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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베키 김인덕입니다. 13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bmw 회원 여러분 모두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얼마 남지않은 올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뭔가 의미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난게 bmw 의 역사에 대하여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자료를 모으고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그져 공부를 위해 모았을 뿐... 이미 인터넷 상에 있는 자료들입니다. 저도 공부한다 생각하고 한자한자 정리했으니
시간나실 때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벤츠와의 차별화
자동차의 역사는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BMW는 비록 후발 주자이면서도 메르세데스 벤츠가 갖지 못했던 부분을 적극 공략하여 세계적인 명차의 대열에 올라 섰다고 보는견해가 많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강력한 파워와 안정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BMW는 스포츠 카처럼 경쾌하게 달리면서도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작된 승차감에 더 무게를 두었죠
즉, 메르세데스 벤츠는 강력한 파워를 위해 8기통의 엔진에 주력한 반면, BMW는 6기통의 엔진 개발에 주력하여
6기통 엔진에 대해서 만큼은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성능과 안전 제일주의를 고집해온 BMW는 40년 연속 흑자를 기록, 1998년 롤즈로이스도 인수 등으로
명실상부 세계 최고급이라는 명성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BMW의 변천사
BMW는 1913년 10월 칼 프리드리히 랲에 의해 바이에른의 중심시 뮌헨에서 설립되었는데, 이 회사는 원래 비행기 엔진 생산 공장이었다. BMW의 상징인 로고는 비행기 프로펠러를 형상화했고, 파란색과 흰색은 본사가 있던 바이에른 주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BWM는 원래 항공기 엔진을 전문으로 만들던 회사란거 아시죠??
1차 대전이 끝나고, 1919년 바르세이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비행기 제작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BMW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해결책으로 BMW는 모터 사이클 생산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비행기 엔진 개발을 해왔던 BMW의 축적된 기술로 모터 사이클은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인기를 끌게 되었으며,
또한 이 당시 경제 불황으로 인해 자동차 대신 모터 사이클의 붐이 일게 되어 BMW는 단숨에 자금 압박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힘입어, 1928년 딕시(Dixi)사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이 회사는 영국의 오스틴 세븐의 라이센스로 승용차를 만들던 회사였다. 딕시사
BMW 3/15는 1932년까지 생산되었는데 지속적인 모델 개선을 하며 DA 4 버전까지 생산을 하게 된다. 이를 살펴보면 1929년 중반 핸들을 왼쪽으로 옮겨 Dixi 3/15 PS DA1으로 명명했고, 같은 해 BMW 3/1 PS DA2로 생산이 이어졌다. (DA: Dixi Austin, Deutsche Ausfuhrung)
1929년 BMW Wartburg (DA3), 그리고 1931년 DA4 살롱(최초 4인승)을 시장에 내 놓으며 소형차의 강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생산한 자동차는 25,356대로 대 공항을 피해 갈 수 있었던 비결은 소형차 시장을 장악 함에 있었다 하겠다.
1932년 BMW는 오스틴과의 라이센스 계약을 해지하고 자체 모델을 개발하여 BMW 3/20PS를 내놓았으며 이듬해에 BMW 303를 출시 하였다. BMW 303에 장착된 직렬 6기통 엔진은 지금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36년 베를린 모터쇼에 공개된 BMW 326은 최초 4 도어 살롱으로 BMW 3 시리즈에서 베스트 셀링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BMW의 스포츠 이미지는 BMW 326의 모습에 6기통 1천 971cc 80 마력 엔진의 로드스터 328이 발표되며 극에 달했다 보인다. 이후로 각종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우승을 독식하며 명성을 쌓아, BMW 328은 BMW의 최고의 명차로 꼽히게 되었다. 1930년대 2 리터급의 차로 혁신적인 속도인 190 km/h를 나타내었다.
