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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 칼럼] 다시 보는 청년경찰 ‘혐오’ 판결, 톺아보는 대림동 이야기
지난 2020년 법원은 영화 ‘청년경찰’ 제작사에 “중국 동포에 사과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이 판결은 영화, 미디어, 언론의 외국인 집단에 대한 이른바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제작사의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으로 소송은 마무리되었지만, 지연된 판결 시점과 지속되는 ‘표현의 자유’ 논란 속에서 그 의미는 퇴색되었다. 영화 배경인 서울 대림동, 중국인 10명 중 7명이 이주민이자 동포인 조선족이지만, 이들에 대한 불온한 낙인은 그대로다. 국내 내국인 범죄율은 외국인 범죄율의 두 배 이상이다.
그럼에도 체류 외국인, 특히 조선족이 다수인 대림동은 외국인 범죄의 온상이라는 눈초리를 여전히 받고 있다. 다문화가 공존하는, 이색 먹거리 맛집이 즐비해도 ‘혼자 가면 위험한 곳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는다. 동포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한국 사회의 고강도 육체노동 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이 노동의 대가로 이 사회에 다시 돌려주는 세금 따윈 이야기조차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 공간을 차지한 이주노동자이자 동포들이 만들고 있는 ‘다문화’를 인정하고 제대로 봐야 할 때다. [편집자 주]
✔ 30여 년 한국 이민 역사의 산증인 ‘조선족’에 대한 우리의 태도
✔ 이름은 ‘동포’… 적은 임금의 고강도 노동으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현실 외면
✔ 관절약 파는 8번 출구… 노동하는 ‘고단한 몸’의 현장
✔ 일만 잘해주는 ‘착한’ 이주민을 요구하는지 자성할 때
✔ 체류 외국인 200만 명, 다문화적 시민의식 점검 필요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대림역 앞에서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동포와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롯데엔터테인먼트)
체류 외국인 200만 명. 90년대 초 산업연수생제도 실시와 함께 외국인 인력이 유입된 지도 30여 년, 한 세대가 훌쩍 지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선언 이후로도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양적 성장만큼의 ‘질적’ 다문화 사회에 도달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매스컴에서 익숙하게 들어 온 용어이지만 ‘다문화 사회’가 무엇인지, 다문화적 시민의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이주연구가이자 인류학자인 김현미는 그의 저서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2014)에서 일찍이 한국 사회에 “다문화적 시민의식”이 요청되며, 이것은 “동시대에 비슷한 삶의 열망을 갖고 사는 내 옆의 이주자와 얼마나 공정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사유하는 (선주민의) 능력”이라고 했다. 인구 급감에 대한 대안으로 ‘이민’이 거론되며 재외동포청이 설립되고 이민청 설립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늦었지만 이러한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공유해야 할 시점이다.
수도권 대표 중국 거리 ‘대림(大林)’. 이곳에는 한국인에게 낯선 먹거리와 볼거리, 무엇보다 ‘동포이자 이주민’인 중국 조선족의 다른 듯 같은 일상이 있다. 이곳의 사람, 공간의 문맥을 짚어보며 다문화적 시민의식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한번 그려 보고자 한다.
사람: 동포 그리고 이주민
지하철 2, 7호선 대림역, 행정구역상 대림2동에 위치한 중국 거리는 국내 최다 체류 외국인(약 43%)인 중국인 국적자의 최대 집거지다. 또한 마라탕, 꿔바로우, 지삼선, 만두 등을 파는 ‘중국식’ 중국 식당이 즐비한 먹거리촌이자, 핸드폰 가게, 여행사, 학원, 부동산, 식품점 등 이주민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다.
이곳은 ‘옌변 거리’, ‘동포 거리’, ‘차이나타운’ 등으로도 불린다. 2000년대 초중반 편리한 교통, 저렴한 주거지, 인력시장으로 중국 조선족들이 형성한 에스닉 커뮤니티 공간인 이곳에 중국 한족들이 모여들면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체류 중국인 중 조선족 비율을 고려하면 여기를 들고나는 중국인 10명 중 7명 이상이 조선족이지만 이 거리의 이름이 다양하듯, 이들은 동포나 중국인 각각이 아닌 동포이면서 중국인이기도 한 다중적 정체성을 갖는다.
