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동유럽에 공산주의의 잔재를 쓸어내는 자유화의 물결이 밀어닥쳤다.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철의 장막’인 베를린 장벽이 11.9 마침내 무너지고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은 손을 잡으며 환호한다.
그러나 이장면을 TV로 지켜보던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의 얼굴은 그리 밝지않았다. 독일과 긴 국경을 접하고 있던 프랑스로서는 통독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가지고있는 프랑스지만 통독후 독일의 마르크화가 자신들의 핵무기를 압도하면서 2차세계대전후 지금까지 가까스로 독일의 팽창을 견제하고 있던 역내 세력균형이 무너지지않을 까 심각하게 우려했다.
프랑스외에도 영국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들도 같은 이유로 통독을 반대하고 있었다. 결국 통일된 독일이 독주하지 못하도록 ‘유럽연합’(EU)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출범과 마르크화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유로화’의 채택을 독일에 요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독일의 마르크화 포기가 통독의 관건으로 부상하자 독일은 딜레마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독일의 통큰 양보로 1992.2 유럽경제공동체(EEC) 회원국 대표들이 유로화 채택을 위한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서명한후 같은해 10월 3일 독일은 마침내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영국은 통독으로 갑자기 급류를 타게된 유로화채택에 동참하기 위해 1990년 뒤늦게 유럽통화제도(EMS)의 환율조정체제에 가입한다. 환율조정체제는 유럽단일통화로 가기위한 중간단계였다. 당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출범하기 전이었던만큼 독일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사실상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분데스방크는 국내사정으로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통독에 따른 막대한 재정지출이 불러올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고금리정책을 쓰고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일의 고금리는 결국 마르크화의 강세를 불가피하게했다. 이같은 마르크화의 강세는 환율조정체제 가입과 함께 회원국간 환율정책의 동조화 의무를 지니고있던 영국으로서는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있던 영국으로서는 고금리가 불러올 파운드화의 강세와 이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를 감내할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환율조정체제로부터의 탈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해갔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입장을 바꾸려하지않았다. 모든 경제상황들이 일제히 ‘노’라고 얘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게 이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소로스가 이런 영국을 손보기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소로스는 시장의 실제적 현상을 매우 중시하는 헤지펀드 투자자로서 주요 경제지표들이 가리키는 시장의 흐름을 미리 내다보면서 많은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었다. 그런 소로스가 국내 경제사정이 일제히 ‘노’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끝내 환율조정체제 잔류를 고집하는 영국정부에 맞서 1992년 8월 지상최대의 전투를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일 거래액이 무려 1조달러에 달하는 외환시장에서 아무리 영국정부라 하더라도 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막을수 없을 것으로 확신한 소로스는 100억불에 상당하는 거금의 영국의 파운드화를 빌려 매도하는 숏포지션으로 먼저 달러화를 확보한후 다시 그 돈으로 독일 마르크화를 매입하는 롱포지션으로 들어가면서 영국 금융당국을 향한 첫 포문을 열었다.
이어 소로스는 자신의 계획을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투자자들의 동참을 암묵적으로 유도했다. 당시 소로스는 이미 전설적 이름을 가진 투기꾼이었기에 그가 자신의 돈을 먼저 크게 걸고, 즉 자신이 스스로 고용한 용병을 끌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더많은 전리품을 챙기려면 그의 뒤를 바짝 좇는게 좋다. (우리나라주식시장에서도 영악한 투자자들은 외국인투자자들의 동향만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순간 소로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백만대군이 따르고 있었다.
소로스의 전략을 결국 의도한대로 큰 성공을 거둔다. 필마단기의 성공으로 일으킨 작은 전투하나로 마침내 다른 투기꾼들을 대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큰 전쟁으로 바뀌게 한 것이다.
소로스와 그의 동조자들의 밀물같은 파운드화 매도세에 맞서 영국정부는 500억달러나 투입하면서 파운드화를 사들이며 환율방어에 전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하고만다. 결국 영국 재무장관은 9.16일 환율조정체제에서 전격적으로 탈퇴하고 변동환율제를 채택한다. 소로스의 거침없는 공격에 마침내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소로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기꾼의 명성을 얻었을 뿐만아니라 2개월도 채 안된 기간에 무려 10억달러가 넘는 투자수익도 거두게 되었다.
- "경제는 돈의 흐름을 알고 있다."-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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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경매투자자라면 누구나 기피할 테마상가와 관련된 필자의 체험담이다.
테마상가는 대형 매장형상가를 의미한다. 패션이나 대상 고객을 세분화하여 테마를 형성하고 전문화한 매장이다. 동대문 밀리오레 등 패션매장상가, 테크노마트 등이 이에 해당한다.
흔히 대다수 경매투자가들은 테마상가라 하면 몸서리치기 쉽상이다. 대부분 망한 테마상가들이 많기에 설사 감정가가 2억이 넘어가도 1000만원까지 유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중간에 잘못 들어가면 쪽박찰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럼에도 경매투자자라면 쓸만한 상가가 희귀(?)해지는 이 시절에 물건의 가치를 보는 눈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액으로 투자할만한 물건검색을 하던중 강변역 역세권의 테크노마트 상가가 하나 나왔다. 용산전자상가에 이은 서울 동북부의 대표적인 IT제품 위주 테마상가다. 과거 헬스장내 단체운동으로 건물이 흔들려 신문에도 크게 대서특필된 유명한 건물이다. 안좋은 뉴스로 신문에 크게 회자되었을때 경매로 나온 물건이 있으면 하나 낙찰받아볼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남들이 불안해할때 들어가야 먹을게 있다!
관심이 가는 물건은 2층에 나온 전용면적 6평의 조그만 테마상가였다.
보통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물건이나, 2층이라는데 시선이 갔다. 39층중에 2층이라? 일반상가도 최고의 투자지는 1층이고 그 다음은 2층이다. 1층이나 2층은 고층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다. 상가가 활성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법인멤버중 IT상가쪽을 잘아는 친구가 있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용산단지나 테크노마트에서 1,2층은 가장 좋은 자리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자리를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매장위치를 다시 살펴본다. 에스컬레이터 앞자리이다. 손님들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올 경우 에스컬레이터 인근의 상가부터 훝어볼 것이다. 그렇다면 에스컬레이터 전방에 위치한 상가들이 A급 위치다.
본건은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자마자 전방에 보이는 매우 가시성이 뛰어난 위치다.
카메라전문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법인멤버들과 현장에 가보니 상가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변역과 바로 붙어있어서인지 이용자들이 많다. 1층부터 7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해본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위층으로 올라갈 수록 손님이 적다는 점이다. 2층은 손님들이 좋아할만한 카메라,휴대폰 등의 IT기기 위주 매장으로 배치되어 있으나 5~7층 이상은 매우 썰렁하다. 손님을 맞이하기 보다 인터넷위주로 판매하는 매장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4~7층 이상의 매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이라면 분명 2~3층으로 내려가길 원할 것이다. 특히 에스컬레이터 앞쪽이라면 누구나 선호하지 않을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물건지를 한번 휘둘러보았다. 십여분간 가만히 살펴보니, 손님 몇명이 계속 사려고 문의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직원 2명이 열심히 설명중이다. (장사가 잘되고있다. 월세를 올려야겠당?)
감정가 1억 6천짜리 물건이지만 테마상가라 계속 유찰되고 있다. 이번에 과연 누군가 들어올까? 아무도안들어올 리스크가 있지만, 테크노마트에 입점한 상인들중 장사위치를 바꿔보려고 들어올 수도 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이번분기에 월성1호기 잔존가치 6000억원을 손실처리하면 한전주식 급락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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