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표 그리고 육백육십육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요한 사도를 통해 짐승의 표에 대해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또 지혜가 있다면 "사람의 수 육백육십육"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바르게 알고 해석하는 성도들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혼돈스럽고 온갖 어지러운 해석만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겠습니다.
1. 짐승의 표에 대한 공통된 오류
짐승의 표에 대한 공통된 오류를 확인하면 대부분 세가지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문법적 해석입니다. 글 내용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지 못함으로 나타난 오류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제의 혼돈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을 착각함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상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단원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문법적 해석의 오류
문법적 해석의 대표적 오류가 바로 "짐승의 표는 666" 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글을 잘못 이해하고 짐승의 표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또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컴퓨터 바코드다, 혹은 사람 몸에 인식시키는 베리칩이다등을 주장합니다.
이는 가장 널리 그리고 보편적으로 알려진 주장이지만 사실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단지 성경을 바르게 읽지 못함으로 나타난 헤프닝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주장을 보면 육백육십육 이라는 숫자는 상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언을 아예 무시하는 말이지만 오히려 건전한 해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징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그 의미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해석? 이라고 알려져있는것은 사실입니다.
끝으로 "짐승의 표 666"이란 바벨론 느브갓네살 우상과 솔로몬 방패에 대한 비유라는 말입니다
주전 580년경 느브갓네살이 금 우상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60 이고 넓이가 6 입니다.
주전 930년경 솔로몬이 금 방패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600 세겔입니다.
이것을 모두 합하면 666 이되니 짐승의 표 666 은 이에 대한 비유입니다라고 합니다.
이 사람의 주장은 착각한 것도 아니고 숫제 횡설수설하는 코메디 수준에 불과합니다.
하여튼 이들의 공통된 오류는 "짐승의 표는 666" 이라고 글 읽기를 잘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은 성경에는 전혀 없는 말입니다.
다만 "짐승의 표" 라는 말도 있고 "육백육십육" 이라는 단어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짐승의 표가 곧 육백육십육" 이라는 말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2) 시제의 혼돈
시제의 혼돈에 불과합니다.
이상하게 계시록 해석을 확인하면 대부분 미래시제로 해석합니다.
이것은 계시록이 증거하는 대로 장차 될일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도요한에게 계시한 내용은 초대교회부터 장차될 일입니다.
그런데 2013년 현재부터 장차될 일이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합니까?
주후 100년경 믿음의 성도들 요한사도를 통해 장차될 계시록을 배웠습니다.
주후 300년경 믿음의 성도들 계시록을 통해 장차될 일을 듣고 배웠습니다.
주후 500년경 믿음의 성도들 계시록을 통해 장차될 일을 읽고 배웠습니다.
주후 1000년경 1500년경 1900년경 2000 년에도 계속 읽고 듣고 배웠습니다.
과연 계시록을 해석할 때 장차 될 일이란 언제부터 될 일이라고 해석해야 합니까?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예언성취의 시작은 예언한 때로부터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이고 당연한 상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황당하게 대부분 해석들이 현재로 부터 장차될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한번 말하지만 계시록 예언 성취는 기록한 때로부터 입니다.
따라서 현재에서 본다면 성취된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장차될 미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계시한 때로부터 현재는 무려 200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성도들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할 것입니다.
3) 복음의 오류
복음의 오류란 기독교에서 주창하는 "믿음으로 구원" 을 잊어버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오직믿음" 으로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보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자 도의 초보입니다.
하나님 절대주권으로 은혜를 입고 의를 덧입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행함으로 이에 대한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를 받으면 심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구원" 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구원의 기준이 짐승의 표로 변경되었는지 알 길이 없는 주장들입니다.
참으로 이상하지만 명색이 성경 교사라는 사람들이 열심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를 믿고 구원얻은 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되면 구원에서 탈락하게 될까요?
이러한 생각은 보혈의 공로가 짐승의 표보다 미약하다고 생각함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배우셔야 합니다.
기독교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입니다.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은 무한하며 영원하여 제한이 없는 절대적 은총입니다.
까짓 짐승의 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성도를 끊어 내겠습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거나 말거나, 죄를 범하거나 말거나
택한자는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에 대한 계시록 예언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예언대로 성취되는 역사적 섭리를 성도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성취되는 역사가 믿어지면 그후 성취 될 천년왕국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최후에 성취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록을 기록하고 성도에게 확실하게 드러내신 계시 목적입니다.
당연히 요한사도의 증거를 따라 짐승이 무엇인지?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짐승의 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면 예언의 진리성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케 될 것입니다.
