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파노라마 "회상" ▣▣▣ (제2부;군 복무편 - 령관시절;81.1.1~89.1.31) <2훈 지구병원에서 등록과장,본부중대장, 인행과장등을 엮임한후 필자는>
<2훈 지구병원 조회>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盡人事待天命했기에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인행과장으로서 성실히 근무하여 오던중 년말 11월24일 육본 계획인사에 의거 전방 야전군 제3군 보병 제25사 의근대 보급통재장교로 명령이 났다 필자는 진예자로 36일이면 소령으로 계급장을 다는데 진예자를 대위(A/S)자리로 명령내다니? 곧 진급을 하니 소령자리로 자리로 명령을 내 주는것이 인사원칙인데 참으로 황당하네요 a/s 자리로 명령을 내는것이 순리일진대 실무자들의 심사를 알수없다요 인사 원칙대로 해주겠지 하고 등한시 한 본인 책임도 있지요
또 다시 만리 장성을 넘어야 하나? 하지만 그것은 필자의 생각이지 실무자들의 생각은 다르다는걸 깨달았지요 안일한 자신이 아차싶다요 이것이 인사 아니던가요? 필자의 사고 방식이 강직하고 고지식하고 불의는 더 못 참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더더욱 타협 안하는 고집 센 성격이다 보니 그럴밖에요 그래서 원리원칙을 좋와하지요 아무튼 이런 상황을 감안하고 전속지로 부임합니다
▣ 야전군 3군예하 보병 제25사 의근대 ▣ (기간;1980.11.24 ~81.4.19/약 5개월)
25사 전속 36일 후
<1981년 1월1일부로 진급신고를 하는 필자와 같은 사단직할대 진급자들>
보병 제25사 전입후 의근대 보급통제장교로 보직 부임초 의근대 근무 분위기를 파악하니 자대 분위기는 좋은데 의무근무대는 여러모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요(의근대장/봉중령) 근무군기 출근체크,복장 및 두발검사등을 이유로 수시로 참모 참모장이 방문 군기를 잡고 있었으며 구급차 비싱훈련,간부 번개통신등을 수시로 각 참모들과 참모장이 수시로 체크 한다네요 이런 젠장할! 어딜가나 힘 없는 의무병과를 왜 이렇게 들들 볷아대나? 소위 쥐어짜야 국물이 나오니 그런가 봄니다 한심하도군요 그러나 의무대 신세를 진 간부들은 안그렇지요
이곳에서의 첫겨울은 2018년도 겨울처럼 영하23도를 넘나드는 강추위였었고 필자는 가족과 같이 신산리에서 병참대 선임하사집에서 월세로 살았는데 판자집에 루핑을 얻은 지붕에 방에는 연탄난로를 피웠는데도 방 천정에는 성애와 고드름이 매달려 있고 2살짜리 딸을 내복,츄리닝,털모자에 이불을 씌워 재워가며 살았던 아주 힘들었던 시절이 였지요
제2훈련소 지구병원에서 근무할시는 서정쇄신 차원에 훈련소 부정부패 척결바람이 불어 인사,군수,비리등등 폭풍을 겪고 올라 왔는데 이곳에서는 태평하게도 부대군수품들이 민간지역에서 눈에 자주 보이는걸 봐서 이곳은 군수품으로 문제가 다분히 생길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요
그 실예로 눈에 띄이는건 셋집에서 부대에서 나온듯한 통닭을 돼지나 개밥으로 주고 있었으며 몇집걸러 모 연대 주임이라는 집에는 사병들이 군용트럭을 문앞에 대고 군연탄을 하역하고 있다요 이것만 봐도 알수있다요 하급 간부들이 이러할진데 부대 지휘관이나 윗 사람들에게 문제가 내재 돼 있지요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요 인접사단에서 3종계가 탈영을 했다 합니다 얼마후 헌병대에 잡혔는데 연료를 팔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단장님이 아시고 우리도 예방차원에서 예하대 1.3종을 점검을 해보라는 지시에 점검관을 편성,교육을 하고 참모장께 신고를 한후 1개 연대를 대대단위까지 점검을 하는것으로 하고 나가는데 필자는 애초에 계획이 없었는데 다른 점검관 대신으로 필자가 나가게 됐다요
필자는 부여받은 연대로 나가서 창고봉인부터 하고 사전교육은 안받았지만 전날 1.3종계에게 정산법을 배워서 나갔고 익일 해 연대 도착 군수과에서 군수주임으로 부터 브리핑을 받고 써비스로 칡차 한잔이 나와서 얻어 마시고 창고로 가서 일보와 소모량을 계산하고 실측을 해보니 이상이 없었다요 이렇게 1주일을 대대단위까지 하니 이상이 없어 보고서를 기록 서명하고 참모장께 이상이 없다고 보고한후 의근대로 와서 근무한지 한달여 쯤 있자니 그 연대 1.3종계 모 하사가 탈영을 했다고 합니다
