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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광 칼럼] 증권 애널리스트는 어떻게 신뢰를 잃어왔나
처음에는 ‘삼프로TV vs. 박순혁 전쟁’으로 시작했다. 이차 전지 업체 금양의 홍보이사였던 박순혁 씨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된 싸움이다. 주요 애널리스트와 증권 미디어들이 ‘매수 반도체’, ‘매도 이차 전지’에 관한 의견을 내는 것을 향한 분노였다. 갈등은 진행 중이다. 더 커졌다. 선발 업종(반도체)과 후발 업종(이차 전지), 양쪽의 수백만 투자자, 증권 관련 미디어와 유튜브의 진영화 양상까지 나타난다. <한경 코리아마켓>의 안재광 필자는 이 갈등의 물밑에 애널리스트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시장축소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돈과 돈의 싸움이 격화되는 것은 돈 때문이다.’ 애널리스트를 애널라이즈해봤다. [편집자 주]
✔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 무너져… 기름 부은 ‘배터리 아저씨’
✔ 법인영업의 영업 대상은 ‘기관’, 개인에게 고급 정보 주지 않아
✔ 매도 보고서 수시로 내는 미국 증권사, 공매도 기법 활발해
✔ 왜 배터리 종목에 한해 매도 의견을 냈을까? 해석은 제각각
✔ 법인영업·투자은행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리서치로 남아야
사진: 셔터스톡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이들이 쓰는 분석 보고서가 객관적이지 않아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의심하는 게 있다. 특정 종목에 대한 ‘매도’ 보고서, 혹은 부정적인 보고서를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 종목은 주로 이차 전지에 들어가는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업체다. 예컨대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등이다. 올들어 주가가 폭등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매수한 한 종목들이다.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배터리 아저씨’였다. 배터리 아저씨는 상장사 금양의 홍보이사로 있었던 박순혁 씨다. 애널리스트 출신인 박 씨는 최근 자신이 쓴 책 <K 배터리 레볼루션>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차 전지 관련 기업 주식을 사야 한다고 부추겼다. 실제로 그가 추천한 종목들은 주가가 급등했다. 박 씨의 말을 믿고 주식을 산 사람들은 ‘대박’을 냈다며 박 씨를 추앙했다. 그는 한순간 유튜브 스타가 되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을 저격하며 “믿지 말라”라고 강조하자, 개인 투자자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차 전지 관련 종목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낸 증권사는 개인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 탓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은 예정된 세미나를 취소했고, 보고서 내기를 꺼렸으며, 대중 앞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렸던 애널리스트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나. 정말 이들을 ‘공공의 적’ 취급하는 것은 합당한 일일까.
월급은 법인영업에서 나온다
우선 애널리스트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인지 알아야 비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부분부터 꼬인다. 개인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가 투자자의 정확한 판단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애널리스트는 개인 투자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애널리스트 월급은 증권사에서 준다. 그럼 증권사는 이 사람들 줄 돈을 어디서 마련하겠나.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거래하며 발생하는 수수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살 때 증권사 분석 보고서를 얼마나 참조한다고 생각하는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많지 않다. 설령 엄청나게 많이 참조한다 해도, 그 보고서를 읽은 개인이 도대체 돈 줄 방법이 없다. 미래에셋증권에서 나온 보고서를 읽은 뒤, ‘보고서가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미래에셋증권에 증권 계좌를 트고, 여기서 거래하는 사람은 없다. 보고서는 보고서대로 읽고, 주식 주문은 자신이 원래 거래하는 곳에서 한다.