2. 짐승과 용이란 무엇인가?
짐승과 용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짐승이란 무엇인지 그 정체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짐승을 이용하는 용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를 장으로 구분하여 먼저장에서는 짐승의 정체에 대해 논하고 다음장에서 용의 정체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1) 짐승이란 무엇인가?
짐승의 정체에 대해서는 계시록 13장부터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기 때문에 예언된 내용만 바르게 읽고 이해한다면 이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언의 내용을 인용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짐승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위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본다면 다음처럼 됩니다.
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옵니다.
둘째, 뿔이 열개고 머리는 일곱, 뿔에는 면류관이 있고 머리는 참람한 이름 있습니다.
셋째, 짐승은 표범 같고, 발은 곰 같고, 입은 사자 같습니다.
넷째, 용이 짐승에게 용의 능력과 권세와 보좌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입니다.
한절씩 구분하여 먼저절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다음절에서는 머리가 일곱 뿔이 열인 짐승 마지막 절에서는 표범과 곰과 사자의 특징을 가진 짐승의 의미에 대해 증거합니다.
(1) 바다에서 나온 짐승
첫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와 하나님의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계시록 기록시기에 "하나님의 성도" 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족뿐입니다.
그 이외 국가나 이방지역에서는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았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짐승이 바다로부터 공격할 대상은 하나님의 성도였던 이스라엘 근동입니다.
(2) 뿔이 열, 머리가 일곱인 짐승
둘째,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인 짐승은 이미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바 있습니다.
모두 합하면 열명의 권세이고 이중 일곱은 왕이고 셋은 권세자라는 뜻입니다.
계시록을 기록할 때까지 일곱명의 왕이 존재했고 세명이 함께 통치한 국가는
오직 로마가 유일했습니다.
로마는 왕정정치로 시작했지만 일곱번째 왕을 마지막으로 공화정치를 이룩한 나라입니다.
원로원, 정무관, 호민관, 이렇게 셋으로 공화정을 꾸미고 선거투표까지 행했던 국가입니다.
세 부류의 정치가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삼두정치 시대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칠두십각의 국가는 로마가 유일합니다.
(3) 표범 곰 사자의 특징을 가진 짐승
셋째, 짐승에 대한 특징은 표범, 곰, 사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가 제국이라고 칭해지기까지 고대제국들이 먼저 존재 했었습니다.
바로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이 그들입니다.
고대제국이 차례대로 흥하고 망했지만 이들의 문화, 학문, 예술, 종교는 로마에 흡수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을 사자로, 페르시아를 곰으로, 헬라제국을 표범으로 예언한 바 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은 제가 강론한 다니엘 강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계시록이 예언하는 짐승의 정체는 "로마" 가 확실한 것입니다.
2) 용이란 무엇인가?
용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짐승의 정체를 밝힘으로 드러나는 배후 조종자를 말합니다. 짐승은 드러나는 존재라면 그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실질적 능력자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네가지 절로 구분하여 논하고자 합니다.
먼저절에서는 용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통해 그 정체를 확인합니다. 다음절에서는 바로 그 용이 조종하는 짐승의 제국에 대해 증거합니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짐승를 증거합니다. 마지막절에서는 짐승의 권세와 박해에 대하여 논하도록 합니다.
(1) 용에 대한 성경의 증거
용이 짐승에게 능력을 주었고 권세를 주었으며 보좌를 주었다고 예언한 내용을 우리는 위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짐승의 정체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배후 조종자 용이라는 존재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짐승의 권세나 능력은 용으로 부터 주어기지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용의 정체에 대해 다음처럼 증거하고있습니다.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
그렇습니다. 짐승에게 능력과 권세를 준 용은 바로 사단이요 마귀라고 합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했던 자입니다.
그 사단이 바로 짐승인 로마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어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이룩하도록 한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사단이 로마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단의 하는 일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훼방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괴롭히고 미혹하는 것이 주된 임무입니다.
사단은 로마제국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보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택한 민족인 이스라엘로 하여금 부정하도록 궤휼까지 꾸몄습니다.
이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을 대적한 행위는 세계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단은 철저하게 로마제국을 사용합니다.
다음 이어지는 예언에서 용과 짐승의 정체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될 것입니다.
(2) 사단이 조종하는 짐승의 제국
사단은 짐승 제국을 조종하는 배후의 권세이며 능력입니다.
