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해도 벌써 2월로 접어들었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새해 들어서 포근한 날씨도 많았지만, 눈비도 잦았다. 용의 해에는 풍년이 들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눈이 많이 내리면 밖에도 못 나가고 발이 묶이기도 하지만 창호 문에 박힌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온통 산천이 폭설에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밖에 못 나가는 아쉬움도 있지만, 방에서 멋진 풍경을 앉아서 보는 호사도 누렸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오빠들은 털 잠바를 입고 털 장화를 신고 들판에서 참새를 잡는 기구를 설치하거나 산으로 가서 토끼를 잡기 위해서 덫을 설치하거나 산비둘기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운이 좋은 날은 산비둘기나 꿩을 잡아 오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가끔 먹을 수 있는 귀하디귀한 음식이 산비둘기다. 그런데 여자들은 비둘기 고기를 못 먹게 했다. 왜 여자들은 못 먹게 했는지 모르지만 남성 우월주의 사상이 여자는 귀한 음식을 못 먹게 하지 않았나 싶다.
폭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면 길바닥은 온통 꽁꽁 얼어붙어서 미끄러지기 일쑤다. 아이들이야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미끄럼도 타고 그러면 재미나겠지만 어른들은 골절되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우선 뼈가 쉽게 접합이 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깁스를 해야 한다. 일상생활이 얼마나 불편해지겠는가 말이다. 눈이 내리면 그 순간부터 눈이 많이 와서 쌓였으면 하는 기대 감이 있고 그때부터 설렘이 있는데 막상 결과는 순식간에 사고 뭉텅이가 되기도 한다.
새해가 되면 곧 구정이 돌아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양력설보다는 음력설을 더 많이 쇤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신정은 설 느낌이 덜 난다. 어쨌거나 구정이 다가오면 객지에 나간 가족들이 고향으로 대이동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양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서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도 얼마나 가볍고 신이 날까. 그런데 요즘은 택배 산업의 발달로 미리 택배를 보내고 몸만 가볍게 가면 된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다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는 길은 잘 뚫리지 않아서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즘은 암표도 사라지고 예매하느라 긴 줄을 서는 일도 없고 인터넷을 이용하여 예매하면 된다. 머지않아 고속도로만 뻥뻥 뚫리면 되는 일이다. 그런 때가 곧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이렇게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지만, 고향에 계신 어른과 친지와 지인들을 만나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면서 조상의 뿌리를 알게 되고 기리게 되며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 집안의 맏며느리들은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가장 좋은 식자재를 고르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재래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시장을 본다. 이렇게 준비해 놓으면 자녀나 동서들이 와서 오순도순 음식을 같이 만드는 모습은 명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과거에는 강정이나 유과, 식혜를 집에서 만들었고 손두부를 만들기 위해서 맷돌을 직접 돌려서 만들었으며 가래떡을 뽑기 위해서는 일찍 방앗간으로 가서 불린 쌀을 다라이에 담아서 줄을 세워 놓아야 했다. 설이 다가오면 뻥튀기 아저씨도 동네마다 다니며 뻥튀기를 튀겨 주느라 바쁘다. 그 시절엔 그것이 특별한 주전부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이 다가오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것이 설을 맞이하는 가장 큰 일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음식을 다 준비해 놓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만은 뿌듯해진다. 정성스레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며 오랜만에 묵은 회포를 푸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이런 풍속이 없다면 우린 어떤 핑계를 대며 만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진다. 물론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이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는 명절만은 못할 것이다. 설날이 되면 아이들은 때때옷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도 다니고 또 세뱃돈을 받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어른이 덕담을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벌써 봄의 전령사 양산 통도사의 홍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2월의 중간 즈음에 설날이 끼어 있어서 날씨가 춥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에 설날 아침에 하얀 눈이 펑펑내리면 얼마나 운치 있고 좋을까 싶다. 까치가 나뭇가지에서 울어대고 서설이 쌓인 평화로운 설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