년 체포되어 진주에서 교살당하였다고 한다.성지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은 거대한 공업단지로로 변해 버린 거제도의 장승포와 옥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몸을 누이고 있었던 순교 복자 윤봉문(尹鳳文, 1852-1888년) 요셉은 초기 한국 교회의 박해가 얼마나 극심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났었는지를 후손들에게 전해 준다.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묘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동부로1751번길 46-6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의 중촌 마을에는 머리가 없는 유해가 묻혀 있다 해서 ‘무두묘’(無頭墓)라 불리던 순교 복자 정찬문(1822-1867년) 안토니오의 묘가 있다.
정찬문이 잡혔을 때 고복했다는 기록이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있다. 고복(考覆)은 - 죽을죄에 해당하는 죄인(罪人)의 옥안(獄案)을 재심한다는 말이다. 정씨 문중(門中)에서 고복했을 것이다. 정찬문은 천주교인이 아니니 다시 심판해 달라는 고복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 문중에선 정찬문을 회유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는 완강히 거부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진주 감영(監營)에선 골치 아팠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죽은 뒤에도 시신을 다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남겨 둔 듯하다.
이번 마산교구 순례를 마치며 신부님과 순레자들은 말씀사탕을 통해 각자 자신이 받은 성경말씀을 2번 낭독하고 순례기간중에 묵상했던 자신의 체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었다. 순례여정애서 만나는 교우들과 함깨 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각자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고 백호신부님의 강복으로 순례자들은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속으로 돌아 갔다.
일출을 기다라는 순례자들
첫댓글 11월의 일출 넘 좋았어요...일출사진 너무 좋으네요
👍
순례길에서 일출을 담은 것은 예전에 강원도지역 갔을때 이후 오랜 만인거 갔습니다~~ 일출을 보고 미사에 참석해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거 같구요
1박2일의 멀고 먼 순례길이 순조롭고 행복하기까지 한 끝에는 많은 봉사자들의 수고가 있었지요~
너무 감사하고 은혜로웠습니다.
인생컷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마산지역이 생각보다 먼거리라는걸 이번에 더 알게 되었습니다. 순례길에서 자주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출을 본후 드린 미사는 저희 순례자들에게만 누릴수 있는 특권이죠?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다가오는 대림시기를 잘 준비해서 기쁘게 환호를 해야겠습니다..
일출 사진 한폭의 그림 같아요~
니고데모 헝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 분에 멋진 사진 보네요~~감사합니다 ~~^^
순례길에서의 지난 시간을 기억 하시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