1,2차 대전 패전을 난관을 극복하다
2차 대전 발발의 주역인 독일은 전 후 혹독한 값을 치러야 했으며, 여기에는 자동차 메이커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잿더미만 남은 공장과 연합군에의 자동차 생산은 중단 되었고, 모터 사이클만 아이제나크 공장에서 생산하게 되었다. 1 차 대전 직후와 같이 모터 사이클이 위기 상황에서 BMW를 구출 했다 할 수 있다. 어쨌든 BMW는 전쟁 후 피나는 노력끝에 BMW 331을 내 놓았는데 이것은 이탈리아의 소형차 피아트 트포리노와 비슷한 2인승 쿠페로, 오토바이용 엔진을 장착 했다. 이 차는 오래가지 못하고 바로 사라지고 만다.
고급차 시장으로 눈을 돌린 BMW는 각고의 노력으로 BMW 501을 1951년 시장에 출고 했는데, 바로 이차에는 세계 제일의 6 기통 엔진을 장착했으며, 모양은 전쟁 전 클래식 모델의 화려하고 중후한 모습이었다. 최고 속도는 무려 135 Km/h 나 되었고,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출고한 300과 쌍벽을 이루는 대형차였다. 당시, 세계적인 추세는 대형차를 선호하게 되었고, BMW도 이에 편승하여 지속적으로 대형차 개발에 앞장서며 대형 신형차를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 이 당시 출고 됐던 차들을 보면 V8 엔진의 대형 로드스터 BMW 502, 503, 507등이다. 특히, BMW 507은 스타일과 성능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매우 우수차로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의 경제 상황은 고가의 이 차들의 판매가 저조하여 지속적인 경영 압박을 받게 되었다.
즉, 이 당시 독일의 경제 상황은 이와 같은 화려한 고급의 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값싸고 실용적이며, 오래 타고 다닐 수 있는 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여 탄생된 차가 바로 오토바이 엔진 (단기통 245 cc 12 마력)을 장착한 이태리 라이센스 모델인 “이제타”였다. 이차는 일명 “거품차”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그후 300cc, 600cc, 700cc로 배기량을 늘리면서 생산이 지속되며, 독일의 국민차 역할을 하면서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러한 판매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BMW는 지속적인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해 이탈리아의 토포리노에 밀리면서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합병설까지 나온게 된다. 이 당시 BMW를 구한 사람이 헤르베르트 쿠완트인데 이사람이 대주주로 나서며, 노동자, 소액 투자자, 딜러들이 힘을 합쳐 다시 재건을 위한 재도약을 하게 된다. 또한 700cc의 판매는 꾸준히 증가하여 6년간 18만대가 판매되어 BMW가 오늘날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설수 있게 한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1959년 헤르베르트 쿠완트(Herbert Quandt)에 의해 재 정립을 하게 된 BMW는 1962년 BMW 1500을 출시하게 된다. 이때부터 BMW는 본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1966년 공장을 본사가 있는 뮌헨 근교의 딩골핑의 한스 그라스 공장을 인수하여 확대 시켰고, 모델을 BMW 1500 에서 BMW 1600으로 개선된 제품을 시장에 내어 놓게 된다. BMW 1600에서 변형된 BMW 1600-2로 시작되는 02 시리즈 출시는 BMW가 재도약을 하게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1968년에는 2500, 2800, 2800CS등을 시장에 내놓으며 직렬 6기통 전통을 부활 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BMW는 완벽하고 고성능인 승용차의 메이커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리던 해 BMW는 세계 시장을 겨냥한 본격적인 패밀리 카 5 시리즈를 출시하며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게 된다. 이때 발표된 BMW 520는 5 시리즈의 신기원을 열어준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이 시기를 BMW의 2세대라 한다.
BMW의 전략은 저렴한 가격대로 높은 품질과 고성능의 차를 소비자에게 제공 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주효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BMW의 라인업은 스포츠 세단 3 시리즈, 중형 살롱 5 시리즈 그리고 대형 프레스티지 7시리즈, 고급 스포츠 쿠페인 8 시리즈로 자리를 잡게 된다.
