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의 마음에 대하여
1. 로또 한 장의 꿈
어느 날 와이프가 남편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이며 말했다.
"당신은 내게 로또 같은 사람이에요..."
"내가? 정말??"
"응~ 하나도 안 맞아...."
로또는 행운을 말한다. 우리는 그 기대감으로 로또를 산다. 하지만 번번이 꽝이다. 확률로 보아서도 당연한 이치이고 기적에 가까운 로또 당첨인데 그래도 우리는 로또를 산다. 나부터도 꿈자리가 좋다 싶으면 구미가 당기는 게 로또다. 아예 좋은 꿈에 대한 각설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이미 당첨이 된 사람들의 각설 모음이 아닌가 싶다. 여러분들도 이 중에 하나만 꿈자리에 떠도 반은 로또가 된 거나 다름없다.
"* 대통령이나 고위 관직자를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한다면, * 과녁을 향해 쏜 화살이 적중되면 * 산에서 산삼을 캐거나 산삼을 본다면 * 돼지 떼가 집안으로 들어오거나 품에 안긴다면 * 집이 홀라당 불에 다 타버린다면 * 조상님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타나 돈을 주는 꿈을 꾼다면 *대변이 몸에 붙어 씻으려고 해도 한없이 묻는 꿈이라면 *복권을 구입했는데 번호가 전혀 없거나 1.5.13.15수를 보면 * 수많은 군중들에게 큰소리로 연설 하는 꿈이라면 *산이나 밭에서 흰 백사를 잡는다면 * 구렁이에게 칭칭 감기어 숨 막히는 꿈이라면......”
하지만 나는 꿈 해몽을 믿고 사봤지만 허사였다. 아무에게나 주는 행운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왜 생기는지 모르겠다. 로또 인생역전이 바로 그 동기부여 원천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로또가 인생을 망쳤다는 사례도 종종 소개되고 있다. 로또가 성실한 사람을 바꾸고 사행심으로 빗나가더니 이혼을 하고 결국에는 쪽박을 차고 말았다는 그런 기사를 볼 때 불행해진 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적지 않은 위안이 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남 잘 되면 괜스레 부럽다 못해 배 아픈 기질은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의 행보다.
며칠 전 나는 로또를 또 샀다. 일부러 멀리 동네를 돌아 찾은 그곳이다. 우선 꿈이 그럴 듯 했고 바로 이곳은 1등 당첨이 두 번이나 나온 곳이라고 플래카드도 힘차게 펄럭이는 유명한 명당인 곳이라 사뭇 기대가 크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집중되는 시간이 있다. 집이든 술집이든 지하철을 타든 모두 골몰하는 한 순간, 그 응집력은 하늘도 가히 두 쪽을 낼 기세다. “이번에 정말 좋은 꿈을 꿨어, 믿으라니까...왠지 이번엔 이번엔... 제발 되라.... 아니...꼭!!... 에이! 이번에도...엿 먹었네...
늘 반복되는 허탕,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실로 로또 판매점은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어려운 서민. 플랜트 현장에서 용접공으로 40여 년을 일한 김 모 씨, 내가 잘 아는 그도 로또를 산다. 그것도 자그만치 매주 10만 원씩 들여서. 젊어서 번 돈은 관리를 못해 다 날리고 이제 현장에서도 나이가 많아 설 자리가 없어지니 불안한 마음에 로또에 매달린다.
그는 “로또는 내가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마치 숨겨둔 비상구인 양 그간 헛된 꿈에 지쳐서 인지 눈빛은 흐렸지만 그래도 각오라도 다지는 양 또박 하게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의 복권 판매실적을 보면 2012년 3조 1854억 원, 2015년 3조 5551억 원으로 증가했다. 2016년에는 상반기 복권 판매량이 1조 8925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는 세상이 점점 더 불안해진다는 반증으로 작용을 하고도 있다.
