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움직이면서 성균관대 제3캠퍼스 입주도 재시동이 걸렸다. 삼성이 재단운영에 참여하는 성균관대는 2007년 평택시 도일동에 성균관대 제3캠퍼스를 유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정리역의 동쪽이다. 하지만 양해각서 체결 후 캠퍼스 조성이 지지부진했는데, 삼성전자가 평택에 들어오기로 하면서 성균관대 제3캠퍼스 조성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기는 서정리역 남쪽의 전철 지제역 인근도 마찬가지다. 허허벌판 위에 가건물만 몇 채 보이는 평택시 지제동 지제역 일대는 오는 2014년 KTX 정차역으로 바뀐다. 삼성전자가 입주하는 고덕산업단지의 동남쪽 출입구가 될 지역으로,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KTX고속열차가 이곳에 정차하게 된다. 기존 경부선과의 환승편의를 고려해 지제역에 KTX를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 KTX의 평택 정차는 경기 남부에 KTX 역사가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광명역이나 천안아산역은 경기 남부권에서 이용하기에 여러모로 불편했다. 오는 2014년 지제역에 KTX가 정차하면 수원·오산 등지를 가는 승객은 지제역에서 경부선 전철로 환승하게 된다. 명실상부한 철도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평택시민들은 이미 2005년 수원~천안 간 복선전철 개통으로 철로의 위력을 한 차례 실감한 적이 있다. 서울지하철 1호선과 직결된 전철이 평택까지 내려오며 경기도 최남단 평택은 수도권에 본격 편입됐다. 복선전철 개통으로 TMO(국군수송지원반)를 드나드는 군장병들만 어슬렁거리던 평택역은 2009년 선상(線上) 백화점(AK플라자)까지 갖춘 현대식 대형 역사로 탈바꿈했다. 백화점이 들어서며 휴가·외출 나온 장병들을 끌어당기던 평택역 앞 사창가 ‘쌈리’도 된서리를 맞는 등 평택역 일대가 몰라보게 발전했다. ‘평택3리’를 뜻하는 ‘쌈리’는 경기 남부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 사창가였다.
이 같은 학습 효과는 KTX에 대한 평택 시민들의 기대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벌써 평택시 관내 진위·송탄·서정리·지제·평택 5개역에는 ‘서울과 평택의 거리가 26분으로 줄어든다’는 입간판까지 내걸렸다.
평택에 삼성전자의 입주가 결정되고 ‘돈폭탄’이란 말이 공공연히 회자될 정도로 투자가 몰리는 것은 2004년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결정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강 이북인 동두천·의정부에 주둔하며 ‘인계철선’ 역할을 하던 미2사단을 비롯해, 서울 용산의 미 8군 사령부를 한강 이남인 평택으로 일괄 이전키로 한·미 양국이 합의하면서 평택의 발전이 본격화됐다는 게 지역민들의 얘기다.
주한미군 재배치가 결정적
당시만 해도 2002년 미선·효순양 교통사고 사망사건이 대형 정치 이슈로 비화하면서 모두들 주한미군을 꺼릴 때였다. 하지만 평택은 주한미군 재배치를 받아들여 동북아 최대 미군기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평택시 팽성읍에는 미 육군이 주둔하는 캠프 험프리스(K-6), 서탄면에는 미 공군이 주둔하는 오산공군기지(K-55)가 있다. 대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는 평택에 대한 파격적인 정책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를 기존의 3배 규모로 키우는 사업이 시작됐다. 기지 확장공사가 시작되고 군막사 등을 짓는 작업으로 평택 지역의 건설경기도 되살아났다. ‘평택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팽성읍 안정리 일대 상권에도 다시 불이 켜졌다.
한때 주한미군 평택 이전을 둘러싸고 외부 사람들이 몰려와 무산될 위기도 있었다. 평택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편정범씨는 “평택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외지 사람들이 보상비가 적다고 난리쳤고, 외지 학생들이 전철 타고 내려와서 일당 받고 데모하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같은 진통 덕에 평택에는 파격적 지원이 실제로 주어졌다. 고덕면이 부상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고덕면에 소위 ‘국제평화도시’를 조성해 미군 장교와 군속들의 거주기반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립됐다. 고덕면은 평택시 팽성읍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와 평택시 서탄면에 오산공군기지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후 고덕국제화도시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삼성전자 유치가 추진됐고 국제도시에 직주근접형 산업단지를 추가하자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요즘에는 심지어 “평택시청과 시의회가 고덕으로 이전할 것”이란 소문도 평택에는 파다하다. 지금의 평택시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도농복합도시 조성법에 따라 평택시와 평택군, 송탄시를 통폐합해 출범시킨 도시. 하지만 행정 통합 후에도 각 지역 주민들 간의 지역감정을 고려해 옛 평택시에 시청, 옛 송탄시에 시청출장소와 시의회를 각기 따로 뒀다. 시청과 시의회가 나뉘어져 있어 행정 비효율이 여러모로 심각했는데, 고덕국제화도시에 시청·시의회가 함께 들어가는 행정타운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일단 평택시 측에서는 “과거 백지화된 얘기”라며 시청과 시의회의 이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 일대 부동산에서는 시청과 시의회가 들어설 구체적 입지까지 거론하며 기대를 걸고 있다.
“평택항이 인천항 제칠 것”
평택이 들썩이는 것은 옛 평택시와 송탄시 일대뿐만이 아니다. 서해와 접해 있는 옛 평택군 역시 들썩이고 있다. 옛 평택군도 1995년 도농복합시 조성법에 따라 송탄시와 함께 평택시에 편입된 지역이다. 평택시라는 같은 행정구역 내에 속해 있지만 지난 8월 7일 평택 시내에서 찾아간 옛 평택군 포승읍은 차로 30분 거리나 됐다.