1975년 BMW 라인업 중 가장 기본이 되는 3 시리즈가 처음 출현 한 이래 두번의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더욱 입지를 견고히 하게 되자 여기에 자극받은 메르세데스 벤츠는 서둘러 3 시리즈에 대응하는 190을 내놓았을 정도이다. 3 시리즈는 뛰어난 스피드, 고속 주행 안정성 그리고 경제성을 지녀 일명 고성능 컴펙트 살롱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게 된다.
BMW 바이크
K100, 모터사이클 ABS의 시작
1960년 이후부터 BMW는 전성기에 버금가는 모터사이클 생산을 기록했다. 1969년부터 1973년 사이 R 75/5 모델은 35,350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BMW, R 75/5
이후 BMW는 최초의 900cc 모델인 R90/6과 R90S을 출시하며, 대배기량 모터사이클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3년 후인 1976년에는 1,000cc급 모델인 R100RS를 출시해 세계 최초의 풀 페어링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초의 풀 페어링 모터사이클 R100RS
그로부터 2년 후, R100RS를 투어러 형태로 변형한 R100RT가 출시되었다. 이와같은 지속적인 발전은 기계 설비에 대한 투자를 증가시켜 대부분의 부품을 자급자족하면서 이뤄졌으며, 부족한 인력은 비독일인 노무자를 고용함으로써 해소했다. 이 시기의 BMW 인력은 850명에서 1,500명으로 증가했다.
▲BMW는 크로스 컨트리 분야로의 진출을 위해 R80GS를 출시했다.
1980년대 역시 BMW는 성공을 향해 달려갔다. 특히 BMW는 2개의 분야에 거의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그 첫 번째가 '게란데 스트라쎄(Gelande Strasse 영어로는 Offroad Onroad)' 시리즈로서 이는 새로이 발전하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분야를 지원,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전하여 BMW의 이름을 드높이는데 성공한다.
BMW는 싱글 스윙암을 특징으로 하는 ‘모노레버’라고 불리는 후륜 현가장치를 적용한 엔듀로 스타일의 R80G/S를 출시하며 그 시작을 열었다. 1981년엔 프랑스인 휴버트 오이올이 R80 G/S의 튜닝 머신으로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우승하며 '크로스 컨트리' 경주 분야에 관한 BMW의 명성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최초의 K 시리즈, K100
▲K100RS는 지금 보아도 멋스럽다.
두 번째는 1983년에 출시한 K시리즈였다. 당시 일본 모터사이클 메이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던 BMW로서는 기존 모델로는 더 이상 일본과 맞설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BMW는 기존 모델과 다른 엔진과 콘셉트를 지닌 모델을 출시했다.
▲BMW 최초이자 최후의 3기통 엔진을 장착했던 K 75 C
이렇게 해서 태어난 K100은 일본 모델에 대해 BMW가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BMW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3기통 엔진을 장착한 K75를 출시하며, 연간 37,104대의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듬해 BMW는 K100에 ABS를 장착함으로써 세계최초로 모터사이클에 ABS를 적용한 메이커가 되었다.
▲K100RT에 장착되었던 초기 ABS의 모습
1989년에는 스포티한 카울 및 100마력의 최대출력을 자랑하는 1,000cc급 4밸브 방식의 엔진을 특징으로 하는 K1을 출시하면서 전 세계 메이커 및 라이더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K시리즈 최초로 100마력을 돌파한 K1
100만 대의 BMW 모터사이클
1986년, BMW는 라이더들의 요구에 따라 R80을 기본으로 한 R100RS와 R100RT 그리고 후륜 현가장치에 한 개의 링크를 추가한 패러레버를 적용시킨 R100GS를 출시한다.
▲R100GS는 지금은 BMW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패러레버 시스템을 사용했다.
당시 R100GS는 엔듀로 모터사이클 중 배기량이 가장 큰 모델이었는데, 연간 5,865대가 팔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터사이클이 되었다. 이후 BMW는 1990년대에 들어 친환경 문제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BMW는 SAS(세컨더리 에어 시스템)를 소개하면서 박서 모델의 배기가스 배출을 줄이는 한편, 세계 최초로 완전 제어 방식의 촉매 장치를 모터사이클에 적용시킨다.