이러한 증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짐승의 제국에는 참으로 특이한 사건이 발생하게 될 것을 사도 요한은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었다가 살아나는 특별한 존재의 출현" 이 그것입니다. 아래의 계시록 예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위의 예언을 정리하면 짐승 곧 로마에는 일곱머리와 열뿔이 존재하는데 이중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다가 상처가 나음으로 온 땅이 짐승을 따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짐승은 사단이 권세를 주어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대항해 이길 수 없고 어떤 국가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는 패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확인할 부분이 "머리 하나가 죽게 되었다가 상처가 나았다" 라는 사건에 대한 증거입니다.
짐승제국 곧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하기 이전에는 매우 초라한 소왕국에 불과했습니다. 로마 건국은 주전 약700년경이며 초대 왕으로 부터 일곱명의 왕들이 통치하다가 갑자기 "공화정" 국가로 변모합니다.
이때는 주전 약350년경에 해당되는 고대시대지만 이들은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호민관을 선출했습니다. 이들의 임기는 길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호민관 출신 지도자들이 많아졌으며 이들은 백성의 신임을 얻었고 매우 인기가 높아 하나의 정치적 세력을 구성하게 됩니다.
원로원은 전통적으로 왕족 출신이거나 귀족 출신들로 구성 되었습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특권층이었고 가장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었으나 백성들의 요구를 잘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정책을 했습니다.
또 다른 세력은 집정관 혹은 정무관으로 칭해지기도 하는 국가 통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데 일등공신이었고 지중해 전역을 통치하고 지배하는데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식민지역이 넓어지면서 여기서 들어오는 많은 재물로 인해 갑작스럽게 부를 축적하여 신흥부호가 되었으며 수많은 재산을 이용해 정치세력을 구성하게 됩니다.
각각 조금씩 다른 정치세력들은 서로 서로 협의하에 대표자를 선출하여 협상하거나 서로 견제하면서 로마를 더욱 번성하도록 했으며 이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정복 지역을 갈리아 지역으로 까지 더욱 확대하게 됩니다. 이들 통치 시대를 로마 역사가들은 "삼두정치" 시대라고 칭합니다.
삼두정치 시대를 거치면서 로마가 더욱 번성하자 이들은 절대 권력을 가지려는 욕심이 생겨나면서 마침내 로마는 국가적 내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삼두정치가들은 국가 내란을 통해 두명은 제거되었고 최후 승자가 모든 권력을 거머쥐게 됩니다. 그 절대권력자의 이름이 저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 입니다. "카이사르"는 로마 내란을 평정하여 삼두정치 시대를 종식 시키고 자신의 승리로 말미암아 얻어진 절대 권세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로마에 독재자의 출현을 두려워한 공화파에 의해 원로원 등정길에 갑자기 살해 당하고 맙니다.
로마는 절대권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순간 혼란에 빠졌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는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장군들은 누구나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여 보관하는데 바로 그 유언장에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 지명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가 "율리우스 옥타비아누스" 입니다. 그러나 그는 나이 어린 청년에 불과하였고 정치적 기반은 전혀 없던 무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양아버지였던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한 유언장을 이용하여 모든 정치적 경쟁자들을 차례 차례 물리쳐 나갔습니다. 최후에는 악티움 해전에서 모든 정적을 물리치고 마침내 절대권력자가 되었으며 이내 최초의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때로 부터 로마는 제국이라고 칭해지게 됩니다.
원로원에서는 절대권세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신의 아들. 혹은 거룩한 신의 현현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우구스토" 라는 칭호를 헌사합니다. 국민들은 황제의 등장을 마침내 메시야가 도래하였다고 환영했으며 모든 재벌과 권세자들이 앞을 다투어 절대 복종을 선언합니다. 로마는 이때부터 공화정국가가 아니라 황제의 절대적 통치가 시행되는 거대한 대제국이 된 것입니다. 바로 사단이 권세를 주었고 마침내 사단의 제국이 출현한 것입니다.
한편, 로마가 거대제국으로 출현한 동일한 시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국가 그중에서도 유대땅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토(옥타비아누스)가 명을 내려 천하로 호적하라 하였을 때 발생한 사건입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사단의 국가가 절대권력의 제국으로 출현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미리 언약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왕 곧 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출생하였던 것입니다.
(3) 죽었으나 살아있는 짐승
죽었으나 살아있는 짐승이 과연 누구입니까?
짐승의 제국 로마는 특이한 칭호로 황제를 칭했습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모든 황제에게 전승되었던 칭호입니다. 그 칭호는 비록 죽은자이지만 살아있는 "카이사르" 라는 이름입니다. 비록 "율리우스 카이사르" 는 죽었으나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로부터 시작해 모든 로마 황제는 "카이사르"로 동일하게 칭해집니다. 개역성경은 이를 "가이사"로 음역하였습니다.
