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만물의 기원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이
피를 흘리기까지 성자의 십자가를 충실히 따르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사랑을 형제들에게 전하며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1독서
<그들은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쳤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4,36-37.52-59
그 무렵 36 유다와 그 형제들은 “이제 우리 적을 무찔렀으니
올라가서 성소를 정화하고 봉헌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37 그래서 온 군대가 모여 시온산으로 올라갔다.
52 그들은 백사십팔년 아홉째 달,
곧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 아침 일찍 일어나,
53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쳤다.
54 이민족들이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때 그날,
그들은 노래를 하고 수금과 비파와 자바라를 연주하며
그 제단을 다시 봉헌한 것이다.
55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
56 그들은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친교 제물과 감사 제물을 드렸다.
57 또 성전 앞면을 금관과 방패로 장식하고 대문을 새로 만들었으며,
방에도 모두 문을 달았다. 58 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민족들이 남긴 치욕의 흔적이 사라졌다.
59 유다와 그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온 회중은 해마다 그때가 돌아오면,
키슬레우 달 스무닷샛날부터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 축일로 기쁘고 즐겁게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45-48
그때에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운전 중에 라디오를 통해 “지금 엄청난 화재가 났습니다.”라는 뉴스 속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런 반응일 것입니다.
“아이고, 큰 사건이 또 났네. 빨리 화재가 진압되어서 희생이 없어야 할 텐데….”
그런데 잠시 뒤에 조금 구체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화재는 인천 연수구에 있는 송도 신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말에 저는 “아니, 우리 동네잖아? 잘하면 화재 난 것을 볼 수도 있겠는데?”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뉴스 진행자의 놀라운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인천 송도신도시에 있는 성김대건 성당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때 저는 어떻게 할까요? 그냥 남의 집에 불난 것처럼 생각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맙소사, 우리 성당이잖아?”라면서 속도를 높여 성당으로 빨리 갈 것입니다.
대부분 어떤 사건에 대해 구경꾼 신드롬(방관자 효과)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비로소 구경꾼 신드롬에서 빠져나오게 되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십자가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만 보면서,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도록, 심지어 모든 시간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셨고 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시간 속에 있는 사람 중에는 구경꾼 신드롬에 빠져있었던 바로 ‘나’도 있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나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십자가가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까? 나와 너무 깊은 연관이 있는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뜨겁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끝이 없는지는 ‘나의 주님’이라고 가슴 깊이 고백할 때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나와 연관 깊은 분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속적인 부분으로만 연결하려고 합니다. 과거의 이스라엘 사람도 그러했습니다. 성전에 있으면서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았지요. 그래서 성전을 세속적인 물건들이 파는 곳, 장사하는 곳, 심지어 하느님께서 가장 아끼는 약자를 오히려 소외시키는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곳이고, 이 성전에서 우리 역시 거룩해지기 위해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만나는 장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때 성전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곳임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와 연관 있을 때 가장 큰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의 명언: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했으며,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한스 큉).
사진설명: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