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211회 한림원탁토론회 개최, 영재교육 미래방향 모색
|
6월 14일(수) '영재교육의 내일을 생각한다'를 주제로 토론자들이 토론 중이다. |
올해로 국내에 첫 과학영재 교육기관이 설립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양적 성장을 거듭하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산실로 불렸던 영재학교와 과학고가 수도권 쏠림현상과 선발 과정에 과도한 사교육 의존도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6월 14일 ‘영재교육의 내일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제211회 한림원탁토론회를 열고, 현재 영재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영재교육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욱준 한림원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과학고나 영재고 학생들 8명 중 1명이 의대에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 중요성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기초과학이 외면받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영재교육이 미래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과연 새로움과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고 선발해 왔는지,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 대응하여 영재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토론회에서 영재교육의 현재를 점검하고 향후 과제를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우리 영재교육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첫 순서로 권길헌 KAIST 수리과학과 명예교수가 ‘우리 영재교육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권 교수는 “지난 40년간 우리 영재교육은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어서 2022년 기준으로 영재고 8곳, 과학고 20곳을 포함하여 총 1,486곳의 영재교육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만 8,340명의 전문교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초중고 학생 수의 약 1.37%에 해당하는 7만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며 “이런 양적 변화는 여러 지표에서 2013년 첫 30년 동안 점차적으로 증가하다가 그 이후 현재까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권 교수는 다른 한편으로 우리 영재교육의 여러 지표에서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1989년 우리나라를 포함한 6개국 13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제 표준수학 평가에서 한국은 압도적인 점수로 1등을 했고, 미국은 압도적인 격차로 꼴등을 했다. 하지만 그때 자신이 ‘수학을 잘한다’고 대답한 미국 학생이 63%인데 비해 한국은 23%에 불과했다는 것. 권 교수는 “미국은 자존감을 북돋는 교육을 유지했기 때문이고, 한국 학생들은 심리적 패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작년에 블룸버그 통신 보고에 의하면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교육 투자 가성비가 가장 나쁜 나라로 꼽혔고, 인력의 지적 능력이 가장 빠르게 감퇴하는 나라가 되었다며 그 이유를 “블룸버그 통신이 지속적 학습 부족과 자율성 부족, 사교육, 황금티켓 증후군 등으로 지적했다. 여기서 황금티켓은 SKY대학을 위한 경쟁이다. 이런 것들이 배후에 깔려있다고 분석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 조선일보 역시 ‘이공계 서약한 과학영재의 의대 열풍’이라는 보도에서 과학영재들 8명 중 1명 정도의 비율로 의대에 진학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지금의 우리 영재교육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노출하고 있다며 권 교수는 “지난 40년의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되돌아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 영재교육인가? 수월성인가? 형평성인가? 이 두 개념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인가? 영재들은 자신의 잠재능력에 충분히 도전적인 학습경험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또 우리 사회는 영재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권 교수는 “좀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권길헌 KAIST 수리과학과 명예교수가 발제 중이다. |
과학영재 발굴, 양성의 경험과 대안
두 번째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과학영재 발굴·양성의 경험과 대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우리 사회의 영재에 대한 관심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교수는 “영재나 신동은 과학 분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1980~90년대를 지나오면서 영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열풍을 일으켰고 그것이 제도에 반영되어서 다양한 영재교육 기관들이 생겨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원동력에 대해서는 “1970년대 중고등학교 평준화에 대한 반발로, 과도한 평준화에서 발생하는 아쉬움, 목마름, 이런 것들이 영재 열풍을 증폭시켰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영재 선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영재교육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올림피아드다. 이를 우리 언론에서는 국제적인 영재 경연대회, 국제 과학영재 두뇌올림픽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올림피아드 목표 어디에도 영재 경연장이라는 건 없다. 우리나라가 화학, 물리올림피아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국제영재경연대회로 탈바꿈됐다. 우리 교육학계도 뒤늦게 영재교육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영재교육기관이 크게 늘어나면서 사교육 시장도 급속도로 늘어나게 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또 이 교수는 “기성 과학자들 중에 어렸을 때 영재였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변 동료들 중에서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왜 마치 과학기술을 살리기 위해서 영재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와 사회가 나서서 열풍을 일으키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영재’가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는 폐해가 많다. 언론이나 상업적인 이유로 아이들의 재능에 대한 과도한 상업적 활용은 제한해야 한다. 인권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그리고 전문가 이기주의도 극복해야 된다. 영재교육이 필요한 것인지, 영재교육 전문가의 일자리가 필요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직격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영재학교를 없앨 것을 제안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이름에 영재학교라고 박아놓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반 학교가 둔재학교 같은 느낌을 준다. 왜 영재학교를 만들어서 불필요한 우월감을 갖게 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촉발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그렇게 차별하지 말고 같은 학교 내에서 교사들이 잘하는 아이들을 선정해서 속진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우수한 학생은 좀 더 빠르게 월반을 할 수 있는 수준별 교육을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가 발제 중이다. |
AI시대의 영재교육 패러다임은?
