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에게서 겸손을 배우는 지혜
아침마다 동네 배드민턴장에 나가 운동을 하노라면 거북한 경우를 자주 겪는다. 겨우 초보수준을 면한 정도인 사람이 한참 고수인 나에게 감히 훈수를 하려들기 때문이다. 훈수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때로는 핀잔을 주는 무례를 범하기도 한다.
배드민턴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얼핏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고 열심히 치다보면 금방 잘 칠 수 있을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배드민턴만큼 기술과 체력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운동경기도 없다. 여러 가지 운동을 접해본 경험으로는 가장 감각적인 운동신경이 필요한 운동이 배드민턴이다.
상대를 꺾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
그런데도 단지 셔틀콕을 좀 받아친다는 한 가지 능력만 가지고 게임(주로 복식경기)에 나서서 상대 팀을 이기지 못해 안달하는 것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팀 전술을 무시한 채 개인전술만으로 어찌해보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팀 동료를 향해 어처구니없는 주문을 일삼기 일쑤다.
예를 들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라.’ ‘드롭샷을 했으면(그들 표현을 빌면 앞에 놓았으면) 네트 밑으로 들어가 자기가 받아야 한다.’ 등이다. 교본에도 없고 실전지침에도 없는 이러한 엉터리 팀 전술이 어디에서 비롯됐으며 어떻게 전국의 동호인들의 금과옥조가 됐는지 알 길이 없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경기 매너는커녕 경기 규칙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구력 5~6년인 것을 자랑으로 내세운다. ‘퍼스트 서브’를 ‘원 서브’라고 편하게 부르고 있는 것은 눈감아줄 수 있으나 셔틀콕의 비행고도와 각도로 보아 분명히 세이프인데도 ‘왜 아웃을 받느냐’고 또 핀잔이고 보면 같은 편이면서도 미운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팀 경기의 경우 무엇보다 팀원 간의 호흡이 우선인데 아예 남과 어울릴 줄을 모르니 자기 멋에 홀로 취해서 경기를 망치게 된다.
관찰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자수성가한 분들’, ‘일시적 불운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분들’, ‘소규모 1인 기업을 영위하는 분들’에게서 이러한 이기적 행태가 두드러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믿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고, 모든 일을 자신이 챙겨야 하며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는 지나친 독선이 원인인 듯싶다.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느끼지도 못하기에 일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행태, 그것은 아류(亞流)의 전형에 다름아니다. 아류는 아예 삼류(三流)만 못하다는 게 정평이다. 삼류는 스스로 일류가 되지 못함을 인식하고 일류를 경외하며 본받으려고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나, 아류는 일류가 아니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 일류를 향한 통로를 봉쇄해버리기 때문이다.
삼류만 못한 아류의 인자
아류는 일류를 추월목표나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타도하고 진멸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본래 위치인 삼류를 대할 때는 얕보고 멸시하며 심한 경우 적대시한다. 그래서 항상 앞서가는 사람을 시기하고 흠잡고 매도해야 직성이 풀린다. 을(乙)의 설움을 겪어본 사람이 더 갑(甲)행세를 하는 모습,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사회 단면상 아닌가 싶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적 불안은 일류도 삼류도 아닌 아류들의 준동에서 비롯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국민을 어버이처럼 섬긴다고 떠벌이는 아류 정치인, 청렴 공직자인 체하는 아류 출세자들, 정의를 들먹이는 아류 법조인들, 양식의 본산이라고 자처하는 아류 학자들, 팩트를 쫓는다면서 편파성에 함몰된 사이비 언론인들, 전문가 행세를 하는 어설픈 조언자들, 순수성을 잃어버린 아류 예술인들, 세금을 많이 내는 애국자라며 으스대는 졸부들의 날뜀이 사회를 혼탁케 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의 어지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막말을 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고집을 피우며 상대방의 허물만 탓하고 자신이 최고의 적임자라고 우쭐대며 오로지 권세와 자기욕심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에겐 분명 그의 피 속에 아류의 인자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최병요 시니어기자
첫댓글 일류에게서 배울 게 있다면, 아류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군요~
김영희 기자님~ 어설픈 아류보다 삼류의 겸손함이 더 값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데, 필력의 부족으로 약간의 오해를 샀군요. 애써 써주신 댓글 엄청 고맙게 받습니다.
@서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뜻은 타인의 잘못된 점을 보면서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댓글을 쓴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11 22:05
최기자님 글잘 읽었습니다
운동을 즐기는 사람을 신사라 칭했는데 요즘은 이기고 지는데 존심을 다 걸은것 같아요 우리민족이 혹여 아류인자 민족은 ?
구춘지 기자님~~
기자님의 놀라운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입니다. 항상 정곡으로 글쓴이를 북돋우시는군요. 늘 부러워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립기도 하구요~~.
최기자님의 칼럼 잘 읽었습니다.
이시대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일류의식 아류의식의 행태들을 잘 꼬집어 주셨네요.
통쾌합니다.
최기자님 진정한 칼럼니스트입니다.
많이 배웁니다.
방기자님~~, 어줍잖은 글을 이다지 추켜세우시니 민망합니다.
안산의 '새 둥지' 모음과 '시비와 문학비' 순례로 모두를 감동시키시더니 이제는 댓글로
또 통쾌함을 내뿜으시는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 잘 봤습니다~!
아직 글 쓸 계제가 못됩니다만 강 대리님의 재촉에 못이겨 '넉두리' 올렸습니다.
혹 양이 차지 않으시면 다시 작성해서 올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8.11 08:40
이글을 읽으면서 문득 손자한테서 80세 할아버지도 배운다 이말이 떠오르네요.
유식하다고 지식이 많다고 과태를 부리는 사람도 많은 세상이지요.
성격에서 오는 과민성을 생각해 봅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 어린 사람에게서도 그 사람들에게서도 유식한 사람 보다 겸손한 미덕이 있는 경우와 인성을 생각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모자란 생각으로 번거롭게 해드란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릎썼사오니 부디 너그러이~
암튼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순이님~~
깨우침의 글 잘 읽었습니다.
지혜로운 삼류편에 줄서기 한표합니다.ㅎ
오기자님~~
깨우쳤다는 말씀 과분합니다. 읽어주시고 관심보여주신 댓글만으로도 고마움이 넘칩니다. 부디 좋은 글벗이 되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