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인터넷이나 기타 빠른 정보채널이 없던시절 ...
스포츠뉴스를 통해서만 경기결과를 알수있던 시절...
혹시라도 그날 뉴스를 놓치면 난 전전긍긍 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학교갈때 스포츠신문을 사서 그날 경기를 읽곤했다.
오비가 이긴경기면 그 기사거리를 외울 때까지 보곤 했다.
얼마나 흐믓하던지 지금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습다.
컴퓨터만 켜면 금방소식을 알수 있는데...
그것도 모질라서 경기를 못보면 머리가 횡하니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다.
나 에게도 위기가 찾아 왔으니 고3, 그시절 정말 미칠뻔 했다.
스포츠 뉴스를 볼수가 있나 정말 갑갑한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녀석이 야자시간에 워크멘을 듣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무생각 없이 음악이나 들으려고 잠시 워크맨을 빌렸다.
전원을 넣으니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와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일성 위원과 정도영 캐스터가 야구를 중계하고 있었다.
ob와 삼성의 경기였는데 4:3 으로 뒤지던 8회면 주자 1,2루에서 김형석 선수가 2타점 역전 적시타를 터트리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안타라고 외쳤다.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뒤통수가 뻐근 할정도의 충격이 다가 왔다.
헉스 골수 삼성팬 수학선생님 그 선생님도 워크맨으로 야구중계를 들으시면서 야자감독을 하고 계신것 이었다.
'이 선생님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삼성이 지는 날이면 우리는 반 죽음
어려운 문제를 내고 못 풀면 엉덩이가 불난다.
만일 삼성이 이기면 5분동안 그경기의 하일라이트를 생생히 리플레이 할수 있도록 들어야만 했다..
이런 선생님께 걸렸으니 엉덩이가 불나는 것은 당연하고 주먹쥐고 복도에서 10분동안 벌을 서야만 했다.
벌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두번째 위기는 95년 두산의 우승할 시절 난 군에 입대를 했다.
이등병 생활이 자리 잡혀갈 즈음 롯데와 오비의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있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내무반은 왕 고참이 어디 출신이냐 따라서 표준어가 전라도 사투리도 되고 경상도 사투리도 되는 현실을 아실 것이다.
그시절 우리내무반의 왕고참은 부산출신으로 롯데의 골수팬 이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2차전인가 정수가 3점홈런 치던 경기였는 데 이경기는 롯데가 이겼었다.
오비의 왕 골수편인 내가 정수가 3점홈런을 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었까?
야 홈런이다.
이 말과 동시에 하늘이 노랗더라.
왕고참의 던진 철모가 머리를 강타한것 이었다.(그랬다 난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이었던 것이었다)
그 후로 난 7차전이 끝날 때지 오비가 1점날때마다 1대씩 맞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왜 오비가 점수를 뽑았으니까...
상병달고 다음해에 휴가를 나와서 잠실구장에 동기녀석과 엘지와의 경기를 보러갔다.
3회쯤 되니까 출출해서 사발면을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피해라는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퍽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 동기 녀석이 사발면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파울타구가 팬스를 맞고 튀겨서 얼굴을 강타한것 이었다.
벌겋게 부어오린 눈이 어찌나 우습던지 .. 더욱더 우낀것은 어떤 아가씨가 공을 주었는 데 불쌍한지 그녀석에게 공을 갖다주는 것이었다.
하일성위원 공식멘트 경기장에 와서는 공을 끝까지 봐야죠. 잘못하면 큰 부상 입어요.
다음은 오비에 감동 받았을 때 원년 우승할때 역전 김유동 선수의 만루홈런.
오비가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었을 때(원년챔프)
그리고 박철순 선수가 은퇴식을 하던날 잠실에 울려퍼진 마이웨이 얼마나 가슴이 찡하던지...
지금의 두산의 끈끈함은 불사조 박철순선수에게서 이어 받았을 것이다.
아련한 추억의 OB맨
OB시절 1루를 보던 신경식선수의 다리를 1자로 벌리고 공을 받던모습.
날다람쥐 김광수선수 진짜 수비날라 다녔죠. 수비하나만으로 연봉을 받을만 하다고 할수 있는 선수였죠.
유지훤유격수 김광수 선수와 키스톤 컴비 둘의 수비는 환상 그 자체였죠.
미스터 오비 김형석선수 95년 우승주역이기도 이었으며. 두산 공격의 핵 이었죠.
김상호 선수 타점과 홈런왕을 차지하고 V2를 작성한 핵심적인 선수였죠.
다음은 투수 김진욱선수 기억하실라나...
선동렬선수하고 12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1:0승을 올려서 대단한 화제였죠.
개막전 사나이 장호연선수 변화구와 배짱투구와 1인자 였죠.(지금의 이경필 )
그리고 보면 참으로 많은 추억거리가 있었는 데 ....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토,일 중계방송이 있으면 하루종일 프로야구만 보던일 두산경기가 아닌데도 타구장소식 혹시나 들을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에 잼없는 타팀 경기를 보던일...
가족들 놀러가는데 중계방송 볼려고 다른 팽계대고 안따라 갔는데 막상텔레비젼을 보니 만화 재방송하고 있을때.(우천관계로 중계예정이었던 야구경기는 취소되었습니다.)
얼마나 허탈하던지.
더 허탈한 것은 9회말 역전할려고 하고있는데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는 여기서 마침니다.
이런 자막을 보면 왕짜증나고 허탈해서 ,스포츠 뉴스 기달리려고 목 빠지게 기다리던 기억....
님들도 기억 나시죠.
저도 30년 후에는 제일을 접고 두산 경기따라 경기장이나 찾으렵니다.
미래의 아내와 함께 노년을 야구장에서 보내고 싶어요.
두산과에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며 마이웨이를 듣고 싶습니다.
두산베어스여 영원히 팬들에 가슴에 남아서 우리의 벗이 되어주소서.
곰대여러분들 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