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집사람이 미장원에 갔다 오면서 웬 작은 멸치만한 물고기 4마리를 종이컵에 가져 왔습니다.
새끼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대략 올 봄 언저리.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
이름은 구피라고 하길래 웬 개이름? 정도로 생각했죠.
한동안.
초등학생때 실과라고 하나요? 그런 과목 시간에 금붕어 기르는 법이 나옵니다.
수돗물 그냥 주면 죽으니까 묵혀서 줘야 한다는 기억은 확실히 났습니다.
그래서 고추장 유리병(대략 1리터?)에 구피 새끼 네마리 기르면서 물은 2~3일에 한번씩 싹 갈아줬습니다.
고추장 병에 키우는 무모함이니까 여과니 뭐니 아무 개념이 없죠.
제가 당시 물갈아 줄 때 방식을 생각해보면 거의 100% 죽는 방법이었습니다.
갈아주는 물 자체는 2~3일 묵힌 수돗물이었습니다만, 갈아주는 과정에서
구피들을 차가운 수돗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잠시 담아놓곤 했었거든요.
더구나 세숫대야에서 고추장 병으로 옮길 때는 맨손으로 덥석 잡아서 옮기고.. --;
생각해보면 참 튼튼한 물고기인 것 같습니다.
와중에 한 마리는 죽었는데요.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몸에 피멍 같은 것이 잔뜩 생겨서 죽었거든요.
그러는 동안 나머지 세 마리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수컷은 저절로 알아보겠더군요. 자연에서는 수컷이 더 화려한 법이라 하니까요.
수컷 1마리와 암컷 2마리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첫 치어!
새끼 낳는 뱀은 들어봤어도, 새끼 낳는 물고기는 생전 처음 들었습니다.
난태생이라는 용어도 파충류에게만 있는 줄 알 정도였으니까요.
6월의 어느 일요일. 가족들과 경복궁 놀러갔다 왔더니 고추장 병 안에 뭐가 움직이더라고요.
똥인가? 싶어 들여다보는데 새끼였습니다.
정말이지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애완용이라는 감동에 앞서..
뭐랄까.. 미안함과 안쓰러움과 생명령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도 들고..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새끼가 생기다니!!
전 사실 새끼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알도 못 봤는데 웬 새끼?라며 우리 가족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그때부터 처음 인터넷으로 구피 공부를 했습니다.
치어는 일단 6마리 건져냈고..
공부를 하면서 보니.. 난태생 물고기라는 것도 알게 되고..
가만 생각하니 이번에 보기 전에도 아마 최소 1번은 새끼를 낳았을 것 같습니다.
그전에 무대뽀 물갈이해줄 때 보면 배가 엄청 빵빵한 적이 있었거든요.
너무 먹였나? 배에 가스나 물이 차나?
궁금하다 보면 어느날 배가 쏙 들어가 있고.. 지금 생각하면 치어를 다 잡아먹은 것이겠죠?
여하튼 치어 6마리를 발견한 그날 이후 우리집 구피들은 실미도를 벗어나 5성 호텔로 가게 됩니다.
본격적인 물생활 하지만 여전히 초보.
어항도 사고, 여과기도 사고, 물잡는다는 개념도 익히고..
한번 환경을 갖춰주고 나니 새끼들을 좔좔 잘도 낳더군요.
와중에 집사람은 마트표 구피를 다섯마리 더 샀는데 그 중 세마리는 한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 마구 키우던 녀석들은 네마리 중 세마리가 몇달을 그렇게 튼튼히 사는데,
튼튼하다 생각해서 사온 녀석들은 다섯마리 중에 세마리가 허망하게 죽더군요.
새끼들도 많아지고 하니 당연히 어항 하나 더 샀습니다.
아마 물생활하시는 분들의 기본 수순을 저도 착착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하지만 어항은 당분간(!)은 1.5자급 두 개로 버티려고 합니다.
집도 좁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고, 물고기에 너무 시간을 뺏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의 현황..
1.5자급 어항 두 개에 구피가 약 40여마리 삽니다. 성어, 준성어, 치어 골고루.
너무 과밀하게는 안 하려고 관심있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제가 좀 특이한 환경을 하나 갖추었는데요.