"카이사르" 는 언제까지 칭해졌습니까?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고 "밀라노 칙령"를 발령한 때까지 입니다. 때가 주후 313년 경입니다. 이때까지 모든 로마황제에 대한 칭호는 죽었으나 산자인 "카이사르" 였습니다.
로마황제가 권세를 누리는 로마 전성기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국의 적대 행위는 극에 달한것이 사실입니다. 로마의 대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단회적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 대한 박해와 말살 정책이 쉬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행했던 하나님에 대한 대적 행위는 무려 25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자행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고 그를 배반한 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브라함으로 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사실은 불변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이들이 오직 하나님만 경외한다는것 자체를 인정하기 싫어서 박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명분으로 땅에서 멸족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참으로 사단의 제국다운 역사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기독교인을 확연하게 차별합니다. 하지만 로마제국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대응했습니다. 일단 여호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는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이스라엘 민족이나 로마제국에게는 동일한 박해 대상입니다.
로마제국은 예루살렘 성전을 헐었고 대신하여 주피터 신전을 세웠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그들의 땅에서 쫓아내거나 살육했습니다. 로마제국은 이스라엘 민족 열두지파 모두에게 그들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할 수 없다는 출입금지령까지 발령합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린 유랑민족이 되어 세계 도처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제국이 통치하는 세계 어느곳을 가더라도 땅을 매매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이스라엘 민족은 매매가 법적으로 금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있는 이상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잔인한 박해는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에서 칙령을 내리고 기독교를 로마제국이 허용하는 공인된 종교로 선포했던 주후 313년경까지 자행됩니다. 참으로 혹독한 사단의 박해고 하나님에 대한 대적행위였습니다.
(4) 짐승의 권세와 박해
짐승의 권세와 박해에 대해서는 다음의 예언 내용을 읽어보시면 더욱 분명합니다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위의 내용을 읽으면 짐승으로 묘사되는 로마제국의 권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 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로마황제에게 경배했던 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고 이땅에 사는 자들은 황제의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정착하여 살 수 있었다는 뜻도 됩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오히려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매매하지 못하고 경배하지 못하고 유리방황했다는 뜻입니다. 이들에게는 어느곳을 가더라도 천대와 박해가 따라 다녔습니다. 이들은 지하 무덤인 카타콤으로 숨어 들어갔으며 토굴로 또는 깊은 산속으로 사람들을 피하여 도피처를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발각되면 인정사정없이 재산이 몰수 당하고 잔혹한 죽임을 맞이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던 부녀들이던 차별 없는 철저한 박해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 보혈의 능력은 이들로 하여금 이것을 능히 견디게 하고 이기게 하셨으며 마침내 로마제국 황제가 오히려 무릎 꿇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도록 만든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혈의 능력이며 십자가의 권세이며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박해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까지 로마제국 황제에게 경배하고 싶어도 법률로 허락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중 로마 황제 카이사르를 반대하는 자도 있지만 헤롯 당원처럼 찬성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기독교인 중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민족들도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모두다 동일하게 황제에게 경배하지 못했고 땅을 매매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 당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황제에게 경배함으로 허락을 받느냐? 혹은 받지 않을것이냐? 또는 짐승의 표를 내가 받느냐 받지않느냐? 하는 신앙적 결단의 문제로 고민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면 모든 것이 무조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성도라고 알려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히려 로마황제 입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이나 기독교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경배하도록 허락할 것인가? 아니면 불허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생명책에 녹명된 자는 짐승에게 경배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과연 누가 구원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생명책에 녹명된자라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 절대주권 !!
바로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섭리인 것입니다.
3. 또다른 짐승과 짐승의 표
또 다른 짐승과 짐승의 표는 먼저된 짐승으로 부터 권세를 위임 받아 행하는 땅에서 나오는 권세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네 장으로 나누어 논하겠습니다. 먼저장에서는 또 다른 짐승의 정체를 계시록 예언대로 확인하고 다음 장에서는 짐승의 표에 대해 논합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짐승의 수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육백육십육이 무엇인지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1) 또 다른 짐승
또 다른 짐승이란 우리가 앞에서 확인한 짐승 곧 로마제국 황제와는 다른 짐승입니다.
