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 9구간(일림산ㆍ사자산ㆍ제암산)
종주일자 : 2001년 11월 27 ~ 28일
종주구간 : 봇재 ~ 일림산 ~ 사자산 ~ 제암산 ~ 시목치
도상거리 : 21km
봇재 - 1.7 - 활성산(×455.2m) - 3.7 - 413봉 - 2.1 - 626.8봉(△626.8m) - 1.5 - 일림산 (△667.5m) - 1.5 - 골치 - 0.9 - 561.7봉(△561.7m) - 2.1 - 사자산(×666m) - 1.3 - 곰재산 (×629m) - 0.7 - 곰재 - 1.5 - 제암산(×807m) - 4 - 시목치(감나무재)
11월 27일
계절의 흐름은 천하장사도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몇 일전까지만 해도 봄 같이 따뜻했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겨울을 맞으면서 한차례 몹쓸 병에 시달리다가 훌훌 벗어버리고 떠날 준비를 한다. 을씨년스러운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2번 출구에 있는 만남의 장소로 정맥꾼들이 모인다.
오후 6시20분 예정시간보다 늦게 출발한 정맥꾼들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린다. 이 시간 서울은 올 겨울 첫눈을 기록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참석하는 나종학 선배님 그리고, 처음으로 참석한 박정숙씨와 20대 후반의 성경희양이 정맥꾼들은 걱정이 되지만 행담도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동군산나들목을 빠져나와 다시 호남고속도로를 달린다. 잠깐 잠이 든 것 같은데 보성 이란다.
보성은 일찍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백의종군하여 "약무호남(若無湖南)이면 시무국가(是無國家)라"하시면서 이곳 보성에서 지략(智略)을 얻고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수호하는 기틀을 다진 곳이다. 일제시대 보성향교 제주사건(祭酒事件)등 국난으로 나라가 어지러울 때 국가를 구한 수많은 충신열사를 배출한 의향(義鄕)이며, 판소리 서편제 보성소리(강산제)를 창제하신 박유전 선생의 숨결이 이어오는 소리의 고장으로서 예향(藝鄕)이며, 매년 5월이면 이곳 보성에서 전국의 다인(茶人)들의 축제가 열리는 차의 고장 다향(茶鄕)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지난번 하룻밤을 묵었던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민박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훨씬 넘어있었다. 기다림과 두려움 속에 밤은 깊어간다.
11월 28일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봇재에 올라서니 사방으로 병풍처럼 펼쳐 진 녹차밭에서 서편제 보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의 보성다원이 조성된 것은 1939년 활성산 자락에 30ha의 차밭 조성을 시작으로 한때는 590ha를 조성 재배했으나, 현재는 국내 녹차생산량의 약28% 정도인 392ha를 재배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07시 봇재에서 왼쪽 사면으로 차밭을 끼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다보니 동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차밭을 넓히려는지 파헤쳐진 절개지를 올라 307봉에 오르고 왼쪽(서)으로 희미한 정맥길은 낙엽이 발목까지 빠지는 내리막길로 잡목 숲을 뚫고 나가다가 오르내림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07시 15분 여러 갈래로 나있는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다 뒤돌아보니 태양이 구름사이로 얼굴을 들어낸다. 가파르게 올라서던 정맥이 안부를 지나 능선분기점인 357봉에 오르고 우뚝 솟은 활성산을 올려다보며 평탄하게 이어지면서 왼쪽으로 웅치면의 마을과 들녘 위로 일림산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십자로 안부에서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버리고 차밭 사이로 가파르게 오르다가 잡목을 헤치고 묘 2기를 통과하며 올라선 곳이 활성산(465.2m)이다.
07시 46분 보성만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활성산은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선생이 그린 대동여지도에 몽중산(夢中山)으로 표기된 산의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학성산(鶴城山), 활성산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07시 55분 정상에서 30여m 내려서다가 왼쪽으로 잡목 숲을 뚫고 내려서는 길에 시야에 들어오는 호남정맥 능선이 일림산에서 제암산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저 먼 곳을 어떻게 가나” 정맥꾼들은 걱정이 태산같다. 15분 가량 잡목과 씨름하다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를 따르다가 영광정씨 묘를 통과한다.
