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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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활짝 열고 왕을 영접하라
시 24:1-10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 분명히 주님께서 그 기초를 바다를 정복하여 세우셨고, 강을 정복하여 단단히 세우셨구나.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깨끗한 손과 해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주님을 찾는 사람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이다.(셀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힘이 세고 용맹하신 주님이시다. 전쟁의 용사이신 주님이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만군의 주님, 그 분이야말로 영광의 왕이시다.(셀라)
우리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믿고 만 왕의 왕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엄청난 것입니다.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도 삶의 변화가 없는 교인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리적으로 믿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천지를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왕되신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찬양입니다.
저는 이 시편 24편을 묵상하면서 놀라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다윗은 하나님이 창조주요 왕이심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라고 7절부터 시작되는 표현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학적인 상상력이 아닙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뵙지 않은 사람은 쓸 수 없는 표현입니다.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기록도, 사도 바울이 회심할 때 기록도 분명히 왕이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나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시편 24편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찼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왕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부흥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알 수 없는 흥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리적으로만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주요, 만 왕의 왕이라고 믿지 않고, 정말 왕이신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놀라운 삶을 살게 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오늘 본문을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올 때, 너무나 기뻐서 아이처럼 춤을 추며 불렀던 노래라고 해석합니다.
삼하 6:14 다윗은 모시로 만든 에봇만을 걸치고,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힘차게 춤을 추었다
당시 다윗의 행동은 사람들의 눈에 비정상이었기에 아내 미갈이 비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1절의 다윗의 고백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다 주님의 것, 온 누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모든 것도 주님의 것이다” 라는 고백이 단순히 교리적인 지식이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고백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려고 애를 쓴 사람이 아닙니다. 부귀를 탐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복을 엄청나게 많이 받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목동의 신분에서 왕이 된 것 말고도 말년에 하나님의 성전 건립을 위해 바친 재물의 양을 보면 어마어마했습니다. 역대상 29장에 보면 성전건축 헌금으로 금 3천달라트, 은 7천달란트를 바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금만 따져서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2조원 가까운 돈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재물을 인색한 마음이 없이 기꺼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1절의 고백처럼 다윗은 정말 천지와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도 다윗 처럼 믿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 인생이 바로 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왕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3절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 거룩한 곳에 들어설 수 있느냐?
4-6절에서 여러 가지로 묘사했습니다.
손(행실)이 깨끗하고, 마음이 해맑고, 헛된 우상에게 마음이 팔리지 않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았고,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주님을 찾으며,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
이러한 세세한 언급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찬 사람입니다.
시 84:5-7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2012년 1년 만이라도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 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입니다. “마음을 다 하라!” 그래서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왕이신 예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왕으로 모시면 어떤 마음이 되는 것일까요?
오늘 시편 24편 7-10절에서 저는 노래를 듣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심정을 찬양으로 다같이 한번 느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편으로 찬양을 만든 것이 있습니다.
■ [문들아 고개 들어라]
문들아 머리 들어라 들릴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 들어 가시도록
영광의 왕 들어 가신다 영광의 왕 뉘시뇨 강하고 능하신 주로다
전쟁에 능하신 주시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왕께 만세 왕께 만세 당신은 영광의 왕이라 다 찬양 위대하신 왕
여러분, 어떠십니까? 시편 24편은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할 성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슴으로 읽고 느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감동이 있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성령님이 계시다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다윗 처럼 춤을 추지 않았어도 마음 안에 무엇인가 뛰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더 하소서! 다윗 같게 하소서!”
주님은 우리가 진정 원하면 우리에게 다윗 처럼 이사야 처럼 스데반 처럼 사도 바울 처럼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신 하나님을 모시기 원하십니까? 마음을 활짝 열고 왕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시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의 아들을 랍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랍비가 아이에게 질문을 합니다.“얘야,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 네가 나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말을 해 준다면 동전 한 개를 주겠어.” 이 랍비는 아이가 설마 이처럼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 대답합니다.“선생님, 제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시면 저는 선생님께 동전을 두 개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하나님이 어디에 안 계신가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아이의 깨끗한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장소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는데, 죄 많은 어른의 마음은 하나님을 찾기 어렵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왜 좁디 좁은 우리 마음에는 못 들어오셔서 안타까와하시는 것입니까? 천군 천마를 동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마음을 열어야 들어오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놀라운 신비인 것입니다.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임하지 못하시는 영역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 만큼은 우리가 하나님께 열어드려야 들어오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마음만큼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딸도 어느 정도 크면 방문에 <노크하고 들어오세요> 하고 붙여 놓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마귀를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타락한 이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나, 우리가 스스로 예수님을 마음에 왕으로 영접하기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은 마음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기만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온 우주에서 오직 인간 세상만 하나님께서 당분간 왕노릇하시는 것을 보류하고 계신 영역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인간의 마음만이 하나님이 임의로 다스리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만왕의 왕이 들어가시는데 누가 문을 닫아 놓겠습니까? 왕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왕이 없이 사는 것이 자유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죄와 육신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그 헌신을 마귀에게 바치게 될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이 왕이어야 우리가 죄와 육신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문을 열어도 그저 문을 여는 정도가 아닙니다. 왕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사위나 며느리가 와도 목사님이 심방 와도 문을 활짝 여는데 왕이신 주님이 오시는데 당연히 문을 활짝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찬양만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찬양 속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염려나 두려움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슬픔이나 낙심과 절망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림자도 없습니다. 담대함과 기쁨과 확신이 넘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의 왕으로 믿는 성도의 삶의 분위기입니다.
큰빛교회 부흥회, 한 집사님, 늘“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는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는데, 이번에 자신의 잔이 이미 넘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눈물로 고백하였습니다. 재정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형편인데, 가만히 살펴 보니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도 많더랍니다. 예수님 한 분 만으로도 이미 넘치고도 넘치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7/4 짜증내지 말라
짜증(신경질, 분노, 불평)이라는 것은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압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기 바랍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 안에서 참고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혼란과 역경 속에서 참으로 주 안에서 안식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얻는 것은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 평안은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짜증을 내며 신경질을 내는 것은 언제나 죄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걱정하기도 하고 짜증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악한 지를 말해줍니다. 짜증은 바로“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한 번도 걱정하거나 짜증내신 적이 없으셨습나다. 그 이유는 그 분이 이 땅에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짜증(걱정, 신경질, 염려 등)을 낸다면 이는 악한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에도 벅찰 것이라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모든 어리석은 생각은 다 접고 전능자의 그늘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으며 짜증내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와 신경질은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기에 발생되는 문제들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왕이 되시면 온 세상의 하나님이 왕되심이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죄와 육신의 종노릇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제 마음에 예수님이 왕이 되시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에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