1주일후 1종계는 헌병대가 아닌 보안대에 잡혀 진술했는데 몇년전부터 1종을 누적하여 팔아 먹은것,이런 사실을 보안대는 조사하여 바로 군으로 보고했고 사단은 사후 약방처방식으로 그 연대 군수주임을 관리책임으로 그리고 최근점검을 나갔던 필자를 사전점검시 미 발견했다 하여 필자에게 징계를 주려 참모장실에서 호출이 왔다요 징계위원회를 집행하는데 참모장이(육사 #19 한 대령)심사위원들에게 의도적으로 필자를 싸 잡아 처벌해야 한다며 선동독려하고 있더라구요
필자는 해명과정에서 원리원칙대로 점검했으며 그 당시 1종은 일보와 현품이 일치했으며 3종도 카운트와 자로 재어 드럼 잔유 류량까지 정확히 체크했기 때문에 이상이 없다고 보고 했으니 저는 책임이 없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요 하여 종국에는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았지요 그러면서도 악랄한 참모장에게 한을 품은건 [저놈이 구명운동 할지 모르니 어디 못가게 감시하라]는 소리에 한을 심고 이 지옥같은 부대에서 빠져나가야 "항고"도 할수있다고 판단 당시 군 의무참모를 찾아가 호소하여 청평병원으로 명령을 내줘서 전속후 청평병원에서 서류를 구비하고 작성하여 3군으로 항고서를 즉시 올렸지요
<강감찬장군이 번개불을 손으로 잡고있는 심정>
그런후 2달후 군 사령부에서 심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참석하여 사실대로 진술하였고 심의 결과 군에서는 이미나 그 배경원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사단을 질책하며 최종 심의결과 필자에게 "원심취소" 라는 판정처분을 내렸지요 추후 하달된 문서 판정란에 "원심취소"란 글이 확인되자 필자는 가슴에 맺힌 한의 응어리가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지요 그간 억울해서 잠도 아니왔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 왔었지요 후에 보란듯이 25사를 찾아가 사단참모들을 뵈며 인사를 하니 문제연대에 1종부족 문제를 사단참모장,군수처장도 알고 있어서 대책을 숙의중인데 사단장님이 급작히 지시가 떨어지니 그 연대에게는 현재고를 차용해서라도 맞추라 하고 대신 원래 점검관은 돌려 빼고 잘 모르는 의근대 박 소령을 보내 어물적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필자는 함정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필자앞에 펼쳐지는건 아무래도 전생에 아님 조상님의 업보인가 합니다 왜 이런 시련과 고통울 주시는지 보이지 않는 게시가 보이는데 아주 죽게는 안하시더라구요 운명이
그러던 차제에 필자가 점검했던 그 연대 1 종계 모 하사가 탈영을 하는 바람에 들통이 난 것이지요 1종계가 탈영한것은 필자가 접검을 마친후 자체 선결책을 모색하려는 과정에서 감당이 안되니 부담을 느끼고 탈영을 한것 같슴니다 하여 25사 1종사건의 폭풍우를 겪은 뒤 청평병원으로 온 필자는 안정적인 자세로 근무를 했지요만 희한한 경험을 겪어봤다요 누구든 억울한 누명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일부인은 인생하직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나 봄니다
<강추위를 겪은 후 피어나는 매화처럼 봄은 반드시 찾아오지요>
▶ 25사 교훈 ◀
1.잘못된 상부의 계획인사
2.사전에 문제점을 즉각 처리못한 사단지휘부
3.때로는 융통성 있게 처세를 하여야 함
※25사의 추억은 하두 삭막한 지역이고 5개월간이라 추억의 사진이 1매도 없었다요
▣ 야전군 3군예하 2군지사 59청평병원 ▣ (기간; 81.4.20 ~ 82.6.18/14개월)
제3군사령부 인사명령에 의하여
제2군지사 예하 제 59 청평병원으로 전속된 필자는