08시 25분 아스팔트도로에 내려선다. 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아스팔트도로에서 왼쪽으로 삼수마을에 내려서고, 이어 만나는 1차선 콘크리트 마을길을 따르다가 콘크리트포장도로를 버리고 농로를 따라 갈멜사슴농원 오른쪽으로 캐나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엘크를 보며 통과하다보니 갈멜사슴농원 입간판이 서있는 895번지방도를 만난다.
08시 55분 895번지방도를 가로질러 언덕을 오르면서 떨어진 감으로 요기를 한 정맥꾼들은 많은 의아심을 가지며 잡목 숲을 헤치며 길 아닌 길로 가파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다가 왼쪽으로 틀며 올라선 곳이 418봉이다.
09시 35분 일반등산로가 넓게 나있어 왼쪽으로 한치고개로 내려설 수 있는 능선분기점인 418봉에서 잠시 다리 쉼을 하고 오른쪽(서남)으로 내려선다. 일림산으로 향하는 정맥은 한동안 험한 길을 헤쳐온 정맥꾼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시야가 트이며 오른쪽으로 웅치면의 들녘과 농촌마을이 한 폭의 그림 같고, 왼쪽으로 햇볕에 반사하는 보성만의 쪽빛바다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주)창업상호신용금고의 ‘우리들의 허파 일림산을 보호합시다’ 비닐리본과 낯익은 정맥리본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정맥길은 완만하게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큰 새 몇 마리는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놀라 푸드득 나르고, 작은 새들은 반갑다 노래부른다.
09시 55분 이정표(한치:1.8km, 일림산:3.4km, 차밭 가는 길:1km)가 있는 갈림길을 만나고, 3분 뒤 헬기장을 통과하면서 철쭉과 싸리나무를 헤치며 한차례 가파르게 오르다보니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산죽길을 따라 이어지던 정맥은 측백나무군락이 나타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서 잠시 뒤돌아보며 지나온 정맥능선을 확인해 본다.
우뚝 솟은 봉을 올려다보며 가파른 바윗길은 왼쪽으로 수직의 암릉길을 통과하며 올라선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보성만은 보고 또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물위에 떠있는 듯 한 득량도, 다시 산죽들의 호의를 받으며 바윗길을 오른다.
10분 23분 헬기장이 있는 능선분기점 626.8봉이다. 글씨를 확인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이정표(용추폭포:2.5km, 일림산:1.7km)를 뒤로 잠시 후 다시 헬기장을 통과하며 키 작은 철쭉과 한해를 다한 억새가 바람에 날리는 부드러운 능선길이다. 더욱 가까워진 일림산이 하늘을 가를 듯 힘찬 형상으로 솟구쳐 있으면서도 뭉게구름이 뭉실뭉실 날아오르는 듯 부드럽기 그지없다. 완만한 내림길에 한차례 키를 넘는 철쭉 밭을 통과한다. 한가지 흠이라면 일림산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가 흉하게 보인다.
10시 37분 보성군에서 설치한 ‘산행은 지정된 등산로를 이용합시다’ ‘철쭉을 보호합시다’라고 쓰인 안내판과 좌우로 밧줄을 쳐놓은 정맥길은 보성강 발원지로 내려설 수 있는 이정표(발원지:0.3km, 일림산:0.75km, 봉서동:2.6km)가 서있는 발원지 사거리를 통과한다. 다시 푸르름이 한결 좋은 산죽밭을 따라 오른다.
10시 47분 이정표(일림산:0.3km, 봉서동:3.7km)가 서있는 매봉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내려섰다 허리 길을 버리고 정상을 향한다. 일림산은 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한양으로 소식을 전하는 봉수대, 섬진강 600여리의 발원지, 민족의 한을 담은 서편제 태동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녹차밭,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용추폭포, 전국최대의 산철쭉 군락지 등 오직 일림산 만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으로 다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남도의 명산이다.
