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모 신학대학이 신학기를 맞아 전공 선택과목으로 새로 개설한 'NGO 선교'에 걸맞는 강사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고심 끝에 대학시절 교회의 지도교사였던 K선배를 추천키로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른바 KS 출신인 K선배를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라고 생각했었고, 학사편입했던 연세대 신학과와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던 그가 캐나다에 유학하여 토론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한편 미국 장로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미국에서 10년 이상 목회를 하다가 작년에 '굿네이버스' 연구실장으로 돌아와 NGO선교의 최일선에 서있는 분이니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할 밖에 없었다.
신학대학 측에서도 대환영이었다. 추천을 하자마자 같이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학장과 교무처장을 함께 만났을 때의 그들의 태도를 보면 곧 알 수 있는 일이었고, 학교측은 강사에 불과할 K선배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며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나역시 훌륭한 분을 추천했다는 만족감에 괜히 우쭐하기도 했다.
그러던 7월 어느날 K선배가 연락을 했다.
"내가 8월말과 9월초에 3주간에 걸쳐 국제회의를 가게 되어 강의를 서너차례 빼먹제 생겼으니.....학장과 상의해서 시간표 조정을 해주게......"
친구인 학장을 만나 사정 얘기를 하고 시간조정을 부탁했으나 워낙 공사다망한 이 친구는 그 요청을 그만 잊고 말았다. 까맣게 잊은채 새학기를 맞아 곤란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 두사람....그 두사람은 나를 다시 찾았고 나의 제안으로 시간표를 조절하게 됐다.
학사력을 살펴보니 강의 땜빵은 세번이면 됐다. 나는 두번을 특강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NGO선교 현장에 있는 분들을 찾아서 땜빵하자고 했다.
8월 31일의 첫수업은 당연히 K선배가 하고(힘들다고 했지만 새로 개설한 강좌의 첫수업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는가?),
9월 7일의 두번째 수업은 울산에서 목회를 하는 월드비젼 소속의 북한선교 전문가 목사님을 다시 추천하여 하기로 했다.
9월 14일 수업까지 땜빵을 해야 하는데, 이 수업이 문제가 됐다. 내가 몽공 출장을 가버리는 바람에 땜빵강사 추천을 하지 못했는데도 학교측에서는 어...어...하며 시간을 끌다가 땜빵요청에도 필요할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서 수업이 펑크가 날 지경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그건 솔직히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강사를 내가 추천했고, 그 강사가 시간을 비울 수 밖에 없다길래 K선배를 봐서 땜빵 추천을 해주기로 했던 것인데 그걸 내가 못했으니 모른 척을 할수가 없다.
도리없이 내가 땜빵질을 하기로 했다.
강의를 안해본 것도 아니고, NGO '선교'라고는 하지만, 신학자나 목사의 입장이 아닌 평신도의 시각이나 접근 역시 중요하고, 나의 경험이나 경력으로 봐서 못할 일이 아니다. 급하게 수업준비를 하는데, 몽골 출장의 여파도 있고, 밀린 일도 많은 데다가, 화필이면 목요일 오후 3시 50분부터 180분 수업이니 골 때리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매한 신학자, 목사들이 기독교적 언어나 윤리적 뽄새를 지닌채 우아하고 신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강의를 했을 텐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텐데.....그런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니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나를 감추고 속이며 강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원래 내 스타일대로 해야 하는데, 그 스타일이란 것이 신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그 강좌 강사인 K선배에게도 누를 끼치고 학장에게도 누를 끼칠 것 같아 걱정이다.
수업준비를 별달리할게 없다는 게 위안이긴 하다. 내가 단국대학교 특수교육대학원과 교양학부에서 가르치는 과목에서 내용을 퍼오고, NCC와 KMC의 선교위원을 하면서 배우고 느끼고 고백한 내용을 비비면 될 일이니 말이다.
아무리 땜빵이지만, 어쨌거나 신학대학의 전공과목 강의는 처음이니 아연 긴장이다. 점심 때 나가서 낮술 한잔 걸친 후에 갔으면 좋겠는데, 그 학교가 골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학교이니 그것도 불가하고, 뽕을 해? 떨을 해?........
첫댓글 아주 술에, 뽕에, 떨까지 몽땅해보시지....땜빵인데 못하면 빵되는거구.... ^^
아주 근사한 사건 하나 생기겠구나~~~음주강의는 비단속 대상이니 고것만은 선처해 주겠지...ㅋㅋㅋ
박카스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던 스승이 계셨는데... 네덕에 그분모습이 그려지는것 같아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