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이론 공부에 이어, 이번주부터 시작하는 현장답사의 안양9경 중 첫 번째 탐방은 안양예술공원(安養藝術公園) 입니다.
삼성산(三聖山)과 삼성천(三聖川)이 만들어내는 자연경관은 예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 삼성천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 했습니다.
1930년대에 풀장이 조성되기 시작해서 1970년대에는 7개에 달했습니다.
1969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고 안양유원지(安養遊園地)로 불리며, 여름철엔 수많은 인파가 찾아와 계곡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행락객으로 자연경관은 점점 훼손되어가고 1977년 안양 대홍수로 안양유원지 계곡은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국민관광지 지정이 취소되고 삼성천은 방치되었습니다.
안양시는 2000년대에 들어서 안양유원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홍수로 파괴된 계곡을 정비하고 계곡 주변에 조경수를 식재, 노후된 상업시설 철거와 새로운 상가조성으로 안양유원지는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2005년 APAP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nyang Public Art Project) 사업을 통해 안양유원지를 거대한 야외갤러리로 만들어 자연(自然)과 역사(歷史)와 예술(藝術)이 접목된 공원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2006년 '안양유원지(安養遊園地)'는 '안양예술공원(安養藝術公園)'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습니다.
안양예술공원 관광 안내센터
안양 제1경 안양예술공원 해설은 관광안내센터 옆 파고라에서 모여서 시작합니다.
삼성천으로 조심스레 내려갑니다.
수량이 부족해진 삼성천의 건천화(乾川化) 예방을 위하여 석수 처리장에서 정화한 물을 이곳에서 재방류를 합니다.
취수구(取水口)를 통해서 유입되는 징검다리 아래쪽과 윗쪽의 수량(水量)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입니다.
물길의 중간 중간에는 자연발생 또는 인위적으로 물살이 빠른 여울(灘, 여울 탄)을 만들어 줍니다.
여울물은 하얀 포말(泡沫)을 만들면서 물 속에 산소를 공급하는 작용을 합니다.
계곡 내에 자라는 수생식물들은 수질을 자연 정화시켜 맑은 물을 흘려보냅니다.
여울 아래에는 깊은 소(沼)를 만들어 물고기들의 피난처가 되기도하고, 부유물을 분해시켜서 물의 자정 작용도 하는 역할을 합니다.
물속에 산소 공급을 해주는 여울과 소의 모습
천변(川邊)의 중국굴피나무는 열매가 아래쪽 방향으로 달려있습니다.
토종 굴피나무는 열매가 위쪽으로 매달린다고 설명해줍니다.
중초사교(中初寺橋)에서 삼성천을 바라보면 안양박물관 뒷쪽 저 멀리 삼성산 전망대(좌)와 관악산 국기봉(우)이 보입니다.
중초사교를 건너 옛 (주)유유산업 공장의 정문으로 들어갑니다.
정문의 양쪽 기둥은 유유산업의 심벌로 'Y'자를 아래위로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중초사지 당간지주(中初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4호) 앞에서 해설을 하는 박석환 부회장님
중초사지 당간지주는 사찰이 창건된 연대(826년)를 알 수 있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당간지주 서쪽 지주에는 6행 124자의 글씨가 적혀있어 보력(寶曆) 2년(826, 신라 흥덕왕 원년)에 중초사를 건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명문(銘文)에 의하면 책임자인 주통(州統, 승려의 직책으로 국통 아래)은 황룡사(皇龍寺)의 항창화상(恒昌和上)입니다.
* 주통(州統) : 통일신라 행정 구역인 9주 5소경(九州五小京) 중 주(州)의 책임자.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왕립 사찰을 세운 것은 하대 신라(下代 新羅)에 유행한 선종(禪宗)이 지방호족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하여 지방의 중요 거점에 세웠습니다.
* 교종(敎宗) : 불교 경전을 위주로 공부하는 종파
* 선종(禪宗) : 참선을 통해 누구나 부처(왕)가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종파로 9산 선문이 성립됨
중초사지 당간지주 뒤에있는 3층석탑은 보물 제5호로 지정이 되었으나 1970년대 재심사 과정에서 탈락하여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문화재를 잘 지켜야 하는 사례입니다.