어항 두 개를 자작 U자 관으로 연결해서 물고기들이 마치 다리처럼 건너다니게 한 겁니다.
제가 혼자 고안해서 만든 건데, 출장갔더니 우연히도 거기에 똑같은 시스템을 회사에다 갖춘 사람도 봤습니다.
구피 외에 코리도라스 3마리와 네온 2마리 그리고 생이와 체리가 20여마리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저 U자 다리를 구피와 새우들은 잘 다니는데요. 코리와 네온은 절대로 안 건넌다는 것입니다.
아마 나름의 습성인가 싶습니다.
구피나 새우같은 경우 오늘은 왼쪽 어항에 보였던 녀석이 내일 보면 오른쪽에 가있고 그렇습니다.
아마 이런 초보의 여과 장치도 궁금하실텐데요.
스펀지 여과기 하나와 7W 측면 여과기 하나가 돈으로 산 여과기들이고,
측면 여과기의 나름 센 힘을 이용해서 5리터 정수기 통에 난석과 황토볼을 채우고 거기에 측면 여과기를 담아
일종의 외부 여과기처럼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편 측면 여과기의 레인바를 이용해서 일부는 물을 순환시키는데 쓰고 일부는 뽑아서 다시금
반찬통으로 자작한 추가 여과기에 흐름을 통과시킵니다.
나름 4종류의 여과기를 돌리는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물은 무척 깨끗한 편입니다.
지금까지 넣은 생이와 체리 마리수를 다 합하면 아마 백마리는 될 듯합니다.
와중에 새끼 가진 녀석들도 엄청 들어갔는데요.
치새우는 단 한 마리만 우연히 보고 아마 다들 구피 밥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격적으로 물생활 시작한 시기가 한여름을 통과하던 때여서 30도를 넘나드는 수온으로 인해
새우가 많이 죽어 나갔습니다.
새우들은 원래는 바닥 청소부로 고용했는데 새우 자체가 보여주는 귀여움도 꽤 크더군요.
코리는 처음에 약간 잘못된 정보때문에 똥먹는 물고기라 생각하고 세 마리 샀더랬습니다.
엄청 활발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사료 잘 치우긴 하는데.. 개인적으로 관상용으로는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네온 두 마리는 처음에 체리 새우 사러 갔다가 완전 충동구매한 녀석들이고요.
지금은 고등어처럼 토실토실합니다.
수초는 이웃집에서 얻은 나나, 그리고 새우 살 때 따라온 윌로모스가 주종이고요.
최근에 하이그로필라 어쩌구 하는 두 종류의 수초를 더 넣었습니다.
치새우들 숨을 공간 좀 마련해주려고요.
하이그로필라 어쩌구는 정말이지 콩나물처럼 자라더군요. 자라는 길이가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전용 조명도 없고, 히터도, 팬도 없고, 제대로 물생활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실미도 부대를 겨우 벗어난 여인숙 수준이겠습니다만..
제 마음만은 5성호텔 관리인처럼 물고기와 새우들에게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굉장히 특이한 구피 새끼 하나가 있습니다.
태어난지 한 달 이상 지났음에도 크기가 갓 태어난 치어 수준인 녀석이 있어요.
불쌍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기형이겠죠?
비록 자라지 않더라도 제 수명대로 건강히 살아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ㅎㅎ 점점 물생활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네요. ^^
u자관 그림이리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이면 더 좋구요...^^;
와우 물고기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정말....동감이 갑니다 특히 첫번째 저도 구피가 개이름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u자관이 궁금하네요!!!한번 해보고싶어요 !나중에 사진이나 그림 꼭 보고싶습니다!
구피.. 개이름..ㅋㅋ 동감^^
재미있는 스타트네요 ^^ // 다들 비슷하게 시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하천에 놀러갔다가 눈만달린 이름모를 치어들이 때거지로 헤엄쳐 다니길레 좀 잡아왔더니.. 금방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다음날까지 잘 살아있어서.. "요거 한번 키워보자"싶더라구요 ㅎㅎ 그래서 지른 어항이 뭐 지금은..ㅋㅋㅋ
U자 그림을 따로 게시글로 올렸습니다.
물생활이 무슨 마법 같지요~~자연스레..빠지네요...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