<v:f eqn="if lineDrawn pixelLineWidth 0"></v:f><v:f eqn="sum @0 1 0"></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2 1 2"></v:f><v:f eqn="prod @3 21600 pixelWidth"></v:f><v:f eqn="prod @3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0 0 1"></v:f><v:f eqn="prod @6 1 2"></v:f><v:f eqn="prod @7 21600 pixelWidth"></v:f><v:f eqn="sum @8 21600 0"></v:f><v:f eqn="prod @7 21600 pixelHeight"></v:f><v:f eqn="sum @10 21600 0"></v:f><o:lock v:ext="edit" aspectratio="t"></o:lock><v><w:wrap type="square" side="largest"></w:wrap></v>10시 55분 표지석과 일림산철쭉제단이 있는 보성군과 장흥군 경계 상에 솟은 664.2m의 일림산 정상에 오른다. 일림산은 호남정맥 중 가장 남녘에서 기운차게 우뚝 쏟아 다시 북으로 돌리는 산이다. 삼각점(회천 21, 90년 복구)을 확인한다. 그리고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김해김씨 묘, 휘둘러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북으로 제암산이 너무나 멋지게 보이고, 첩첩산중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작은 마을들이 한없이 정겹게 보인다. 남으로 보성만의 쪽빛바다, 너무나 아름다워 정맥꾼들은 떠날 줄을 모른다.
11시 05분 서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선다. 여전히 좌우로 밧줄로 이어지는 정맥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키를 넘는 산죽군락을 지난다. 비석이 꺾인 묘지를 지나 통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11시 18분 이정표(용추폭포:3km)가 서있는 능선분기점인 614봉에서 왼쪽(서)으로 내려선다. 통나무계단이 마음에 들지 안는다는 윤정길씨, 철쭉군락이 끝이 나는지 이어지던 밧줄이 슬며시 사라진 정맥길은 잡목들이 거치적거리기 시작한다.
5분 뒤 다시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서)으로 내려서면서 등산객들을 만난다. 모처럼 정맥에서 만나는 등산객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반갑다. “좋은 산행하세요” 라는 인사로 헤어지고, 참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낙엽이 수북히 발목까지 빠진다.
11시 33분 소로를 가로지른다. 잡목들이 옷깃을 붙잡는 정맥길은 소나무가 쓰러져 정맥꾼들을 힘겹게 하고, 이어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면서 넓은 구릉지대가 나타난다. 여기저기 나무들이 쓰러져있고,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11시 40분 골치에 도착한다. 골치가 지근지근 댄다나 하여튼 골치를 조금 벗어나면서 정맥꾼들을 둘러앉아 허기진 배를 채운다. 더운밥과 더운물이 생각나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서둘러 점심을 끝내고 짐을 챙긴다.
12시 정맥은 완만하게 오른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며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청미레가 빨간 열매로 정맥꾼들을 유혹하며 잡목들과 작당하여 성가시게 구는 오름 길이다. 간혹 나타나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은 정맥은 한동안 우회 길로 이어지다가 억새밭을 통과한다. 왼쪽으로 보성만 너머로 언제가 한번 찾았던 팔영산과 소록도가 있는 고흥반도를 보며 간다.
연이어 작은 오르내림 끝에 산죽밭을 통과하며 장흥군 안락면의 장수제가 보기 좋고, 좁은 날 등으로 이어지던 정맥은 산죽밭으로 가파르게 떨어진다. 안부에 내려서고(12:33) 이어 오르고 내림이 이어지다가 우회 길을 버리고 가파르게 오른 봉이 540봉이다.
12시 45분 흙무덤 1기가 있는 능선분기점인 540봉에서 왼쪽으로 90도 각도로 팍 꺾어 내려서며 조금 전 헤어졌던 우회 길을 만나고, 다시 완만한 오름 길은 560봉을 조금 비켜나가면서 다시 오른쪽으로 팍 꺾어 내려서다 보니 봉과 봉 사이로 사자산이 얼굴을 드러낸다. 구릉지대가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안부에 내려선다.
13시 03분 십자로 안부를 통과하여 억새밭을 헤치며 사자산을 향해 오른다. 푸른 소나무가 간간이 아름답게 서있고, 능선 상의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가파르게 고도가 높아지면서 힘겨운 오름 길은 바위와 바위사이로 바위 날 등으로 올라서니 너무나 아름다운 세상이 정맥꾼들 앞에 펼쳐진다.