그러나 먼저된 로마황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진 짐승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선 또 다른 짐승에 대한 예언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위의 내용대로 또 다른 짐승이란 땅에서 올라오며 용처럼 말하는 자입니다. 곧 우리가 확인한대로 사단처럼 말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먼저 나온 짐승 곧 로마황제의 권세를 대행하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먼저된 짐승을 "큰짐승" 땅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짐승을 "작은 짐승" 이라 칭하여 논하고자 합니다.
작은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는 자로서 곧 황제로부터 임명되는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임명해준 큰짐승을 경배하도록 합니다. 물론 경배의 대상은 죽은것 같지만 살아난 로마황제 "카이사르"를 경배합니다.
작은짐승은 큰 이적도 행하고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로마황제를 대신하는 우상을 만들고 이를 섬기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적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초자연적 능력이 아닙니다. 고대 이방 종교의 사제들은 신도들을 속이기 위해 신전마다 신비스러운 장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현재도 과거의 고대 신전을 조사하면 거짓 이적을 행했던 기계 장치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공명장치를 통해 신전의 우상이 말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는 것 같지만 이것은 하나의 마술에 불과합니다. 사단의 능력을 가진자들이 무엇을 두려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이 사람을 속이는 일에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속였습니다.
여기서 정리하고 다음을 진행 합니다.
로마황제가 "큰짐승"이라고 하였습니다. 땅에서 임명된자를 "작은짐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은짐승은 큰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지만 권세는 큰짐승 권세를 대행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작은 짐승은 로마황제를 대리하는 권세라는 뜻입니다.
로마황제는 제국의 지역이나 지방에 총독을 임명하거나 파송해 통치했습니다.
총독은 황제의 이름으로 무엇이나 결정했고 중요사항은 황제의 허락으로 집행했습니다.
또 총독 아래 천부장, 백부장, 제도를 정하고 황제중심으로 통치했습니다.
로마황제가 세운 총독은 황제와 동일한 권세를 행하지만 대리자입니다.
또 사단에게서 능력과 권세를 받은 큰짐승 곧 황제는 한명이라도 그를 대리하는 총독의 수는 제국 전체에 허다하게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과연 총독이 로마제국 전체에 얼마나 존재했을까요?
또 시기적으로 본다면 짐승은 로마황제 단 한명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황제의 이름 곧 "카이사르" 라는 칭호로 불려지지만 무려 300년 가까이 로마 황제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를 박해하고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파멸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서열이 정해집니다.
첫째, 용 - 사단이요 마귀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황제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었습니다.
둘째, 로마황제들 - 사단에게 권세와 능력과 보좌를 받아 세계를 정복하고 통치합니다.
셋째, 땅에서나온 총독들 - 황제의 권세를 대행하며 각 지역에 널리 확장되어 통치합니다.
2) 작은짐승의 표
작은 짐승의 표라는 것은 작은 짐승이 행하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작은 짐승 곧 황제가 세운 총독 권세에 대해 요한은 다음처럼 예언합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위의 내용대로 정리해 드리면 아래처럼 됩니다.
첫째, '저가' 하고 서두에 칭해지는 '저'란 앞의 내용을 이어 받기 때문에 작은짐승입니다.
둘째, 작은짐승이 표를 가진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도록 합니다.
셋째,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이름의 수입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이제 작은 짐승이 매매를 못하게 하는 황제의 대리자 총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짐승의 표" 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인증서입니다.
표를 이마나 손에 받는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표의 내용입니다.
표의 내용이 바로 "짐승의 이름"이나 "이름의 수"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어렵거나 신비스러운 말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위의 글을 읽으면 마치 "짐승의 표는 사람이 사용하는 숫자 666 이다"
라고 오독하게 되고 또 주장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짐승의 표와 짐승의 수라는 말은 각각 다른 말입니다.
>> 짐승의 표 -->> 짐승의 이름이나 이름의 수
>> 짐승의 수 -->> 사람의 수
짐승의 표란 그 내용이 권세자의 이름 곧 싸인을 의미하고
짐승의 수란 그 권세자 곧 사람의 명수를 의미합니다.
현재도 어떤 사안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리면 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싸인합니다
내가 결정하고, 허락하였으며, 책임진다는 결정 의미가 싸인이나 혹 인장입니다.
싸인은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도 있지만 간략하게 이니셜만 기록하기도 하고
또 인장으로 확인하기도 합니다.
계시록이 예언하는 "짐승의 표"도 마찬가지 입니다.
짐승인 황제 대리로 총독이 싸인할 때 이름을 기록하거나 혹 약자나 인장으로 합니다.