옛 평택군 일대가 부상한 것은 1999년 해군 2함대가 인천항에서 평택항으로 모항(母港)을 이전하면서다. 1999년만 해도 갯벌에 불과하던 포승읍 원정리 일대에 바다를 메워 대규모 군항을 조성했다. 이후 군인과 군무원 가족 수천 명이 옮겨와 대규모 생활권을 형성했다. 인구 증가로 옛 포승면은 2006년 포승읍으로 승격했다.
더욱이 최근 자동차 수출 활기로 평택항은 2010년부터 자동차 수출입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전국 30개 항만 중 자동차 처리량 1위다. 현대차 아산공장과 기아차 화성공장,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출고된 수출 차량은 평택항을 통해 나간다. 서울과 수도권에 들어오는 수입차도 평택항을 거친다. “인천항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이 경기항만공사 측의 설명이다. 자동차 수출 활기로 평택항 배후에 있는 포승읍 포승국가산업단지에도 생기가 돈다.
포승국가산단에는 동우화인켐, 금호타이어, 글로비스, 율촌화학 등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있다. 돈이 돌자 인근에는 술집, 밥집, 모텔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포승국가산단 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민성근씨는 “포승산업단지와 해군 2함대가 있는 원정리는 길 하나 건너에 있는 단일 생활권”이라며 “아직 서울처럼 오피스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가구주택을 중심으로 방을 보러다니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 바이어들이 몰려오면서 평택 시내 개인택시들의 수입도 덩달아 올라갔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안영곤씨는 “동우화인켐 공장 증설 때 일본 기술자들을 평택 시내 호텔에서 출퇴근시키면서 왕복 5만원씩 제법 수입이 짭짤했다”고 말했다.
평택항은 오는 12월 대선 때도 재부각될 움직임이다. 평택항은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경선후보의 ‘한·중 열차페리’ 공약으로 유명세를 탔다. 당시 한반도와 중국 산둥반도의 옌타이(煙臺)나 웨이하이(威海)를 잇는 열차페리의 한국 측 출발점으로 평택항이 거론됐다.
열차를 페리에 싣고 바로 철로로 연결하는 열차페리는 이미 중국 내에서는 가동되고 있는 교통 시설이다. 산둥반도 옌타이와 랴오둥반도 다롄(大連) 간에는 2007년부터 열차페리가 운행되고 있고 하이난다오와 레이저우반도의 잔장(湛江) 간에도 열차페리가 다닐 정도로 기술적 어려움은 없다. 때문에 한·중 열차페리 역시 결단만 있으면 언제든지 구체화될 수 있고, 오는 12월 대선 때 이 일대 표심을 사로잡을 공약 중 하나로 다시 등장할 조짐이다. 여권의 대선주자 중 한 명인 김문수 경기지사 역시 열차페리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한·중 열차페리는 웨이하이 부서기를 지낸 리빈(李濱) 전 주한 중국대사가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제안하며 본격화된 것이다. 이래저래 평택항에 시선이 쏠리는 까닭이다.
과잉투자 부작용 경고도
하지만 평택시 일대에는 돈이 풀리면서 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 택시기사 안영곤씨는 “땅값이 올라 수백억 졸부들도 속출했고, 노인네들 돈을 노린 티켓다방도 많다”고 귀띔했다. 지난 4월에는 평택에 사는 50대 후반 300억원대 자산가가 부인에 의해 청부살해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포승에 이어 삼성이 들어올 고덕면에서도 토지보상금이 대거 풀린 이상 앞으로 돈과 관련된 요지경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이라고 현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미군기지 확장사업을 벌이고 있는 팽성읍 안정리 일대는 주택 공급과잉에 따른 후유증도 겪고 있다. 안정리 농협은행에서 여신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미군들로부터 달러로 임대료를 받는다는 소문에 2004년부터 이 일대에 미군 장교와 부사관을 상대로 한 임대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며 “하지만 요즘은 공급이 너무 많아져 공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팽성읍 일대는 미군기지 확장을 앞두고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토지매입후 3년 내에 반드시 주택을 지어올려야만 했는데, 외부세력들이 팽성읍 대추리 등지서 과격시위를 벌여 미군 재배치가 2008년, 2012년, 2016년으로 거듭 연기되면서 미군 상대 임대 목적의 주택 건설 물량이 수요에 비해 과잉공급된 것이다.
그래도 이 일대 부동산업자들은 “미군 부대들이 완전히 이전해 오는 2016년이면 수요가 회복된다”며 여전히 부동산시장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이다. 영외에 거주하는 주한미군은 계급에 따라 미국 정부로부터 일정액의 주택보조금을 지급받기 때문에 미군을 상대로 한 주택임대를 할 경우 월세가 꼬박꼬박 들어온다. 영외에 집을 구하는 미군 중에서는 우리식 전세에 익숙지 않아
1년치 월세를 달러로 통째로 건네는 일도 흔하다. 이러한 이점을 노리고 서울에서 내려와 미군 상대 주택임대를 하는 사람들도 이미 상당수다. 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서희연씨는 “미군기지를 3배가량 확장해도 장교나 군속들이 거주할 주택이 5000가구 정도 모자란다”며 “주한미군 이전 공사에 종사하는 공사인력들도 급증해 요즘은 원주민들이 방을 구하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