13시 20분 아기자기한 바윗길을 따라 사각의 조그만 표지석이 서있는 사자산(666m) 정상에 선다. 장흥군과 보성군 경계에 솟은 사자산은 제암산, 억불산(518m)과 함께 장흥이 자랑하는 삼산(三山)으로 불리는 산이다. 사자두봉(560m)에서 정상을 거쳐 남쪽으로 뻗는 주릉의 형상이 하늘 향해 울부짖는 사자의 모습 같다 하여 사자앙천형(獅子仰天型)의 산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철, 흰눈이 산등성이를 덮었을 때는 황야를 쓸쓸하게 걸어가는 한 마리 사자 같은 인상을 준다고 한다. 사자두봉으로 이어지는 초원 능선은 사자의 허리를 보는 듯 미끈하기 그지없다. 지나온 일림산에서 이어온 호남정맥 그리고 북으로 곰재산과 제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13시 30분 이정표(사자산두봉:2km,페러그라이딩장:1.2km,안양당암:3km, 철쭉군락지:1.6km, 간재:0.7km)를 뒤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긴다. 쫓기는 시간이 아쉽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제암산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 맛도 일품이다. 뚝 떨어진다. 큰 나무가 눈에 띄지 않는 내림 길은 한동안 억새풀만이 바람에 휘날리더니 간간이 멋들어진 푸른 소나무들이 정맥꾼들을 사로잡는다.
13시 45분 뚝 떨어지던 내리막길이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등산 안내도 와 이정표(곰재:1.5km, 철쭉군락지:0.9km, 공설공원묘지:1.8km)가 서있는 간재를 통과한다.
13시 55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곰재산(629m)에 오른다. 이정표(곰재:0.7km, 제암산: 2.1km)를 확인하고, 정상 바로 아래 있는 헬기장을 통과하여 내려서면서 왼쪽으로 바위와 소나무의 어울림이 아름답다.
10분 후 다시 만나는 이정표(곰재:0.4km, 제암산:1.8km,)와 헬기장이 있는 629봉에 오르니 두봉 아래로 장흥읍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이고, 금산저수지가 한결 푸르게 내려다보인다. 바위 능선을 끼고 내림길이 너덜길이다. 뚝 떨어진다. 철쭉군락사이로 푸른 소나무가 유별나게 푸르러 보이고, 이어 소나무 숲길을 통과한다.
14시 10분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곰재다. 이정표(제암산:1.4km, 장흥공원묘지:1.6km) 서있다. 언덕을 넘어서니 다시 장흥군에서 설치한 등산 안내도와 이정표가 다시 곰재를 가리킨다. 언덕을 사이에 두고 보성군과 장흥군이 각각 세운 곰재의 시설물, 제암산 철쭉군락지 안내판이 서있다. 보성우체국산악회가 부착한 ‘추억은 가슴깊이 쓰레기는 배낭 속에’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보성군 웅치면의 명칭은 "곰재"라는 우리말을 한자음인 웅치(熊峙)로 표기하였으며, 곰재는 제암산 산령에 있는 곰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잠시 다리 쉼을 한다.
곰재를 뒤로 가파른 오름 길을 힘겹게 오른다. 벽돌을 높게 쌓아 올리듯이 한 발 한발 올라선다. 돌길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명산답게 고속도로처럼 훤하게 뚫린 등산로가 지나온 정맥길과 비교가 된다. 잠시 후 왼쪽으로 정말 행복한 가족을 만난다. 두 자녀를 거느린 부부, 마치 엄마는 앞에서 끌어주고 아빠는 아래서 밀어주며 산을 오르는 듯한 검은 바위, 정맥꾼들은 감탄사를 터 들인다. 정맥꾼들은 가족바위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가파르던 오름 길이 잠시 다리 쉼을 하듯 평탄하게 이어지다가 다시 한차례 올라선 곳이 돌탑이 있는 700봉이다. 이정표(형제바위:0.3km, 제암산:06km, 감나무재:4.8km)가 서있는 700봉에서 내려다보이는 장흥읍은 더욱 가까워 보이고,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시설물이 서있는 봉을 넘는다.
철쭉과 억새가 어우러진 능선은 연이어 헬기장을 통과하면서 삼각점(장흥 22, 90년 재설 ․△778.5m)을 확인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수직에 가까운 암벽이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바위벽을 타고 힘겹게 오른 곳이 고도 807m의 제암산 정상이다.