물론 무엇을 사거나 팔거나하는 매매행위에 대한 허락이기도 합니다.
자유로운 매매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짐승의 표가 없으면 매매를 못하게 된다는 말을 너무도 크게 확대해석하여 마치 무섭고 공포스러운 새로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 짐승의 표를 받지 못하면 매매를 자유롭게 못하는 아주 무서운 세상이 도래한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찍어주는 짐승이라는 사단권세는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독재자"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라는 것은 어떤 무시무시하고 흉폭한 독재자가 출현하여 행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시대, 어느나라, 어떤 집단이던 상식적으로 행하는 당연한 경제질서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경제활동을 할 때 국가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매매하는 국민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국민들은 짐승의 표를 전혀 받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마음대로 매매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현대 대한민국 국민을 예로 들어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사거나 팔때 항상 그리고 반드시 세금내야 매매 할 수 있습니다.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더라도 반드시 세금이 부과되는 것입니다.
세금을 낸다는 것 자체가 국민이 국가의 허락을 받아 매매한 인증세라는 뜻입니다.
또 기업을 하거나 장사하려고 해도 관할 세무서에서 신고하거나 허락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마음대로 집짓고 사고 팔고 못합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 누구나 당연히 행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경제활동 통제입니다.
이러한 상식과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 할 수 없다" 라는 말이 무엇이 다릅니까?
고대시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나라 어떤 통치자이던 항상 국민들의 경제활동을 통제했으며 하고있으며 앞으로도 할 것입니다.
어떤 국가이던 매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습니다.
위에서 짐승으로 확인된 로마제국 황제도 경제활동의 통치자인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선민 곧 이스라엘 민족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불허한다
라고 칙령을 내렸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짐승의 표를 이마에 찍는가? 손에 찍는가? 혹은 인체에 삽입한다고 하더라?
하는 인증방법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일단 총독의 싸인이 없으면 자유롭게 매매를 못한다 라는 것입니다.
3) 짐승의 수
짐승의 수라는 것은 곧 사람의 명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예언을 다시 정리해드립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니라"
짐승의 표 곧 허락을 이마나 손에 찍어주는 결정자는 짐승입니다.
그 "짐승의 수" 과연 몇인가? "육백육십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수라고 말했을때 상식적으로 생각하셔야 됩니다.
짐승들이 무슨 숫자를 사용합니까? 할 수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당연히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하는 뜻은 사자가 몇마리인가?
혹 표범의 수가 몇마리인가 이렇게 짐승의 마리수를 헤아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짐승이라고 칭했졌지만 그것이 사실 "진짜 짐승" 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짐승의 수가 몇 마리인가 헤아리듯 곧 사람 수가 몇명인가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짐승의 수 = 사자 몇마리 인가?
사람의 수 = 사람 몇명인가?
다시 예언을 확인해 보세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니라
이제 바로 보이십니까?
비록 짐승이라고 칭했지만 사실 "진짜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사람의 수가 "육백육십육" 이라는 말이지요.
참으로 당연한 말인데 이렇게 길게 길게 설명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4) 육백육십육
육백육십육이란 짐승의 표를 허락하거나 불허하는 짐승들의 명수입니다.
짐승의 표가 곧 육백육십육이라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짐승의 표를 허락하는 짐승권세자가 과연 몇명인가 육백육십육명입니다.
짐승권세자는 가장 먼저 사단의 권세를 받고 능력을 받은 로마제국의 황제들입니다.
무려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대적한 황제들이 몇명이나 될까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를 시작으로 주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까지 입니다.
무엇 때문에 콘스탄틴 황제입니까?
이후로부터 로마황제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박해가 일단락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황제의 대리자로 임명된 작은짐승 곧 총독들의 수는 얼마나 존재했을까요?
여기다 한가지를 더 추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과연 총독들이 황제를 대행하여 권세를 행했던 지역은 얼마나 넓었을까요?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론이고 이집트, 아프리카, 유럽, 그리스, 인도까지 드넓은 대륙입니다.
거기에 약 300년 동안이라는 기간동안 로마 총독이 임명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위의 지도가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지역입니다.
각 지역별로 황제가 직접 통치한 것이 아니라 대행을 파송하거나 임명했습니다.
과연 몇명이나 될런지 헤아릴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어디인가에는 로마의 역사적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대략 조사해 보면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가 육백육십육명일 것입니다.
"짐승이라고 해서 말이나 소나 진짜 짐승 수를 세어보지마세요
지혜가 있다면 짐승이 사람임을 아시고 사람 수를 헤아려보세요"
4. 마지막 결론
무엇 때문에 "육백육십육" 이라는 사람의 수를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 666 로 오해하고 혼돈에 빠질까요?