청평병원에서 군수과장을 보직받고 근무하니 군수과에 의무보급관이 바로 3사 2기 고참대위로 필자의 선배님이시더군요 껄끄럽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공사를 명확히 하여 어려움 없이 절차탁마하며 잼있게 잘 지냈지요
청평병원으로 와서 무엇보다 가장 기뻤던 점은 25사 징계가 원심취소로 된 상태에서 마음이 홀가분 편하였고 향후 진급에도 미련이 없었고 소망은 소령 계급정년까지 근무하다 전역하는것이 유일한 꿈이였지요 어차피 보병에서 의정으로 전과될때 이미나 "청룡의 꿈" 은 사라졌으니까요 그중에도 기뻤던 사항은 전방 후송병원 단위에 관사가 건립되어 필자도 민간 셋방신세를 면하고 관사로 입주하여 처음으로 군 혜택을 보게 된 것이지요 상부에 감사드림니다
<청평관사에서 가족과>
관사는 총 6동으로 1동을 반으로 나눠 2세대가 살도록 양분되어 있었으며 한세대 면적이 15평정도 됐나싶습니다
딸은 논산병원에서 낳았고 아들은 이곳 청평병원 수술실에서 낳았지요 군 생활중 전후방으로 오고가니 아이들 출생지가 각각 다르다요 군생활중 교육기간쩨외하고 19년동안 17회나 이사 다녔다요
청평병원에 근무하는 행정부 의정소령 참모 4명은 부대짚차가 없어 각자 개인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고 시내도 출타도 했지요 또 다른이유로는 전임 행정부장 후임으로 학훈#3기 행정부장이 부임했는데 2일이 멀다하고 회식을 하는데 일과후엔 무조건 자기짚차에 타라하며 1차, 2차를 다니는 검니다 그때만 해도 볼펜만 있으면 외상이 통용되었고 월급때 공제하여 갚으니 술집에서는 항상 잘 줬지요 어느때는 월15회 회식비 건수를 낼라니 살림에 지장이 말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원망의 욕을 먹기도 했었지요 어느정도라야지요 한때는 당신월급을 사모님께 경리장교가 가져다 드리니 그 사모님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시더람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처세하는 상급자가 정말 한많은 불만이 생기더라구요 술 좋와하는 필자도 오죽하면 이런일 가지고 입에 올리겟습니까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너무 좋와하는 아들이 태워달라구 떼를 쓰다요 지금은 결혼도 하였고 38세 성년이 되었지요>
참모들도 괴로워 빠져나가려고 1차만 하고 36계 일환으로 오토바이 중고를 구입 4과장이 타고 도망 다녔는데 그리해도 소용이 없다요 관사로 쳐들어 와서 문을 두드리는데야 도리가 없었다요 별아별 상사를 다 만났는데 추후 후방에서 얼마후 소문에 들으니 간암으로 저승으로 먼저 가셨다네요 모두 다 인과응보로소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왕생극락하시기를~이 세상 중생들의 현세는 티끌이로소이다
<관사에서 집들이 초대에 찾아주신 김점용 병원장님과 김영대 행정부장님>
또 한가지 사항은 행정부장이 자신의 진급을 위하여 군,2군지사 참모들을 청평유원지 청평으로 초빙하여 청평땜 위 나아아가라 호텔에다 숙소를 잡고 접대하는데 어느때는 여러팀이 밤문하면 참모들이 한곳씩 맡아서 접대하게 하는일도 비일비재 하였으니 이런 상사가 진급을 하면 정상적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겠는가요 하지만 이건 아랫사람의 생존문제요 인권 문제인지라 다 지난 과거일이지만 감히 잘못된 부분에 대해 감히 지적하는 바입니다 36년 야그이지만 지금은 이런 사례가 없겠지요
청평관사 집들이에 여러가지 의미로 감사 만찬을 드렸는바 첫째는 25사 사건에 대해 군으로 항고서를 제출할시 편의를 도모 해 주신 병원장님과 두째는 필자에게 군 생활에 셋방살이를 면하게 해 주시어 관사입주의 영광과 혜택을 주신 당시 군 의무참모님과 김 병원장님께 감사의 건배 술잔을 올렸지요
<개원식날 "보문정사" 법당앞에서 신자들과>
그리고 필자는 영내에 안 쓰는 콘세트 막사를 2군지 사령관님께 보고하여 자재일부를 지원받아 환자들 종교활동에 기여코자 법당를 조성 "보문정사"라 명명 개원했지요 법회 주관은 수기사 법사님이 지원을 해주셨고요 이곳도 필자가 불교신자 회장이였지요 이전에는 일반 사찰 근교 "대성사"로 다녔었어요