중국 조선족은 이주 인력 유입이 시작된 1990년대 초 이전인 1980년대 중후반부터 ‘동포’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포나 이주자와 달리 유사 남한어를 사용한다는 이점으로 수도권 이남의 농업, 제조업보다는 수도권의 건설 현장, 식당, 가사 노동 및 간병 등을 하며 한국인의 일상을 유지하는 일에 종사해왔다. ‘동포’라 불리기도 하지만 선진국에서 온 재미·재일 교포와 달리, 2007년 방문취업제 실시 전까지 연고 없는 조선족 상당수는 법적 테두리에서 배제된 미등록노동자로 일했다. 방문취업제 실시 이후에도 직종이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비전문직으로 제한되어, 상습적 입금 체불 및 고강도, 저임금 노동 조건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사실상 30여 년 한국 이민 역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대림동 중국 거리 전경 (사진: 이미애)
오랜 이주 기간만큼 부모의 노동으로 공부한 자식 세대는 중국, 한국 그리고 제3국의 전문직 종사자나 자영업자가 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재외동포(F4), 방문취업(H2), 영주(F5), 방문동거(F1) 및 거주(F2), 결혼이민(F6), 유학(D2), 단기종합(D3), 기술연수(D3) 등 비자 수만큼 다양한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제한된 업종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한다.
대림역 8번 출구에서 마주 보이는 간병협회는 이들의 노동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간병일 및 건설 현장일은 방문취업비자가 허용하는 조선족 여성 및 남성의 대표적인 일로, 내국인의 고령화, 취업 기피로 인해 발생하는 일들이다.
2018년 대한건설협회 발표 자료에 의하면, 22만 건설업 외국인력 중 약 53%가 조선족, 26%가 중국 한족이다. 내국인 고용 보호를 위해 외국인 고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현장 인력난으로 인한 불가피한 기업의 선택이다. 사실상 기업이 내국인 임금의 88% 수준으로 이들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간병인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조선족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법제화 미비로, 1인당 약 6~8명의 돌봄을 담당하면서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을 보장받는 한국인 요양보호사보다, 더 낮은 임금과 취약한 노동 환경에서 일한다. 그마저도 코로나19와 가파른 고령화로 인해 그 수가 절대 부족인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선주민인 한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법적 보호 없이 적은 임금으로 고강도 노동을 하는 셈이다. 외국인 고용 사업장 어디에서나 제일 강도 높은 일은 외국인 노동자 몫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대림역 8번 출구에서 마주 보이는 간병협회 (사진: 이미애)
공간: 이색 먹거리촌 그러나 혼자 못 가는 곳?
대림 중국 거리는 이들 이주민이 만나서 밥 먹고 장도 보고 정보를 나누고 휴식하며 노동과 삶을 재생산하는 곳이다. 12번 출구에서부터 대림중앙시장까지 긴 먹자골목은 그 중심지다. 시장 상인의 반은 한국인, 나머지 반은 중국인이라고 하니, 아마도 이 시장에 없는 건 없지만,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맛난 것들이 넘쳐난다. 56개 소수민족이 있는 중국이므로 ‘단일민족’ 국가의 것보다 다양하리라는 것은 당연지사다.
과일의 ‘왕’이라 불리는 두리안과 중국인이 두유와 함께 아침 식사로 먹는 여우탸오와 부추, 당근, 파로 속이 채워진 다양한 생김새의 도넛들은 제법 생소하다. 사실 두리안이 중국산은 아니지만, 품질 좋은 말레이시아산 두리안의 90% 이상을 중국인이 소비한다고 하니 중국인에게는 아는 맛이다. 다만 ‘저세상 맛’인 두리안은 퀴퀴한 냄새를 극복해야 하고, 속 알맹이 두 덩이에 2만~4만 원하는 ‘몸값’ 탓에 맛보기도 만만치 않다.