잘못 알려진 선입견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수는 7 이다, 사단의 수는 6 이다.
창조 칠일을 예로 들어 가면서 설명하면 그럴듯하게 맞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피조물 헤아리는 수에 속하지도 않고 숫자로 표현 되지도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 수에 국한 시키고 또 상징화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일곱이니 혹은 열둘이니 이것은 완전수니 혹은 하나님 수니하는 말들은 만들어낸 말입니다
성경에는 찾아볼 수 조차 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자" 라고 증거합니다.
숫자로 비유되거나 상징화되지 않습니다
육백육십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짐승이라고 칭해진 것은 비유이며 사실은 사람의 명수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가 마치 계시록 전체의 중요한 증거인양 말하지만 지엽적입니다.
계시록은 초대교회부터 마지막 심판까지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하는 교회승리를
알게하는 특별계시입니다.
비록 미혹하는 영들이 가득하여 성경 내용조차 바르게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번성하지만
눈이있고 귀있는 성도라면 바르게 듣고 볼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시기를
"내가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과거 교회이던, 현재 교회이던,미래교회이던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언제 어느때라도 음부의 권세는 발생하지만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는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는것이 계시록입니다.
교회 승리란 하나님이 택하신 성도의 구원과 영원한 나라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오직 그리스도가 이기심으로 얻어지는 승리입니다.
이것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성도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요
하나님 나라 시민이며 권속인 것입니다.
첫댓글 짐승의 표에 한 표 꾹
"계시록을 기록할 때까지 7명의 왕이" 라고 하셨는데 다니엘 8장 20절 이하에 살펴보면
1.바벨론 왕 2.메데왕 3.파사 왕 4.헬라 첫째 왕 5.헬라 4왕 6.로마 왕 이렇게 해서 9왕으로 되어있는데
좀더 세밀히 설명해 주시와요.
로마왕국은 주전 700년경 설립초기부터 공화정이 시작될때 까지 왕이 일곱명이었습니다. 그 이후 공화정치가 시작되어 왕이 없습니다. 그러다 최초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로 등극한 것이며 이를 성경은 아우구스도라고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시기와 일치하는 황제입니다. 로마왕국은 왕이 일곱명뿐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왕국은 로마가 유일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입곱 뿔이 열이라고 합니다. 이를 해석하면 왕은 일곱명이지만 권세는 열(10) 이다라는 말입니다, 일곱명의 왕과 공화정치(원로원, 호민관, 정무관) 기회있으시면 다니엘 강론을 참조하세요 유트브에 있습니다.(* 세창 강 * 치시면 됩니다)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를 배제한 로마의 왕과 로마의 정치 세력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바코드. 베리칩...한때 무성한 이론 이었죠....그 보다는 진전된 글 같은데 더 생각을 해봐야겠네요
설마하니 천국에 갈때 이런 어려운 시험문제가 나오진 않겠지 ㅎㅎㅎ
위 설명은 짐승과 666을 비유로 해석하군요. 성경에 비유는 비유로,사실은 사실로 해석해야.., 성경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될까요? 제 생각은 어찌되었든 짐승(beast)이라 생각되고 666과 손이나 이마에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성경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현재 기술개발의 상태로 상상해보면 바코드나 베리칩이나 손이나 이마에 이식하는 그런 유사한 개발된것이 되지 않을까 유추해 봅니다. 그런데 지금 베리칩이 짐승의 표 라면서 가르치는 것은 무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soon 올것이라 예견됩니다. 지금 말세의 시작된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떨기나무님과 maple님 두 분다 성경을 성경 그대로,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것인데.. 한 분은 그것을 이렇게 사실로 보시고 다른 한 분은 그것을 저렇게 사실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생각에 짐승은 어느나라이든, 어떤 정치세력이든, 어떤 시스템이든 간에 beast와 666 이라는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는 것이며 그리고 성경에 있는대로 손이나 이마에 어떤 표(mark)을 받고 그것을 매매에 수단에 이용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합당하게 성경을 보시는 것같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모두 숫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요한사도는 [사람의 수 ] 라고 하면서 [ 666 ] 을 기록 하였습니다
그뜻은 실명을 기록할수 없는 상황 이기에 숫자로 기록한 것입니다
[ 네로 ] 의 이름에 가이사 를 더하면 정확히 666 이 됩니다
너무 정확한해석 이시네요...저와같은 계시록 사상을 가지신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식일 교회에서도 이런 사상을 가졌는데 그들은 일요일성수를 666으로 보죠...그러나 그것은 저들의 교리를 합리화 할뿐 맞지는 앉는다고 봅니다
제목: 재미로 풀어보는 요한계시록
다니엘 7장과,8장 그리고 계시록 13장과 17장은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해서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이런 애기 저런 애기를 하면서 성경을 인용합니다.