▲럭셔리 투어러 시장을 개척한 K1100LT
1991년은 BMW의 100만 번째 모터사이클이 탄생한 해였다. 그와 동시에 BMW는 당시 베스트셀러 모델이었던 R100R과 럭셔리 투어러 시장을 개척한 K1100LT를 출시하며 그 입지를 넓혀갔다. 회사의 7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1993년을 기점으로 BMW는 R1100RS를 시작으로 R1100GS와 R1100R/R850R 등 완전히 새로운 복서 엔진의 모델들을 출시했다.
▲복서 엔진은 진화한다. R1100RS
▲단기통 650 엔진을 얹은 F650
또한 F650을 출시하며 단기통 모터사이클 시장에 다시금 진입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5년은 ABS가 장착된 10만 번째 모터사이클이 출고된 해로, 이 때를 기점으로 BMW는 연간 50,000대의 모터사이클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때 출시된 투어러 모델인 R1100RT 또한 라이더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BMW, R1100RT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2003년, 80번째 생일을 맞이한 BMW는 달리는 즐거움을 테마로 한 각기 다른 캐릭터의 모델들을 출시했다. 엔듀로, 로드스터, 크루저, 스포츠 그리고 럭셔리 투어러까지 BMW는 모든 분야의 모터사이클 장르를 자사의 라인업에 확보했다.
▲BMW의 크루저 모터사이클로 등장한 R1200C
그로부터 1년 후 BMW는 R1150시리즈의 폐막을 알리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그것은 바로 2007년까지 자사의 라인업을 모두 새롭게 교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BMW의 이와 같은 계획은 치밀하게 진행되어 갔다. 우선 R1200GS에 탑재된 1,170cc의 새로운 심장이 모든 R시리즈에 이식되었으며, K시리즈 역시 새롭게 태어났다.
▲BMW, K1200S
K1200S로부터 시작된 신형 K시리즈는 보다 가볍고 강력한 엔진뿐만 아니라 ESA와 같은 최첨단 장치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기량 800cc의 병렬 2기통 엔진을 탑재한 F800시리즈의 런칭이었다.
결국 BMW는 일본 모터사이클 메이커가 선점하고 있는 1,000cc 미만의 모터사이클 시장까지 공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2006년, BMW는 R1150 시리즈의 마지막 모델이었던 R1150R을 R1200R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양산 모터사이클로는 최초로 ASC(Anti Spin Control or Automatic Stability Control)시스템을 탑재했다.
▲G650X 시리즈 삼형제, 위로부터 크로스컨트리, 크로스모토, 크로스챌린지
이후 BMW의 장르 탈환에 대한 야망은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2006년에는 G650X 컨트리, 모토, 챌린지의 세 가지 G650X 시리즈가 추가되었으며, 2007년에는 이태리의 오프로드 명가인 허스크바나를 인수 합병했다.
▲F800시리즈의 다양함으로 등장한 F800GS
2007년 밀라노의 EICMA 모터사이클 쇼에서는 F800시리즈의 GS 버전인 F800GS가 출시되었으며, 풀 체인된 F650GS도 선을 보였다.
▲F650GS는 F800과 동일한 병렬 2기통 엔진을 사용한다.
그로부터 일 년 후인 2008년에는 독일의 인터모트 모터사이클쇼를 통해 K1300R, K1300GT, K1300S의 K1300시리즈가 등장했으며, 2009년 하반기에는 BMW의 첫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는 S1000RR이 런칭 했다
▲국내에서도 런칭되어 큰 주목을 받은 신형 K1300 시리즈
수석 엔지니어인 '막스 플리츠'가 개발한 복서 엔진을 바탕으로 발전한 BMW. 한 때 그들은 투어러와 듀얼 퍼퍼스 모델을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모터사이클 브랜드라고 불렸지만, 2009년 현재는 거의 모든 모터사이클 장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는 WSBK에 참전하며 BMW 모터사이클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해 나아가고 있다. 지난 2004년 BMW는 변화를 예고했고, 전 세계의 라이더들은 변화 할 BMW를 상상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BMW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냈다.