<간호숙소앞 스케이트장에서 경기에 대비 연습하는 필자>
군수과장을 14개월을 역임한후에 경리장교를 둔 관리과장으로 보직을 옮겨 1년 근무한후 계획인사에 의거 2군사령부 에하 제3군지단 의무근무대장으로 전속 보임하였지요 아는분이 육본 인운감실 실무자인데도 또 2군이네요
▣ 제2군 사령부 예하 제3군수지원단 의근대장 ▣ (기간;83.6.8 ~84..9.16/15개월)
<제3군지단 의근대장>
이번에도 국방부는 꿈도 못꾸고 2군예하 3군지단 의무근무대장으로 전속 보직을 받았습니다
<제3군수지원단 의무근무대장 이취임식에 훈시하는 배 군지단장님>
의근대장 이취임식장 사열대에서 휘장과 견장을 달아주는 군지단장님
<견장을 달아주는 좌;성덕경 전 의근대장,우;군지단장
<이취임식후 다과회>
이취임식후 간단한 다과회를 직할대장들과 참모들에게 베풀었으며 의근대 임무는 단내 의무지원으로 방역과 식검지원 등이며 사병도 20명에 불과 합니다 조직은 근무대 본부,치과반,치료반,방역반,식검반등으로 조직이 편성되어 있다요
<2군무열대 2군 사령관 김홍안 대장 초도방문시 기념촬영>
<의근대 창설기념일 기념촬영>
위는 군 보안과장 방문시 기념촬영으로 군지단장은 사진찍기를 좋와하지요 의근대장실이 바로 옆 건물이라 누구든 방문하면 단장님이 같이 사진찍자고 한다요 그래서 군 생활중 이곳 사진이 제일 많다요
<대민지원후 치료반장 문 대위와 치과반장 기 중위>
직할대중 가장 친근하게 지냈었던 소령급 수근대장과 인쇄소장이지요 다들 고참이라예 영현중대는 대위이고 경리, 병기,병참대장 및 재고통제과장은 중령급이라요
위 사진은 충남적십자 혈액원과 협조하여 군지단 장병들의 헌혈행사 모습 작은부대지만 아기자기하게 근무를 소신껏 열심히 수행하였던 곳인데 직할대 방역과 위생점검 필요시 대민지원등도 수행하였지요
이곳에서도 전임 군지단장 배 대령은 통솔에 불합리한점이 많았습니다 1.그 어느때 바로 옆 단장실로 호출하여 내가 미군부대 2탄약창에 알아보니 암에방약 비타민 B-6를 사오려는데 의근대장이 협조 해 주라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래 필자가 직접 사 드려야 할판 인 처지인지라 대답을 한바 주임상사가 직접 가서 사왔다 하더라구요
<수의병과장 방문기념(중앙)우측;식검반장은 차후 대령으로 진급되었단 소문을 들었다요>
<의근대 장병>
2.두번째는 일요일날 서대전역앞 관사에서 모처럼 쉬고 있는데 낮 12시에 군지단장이 번개통신으로 호출하는 것이였습니다 빨리 부대로 들어오라는 것 하여 긴급하게 택시타고 들어갔더니 나더러 부대내부에 교회에 나오라는 것이였어요 하여 앗살하게 대답했지요 저는 집안이 대대로 불교 집안이며 세째 형님이 스님이시고 논산병원 법륜정사,청평병원에 보문정사 법당도 불심으로 조성한 사람이니 더 이상 권하지 마십시요 하고 물러 나왔다요
<의근대 간부>
3.세번째는 군지단 동원훈련을 하는데 예비군 동원인력이 한 600여명 되더군요 1주일 훈련기간중 의무근무대장더러 훈련중 예비군 대대장을 하라는 것이였어요 완편에 증원되는 병력은 각 근무대별로 분류되지만 평시 훈련원칙은 본부대장이 담당하는거 아니냐니까 그때는그때이고 지금은 평시이니 하라는 대로 하라는 검니다 한마디로 종교땀시 쾌심죄로 별수없이 교육과 훈련 내무생활등등을 인솔 감독하며 대과없이 잘 끝냈다요 또한 기간중 예비군 훈련중 당시 정부의 가족계획정책 일환으로 정관수술도 유도하여 훈련도 면제해주는 정책도 솔선수범한다고 필자도 수술하였지요 지금은 결혼도 안하고 자녀도 너무 안 낳아 국가적 문제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2군사령관님 순시기념>
4.배 단장은 의근대장을 직할대 간부교육 (장교/하사관)을 총괄하여 교육장교로 임명하며 편제화기 및 사격술 교관으로 임명하여 교육하라 하여 전투력측정에 대비하라는 부가 임무를 주네요 하여 주변 미군 부대로 가서 사격도 열시미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의근대장인 내가 전투병과도 아니고 보병장교란 말인가? 아무튼 간에 하라면 하는것이 군인의 상하복 계통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두말없이 수행했지요 내 병과에서 근무를 안 하면 이런 수모를 당한다요 이러니 보병에서 의정으로 전과 된것이 서럽지 않은가요?