자신의 인생 대박을 로또로 이루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그만큼 어려운 현실을 대변하고도 있는 것이다. 돈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압박의 주원인이다. 어떻게든 큰돈을 모으고 싶은 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어찌 큰돈이 쉽게 수중에 들어올 수가 있단 말인가. 정상적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비정상적이거나 속고 속이며 번 돈이라 한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를 속이고, 그래서 괴로워하며 짧다면 짧은 인생을 자신을 스스로 잃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힘들어도 올바른 마음을 지키며 사랑과 신뢰를 쌓으며 자신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을 로또 한 장에 결코 기댈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노력과 성실의 토대위에 세워진 인생 이력서가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자꾸 약해지는 마음을 무어라 할 텐가. 참으로 얄궂은 내 마음이고 야속한 세상살이다.
2. 그대 도를 아는가.
올해 ‘성실하게 살자.’ 하는 데 작심삼일인가. 마음이 흔들린다. 새해 벽두부터 로또 복권에 대한 기사다. “아내 덕분에 새해 선물로 18억 원을 받게 됐다. 로또를 사준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어느 아저씨가 소감을 전했다. 그 기사를 보자 마누라 잘 두었네... 부럽기도 하고 구미가 다시 당긴다. 그런 나는 지난해 로또에 대한 다른 묘한 기사를 마주하고 한 동안 멍해진 적이 있다. 로또 같은 마음이 바로 이런 거다 싶고 내가 로또를 탄 양 흐뭇하고 설레었다.
< 2016년 12월 31일 로또 735회 추첨에서 1등에 당첨된 50대 남성 이종진(가명)씨가 모 로또 포털 사이트를 통해 1등 당첨용지 사진과 함께 ‘새해 선물로 18억을 받았다’며 당첨소감을 전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NH농협은행 본점에서 로또 1등 당첨금을 수령한 이씨는 통장에 세금 33%(소득세+지방소득세)를 공제한 실 수령액 12억 여 원이 입금된 사진을 공개하며 ‘당첨금 전부를 딸과 사위에게 줬다’고 밝혔다.
이씨는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이게 진짜 내 돈이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 실감하지 못했다”며 “통장에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실감이 나더라.”고 전했다. 이어 당첨금 전부를 딸과 사위에게 준 사실에 대해 “왜 그랬느냐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우리 부부가 결정한 가장 행복한 방법이다. 그저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걸 보는 것이 우리 부부의 행복이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살아생전 자식들에게 넉넉히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나의 당첨기운을 받아 새해에 많은 분들이 로또 1등에 당첨되기를 기원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로 통 큰 장인어른이 아닐 수 없다. 돈 보다는 가족의 화목을 우선시하는 가장의 현명한 선택이라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이 바로 느껴진다. 로또라는 대박의 돈이지만 자식사랑이 보다 더 깊숙이 자리한다. 이 씨라는 분은 분명 삶의 고수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그에게 놀란 게 또 있다. 사위에게 주는 돈은 증여에 해당한다. 당첨금에서 일부는 어김없이 증여세로 나가야 한다.
그간 타인에게 당첨금을 나눠줄 때 발생하는 증여세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배우자인 경우 6억, 직계존속 및 직계비속은 3천 만 원 (만20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경우 1500만원), 기타 친족은 5백 만 원까지 증여재산에 대한 공제를 허용하였는데 2014년 이후에는 새로운 세법 개정안에 의해 직계존속 및 직계비속은 5천만 원,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2000만원까지 증여재산에 대한 공제가 허용될 뿐 마땅히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러니까 로또 실 수령액은 또 줄어들어 사위에게 건네진다.
그럼에도 그가 사위에게 준다고 만 천하에 공표한 것, 과연 그가 실수 한 것일까. 아마 내가 이를 수령한다면 조금씩 몰래 찾아 표시 안 나게 건네주려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얕은 잔꾀마저 용납하지 않은 그는 요즘 세상에서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이런 바보 같은 성실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가 부럽기 그지없다. 대박의 현실을 단 며칠 만에 평소의 자신의 삶으로 되돌려 버린 그, 그는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평상심 속에서 행복이 주어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선택한 길은 삶의 征途다. 삶의 정도는 늘 하던 대로의 성실과 늘 지키는 대로의 질서로부터 나온다. 그대 도를 아는가. 연암은 연행 길에 올라 압록강을 건너며 이 말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道는 실로 어려운 삶의 길이다. 필시 연암도 과거를 등지고 현실에 부역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늘 다짐하던 말이 이 말이 아니었던가.
