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로에서 만난 허전하고 쓸쓸한 상념들

[신정일]

정여립로에서 만난 허전하고 쓸쓸한 상념들

정여립로를 걸었다. 혁신도시의 관문 정여립로,

그 길에서 만나는 길들이 온고을로와 팔과정로,

콩쥐팥쥐로. 그리고 쑥고개 길이다.

팔과정과 신복리를 합해서 팔복동이라고 이름지었고,

전주에서 금구로 넘어가는 쑥고개는

산 중턱에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어서

숫재, 탄치, 숙호재, 숙호치라고 부르다가

그 말이 변해서 쑥고개가 된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에 원효 스님의 호를 따서 원효로가 지어졌고,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라 지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자인 정여립의 이름을 붙여서 정여립로라고 지었다.

왜인가, 부연 설명하자면, 정여립이 완주 상관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갈 때 그 길을 걸어갔고,

벼슬을 그만두고 대동계를 조직하고자 낙향할 때에도

그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지은

그 이름이 붙은 길을 따라 하루 답사를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런지,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다 터질 듯 아팠고,

몸살 조짐이 있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무겁기만 했으며

오늘따라 엔지가 자주 났다.

그래서 하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걸을 길 또 걷고, 걷고, 촬영 진도가 느렸다.

송의성피디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선생님처럼 답사나 다니고 싶어요.“

”왜요, 피디 작업이 힘들어요?“

”예, 여기선 무엇을 찍고, 무엇을 말했으면 하고,

매일 매 순간, 순간이 고역이에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자연스럽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것 같으면서도,

여기선 어떻게 걷고, 저기선 어떻게 무슨 말을 하고,

끊임없이 매 순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것을 저들이나,

이들이나 알기나 할까?

책을 쓰는 것만 해도 그렇다. 매일 매일, 글자 한 획, 한 문장을 가지고도

순간, 순간 결단하고, 또 주저하고, 망설이면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내 삶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여립로라고 이름 지어진 그 정여립과 동시대를 살았던 당대의 천재들도,

정여립로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산이씨의 사당에 모셔진 목은 이색이나,

이흥발, 이기발 등 이 땅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

넓게 본다면 우주라는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갔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천고사에서 코도 눈도, 볼도 광배도 부서진 미륵불을 보고, 찾아간

전주 영화제작소에서 그 유명한 영화 <기생충寄生蟲>이 제작되었단다.

알고 보면 모든 인간은 우주宇宙라는 행성에 기생하고 사는 기생충이다.

나는 그곳에서 <기생충>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그렇지. 시도하지 않았는데, 실패가 있을 수 없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부자는 다 착하더라, 돈이 다리미라고,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그럴까? 나는 방송 멘트에 러시아 속담을 얘기했다.

”돈에는 더 많은 돈 이외에는 친구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친구보다, 사랑보다 더 돈을 좋아하는가?

부당한 돈을 꿈꾸지도 않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인생을 살지도 않았다.

그 흔한 위장전입 한번 해보지 보았고, 그렇다고 이 아파트 외에는 꿈속에서조차

땅 한 평 사볼 생각도 안 했으며,

그냥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발 한 발 내 걸으면서

바라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데, 자꾸만 내가 살아온 삶이 회의가 든다.

악착같이 재산을 늘리고 더 높은 곳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가?

”낡은 것이 가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사이, 나는 낡은 것, 낡은 사람이 되었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딴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 된 것이다.

정여립로에서 쑥고개 길에 접어들고,

국립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했다.

집 떠났던 새들이 숲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돌아갈 곳은 과연 어디인가? 두리번거리며

내 마음속 아픈 곳들을 돌아다니던 그 시간이 벌써 추억이 되고 말았으니,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봄소리]

선생님~!!!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언제나 파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