어느덧 그 다음해 단장님이 새로 오셨다 새로오신 단장님 이치우 대령님은 권위있고 합리적인 지휘관이라 제 마음속으로 존경했다요 하여 충성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했지요 인품이 참으로 훌륭하시더이다 추후에 장군으로 승진하셨다 합니다 전 단장은 제 사무실에 와서 걸핏하면 들려서 자기가 진급되면 금으로 왕별을 만들어 달 거라며 망발을 해댓지요 진급되면 저더러 금으로 왕별을 해달라는것인지 왜 제게 와서 그런 망발을 늘어 대는지 결국 그 분은 진급이 안됐더라구요 사진은 이치우 단장님과 의근대 사병 전역식기념 인증이라요
<의근대 사병전역 환송식>
<사진은 군지단 참모들과 근무대장의 부부동반 사진>
가족보안 및 안보교육차 방문한 가족과 기념사진으로 중앙 3군지 단장님 본부대장,인행과장,정작과장,재고통제과장,병기대장, 경리과장,의근대장등 부부동반 기념촬영 우측이 필자와 가족 딸과 아들(병참대장은 출장중)
<군지단 회식시 필자가족과 식검반장 김판조 소령>
<무대에서 한 곡조는 어딜가나 꼭 부르지요>
군지단에서 가장 좋왔던 점은 바쁘다며 서로 안가려는 육군장교 산업시찰 견학단에 단장님이 모범장교로 필자를 추천 해 주셔서 2박3일간 여러곳을 관광하며 잘다녀 왔다요
<육군장교 견학단 중앙고속>
불국사 천마총 경주기념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경주시 관광홍보과 미스 리 가이드와 인증한바 이 아가씨는 얼짱,몸쟝에 말도 잘하고 재치있는 처녀라 하여 펜팔도 보냈는데 답장은 함흥차사였다요 ㅋㅋㅋ
<진주성앞> <진주 촉석루에 앉아 남강을 바라보며>
<진주남강 의암바위에서 동기들과>
이렇게 군지단 의근대장을 15개월간 대과없이 마치고 상부에다 필자는 의정근무 17년에 국방부 병원근무는 해보지도 못하고 전역한다고 나팔을 불었더니 그 소리가 실무자 귀에 들어 갔는지 국군대전병원으로 명령을 내주더이다 울어야 젖을 준다요
▣ 국방부 의무사 예하 국군대전병원 ▣ (기간;84. 8.17 ~89.1. 31)
제3군지단 의근대장을 무사히 마치고 의무병과 국방병원이 의무 T.O가 제일 많지요 군 생활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국군대전병원으로 전속 기획관리실장으로 보직 근무하기 시작하였지요 이곳으로 전입을 오면 처음엔 무조건 기관실장을 기본적으로 경유하는 보직이라 하더군요
이곳에 아파트 입주는 후배장교가 입주하려고 해서 원칙을 따져 필자가 입주하였고요 어느때 간이회식을 장교식당앞 공터에서 진행하는데 필자에게 노래 한곡 하라 하여 가족과 함께 "찔레꽃"노래를 부름니다
기획관리실장으로서 국방부 군진의학 의정분과에 국군대전병원이 간염 전문병원 지정에 따른 의정분과 문제분야를 연구하여 발표하는 필자
<국방부 군진의학장에서 대전병원 의정분과 문제점을 발표하는 필자>
85년 11월 15일 기획관리실장을 마치고 85년 11월 16일 등록처장 업무를 수행하며 간염병원으로 주축을 이루는 병실관리등등
환자관리,병실관리,안전관리 및 웅변대회등을 행사시 마다 심사하는 각부처 심사위원들 그리고 매월 의무심사,보훈심사 간사등 대과없이 등록처장을 대과없이 마치고 보니 내 군생활에 1 년밖에 남지않은 정년안에 "진인사대천명"하면 안될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진급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근무 해 보겠다며 다짐하며 열시미 근무했지요 비록 OAC성적이 B학점에 석차가 하위이고 육대 특별과정 성적도 중간이라 학교성적은 안 좋지만 근무평정과 가을에 진급서열만 잘 받으면 아주 희망이 없는건 아니잖은가? 하고 욕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하여 인사교육처장을 자원하여 보직을 받았다