더구나 개인이 넣는 주문이란 게 얼마나 되겠는가. 많아 봐야 수억 원에 불과하다. 이것도 넉넉히 잡은 것이고 몇백만 원, 몇천만 원 수준이다. 참고로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는 기준은 주식 보유액 10억 원 이상, 지분 1% 이상(코스닥은 2%)인데 2020년 기준 6,000여 명에 불과했다. 전체 개인 투자자의 0.1%에 해당하는 숫자다. 증권사가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를 투입하면서까지 개인에게 고급 정보를 줄 이유가 없다. 최소한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자신의 연봉에 아무런, 아니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진: 셔터스톡
그럼 애널리스트 월급은 누가 주나? 대부분 법인영업에서 나온다. 법인영업은 누굴 영업 대상으로 삼을까?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투자가, 외국인 투자가다. 증권사의 법인영업 부서는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교원공제회,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돈이 많이 쌓여있는 기관에 가서 ‘우리 증권사로 매수, 매도 주문을 넣어 주세요’ 하고 영업한다. 그런데 이런 영업을 당하는 기관과 외국인 입장에선 ‘맨입에’ 주문을 줄 리 없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을 채워줘야 주문을 줄까 말까다. 그게 뭘까. 개인하고 똑같다. 뭘 사면 돈 벌 수 있느냐다. 기관, 외국인은 공매도도 활발하게 하니까 뭘 팔면(공매도하면) 돈이 될 수 있는지도 중요한 정보다. 어쨌든 이런 요구를 법인영업 부서에서 들어줄 때 ‘동원’하는 게 바로 애널리스트다.
‘매도’ 의견 낸다고 사회 정의 구현 안 된다
기관, 외국인의 요구는 다양하다. 어떤 곳은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미국의 기준금리가 대체 언제 떨어질지에 관한 정교한 분석 자료가 필요하다. 다른 곳은 주식을 사야 하는데, 반도체와 배터리 중에 고민이 있어서 두 산업을 비교해 달라고 한다. 또 다른 곳은 반도체 주식을 ‘롱’(매수)과 ‘숏’(공매도)을 쳐서 절대 수익을 추구하고 싶으니 ‘롱’ 잡을 주식과 ‘숏’ 잡을 주식을 리스트로 보여달라고 한다. 이런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증권사 리서치센터에는 매크로 경제를 보는 애널리스트, 산업과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대체 투자에 전문성이 있는 애널리스트가 두루 있다.
애널리스트는 언제나 기관과 외국인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이들이 무슨 내용을 듣고 싶은지, 어떤 분석을 하면 좋아할지 발 빠르게 대응한다. 애널리스트의 응대가 훌륭할수록 해당 증권사는 주문을 많이 받고, 이런 주문을 많이 받아야 증권사 법인영업부는 수수료를 두둑하게 챙길 수 있다. 이때 기관과 외국인의 주문은 때론 몇십억 원, 때론 몇백억 원씩 한다. 매수 주문을 한 번에 500억 원 받으면 수수료만 수억 원을 챙길 수 있다. 때론 주문액이 수천억 원을 오가기도 한다.
국내 애널리스트가 ‘매도’ 투자 의견을 잘 내지 않는 것도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간다. 한국은 공매도가 자유롭지 않다. 코스피200 종목처럼 우량 종목에 한해 공매도가 허용된다. 그나마도 증시가 급격히 하락하거나, 큰 악재가 있으면 금융 당국이 수시로 막는다. 한국의 공매도 거래 비중은 2020년 기준 4%대 수준이다. 같은 해 미국과 일본은 40%를 넘겼다. 한국 기관 투자가들은 ‘숏’(공매도) 보다는 ’롱'(매수) 투자를 훨씬 많이 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애널리스트가 특정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고 가정하자. 이 종목을 들고 있는 기관 투자가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다. 자신이 들고 있는 종목이 안 좋다고 애널리스트가 떠들고 다니는 셈이다. 이 기관 투자가는 이런 애널리스트가 있는 증권사에 주문을 줄 리 없다. 이미 낸 주문도 빼야 할 판이다. 기관 투자가 눈치가 보이는 애널리스트는 ‘알아도 모른 척’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래픽: 조주희
하나 더 있다. 증권사의 투자은행(IB) 사업부도 애널리스트의 매도 보고서를 원치 않는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LG화학이 ‘알짜’ 사업인 배터리 부문을 2020년 물적 분할 하는 일이 있었다. LG화학 주주들은 졸지에 ‘앙꼬 빠진 찐빵’ 주식만 들고 있게 됐다. 배터리 사업이 폭발적으로 커질 게 뻔한데, 배터리 사업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인적 분할을 했으면 그나마 배터리 사업부 주식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물적 분할이라 주식도 못 받았다.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는 물적 분할 이후 증시에 상장했는데, 단숨에 한국 시가총액 2위 기업이 됐다. LG에너지솔루션 얘기다. 반면 LG화학 주가는 분할 이후 폭락해 주주들 피해가 엄청났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국내 증권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누구 하나, LG화학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내지 못했다. LG란 대기업에 맞서 매도 보고서를 냈다가는, 앞으로 LG 관련 ‘일감’을 일절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감이란 게 주로 IB 쪽에서 나온다.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고, 계열사를 상장시키고, 인수합병(M&A) 할 때 증권사의 IB 사업부에 위탁하고 수수료를 지불한다. 매도 보고서는 기관 투자가도 원치 않고, 기업들도 원치 않는다. 최소한 한국은 그렇다.