권위가 쇠락하고 명예도 몰락하는 현세에서 이를 실천하자고 말하는 것, 이를 지키자는 명분이 구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누가 제대로 알아나 주는가 말이다. 하지만 전락하는 모든 것들의 그림자에는 비양심이 있다. 항간에 나오는 로또 당첨 이후의 불행은 바로 성실과 질서의 문란으로부터 시작한다.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무엇때문인가. 바로 재벌들의 특혜나 뇌물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로 늘 시끄러운 세상이다.
바로 재벌들의 증여나 상속의 문제. 어떻게 세금을 제대로 안내고 증여를 해줄 것인가. 바로 탈세의 지름길을 두고 갖가지 묘수가 등장하고 대통령 이름까지 거들먹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중국도 경제가 커지고 돈 많은 재벌 2새 격인 자들의 문제가 심각해지니까 상속세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고 했다. 시진핑 당국이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상속세 도입을 검토하지만 공산당 간부 상당수가 부유층이어서 이에 대한 반발도 예상되기에 이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AFP)시진핑(習近平) 당국이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상속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산케이 신문이 25일 전했다.
신문은 중국이 이르면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법제화를 위한 절차에 들어갈 방침이라고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 마련된 초안에는 상속세 과세 대상을 부유층에 한정하고 있다. 상속세율은 15~30% 정도로 검토하고 있다. 광둥(廣東)성 선전 등 연안 도시 지역에서 시범 실시한 뒤 2022년 전국으로 확대 실시할 것으로 이 신문은 전망하였다.
알고 보면 역사적으로 민란이나 폭거는 바로 백성에게 걷는 세금에 있었다. 과도한 세금 부과 내지 세금의 불평등, 기원전 81년인 중국 전한(前漢) 소제(昭帝) 6년, 한나라 왕실에서는 일대 논전이 펼쳐졌다. 주제는 ‘국가의 전매사업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폐기할 것인가.’였다. 어사대부를 필두로 한 행정관료 측은 국가가 소금을 전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각 군국(郡國)에서 천거된 현량(賢良)과 문학(文學) 측은 철폐해야 한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바로 2700년 동안 연면(連綿)하게 이어져온 소금 전매 제를 중국정부는 2017년에 이르러 마침내 철폐했다.
우리에게도 담배 같은 전매제도가 지금도 있다. 백성은 굶주린 배를 쥐어짜며 세금을 냈고 국가는 세금을 걷어 통치를 한다. 우리가 말하는 혈세라는 게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닌가. 정치는 바로 어찌 얻고 나눌 것인지 끊임없이 추구하고 논하는 것이 주된 사유다. 가진 자의 횡행과 없는 자의 규환에 대하여 인류는 수천 년을 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견디며 살아왔다. 지겹지만 늘 일상에 존재하며 자신을 옥죄는 배경과도 같은 그물.
국가는 어찌 통치하는 것일까. 나는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는 정설을 확실히 믿는다. 식당에 놓인 지갑을 자신의 것이 아니면 절대 가져가지 않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권력층은 아무렇지 않게 부조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유럽의 신문들은 보도 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전통성과 정통성이 결여된 것 같은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왜 위로 올라갈수록 혼탁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얼마 전 또 재산 상속에 대한 아주 흐뭇한 뉴스를 보았다.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 오뚜기의 행보. 최근 오뚜기는 2016년 9월 별세한 창업주 고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오뚜기 주식 46만5543주(13.53%)가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상속됐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함 회장이 상속 받은 주식의 가치는 공시 당일 주가(종가·66만8000원)로 계산했을 때 3110억원 규모다. 주식 상속 후 함 회장은 오뚜기 지분 29.81%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는데 현행법 상 30억 이상의 상장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부과되는 세율(상속세)은 50%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함 회장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는 15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놀라운 일은 바로 이것이다. 함 회장이 1500억원에 육박하는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모두 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자행하는 것과는 180도 다른 태도에 “놀랍다”는 반응이 무성했다.