중국 거리에서 파는 두리안 (사진: 이미애)
한국인이 ‘아는 맛’이라면, 마라탕, 꿔바로우, 마파두부, 지삼선 등을 들 수 있는데 팔각, 마라, 산초 등을 넉넉히 넣었는지 대림 외 지역의 것보다 향이 강하다. 또한 연변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한 반찬 가게에는 연변찹쌀순대, 찰떡, ‘옥시시죽’(옥수수죽)과 온갖 종류의 짠지가 가득하다. 2013년 연변 현장 연구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찹쌀순대의 맛은 묵직하게 깊었고, 찰떡은 화려한 한국산 떡들에 비해 소박하지만 식감이 좋았다. 이들은 이 익숙한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이주지에서의 고단함을 나눈다.
한편 이 음식들은, 다수는 아니지만 이국적 맛과 문화를 즐기려는 선주민의 발길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먹방 유튜버들의 활약이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지만, “범죄도시”나 “혼자 못 가는 곳”이라는 제목이 따라붙어 있어 상당한 심리적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다.
영화 ‘범죄도시’(2017), ‘청년경찰’(2017)의 촬영지였던 이 지역은, 잇따른 영화 흥행으로 ‘범죄의 온상’으로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대중매체는 탈냉전 이후 사라진 현실의 ‘적’을 외부자인 조선족으로 쉽게 대체했고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낙인의 대상이 되었다. 2020년 3월, 영화 ‘청년경찰’에 대한 조선족들의 집단 민사소송이 제작사의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뒤라 그 결과가 한국인의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사실관계 왜곡이다. 거의 매해 내국인 범죄율이 외국인 범죄율의 2배 이상임에도 외국인 범죄, 특히 체류 외국인의 다수여서 그 수가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조선족의 범죄를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열악한 노동 조건이 오히려 범죄의 유발인자라고 본다면, 이러한 낙인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인구 급감, 고령화로 인한 연금 고갈의 우려 속에서, ‘노인 학대 간병인’, ‘의료보험 부정수급자’, ‘실업급여 1위 수급자’라는 언론의 꼬리표가 이들에게 추가되었다. 이 또한 다수 외국인이라는 특징에서 온 착시성 통계에 기반하는데, 여기에 이들이 인구 비율만큼 많은 세금을 낸다거나 내국인에 비해 산재 사망률이 높다거나, 치료 시기를 놓쳐 이주 노동 후 본국에서 사망하는 조선족이 적지 않다는 얘기는 없다. 그리고 ‘노인 학대자’라는 딱지는 구조적으로 열악한 간병 노동자의 노동 조건의 결과일 수 있음을 간과하면서 대책 수립의 시급성마저 제거해왔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 모든 낙인은 이들이 일은 열심히 하되 몸과 삶의 재생산 권리는 챙기지 말 것을 주문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저렴한 노동력을 담당하도록 구조화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차이나타운 파리 19구 ‘벨빌’(Belleville)이 미디어나 연구물을 통해 중국인 범죄가 일어나는 곳 또는 중국 동북 여성의 성매매 현장, 불법 이주 및 미등록 노동 공간으로 재현되면서 이들의 일상을 제거하고 이들이 낮은 가치의 노동력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듯, 한국 사회는 대림을 구경거리나 범죄 지역으로 다루면서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제거해왔다.
영화 청년경찰 촬영지인 대림역 12번 출구 먹자골목 (사진: 이미애)
구체적 일상: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몸’의 소리
이들 집단에 대한 낙인의 시선을 거두고 구체적 생활 세계로서 대림 중국 거리를 들여다보면, 이 공간에 새겨진 노동하는 ‘고단한 몸’과 만나게 된다.
대림역 8번 출구 앞에는 보통의 역 부근에서 좀체 마주하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진다. ‘관절약 판매 및 홍보 부스’와 북적이는 인파가 그것인데, 길 맞은편 간병협회와 함께 대림의 지리적 문맥을 이룬다. 어쩌면 몸 노동을 하는 이들이 모이는 이곳이 관절약 판매의 최적지이다 싶지만, 노동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200만 이주자는 노동, 유학, 결혼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와있지만 이 중 절반 이상은 이주 노동자다. 이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농어업, 축산업 등의 업종에서 몸 노동을 하고 있다. 그 광경은 이주 가사 노동자를 연구해온 필자의 시선에 들어왔고, 유학 중 프랑스 이주민에 대한 참여 관찰을 위해 시행했던 어느 한국 안마 침대 회사의 파리 지점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소환했다.
