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 저 [라틴어 수업]을 읽고
책이라면 스릴러 소설류 외에는 좀처럼 읽지 않는 저는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고 [장미의 이름]과 같은 중세 시대의 스릴러 소설을 기대했으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아! 망했다. 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한 챕터 읽고 밀어두고, 또 한 챕터 읽고 밀어두기를 서너 번쯤 반복했는데, 어느 순간 재미있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부분들을 인용하며 공유하겠습니다.
66쪽. 삶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메리툼(meritum)과 데펙투스(defectus)를 묻고 선택하는 과정(중략)
살다 보면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또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자신의 장점이고 단점인지가 아니며, 어떤 환경에서든 성찰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이 좋았던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교직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대할 때 함부로 장단점을 규정하거나 섣불리 재단할 수 없다는 점을 늘 마음에 새기라고 저에게 하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86쪽. 그냥 “쌩 까”.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구분해라. 주변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하라는 내용이 좋았습니다. 멀리는 외교, 국제 정세, 방역, 환경 문제부터 가까이는 잘 모르면서 교사를 욕하는 사람들까지 내맘같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사기가 저하되는 요즘, 마음에 와닿고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118~121쪽. 도 우트 데스 Do ut des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
요즘 말로 기브 앤 테이크. 얼핏 잘못 생각하면 개인주의라는 둥, 정없다는 둥 하며 폄하할 수 있는 말이지만, 사실은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할 “상호주의 원칙” 임을 잘 설명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마치 유럽 등 서방 세계에서 무슬림을 부당하게 차별하여 그들이 반기를 드는 것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 필리핀 이주민 300만 명이 청원한 교회 건립을 부결시킨 것이 현실이라는 점. 즉, 인정받고 싶으면 먼저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호주의 원칙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183~184쪽. 티라미수 Tira mi su 나를 위로 끌어 올리다
티라미수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이름에도 나와 있듯이 당연한 거였네요.
210쪽. 베니, 비디, 비치! Veni vidi vici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국내 화장품 브랜드 중에 비디비치가 있는데, 여기서 따 온 거였군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님이 론칭한 브랜드인데 보았노라, 이겼노라 라는 뜻이 담겨있는 줄 몰랐어요.
214쪽.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지금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더 성숙해진 다음 이 책을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부분들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겠지요? 마치 [어린 왕자]를 아이 때부터 읽었지만 성인이 되어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것처럼요. 다음에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을 때에는 어느 만큼 더 보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처음 교감 선생님께서 이 책을 주시면서 2주 안에 독후감을 올리라고 하셨을 때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는데, 작가님이 저 같은 사람을 위해서 쉽게 글을 쓰셔서 다행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많이 배우신 분이라 다르시네요. 감사합니다.” 라고 작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독후감 숙제는 끝~~! ^^
첫댓글 전문성과 인격과 교양을 위한 길이니 주저없이 계속 가시죠!^^
넹~~~ ㅎㅎ
교감선생님과 연구회가 아니었다면 저 혼자서는 사서 읽지 않았을 책이예요.
선물로 주신 덕분에 잘 읽고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