어쩌면 보통사람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준수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데 워낙 비정상적인 것들을 접하다보니 놀랍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오뚜기의 사례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해소에 상당한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는 평판이 쏟아지고 있다.
고 함태호 명예회장이 살아생전 남몰래 행했던 선행도 여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고 함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몸소 실천한 기업인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는 1992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무려 24년이 넘는 시간동안 심장병 어린이들을 꾸준히 후원해 온 사실이 알려져 주변을 훈훈하게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9월 함 회장의 장례식장에 후원을 받아 새 생명을 얻은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고 함 명예회장이 후원을 받은 아이들이 보낸 감사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줬다는 후문은 그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그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3일 전인 2016년 9월 9일 고 함 명예회장은 오뚜기 주식 10만5000주를 오뚜기 재단에 증여했다. 그는 앞서 2015년 11월에도 오뚜기 주식 3만주를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물론 재벌들도 사회복지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씨가 참 부럽고 고맙다. 그는 당시 주식 기부를 숨기려 했으나 주식 이동 움직임을 포착한 금감원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지 마라”는 고인의 뜻에도 불구하고 각종 선행들이 세상에 알려졌고, 결국 이는 후계자인 함 회장과 오뚜기 임·직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969년 풍림상사를 세운 그는 대한민국에 카레를 선보이며 ‘오뚜기’ 세 글자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 토마토케첩, 마요네즈, 식초를 선보이며 오뚜기를 국내 굴지의 식품업계 대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그는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해외 기업들로부터 국내 식품 시장을 굳건히 지켜낸 인물로 유명세를 탔다. 실제로 과거 미국 CPC인터내셔널, 하인즈사 등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과 맞붙었을 때에도 오뚜기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 기업들이 오뚜기에 밀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경쟁에서 패한 외국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그렇게 애써 가꾼 기업, 주식은 그만큼 의미가 깊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주식보다 더 큰 유산은 바로 살아생전 고인이 실천한 선행 그리고 기업으로서의 참된 도리와 올바른 길이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고 함태호 명예회장, 그리고 이 씨라는 로또 당첨자. 그들은 행복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돈의 정체를 무엇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다. 행복을 위해 로또를 산다지만 꿈은 꿈일 뿐 기대는 더 이상 하지 말자. 진정한 로또는 어쩌면 우리들 가슴속에 있다. 꿈은 자유지만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릴 자신이 없다면 무리한 기대는 금물이다 싶다. 그대 도를 아는가. 나는 그 말이 로또의 참뜻이라 여겨지며 요행을 바라는 마음 한 자락에 그 말이 진중하게 닿는다. 나는 갈 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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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7월27일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 자리에 참석한 함 회장은 다른 기업인들과는 다르게 유독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4대 그룹 외에 중견기업으로 유일하게 청와대 만찬 초청을 받은 오뚜기는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에서 모범적인 기업이라는 이유로 연일 화제가 됐다. 함 회장의 윤리경영 철학이 재계 전반에 걸쳐 화두로 떠오르는 등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문 대통령이 "함 회장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고 말을 건네자, 함 회장은 "대단히 송구하고, 굉장히 부답스럽지만 감사하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갓뚜기는 신을 뜻하는 갓(God)과 오뚜기의 합성어다. 비정규직 비율이 낮고, 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과 그의 장남 함 회장의 미담과 더불어 상속세 1500억원을 납부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탄생한 갓뚜기. "오뚜기 제품을 사자"며 오뚜기를 응원하는 여론이 생기는 등 현재 오뚜기는 '착한 기업'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청첩장을 펼치며
꽃무늬 그득한 하얀 청첩장, 초대의 글을 열 번도 더 들여다본다. 그간 초대를 받아만 왔는데 이번만은 다르다. 누군가를 초대해야 하는 입장에 선 나, 나로써 시작된 소사가 실로 수많은 세월이 흘러서 비로소 얻어낸 값진 산물이 아닌가. 삼 십여 년이란 긴 시간이 내게 준 그야말로 반짝이는 보석 같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인고의 세월 속에 한 가족은 비로소 어는 결실을 맞이하고 있다.