▲BMW 최초의 슈퍼 바이크가 될 S1000RR
지난 1923년 이후 BMW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알고자 한다면 앞으로 발전할 것들을 가정해 보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의 모든 종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BMW 모터사이클을 타는 라이더들이 어떤 요구하더라도 BMW는 언젠가 그 기대치를 뛰어 넘는 다는 것이다.
수평대향 R엔진이야기
BMW 바이크에는 다른 모터사이클에서는 보기 힘든 수평대향 2기통 엔진이 들어갑니다.
이런 독특한 점이 저를 R1200GS에 꽂히게 만든 첫번째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리터급이 직렬4기통이나 V트윈을 사용하는데 반해, 수평대향 엔진이라는 건 정말 유니크해서 좋았습니다.
독일은 1차대전에 패전한 후, 군장비 제조에 제한이 걸리게 되지요.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기존 비행기 엔진을 만들던 기술을 활용해 여기저기에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본래 이 엔진의 기원은 비행기 엔진이라고 합니다.
BMW 132 Engine
위 사진 속의 옛날 비행기 엔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프로펠러를 돌리기 위한 엔진들이
원형을 이루면서 동그랗게 둘러져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엔진을 바이크에 맞게 수평으로 2기통으로 제작한 것이 R엔진의 시초였습니다.
그당시 독일은, 1차대전 패전국으로서 제한되어있던 무기 생산을 표면적으로는 하지 않으면서
대신 바이크나 일반 차량을 제작해서 무기화 할 것까지 고려해가며 국력을 다시 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R엔진이라는 놈이.... 요즘의 여타 최신 바이크들처럼,
냉각효율 좋은 수냉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동급 배기량의 바이크보다 마력이 높은 것도 아니죠.
어떤 사람들은 BMW가 R엔진의 바이크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통성'유지를 위해
스펙 딸려도 얼굴마담으로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만,
이 R엔진이 단순히 그런 '정통성'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만들어져 오고 있는게 아닙니다.
기계에는 스펙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펙과는 상관없이 그 완성도가 높아서 더 인정받는 것도 있는 겁니다.
그 '정통성'을 외치며, 이어가고 있는 할리데이비슨 마저도
이 BMW의 R엔진을 카피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2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독일군의 BMW R75은 정말 쓸모있었습니다.
사이드카에 기관총을 달아 기동력있는 타격대를 운용하기도 했고,
간단한 보급이나 이동에 바이크가 꽤 유용한 군장비라는 것이 증명되었던 겁니다.
BMW R75
미군은 미국내 메이저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할리데이비슨'과 '인디언'에게 군납 입찰을 시행합니다.
양쪽 회사를 경쟁시켜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자 했던 것이죠.
이미 할리는 기존방식대로, V트윈을 장착한 WLA를 제작한 상태였습니다.
HD WLA
그러나 정작 미국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나 기술자들은
이미 독일군의 BMW R75의 능력에 완전히 꽂혀있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기계적인 완성도가 높아서, 전장에서 험하게 굴려도 쉽게 퍼지지 않았으며,
수평대향 엔진의 특성상 연료통을 들어내거나 뭔가를 많이 분해해내는 것 없이도 엔진 정비가 용이했으며,
사막을 달려도, 비포장을 끝없이 달려도, 샤프트 드라이브 구동방식의 R75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미국의 바이크는 전장에서 독일군의 바이크에 비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미군의 바이크 납품 입찰에 참여한 두 회사는 각자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인디언에서는 요즘의 모토구찌와 비슷한 방식의 V트윈 바이크를,
할리데이비슨은 BMW R75를 카피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할리 데이비슨의 XA 입니다.
Harley-Davidson XA
샤프트 드라이브방식에 수평대향 2기통 750cc 엔진....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BMW R75를 카피해 왔음을 알 수 있죠.