1986년 11월 27일 인사교육처장으로 보직 변경후 1987년 4월 5일 식목일날 행사 계획 브리핑을 한후 계획대로 식목행사를 무난히 시행했다
<군인가족 보안교육>
<1988년 1월 병원장 이취임식>
의무사령관 임석하 국군대전병원장 이 취임식 식장에서 이임자 김점용 대령과,후임자 홍태의 대령의 병원장 이취임식 행사 M/C 필자
<의무사령관님 방문기념>
의정병과로 전과되어 내 병과에서 근무하니 의붓자식 취급받는건 없어서 마음은 푸근한데 진급을 하려면 같은 병과끼리 경쟁은 치열한듯 하다요
<국군대전병원 홍태의 병원장외 장교일동>
필자가 의욕을 가지고 인교처장을 잘 수행하면서 8월이 되자 그전부터 방통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출석강의를 위하여 유성에 있는 충남대학교로 출석강의를 1주일간 나갔는바 가기전에 당해 인사근무평정표를 1차로 행정부장에게 받아 병원장에게 제출하고 나면 사무관이 육본에 제출토록 협의되어 있었는바 출석강의 다녀와서 사무관에게 결과를 물어 보니 대답을 아니한다 공교롭게 그 당시 행정부장이 일보상 둘이다 하나는 전역을 2달 남긴 김중령이고 후임은 양 중령이다
<행정부 간부일동>
그런데 전임부장은 서울집에서 출근을 안하는 상태이고 후임 양 부장은 근무를 하고 있으니 필자는 후임 양부장에게 1차 인사고과표를 받아서 병원장에게 제출하고 방통대 출강을 갔었는데 지금 사무관에게 확인을 해보니 일체 함구하고 말을 않는다 아차! 이거 뭐가 잘못됐다 싶었다 하두 답답하여 묵언으로 도표를 그려 문의하니 그렇다 한다 뒤 바뀌어 제출 된 것이다 이럴수가~ 필자가 인사 실무자로 잡고 있으니까 라이벌 학훈출신이 행정부장,병원장과 공모하여 재 작성하고 제출해 버린 것이다
<최정수 의무사령관님 방문기념>
행정부장, 병원장에게 가가 확인해보니 오리발이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평가결과를 애기해 줄 의무가 없다는 것 그당시 육본인운감실엔 선배가 근무했었는데 전화로 진술하니 알았다며 내일 올라오라 하더니 익일 가기전에 전화를 하니 그 선배 완전히 딴소리를 한다요 [아이고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구나]판단하고 부실고과로 문제화 하려다 그냥 팔자요 운명이려니 하고 포기했다요 그래 운명의 신은 꿈꾸는 청룡에게 팔자려니하라 하며 청룡의 꿈은 이무기로 전락하여 수원 광교 저수지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해 제 대신 다른 라이벌 대상자가 진급을 했지요
<수원 광교저수지>
그런후 1988년 10월 1일
병원 지휘부에서는 필자에게 미안했던지 필자에게 보국포장을 수여 한다요 별일이라~
<보국포장을 수여하는 병원장>
아! 참으로 가증스럽고 야속하네요 치열한 방법을 동원해서그렇게 처리하고 낮 간지럽게 뻔하 알면서 진급 대신 보국포장으로 보상 하나요?몇달만 있으면 전역 할 필자에게 보국포장을 무엇하러 주냐고요 앞날이 창창한 후배장교들에게 수여하시지
인사고과표는 당해년도 평가가 중요합니다 평정율 15%~25% 상을 받아야 하고 그것이 늦가을 진급서열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해 진급여부가 좌우되지요 그 만큼 필자가 능력이 없는 것이지요 아니 복이 없는건가요?