필자는 당시 고객이 안마 침대를 체험하는 동안 원리와 효과를 설명하고 기록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고객 대부분은 프랑스의 구 식민지인 북아프리카 삼국(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주로 힘쓰는 일에 종사했는데 이들 대부분도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는 어깨 수술만 3번을 하고도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놓지 못해 고통을 호소하던 고객도 있었다. 대림의 관절약 판매 부스는 파리에서의 필자의 기억과 겹치면서, 한국과 프랑스의 이주 노동자들의 고통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그래서 한국과 프랑스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따로 또 같이 화답해야 할 차례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관절약 판매 및 홍보 부스 (사진: 이미애)
연대: 다문화적 시민의식의 학습과 실천
우리는 이러한 이주자들과 ‘공정한 관계를 맺어갈 능력’으로서의 다문화적 시민의식을 어떻게 형성해 갈 수 있을까? 그 예를 일찍이 대림 중국 거리에 터 잡은 시민단체인 ‘이주민센터 친구’(이하 ‘친구’, http://www.chingune.or.kr/)에서 찾아본다.
‘친구’는 그 이름처럼 2011년부터 지근거리에서 대림동의 이주민들과 사귀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화답해왔다. 이 단체는 이주민들이 겪는 인권 침해 및 법률 문제에 대한 상담과 소송 구조, 인식 개선 교육, 연대 활동 등을 통해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해왔다. ‘친구’가 운영하는 이주배경청소년문화교류센터 ‘투소프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주배경청소년과 청년들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이들의 진로 설계를 함께 고민하며 사회적 지지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투소프카는 2022년 한 해 동안 약 5,000명의 이주배경청소년을 만나고 교류했다. ‘친구’는 또한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3월 20일) 행사 참여,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동조 단식 참가 등 이주민 인권의 구조적 변화를 위한 연대 활동도 해왔다.
그 밖에도 이곳을 찾는 활동가, 연구자들의 발걸음도 꾸준한데, 최근에는 이주민 당사자들이 선주민과 이주민의 가교 역할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필자가 2013년 현장 연구 이후,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것도 지난 5월 14일 ‘다양성의 큰 숲, 대림을 걷다’라는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인데, 주최 및 주관자 두 사람(심해연 카페방장 대표,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연구소 대표) 모두 이주민 당사자이다. 당시 이주민, 소수자, 다양성, 그리고 중국 음식에 진심인 필자를 포함한 여덟 참여자는 서로 사귀었고, 대림의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의 삶을 탐구하면서 작은 연대의 기회를 가졌다.
생산 인구 감소와 노령화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이민, 이민청 설립 논의에 앞서, 그동안 한국 사회가 동포, 이주민에게 일방적 동화를 강요해오지는 않았는지, 누릴 권리의 부여 없이 그저 일만 잘해주는 ‘착한’ 이주민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지 성찰해 볼 일이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붙여진 이들의 꼬리표를 제거하고 몸 노동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글로서 다문화적 시민의식의 학습과 그 실천의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이주민센터 친구 (사진: 이미애)
글쓴이 이미애는
학부 건축학, 석사 문화연구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에서 사회학/인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며, (사)지식공유 연구자의 집 학술부 소속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이주, 젠더, 노동 사회학이고, 젠더, 계급, 인종/민족의 복합 위계와 가사 노동을 포함한 불평등한 노동의 생산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해왔다. 최근에는 중국, 프랑스에 이어 아프리카 지역 연구, 재한 프랑스 청년 및 외국인 공동체, 이주 배경 청(소)년 연구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China from Where we Stand: Readings in Comparative Sinology(2016), Migrant(e)s d’Asie, migrant(e)s en Asie. Circulations et trajectoires migratoires plurielles(발간 예정) 공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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