유유산업 공장부지 곳곳에는 2010 년 발굴조사 시에 안양사지(安養寺址)의 존재를 알려주는 초석(礎石)들이 확인되었습니다.
신라시대 사찰인 중초사 위에 왕건이 안양사를 지어서 새로운 나라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중문지(中門址)는 정면 5칸, 측면 2칸(초석이 3열) 규모로 추정되며, 남회랑지(南回廊址, 초석이 2열)는 중문지를 중심으로 전체 사역(寺域)을 감싸고 북쪽으로 연결되어 강당지와 만나게 됩니다.
중문지 뒤로는 전탑지(塼塔址)가 있고 금당지(金堂址), 강당지(講堂址), 승방지(僧房址)가 남(南)에서 북(北)쪽 방향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문지와 금당지 중간에는 7층전탑이 무너져 폐기된 벽돌(塼)과 기와편(瓦片)이 확인 되었습니다.
특히 벽돌-기와-벽돌-기와의 순으로 발견되어 전탑의 지붕에 기와가 덮여져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비교1 : 안동 신세동 7층전탑>
기단부는 일제강점기 시멘트를 덧발라서 모습이 변형되었습니다.
<비교2 : 전탑 지붕>
지붕돌 위에 기와가 일부 덮여 있습니다.
유유산업의 사무동과 연구실로 사용된 건물은 현재 김중업 건축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건축 연도는 since 1959로 적혀 있습니다.
공장동 건물이 철거되고 남은 기둥은 '사라져 가는 문자들의 정원'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안양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석수동 마애종(石水洞 磨崖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이 있습니다.
석수동 마애종은 승려가 당목(撞木, 종을 치는 나무 도구)을 잡고 종을 치는 장면을 그린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마애종(磨崖鐘) 입니다.
불전사물(佛殿四物) 중의 하나인 범종(梵鐘)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울리지만, 이 종이 울려 퍼지면 안양은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됩니다.
<불전사물(佛殿四物)>
• 범종(梵鐘) :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을 쳐서 천상과 지옥 중생을 제도합니다.
• 법고(法鼓) : 네 발 달린 짐승을 비롯한 땅 위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
• 목어(木魚) : 수중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
• 운판(雲板) :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중생이나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천도
마애종이 풍화로 인한 손상을 예방하기 위하여 후대에 마애각(磨崖閣)을 세웠지만 원래부터 마애종의 양쪽에 배수로가 있었습니다.
두 시간 안내 코스는 주차장 옆 한 평 타워에서 종료됩니다.
예술공원교 위쪽 삼성천 바닥에는 인물와상(人物臥像)과 오징어상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물막이 축대 중간에 일제강점기 세운 안양 풀장 준공비가 있습니다.
바위에 '안양풀(安養 プール)'라고 적혀있습니다.
준공비 말미에 '소화 7년 8월 준공 마쓰모토 씀(昭和 七年 八月 竣工 松本 書)'라고 일본어로 적혀 있습니다.
소화7년은 1932년 입니다.
안양정교(安養亭橋) 근처에는 APAP 해설사들이 상주하고 있는 안양파빌리온이 있습니다.
안양정교에서 하류쪽을 바라보면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로 이름 지어진 분수 작품이 있습니다.
강 바닥에는 1977년 대홍수 때 떠내려온 큰 바위들이 널려 있습니다.
물고기의 눈물과 안양정교
안양정교를 건너 안양정으로 가는 길에 화살을 만드는 신우대(설대)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고 있습니다.
안양정(安養亭)
안양정을 설명하는 박석환 부회장님.
안양시에서 야심차게 만든 안양정
이지만 사람들이 삼성천 건너편 길을 주로 이용하여 흘낏 보고 지나가는 정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모지붕으로 된 안양정의 천장은 부채 모양의 서까래인 선자연(扇子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椽燈天障)으로 되어있고 가운데는 우물천장을 만들었습니다.
안양정기(安養亭記)
안양정의 마루도 우물(井)마루로 만들었습니다.