세 번째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이 ‘AI시대의 영재교육 패러다임’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소장은 “자기주도 학습을 해야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 공교육 체제에서 스스로 아젠다를 발굴하거나 자신의 주제나 관심사를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발굴해서 그것을 주도적으로 탐구하고 해결하는 진정한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주어진 시험 범위 내에서 잘 숙지하고 멘탈관리를 잘하고 자기 관리 잘하는 학생들이 자기주도 전형에 뽑히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래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공부논쟁」이라는 책에서 김대식 서울대 교수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시험을 잘 보는 사람들에게만 과학을 맡겼다. 그 결과로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발견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말을 인용했다.
이 소장은 자신의 책 「대한민국의 시험」과 「IB를 말한다」에서 평가 패러다임을 좀 다른 방식으로 바꿔볼 것을 제안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매경과 카이스트 공동기획으로 국제 공통 대학입시 자격시험인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모의시험을 치러봤는데 우리 공교육에서 1등급 학생이 IB에선 하위권으로 나오기도 하고, 우리 학교에서 성적이 나빴던 학생이 IB시험을 의외로 더 잘 보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우리 1등급이 세계적인 경쟁력은 별로 없는 1등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빠르고 실수 없이 계산을 요구하는 수학 문제 등으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시험문제 자체를 시대에 맞게 바꿔야 하고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이 교수는 “속도보다 역량을 길러야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우리는 역량이 아닌,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전력질주를 시키는데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빠져있다. 유명 수학자들도 못 푸는 문제를 우리 학생들은 풀어낸다. 그리고 우리 영재들은 어떤 조건들을 주면서 어떻게 해석하고 분석하는지를 따진다. 이는 선행 진도를 많이 나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것도 기획할 수가 없다”며 “완전히 높은 수준의 영재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일을 찾으려 하는데 중간 정도의 관리자급으로 잘하는 학생들은 기존에 있는 것을 조합해서 뭔가를 창출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이 소장은 “교육 패러다임 혁신 방향을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서 그 지식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제와 아젠다, 자신의 관심사를 어떻게 꺼내는지에 대한 ‘꺼내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된다. 결과를 선행하는 교육이 아니라 과정을 탐구하는 교육으로, 문제 해결력을 넘어서 문제 발굴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지식 소비자를 넘어서 지식 생산자를 기를 수 있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며 “영재는 경쟁과 배타, 서열만으로 길러질 수 없다. 협력과 포용, 공생도 같이 교육되어야 한다. 결국 정해진 정답을 잘 아는, ‘만들어진 영재’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야 한다. 자신만의 질문과 다양한 답을 수용할 수 있는 패러다임으로 가야 된다”고 주장했다.
패널토론, 과학영재교육의 빛과 그림자는?
주제발표 후에는 김종득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하고, 송용진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와 안현실 한국경제 AI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정현철 KAIST 과학영재교육연구원 원장,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 등이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과학영재교육의 빛과 그림자, 국가 영재교육 혁신 방안, 현행 영재학교 선발제도와 운영 등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송용진 교수는 “전국에 20개의 과학고와 8개의 과학영재학교가 있다. 이 두 학교의 ‘차별’로 인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학생 선발의 방식과 대상자에 있어서의 차별 때문에 일부 과학고만 1류 영재학교로 인식되고 그 외의 영재학교와 과학고들은 2류, 3류로 치부되는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차별을 없애고 너무 많은 과학고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과학교육 관계자들의 영역 이기주의가 심하다”며 “과학영재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영재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다. 수학영재와 과학영재는 교육의 방향과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안현실 논설위원은 “현재 영재교육의 문제점을 넘어설 정도로 시대적 변화가 엄청나게 몰려오고 있는 우리는 거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추격형 시대에 설계된 영재교육으로는 시대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인구 증가시대에 설계된 영재교육은 인구 절벽시대에 맞지 않는다. 인구 감소시대에는 모든 아이들을 영재로 키울 수 있는 영재교육의 보편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AI시대가 도래했다. 도전과 실패가 필요 없는 일과 예측 불가능하고 도전과 실패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일로 나뉜다면 영재는 더 예측하기 어렵고 더 난이도가 높은 도전과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일을 맡아야 한다”며 “이제 영재교육은 AI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현철 원장은 영재교육 목적의 재정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목적은 특수교육의 일환인 재능교육과 국가 발전을 위한 인재육성으로 이중적인 것이 문제다. 현대적 의미의 영재는 단기간 판별이 불가능한데 우리는 지난 20년간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을 타당성 높은 방법보다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는 방법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단기간 경쟁적인 선발환경에서 사교육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잘못된 질문으로 잘못된 해답을 찾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재 내에서도 수준 차이가 매우 큰데도 ‘영재’라는 타이틀을 위해 경쟁적으로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영재 선발보다는 교육에 중점을 두어서 영재교육의 질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수일 센터장은 “통계에 의하면 영재학교 입학을 위한 사교육비가 월평균 200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가의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영재학교 입학은 꿈도 꿀 수 없다. 즉 영재교육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교육이 필수라고 볼 수 있으며, 사교육에 의해 길러진 영재를 우리는 국가 예산을 들여 높은 수준의 영재교육을 제공하고 각종 혜택을 주고 있는 것으로 이는 영재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 센터장은 영재교육 대상자 선정 시 지필고사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선발과 교육을 분리하며 별도의 교육 없이는 사회적으로 적응 불가능한 영재 또는 소외 계층 영재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영재학교는 SKY 진학보다 카이스트 등 과학기술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