금융 시장이 가장 발달한 미국은 다르다. 증권사들이 매도 보고서를 수시로 낸다. 이들이 양심적이고 날카로워서가 아니다. 증권사들의 고객인 기관 투자가들이 공매도 기법을 활발하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공매도를 칠 대상을 찾을 때 애널리스트가 근거를 만들고, 명분을 줘야 한다. 한국에서 종종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매도 보고서를 내고, 이 탓에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있다. 투자자들은 이때 공매도 세력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간 공모를 의심한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런 ‘공모’가 실제로 입증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들은 왜 매도 의견을 굳이 냈을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게 있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매도 보고서를 내는 게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배터리 기업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냈느냐는 것이다. 특히 매도 보고서는 배터리 아저씨와 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서 매수한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에 집중됐다.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증권사들도 배터리 관련 종목에 매도 보고서를 냈지만, 이들은 원래 그랬으니까 특이할 게 없다. 개인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 보고서였다.
사실 매도 보고서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다. 주가가 한순간 날아갔다. 에코프로의 경우 최근 6개월 새 500% 넘게 뛰었다. 주가가 폭등했으니 이익을 크게 낸 사람은 일부 수익을 실현하고, 지금 새로 사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애널리스트가 소신껏 발언하지 못한다고 그동안 많이 욕해놓고, 이제와서 소신 발언에 대해 돌을 던지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 왜 하필 굳이 이제와서, 배터리 종목에 한해서만 매도 의견을 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공매도 세력과 ‘짬짜미’했다는 것이다. 배터리 주가가 폭등하자 국내 일부 기관 투자가들은 적극적으로 숏(공매도) 포지션을 잡았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미리 판 뒤에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숏 포지션을 잡으면 주가가 떨어질수록 이득이다. 배터리 주가가 폭등했으니, 폭락할 가능성에 베팅하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상당수 주식이 폭등 이후 폭락을 거쳤다. 이런 숏 포지션을 잡은 국내 기관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예상보다 주가가 잘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을 이어가자 애널리스트를 활용해 주가 하락을 유도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러한 의혹은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다. 설령 수사를 한다 해도 입증이 쉽지 않은 영역이다.
또 다른 해석은 기관 투자가들이 배터리 주식을 충분히 담아놓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가 급등, 애널리스트가 ‘투입’됐다는 것이다. 기관 투자가들이 평가를 할 때 ‘벤치마크’란 것이 있다. 기준을 하나 세워놓고 이 기준에 비해 잘했나, 못했나를 평가하는 식이다.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 얼마나 더 좋았다, 혹은 더 나빴다가 평가의 주된 방식이다. 국내 주식에 투자할 경우 코스피 지수, 코스닥 지수가 대체로 벤치마크다. 가장 ‘안전한’ 투자는 시가총액 비중대로 주식을 분산해서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벤치마크 대비 크게 잘하긴 어려워도 못하기도 어렵다.