가족이란 의미로서의 꼭꼭 박힌 이름 석 자가 하얀 종이 안에 무려 세 개가 박혀 있다. 온전히 살아온 세월임을 하얀 글 종이 속 이름으로 새삼 실감한다. 아내는 나는 아들은 그렇게 세월을 오뚝하니 따사롭게 지켜온 보람으로 오늘에서야 큰 결실을 이룬다. 한 편에는 성 씨 다른 이름 석 자 셋이 또 또박또박 적혀있다. 다사다난한 세월 속 그렇게 두 가정이 온전한 가정으로 살아왔으니 그저 달고 고맙기만 한 노릇이다.
무릇 세상사는 인연이란 속뜻을 번번이 흐트러뜨리며 아쉬움은 남겨진 자의 몫으로 놔둔 채 건승해왔음이다. 사실 만남의 인연은 헤어짐을 기약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약 없는 헤어짐은 다분히 세상 탓이고 그로 더욱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싫든 좋든 만나고 헤어지며 한 평생을 산다. 그 뭇사람들 인연의 위중함을 아는지 남녀를 맺는 어느 인연에 대해선 천생연분이라 하고 천상배필을 새기는 혼인식이라 하여 일생일대의 대사로써 거국적으로 거행한다. 불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의 언약을 평생 꽁꽁 묶어두자는 것이다. 청첩장은 어느 숙명적 인연을 말한다.그러기에 결혼 당사자들은 꼭 이 말을 한다.
<“우리들 믿음으로 한 가정을 이루고자 합니다. 맹세의 자리에 부디 오셔서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삶의 원천인 믿음. 우리는 믿음으로써 사랑하고 지우고 용서하고 화합하고 또 헤어진다. 이는 보편타당한 인류의 진리로써의 삶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사랑과 행복의 근원지인 가족, 가족은 믿음의 실천이며 행복의 근원지로써 사회를 이어가는 근본바탕이다. 그러기에 가족이 되기 위해선 예로부터 엄격했다. 예를 갖추어 친족과 양가부모 모시고 백년가약을 맺고 혼인을 했다. 현세도 혼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호적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신고하는 형식적 요건과 당사자가 혼인적령(남자 만 18세, 여자 만 16세)에 달해야 한다(민법 제807조)는 실질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한낱 종이 초대 말로서 그 무게를 말해서는 안 될 청첩장, 오늘 그 무게감을 바로 느낀다.
결혼은 축복의 자리이고 또한 행복으로 향하는 다짐의 자리인 만큼 의당 가서는 그들과 함께해주고 지켜봐주며 축복해줌은 물론일 테지만 부득 참석을 못하더라도 그 사랑과 그 믿음과 그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그 언약과 그 맹세와 그 다짐이 또한 변함없기를 빌어주는 것은 어느 면 초대받은 사람들의 도리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이렇듯 누누이 지켜보기에 혼인서약 한 두 사람은 언약과 맹세를 굳건히 잘 지켜야 한다는 지상의 지엄한 분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고로 결혼식은 축복의 자리인 만큼 좋다는 시간과 때 장소를 가려서 길운을 살폈다. 예전엔 꽃피고 새 우는 화풍난양(和風暖陽)의 봄이 아니면 결실을 가져다주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철을 택했었다. 이 또한 맹세의 깨짐을 어찌하든 방비하자는 유비무환으로부터 출생된 방책이다. 하지만 바삐 사는 요즘은 장소 물색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결혼도 그랬지만 오늘날은 한겨울과 한여름도 마다하거나 주저하지를 않는다. 혼인대사(婚姻大事)의 뜻을 거스르기에는 장소나 시간 따위가 대수로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아들 혼사 또한 그러하다. 대전에서 올라 올 사람들을 생각하고 쉬는 휴일의 표정까지 따져보자니 부득 토요일 정오가 가장 적당했다. 내가 적당하다 하듯 다른 혼사들도 그쯤이 아마 최적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올해 초부터 장소를 물색했는데 겨우 당도한 때가 한해가 다 저무는 11월이다. 여느 때의 이쯤은 아무 결실 없이 보내야 하는 送舊(송구)에 대한 송구함으로 회한이 앞서곤 했는데 이번은 내게 있어 뜻 깊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친구는 내 청첩장을 받더니 너보다 잘 생긴 아들이 장가를 간다니 축하하고 눈물이난다고 하였다. 아마도 친구는 나의 아픈 몸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감개무량하다.
