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는 마음이 굳어지는 계기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매우 심각한 하루였던게 분명하다. 팀원 모두 내 말에 집중했고 또 재미있어 했다. 유독 그녀만 도드라지게 굴었다. 주변에서 내 마음을 읽은 몇이 눈치를 살폈지만 무슨 일인지 그녀의 말이라면 대체로 수긍하고 따르는 쪽을 택했다. '나이가 한 두 살 위라서 그런가?' 그런데 그들은 동갑이었다. 그래도 며칠 지나고 생각해보니 남자인 내가 지나치게 속이 좁았던 게 아닌가 하고 모임을 계속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그만 노트 한 권이 돌고 있었다. 바로 내가 외면하고 지내는 K의 것이었다. 그렇지만 '뭐, 그게 별 것일까'하고 무관심했는데 점점 내 눈앞까지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랑 가까운 또다른 K가 그 노트를 내게 펼쳐보이게 됐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다. 10여년 전부터 간간히 메모해 둔 형식에 불과했다. 그래도 넘겨 받아서 정리해 보았다. 卒壽에 가까운 노파의 마음에 따순 눈길이 갔다. 남편과는 삼년 전에 死別하고 막내아들이 거두고 있었지만 독거노인이라는 편이 알맞았다. 다행히 남편이 남겨 둔 재산으로 빈촌에서 큰소리 치며 살 수 있게 됐다. 비록 주변 아파트 값에 반의 반에도 미치지 않는 1억에도 미치지 않는 연립주택 3층이라 노구를 이끌고 오르내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다들 같은 처지이니 온전히 빚 없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못한 팀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