마루청판(廳板)이 훼손되면 끝부분의 청판을 들어내고 하나씩 교체할 수 있습니다.
안양정(安養亭) 현판(懸板) 글씨는 안양 출신 서예가인 동오 김춘태 선생이 썼습니다.
기둥 위에는 새날개 모양의 공포를 하나만 조각한 초익공(初翼工) 구조입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작품을 보러 삼성산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양상자집-사라진(탑)에 대한 헌정,
독일에서 사용하는 음료 상자를 재활용 해 만든 집으로, 불교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오래전 있었을지도 모르는 불탑을 현대적 소재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전망대(예전 사진)
삼성산의 등고선을 연장해 산의 높이를 확장한 전망대로, 추상적인 데이터를 구체적인 형태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온 건축가 그룹이 제작했습니다.
전망대 꼭대기
전망대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안양사의 미륵대불이 보입니다.
중간자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와 해시계를 떠올리게 하는 반구형태의 작품
안양예술공원 무장애 나눔길
약 세 시간의 탐방을 마치고
안양시 등산로 종합안내도를 보면서 마무리를 하는 박석환 부회장님.
오늘 하루도 18명의 해설사와 함께 안양 제1경을 소개하느라고 수고하셨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지도의 중간 위치에 있는 무너미고개를 중심으로 관악산(우)과 삼성산(좌)로 나뉘어서 삼성천이 흘러내립니다.
'산(山)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水)은 산을 넘지 못한다'
안양문화해설사가 해설하는 주 영역
안양정교 옆에 위치한 싸리골에서 점심을 먹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짓습니다.
* 최근 안양예술공원이 잘 알려지면서 관악산이나 삼성산을 찾는 등산객들어 하산길로 안양예술공원으로 잡아서 뒷풀이를 많이 하는 Hot place여서 또 다른 별칭(別稱)이 생겼습니다.
'안양 애술공원(安養 愛酒公園)이라고도 불려집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본 중초사지의 흔적인 원형 초석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전시 중인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 안양의 흔적을 찾아봅니다.
다시 마주한 우리 땅,
돌아온 대동여지도
(2023.5.16~2023.7.2)
원래 6월 16일까지 전시 예정이었으나 7월 2일까지 연장 하였습니다.
대동여지도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가 목판에 새겨 만든 전국지도로 1861년 처음 만들었고, 일부 내용을 수정해 1864년 다시 제작했습니다.
조선 국토 전체를 남북으로 22층으로 나누고, 각 층은 동서 방향으로 부채처럼 접어 첩(帖)으로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22첩을 전부 펴서 위아래로 이어 붙이면 가로 약 3.3m, 세로 약 6.7m에 이르는 전국지도(全國地圖)가 됩니다.
한양과 한강유역 아래쪽으로 안양이 보입니다.
조금 더 당겨봅니다.
관악산 아래쪽에 안양(安養)과 인덕원(仁德院), 청계산(淸溪山)이 보입니다.
# 다음주는 안양 제2경 안양천(安養川)으로 쌍개울 문화광장에서 집결합니다.
<참고자료>
[안양의 자랑 안양9경 알아보기-한국평생교육사협회 안양지회]
[안양에 있는 구경이 안양9경-안양문화원]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한국사능력검정시험-최태성]
[절이 좋아 산에 가네-김경호]
[안양예술공원-안양시]
[해설-안양문화원 박석환 부회장]
첫댓글 아름다운
예술공원을 잘보존해야겠습니다~감사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안양1경 안양예술공원 공부내용에 추가정리까지 잘 해주셨습니다. 사진따라 사연따라 한번 더 답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해설에 따라 하나씩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정리가 넘 잘 되어 있어
복습하고 갑니다~
답사 기억이 새록 새록나면서
부회장님 말도 들리는 듯하네요~
예시한 탑을 보니 궁금해던 칠층전탑이
보이는 듯 합니다~
안동 월영교 앞에 7층전탑이 있습니다.
안양사탑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니 감사합니다
정리의 달인이시네요.
큰 도움이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의 명품 해설을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다시 복습되어 참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