14시 58분 100여명이 넉넉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편편하고 넓은 정상은 예전 기후제를 지내던 곳이며 지금도 검불게 달구어진 바위틈에 숫덩이가 남아 있다는 제암산은 임금 바위산이라고도 한다. 제암산 억새제 추진위원회에서 세운 표지석에는 ‘이 제암산 바위는 보성과 장흥과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807m의 정상에 위치한 장엄하고 신령스러운 바위로써 우리 지방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 근면 성실하여 복지 농촌을 추구하는 소망에서 면민의 뜻을 모아 삼가 이 표지석을 세운다.’라고 음각 되어 있다.
제암산 정상의 억새밭, 철쭉군락지 등 여러 모습의 자연을 연출한다. 무등산, 월출산, 천관산, 모후산, 팔영산, 존제산등 호남일원의 크고 작은 산을 다 볼 수 있을 만큼 조망이 뛰어난 곳이지만 옅은 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제암산은 여름이면 능선이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 힘찬 기상을 보여 주었다가 가을이면 가냘픈 가운데 찬란한 빛을 자아내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그리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명산으로 帝(임금 제)자 모양의 큰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제암산자연휴양림과 용추계곡은 깨끗하고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곳이다.
바위벽을 내려선다. 시간이 아쉽다. 이정표(감나무재:4.2km)를 뒤로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내려서고, 바위 날 등을 타고 넘는다. 사람이 세워놓은 것 같은 입석바위가 보기 좋다.
15시 12분 이정표(휴양림:1.9km, 감나무재:3.9km)가 서있는 안부를 통과한다. 오른쪽으로 보성만이 마치 거대한 호수처럼 보이고, 들녘이 너무나도 평화롭다. 철쭉과 떡갈나무가 꽉 들어찬 정맥길은 작은 봉을 넘어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거친 암릉길은 655봉을 오른다. '님은 생전에 무척도 산을 좋아하시더니 끝내 이곳에서 산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1995. 10. 29. 동부고속 호남정맥 산우회 일동' 1995년 10월 1일 호남정맥 종주 중에 이곳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권중웅씨를 그리며 동료들이 새겨놓은 조그마한 불망비(不忘碑)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15시 25분 노간주가 서있는 봉에서 뒤돌아보니 제암산에서 내려서는 좁은 날 등이 마치 거대한 짐승의 꼬리가 꿈틀대는 듯하다. 키를 넘는 철쭉군락을 통과하면서 앞에는 마치 형제뵹 같은 3개의 봉이 나란히 솟아있다. 안부를 가로지르며 완만한 오름 길을 싸리나무와 떡갈나무를 헤쳐나간다. ‘이제 오늘 이후로 남해바다가 정맥꾼들 시야에는 보이지 않겠지’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15시 35분 첫 번째 봉에 올라 뒤돌아보면서 정맥꾼들은 저 많은 봉우리를 발로 걸어서 이곳까지 넘어왔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며 다리품에 댓가를 신기하게 여긴다. 잠시 다리 쉼을 하고 내려서는 길엔 가을을 보낸 아쉬움이 가득한 구절초 한 송이가 애잔하다. 연이어 봉우리를 넘고 헬기장을 통과한다.
15시 50분 684봉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지릉을 보며 직진한다. 키를 넘는 철쭉군락이 지쳐 가는 정맥꾼들을 괴롭히고, 암릉을 통과하며 한차례 뚝 떨어진다. 2번 국도를 지나는 자동차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힘을 내야지”,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왼쪽으로 감나무재 팻말이 붙어있고 리본도 몇 개가 보인다. 잠시 판단을 잘못하면 정말 낭패를 볼 것 같다. 정맥은 갈림길을 버리면서 다시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이다.
16시 12분 한차례 오름 길 뒤에 급경사의 내림길이 측백나무군락을 만나고, 송전탑을 통과하면서 가파르게 떨어지다가 묘지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는다. 능선분기점에서 직진하여 다시 뚝 떨어지던 정맥은 방향을 왼쪽으로 틀면서 내려서는 길에 임도를 만난다. 이어 안부에서 왼쪽 홈통 길로 조금 내려서다 오른쪽 장송 숲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듯 하더니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길에 시목치(감나무재)로 오르는 2번 국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 시목치다. 해 냈어”...
16시 40분 감나무재 표지석이 서있는 2번 국도에 내려선다. 힘들었던 시간도 지금 이 시간 소중하고도 즐거운 추억으로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