아무튼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이 동빙한설(凍氷寒雪)의 한겨울과 성하염열(盛夏炎熱)의 한여름을 비켜선 것이라고 할까. 다시금 읽어보는 색다른 이제는 친숙해져야 할 이름 하나, 아들 녀석의 이름 옆에 꼭 달라붙어 새 식구임을 파르르 떨며 알리는 것만 같다. 물설고 낯선 집으로 들어오는 처지로써 앞날의 두려움과 불안함이야 오죽할까. 그 시절 나 하나 믿고 시집오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잘해주자고 맹세를 하였던 나였지만 나는 과연 이를 잘 지켰던가. 돌이켜보자면 아쉬움이 봇물이다.
사랑과 그 믿음과 그 행복, 영원하기를 바라고 그 다짐이 또한 변함없기를 바라지만 솔직히 변함없는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고 영원한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결혼은 환상적 실루엣이 아니다.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는 눈먼 거북이가 물에 뜬 나무를 붙드는 맹귀부목(盲龜浮木)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마음에 딱 맞는 내외가 되어 살아가기는 도를 구하고 닦아도 얻지 못하는 구불득고(求不得苦)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고도 했다. 그런 처지로서 화합은 실로 어려운 인고의 나날이 아니었던가.
누누이 들어오던 말들, “제 주장대로만 좌지우지(左之右之)를 하지 말고 처지를 바꿔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도 해야 할 것이며, 싸움을 하게 되더라도 살얼음을 밟는 경솔한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고 내 발밑을 살피는 신중한 조고각하(照顧脚下)를 해야 할 것이다. 참고 또 참아라,.... 부드럽고 따사로운 귀밑말로 이해를 시키고 설득을 해야 한다. ”부부의 화합이 오죽이나 어려운 것이면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 하고, “된장 원수는 일 년이지만 부부 원수는 백 년이다”고 하였을까. 이탈리아의 속담에도 “애정 때문에 결혼하는 자는 분노 때문에 죽는다” 라고 하였다.
나 역시도 참고 또 참으라는 말이 가장 실감나게 들린다. 이는 아내에게 그러하지 못했다는 반증의 말도 된다. 너무 믿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말하지만 이는 역지사지를 생각 하지 않은 우를 범한 것이었다. 자식은 자신의 분신이라 하듯 나의 성질 급한 면모를 타고난 아들의 이런 답습이 우려된다면 이는 한낱 노파심일까. 이 혼사의 주인공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이지만 나는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들은 아직도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돈벌이가 없는 처지다. 당연 생계를 책임 질 처지가 아니니 선뜻 결혼을 하겠다는 말도 못하는 노릇인데 그 마음이 바뀐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나이가 33살이 넘어서는데 이러다가 어쩌나 내심 걱정이 앞서던 차 내가 벌어 먹이면 된다는 양 며느리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내가 말해도 안 듣는 녀석이 단번에 순순히 말을 따르는 것을 보고 나는 흡족했다. 시중 점쟁이말대로 아들은 며느리 덕에 건강도 챙기고 잘 된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을 것 같은 달달한 예감이 밀려왔다.
거기에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독신여성은 날로 늘어만 간다. 편하고 살만한 데 고생감수하고 굳이 결혼을... 이 의식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숙명으로서 자리매김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주부로서의 희생과 봉사가 이제는 예속이나 굴종으로 이해되며, 또는 당연하게 인정되어 왔던 남성의 일반적인 우위가 이제는 독선이나 횡포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지난날에는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포기되었던 여성의 여러 권익은 회복되었고 따라서 그런 현대 여성의 눈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요소를 청산하지 못한 이 나라 청년들이 종종 이기적이고 독선적으로 비쳐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이주된 이유가 되고도 있다.