- "자은사" 대전병원 법당을 개원하다 -
89년 12월말부 전역인데
남은 기간에 근무에 충실하면서 마지막으로 2번째 등록처장을 하면서 자은사 법당을 개원했지요
병원건물중 미사용 지하실을 보수하여 법당을 만들어 환자 종교활동을 도모한바 대한불교조계종에서,공군사관교 법사,32사 법사,주변사찰 대원사 주지스님,홍 태의 병원장 및 여러 내외귀빈 관계자들이 식에 참석하시어 성황리에 개원 태이프를 절단하였습니다
필자는 군 생활중 불교회장을 엮임하면서 법당이 없는 2훈지구병원-법륜정사,청평병원-보문정사 국군대전병원 -자은사 등 이렇게 3개 법당을 별도 예산없이 미사용 기존건물을 보수하여 신도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불심을 가지고 3개 병원법당을 개원하였다요
<자은사 법회 - 32사 법사님>
<자은사 개원식후 간부 불교신자들과>
부처님 오신 날 영내 연등행렬 행사에 운동장을 돌며 정근을 선도하는 필자
<당직근무중 순찰을 도는데 첫눈이 내리자 첫눈 마중을 나온 백의 천사 신임 간호장교들과 한컷도 추억이리라>
<전역을 앞두고 가족사진;88년 12월>
이리하여 청룡의 꿈을 군 생활의 결과로 분석 해 보면
청룡은 이무기로 변하여 효의 고장 화성 장안지역으로 추락 둥지를 틀은바
1.병과가 보병→의정으로 바귐으로 말미암아 군 생활 희망이 절망적이 였다는점 즉 보병체질을 의정으로 적응하여 근무하자니 성격이 안 맞아 마지못해 근무했던것
<문 교장님은 서울동작동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제2사관학교 중,구대장님>
<5중대(오정회)제2구대장 김자진님 우측필자>
2.군에서 출세하려면 원칙을 알고 근무시 적용해야 하나 인사,교육 그리고 빽(金米)도 적용하여 처세를 하여야 하는데 이에 적응을 못하였다는 점
<1989년 1월 국군수도병원으로 ENT병실>
그리하여 진급도 낙하되었고 전역일자도 연금을 위한 근무기간이 연장된다 하더니 뻥이였고 하여 1989년 1월말일부로 전역하게 되어 전역을 앞두고 군에서 사격으로 얻은 兩耳 천공치료와 이식을 위하여 국군대전병원에서 국군수도병원으로(화곡동)전원하여 89년 6월말까지 6개월간 치료 후 퇴원한바 89.1.말부 전역인데
계속 치료를 받을수 있었던것은 공상인 경우는 6개월까지 육규에 치료를 받을수 있겠기에 혜택을 받은 셈이지요 또한 입원기간 동안 급료가 단절되므로 집 사람에게 호구지책으로 수원 우만동에서 자그마한 슈퍼를 인수 생업을 도모하라하고 입원 6개월후 퇴원 같이 운영하다가 백마의무중대장 시절 베풀었던 작은 덕행이 씨앗이 되어 한 병사의 보은성 도움으로 BR그룹 계열사에 특채로 취업을 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다요 선업은 생계로 이어지네요
3.그리고 나 자신의 자질도 부족하였고 고지식한 원리원칙주의자로 상사와 대립하니 잘 될리가 없지않은가? 아둔하지만 이와같이 분석하고 필자의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내인생의 파노라마로 피력하였으나 이는 단순한 의견일뿐이며 관계분들과는 아무런 의도 한도 없습니다 그리 아시고 인생 말년 고희에 "추억을 회상을 할뿐입니다 그저 재미로 애독하여 허옵소서
<수원화성 화성장대/서장대>
경찰형님이 근무하시는 효의 고장 수원으로 둥지를 틀었답니다
<화성행궁>
<화산 안녕동 융능에 장헌황제께(사도세자)문안 인사를 올리고>
<수원 화성행궁 신풍루에서 단란한 가족>
이상 군 복무편을 마치고 다음은 제3부 직장 생활편으로 이어 짐니다
배경음악을 엔카를 첨부한건 필자의 심정을 음률로 표현하여 그러하오니 양지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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