국내 대형 기관 투자자의 경우 시가총액 비중 그대로 사진 않아도, 대체로 시가총액 비중을 따져서 주식을 산다. 예컨대 주식 투자에서 삼성전자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관들이 주식을 살 때 일거에 다 사는 게 아니다. 어떤 주식은 줄이고, 어떤 주식은 늘리고 한다. 배터리 종목은 어땠을까. 1~2년 전만 해도 코스닥시장 1등 종목은 셀트리온헬스케어였다. 당연히 셀트리온헬스케어 비중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주가가 급등하면서 코스닥시장을 뒤엎었다. 주가가 폭등할 때 기관이 에코프로 관련주를 많이 샀을 수 있을까? 이미 급등한 주식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갑자기 폭락할 가능성 또한 크기 때문이다. 일단 지켜보면서 조금씩 매수하는 게 폭등 주식에 대응하는 기관의 방식이다. 그런데, 에코프로 관련주는 떨어질 줄 몰랐다. 한마디로 기관에 살 타이밍을 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시가 올들어 계속 올랐으니, 기관들의 ‘성적표’는 벤치마크 대비 좋기 어려웠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기관은 에코프로 관련주를 담아야 했고, 그 담을 시간을 애널리스트가 벌어 줬다는 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애널리스트 진짜 위기, 다른 곳에서 온다
애널리스트가 개인 투자가를 위한 존재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기에 개인 투자가들의 불신이 애널리스트에게 큰 위기로 작용할 리 없다. 사실 애널리스트의 진짜 위기는 그들이 ‘서비스’할 대상인 기관 투자자가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펀드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자산운용사에 돈을 맡기면 크게 불려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스타 펀드매니저들에게 맡긴 돈이 ‘반토막’ 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펀드를 불신했다. 스스로 결정해서 ‘잡주’에 투자해 반토막이 났다면 누굴 탓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수수료로 3~4%나 받아 간 펀드가 반토막이 되는 일이 발생하자, 뭐 하러 전문가에 돈을 맡기나 회의감이 커졌다. 수수료를 많이 준 것은 금융위기 같은 큰 위기도 극복해 줄 것이란 믿음 때문 아니었나.
펀드 전성기였던 2008년 172조 원에 달했던 국내 공모 펀드 설정액은 올 4월 100조 원 밑으로 내려갔다. 특히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많이 빠져나갔다. 같은 기간 80조 원에서 21조 원으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이렇게 공모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상장지수펀드(ETF)로 많이 옮아갔다. ETF는 코스피200처럼 지수를 추종하거나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처럼 특정 산업을 추종하는 게 일반적이다. 주식처럼 거래가 편하고, 공모 펀드에 비해 수수료는 훨씬 적고,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크다. ETF는 자산운용사에서 한번 종목을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가끔 비중과 종목을 바꿔주면 된다. 펀드매니저가 할 게 별로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애널리스트에게 문제다.
펀드매니저들이 할 게 없으니 애널리스트도 할 게 점점 없다. 예전에는 자산운용사를 돌아다니며 세미나를 열고 주식 주문을 받아왔는데, 운용사가 주식 주문을 잘 안 준다. 증권사들이 요즘 애널리스트를 잘 뽑지 않고, 그나마 있는 애널리스트도 줄이려고 하는 게 이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5월 말 기준 국내 증권사 59곳에 속한 애널리스트는 996명에 불과했다. 10여 년 전 1,500명이었던 게 이렇게 줄었다.
미래가 밝지 않으니 애널리스트를 지원하는 사람도 적다. 애널리스트를 하려면 몇 년간 RA(보조연구원)를 거친다. 의사로 치면 인턴 기간이다. RA 기간은 대중없지만 대체로 3~4년은 해야 했다. 요즘은 길어도 1~2년이다. RA를 지원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또 애널리스트가 사모펀드나 일반 기업으로 전직하는 일도 많아 RA를 곧바로 투입하기도 한다. 이 탓에 요즘 분석 보고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불평이 기관 입에서 계속 나온다. ‘기관의 수요 감소→애널리스트 감소→애널리스트 질 저하→기관의 수요 감소’와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래픽: 조주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애널리스트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 예컨대 법인영업, IB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된 리서치로 남는 게 한 방법이다. 바람직한 방향이긴 한데, 돈이 문제다. 애널리스트 분석 보고서, 세미나를 돈 주고 사는 수요가 많아야 가능하다. 수요가 얼마나 많을지 확신은 다들 없다. 거액 자산가를 위한 애널리스트 서비스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신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PB센터 지점에 애널리스트를 많이 투입한다. 애널리스트 월급의 과반도 지점 영업 부서에서 댄다. 문제는 애널리스트가 이걸 싫어한다는 것이다. 꼬장꼬장한 돈 많은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게 여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뚜렷한 해법을 찾진 못한 것 같다.
글쓴이 안재광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현재 유튜브 채널 ‘한경코리아마켓’에서 영상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에서 증권부, 마켓인사이트부, 산업부, 생활경제부, 중소기업부 등의 부서를 거쳤다. 16년간 주요 기업과 주식시장을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다루는 <대기만성’s>, 투자와 자기 계발 관련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더부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충남대에서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미국 조지아대학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연수했다. <슈퍼 개미의 투자 비밀>,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 등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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