나는 내 근무처에서 아침 식사를 종종 한다. 아침 식사를 하러 오는 젊은 친구들, 그런 내 관찰은 꼭 젊은 여자 친구에게서는 거부감이 일곤 했었다. “젊은 여자애가 집에서 밥을 해서 먹고 와야지 게으르게 저게 뭐냐 말이다.” 나의 이런 잠재의식은 꽤 오랜 습성이 지배해 만들어진 결과다. 그런 나는 어느 날부터 마음을 고쳐먹었다. 왜 나는 남녀를 차별하는 것일까. 이러다가 며느리도 편향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겠는가. 그러다간 내 아들이 장가를 못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일었다. 젊은 여자 친구도 사회일원으로 바삐 사는 세상, 의식은 당연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편향적의식이 여전히 깊다.
내 며느리는 일찍이 5년 전부터 보았던 아이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던 때 여자 친구라 하며 당당히 우리 집에 입성을 했었다. 그리고도 5년이란 지난 시간, 데이트 비용이 충실하지 못했을 터 녀석들은 일찍이 그때부터 그들 방식의 화목함을 꾸려오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다. 나는 그 속사정을 조금은 안다. 나도 아들처럼 그 시절 대학원을 다니느라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데이트하고 결혼을 했다. 대전에 보문산 공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곰이네 집’이란 우동 집에서 점심을 먹고는 이내 무궁화 호를 타고 서울로 향하곤 했었다. 그렇게 만난 지 두 달여 우리는 결혼을 했다. 엄마가 매달 5만원을 건넸는데 빠듯한 우리 신혼살림은 보름을 채 넘기지 못했었다.
아들 녀석은 공부를 곧 잘해서 대학교 때부터 이날 이때까지 학비도 그렇고 쓰는 용돈도 타간 적이 없다. 요즘은 대학원 연구과제 요원에게도 적지만 비용을 쳐 나온다. 다 큰 아이로 나는 그 시절 손 벌리기가 어려워 겨우 신혼여행을 다녀왔었다. 돈이 모자라 중국집에서 해물 짬뽕을 시켜 먹었던 기억이 오늘에 새롭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아무 탈 없이 그간 잘 해준 아들에게 너무 무심했었다. 나는 생각 끝에 결혼을 앞둔 이번 여름에 아들에게 중고차를 선사했다. 친구들은 취직을 해 차를 끌고 다니는데 못내 마음에 걸렸었다. 그리고 이번 아들 신혼여행비로 달러를 아내 모르게 바꾸어 놓았다. 녀석의 행복이 바로 내 기쁨이고 보람이 아닌가.
우리의 속담에 “이 방 저 방해도 내 서방이 제일 좋다” 하고, “이 집 저 집해도 내 계집이 제일 좋다” 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경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조상 볼 면목이 섰다 싶고 나는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악처에게 시달렸다는 소크라테스(Socrates)마저도 “반드시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고 하였다지 않는가. 실은 금슬상락(琴瑟相樂)하며 백년해로(百年偕老)한 부부들은 사는 맛도 멋도 품격으로 일체하여 도를 득한 사람들이다. 나 역시도 그러기를 바라며 오늘을 자성하며 살듯이 부디 아들도 며느리도 참고 견디며 백년해로하기 바란다. 누군가는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지만 이는 믿음이란 도를 제대로 닦지 못하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부디 명심하라! 아들아! 며늘아기야! 살아보니 참고 참는 것보다 더한 명약은 없지 싶다.
*** 내 아들은 오는 11월 25일 12시 20분 강남구 테헤란로에 피에스타 귀족(02 5010 7000)이란 곳에서 결혼식을 한다. 나는 오시는 하객에게 고마움의 표식으로 우수도서로 선정된 '신라 천년의 자취소리' 란 글집을 선사할까 한다. .***
첫댓글 큰 경사가 있으시군요
아드님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새 가정에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