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일보
부산에서의 마지막 독창
이원우
부산으로부터 들려 온 기쁜 소식이다. ‘수필부산문학회’에서 『隨筆』 100호 발간! 『隨筆』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63년에 출범한 동인지다. 창립 회원은 여덟 명쯤 되었다. 내 은사가 회장이었다. 지금은 문학회로 발돋움하여 마흔여 명의 수필가들이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쨌거나 연륜이나 지령(誌齡)을 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으리라.
수십 년 나는 거기에 수필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타관에 살다 보니, 회의 참석도 어렵고, 원고도 제때에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제명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한데 옛날 학부모인 현 회장이 전화를 걸어온 거다, 100호에 원고를 좀 보내달라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의 심경이었을까? 그래 이틀간 매달려 쓴 시원찮은 글 두 편을 보냈다. 회장의 또 다른 간곡한 부탁. 출판기념회 때 꼭 참석, 노래 두 곡을 독창해 달란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는 언질을 보내고 말았다. ‘그리운 금강산’과 ‘돌아오라 쏘렌토로’ 등. 코로나 후유증으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두 가곡(歌曲)은 악보를 안 보고도 부를 수는 있다. 그러나 내게 주눅 들게 하는 요소가 있다. ‘그리운 금강산’은 수많은 악상 기호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고, ‘돌아오라 쏘렌토(Torna a Surriento)는 이탈리아 민요라 발성(발음)이 문제인 거다. 굉장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절망(?)에 빠져 있으면서도 위기를 벗어날 노력은 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악상 기호와 씨름한다. 내가 출입하는 악기점 대표가 이탈리아에서 조율학을 전공한 분이라 그를 찾아 도움도 받는다. 서울에 있는 녹음 스튜디오에 드나드는 까닭도 자명하다. 여차하면 AR(반주와 노래를 동시 녹음하는 것)로 제작할 생각인 거다. 어쨌든 부산에서의 십여 회 콘서트도 기억으로만 남겠지. 난 절망하다가 혼잣말이다. 아, 나도 늙었구나!
이원우
소설가 ‧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저서-소설집과 수필집 등 2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