Harley-Davidson XA는 BMW R75를 카피하고, 몇가지 기술적 보완을 하여,
시제품 테스트용 형식으로 1천여대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선이 사막/중동 쪽을 벗어나게 되자,
미군에게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잘 굴러갈 바이크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었고,
당시 Jeep 차량의 개발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내부 결정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그로인해 할리는 수평대향 엔진 / 샤프트 드라이브 방식의 XA 라는 바이크를 제대로 양산하지도, 납품하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미군은 할리에게 물먹인 꼴이 되어서 미안한 마음에 WLA를 어느정도 구매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됩니다.
위 일화에서 보듯
바이크 엔진은 단순히 토크와 마력, 그리고 배기량 등으로만 키재기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 거죠.
BMW R엔진은 전장에서 이미 그 효율성과 내구성을 인정받았던 엔진입니다.
GS의 R 엔진
2013년형 GS 특징주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엔진입니다.
변화한 내용을 간단히 짚어보면 엔진냉각 수랭화, 미션과 엔진 일체화, 습식다판 클러치채용, 발전기를 엔진내부에 장착
등입니다. 이 변화가 중요한이유는
BMW 박서 트윈 엔진을 1923년에 만들면서 건식다판 클러치, 외장형 발전기를 90년동안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크랭크 샤프트도 경량화 및 길이를 줄였고 동시에 별체식이던 미션과 엔진을 일체화시킴으로서 경량화 및 강성을
동시에 확보합니다.
따라서 이 엔진은 125ps/7700rpm, 125Nm/6500rpm을 발휘하는 역대 최강 스펙을 확보합니다.
▲ 엔진 전체 수랭 35%, 공랭 65%의 비율 (기존 유랭 22%, 공랭 78%였음)
▲ 무게 집중화에 기영하는 흡배기 레이아웃
흡기, 아래로 배기시키는 "다운 드래프트"방식으로 공기의 흐름을 일직선으로 이루게 됨
가벼운 에어크리너를 스티어링 헤드 부근, 무거운 연료태크를 시트쪽에 배치할수있어 질량집중에 유리하다고
하네요 ^^
엔진 소개
▲ R1100
공유랭 HC(하이캠) 박서엔진입니다. 전통을 이어받아 엔진위에 발전기, 엔진뒤에 미션케이스가 연결됩니다.
▲ R1150
배기량이 커진면서 6단 미션을 채용하고, 트윈플러그를 채용합니다. 1100~1150 시대에는 엔진과 미션케이스
를 프레임의 일부로 활용하는 설계라서 엔진이 많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R1200
흐흐 제가 타고 있는 어드방 엔진... 2004년, 배기량이 확대됨과 동시에 파이프 프레임으로 강성을 확보한다는
설계 방식을 채용해서 엔진과 미션 케이스둘레가 대폭적으로 경량화 되었습니다.
엔진의 전후길이, 높이 등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 R1200 DOHC
HP2 스포츠에서 채용된 DOHC 구조가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헤드둘레에 대폭적인 변경이 이뤄졌음에도
전체적으로 외관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엔진 위에 발전기, 뒤쪽에 미션케이스가 배치되는 레이아웃은
여전합니다.
▲ R1200 W
발전계 파츠가 엔진내부로 숨어서 깔끔해졌습니다. 엔진 뒤쪽에 있었던 6단미션이 엔진하부에, 건식단판이었던
클러치 뭉치는 습식다판으로 바뀌어 엔진앞쪽으로 위치했습니다.
해드둘레가 완전 신설계되어 고회전, 고출력, 저연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다보니, BM라이더로서 알아야 상식 같은걸 알았다는 즐거움이 있네요
모든 BMC회원들과 공유하려고 몇 일을 정리했네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제가 참고한 출처는 아래 적어둡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출처 : 다음 소사님의 car blog
이순수님 bmw모터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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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엔진소리님 기분이 좋은시니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해요
공부좀 햇네 수고햇어
좋은자료~입니다...^^
진심으로...감사합니다....((꾸벅))
멋진 자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