성경에 있는 이야기 인지라 반박도 못하고 참 거시기 합니다.
다니엘 7장에서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첫째 큰 짐승은 사자와 같고
둘째 큰짐승은 곰과 같고
셋째 큰 짐승은 표범과 같고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게 생기고 하면서 각각 다른 네 짐승이 있는데 네 번째 짐승은 뿔이 열이다. 하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13장을 보면,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계13장에서의 짐승은 네 짐승(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이 합해져 있는 모습이고
단7장에서는 네 번째 짐승(로마)의 뿔이 열이다.
어느 쪽이 맞을 까요.
색다른 이야기로 접근해 봅시다.
요한계시록에서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인봉을 떼면서 심판이 시작되는데
어린양이 첫째부터 넷째까지 인봉을 뗄 때에 생물이 “오너라!” 외치는데 이 네 생물들
@조영노 은 심판을 위하여 준비하는 대 천사들로서, 언제부터 짐승들의 범죄 사실 자료들을 준비하였는지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시점에서부터 활동하며 준비하는 것을 에스겔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심판 받는 짐승 곧 세상 임금은 로마 황제만이 아니라,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황제를 아우르는 세상 임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주님이 주신 말세의 계시로서 계시록 해설자들이 그시대에 맞게 해설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해설해놓은것 외에는 그냥 그사람이 자기가 깨닫고 주장하는 학설로 받아들이면 되지 그것으로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명확하게 나온것 외에는 진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만큼 해석이 분분한 성경도 없지요.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이 존재합니다. 적어도 계시록만큼은 무조건 내가 옳다는 생각보다는 되도록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저 역시 요한계시록에 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으나 적지는 않겠습니다.^^
묵시 ~ 요한으로 성경기록을 마침한 성경전서의 의미가 보는사람마다 의견이 또는 해석이 다르다는 말에는
무리가 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일관성으로 기록하게 하신분. 성령을 힘 입지 않은 해석으로 사람들이 그져 지식이나
추리들로 이런저런 해석을 많이 합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처럼
사람들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세상과 사람 일을 생각합니다'
계시록의 내용 역시 세상사가 아니고 창세때부터 계시까지 하나님이 자기백성에게 직접 일 하시는
하나님의 일관된 구원사다.
문제는 의문의 해석을 성령께서 해주시겠다는 주의 약속을 간과함이 문제다
자기 자아를 자기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은 성경편에서 보면 누구든지 짐승이나 죽은자 이지요.
자기 생명의 주인이 자기인 사람.
성경은 그런 오류에 빠진 사람을 건져 참 주인을 께우치게 해주는 책이며
창조때부터 구원에 이르도록 그 일 그 사건을 점진적 심층적으로 깨우처 주는 책이며
성경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우리죄 문제를 완결해서 생명으로 새창조하는 내용입니다.
여러 의문을 위해 주께서 직접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현실감은 흐르는 시간대에서 자기가 살아 있다고 느껴지지만
'죽은자는 죽은자들로 장사하게하라' 처럼 우리 속에 주님이 없으면 이미 우리는 짐승이나 죽은자 입니다
말씀대로 바코드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코드의 세 숫자가 6을 나타내는 것이고 경제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다수 사람들의 입장에서 요한계시록 말씀과 현실 사이에 뭔가 유사성이 있다고 보기 쉬울 것 같습니다. 찝찝한거죠.
성경은 사람들의 관심이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사람들을 모조리 홍수로 살 처분하신 하나님이 노아의 첫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심중에 이르시되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신 연유가? "사람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 에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하나님)은 육신이 십자가의 형을 받으면서도 저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자기백성에게만 화와 복, 저주와 재앙과 심판의 계시를 보이시면서 통과 의례를 치르게 하십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견해와 입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한의 계시 대상은 교회인 성도들이며 666은 각자 자기속 마귀성입니다
매우 일리있으며, 많은 부분을 공감합니다. 훌륭하신 연구입니다. 다만, 계 13: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라고 되어있는데, 이 구절에 의한다면, 오히려 개체수를 의미하기보다는 이름의 의미를 드러내는 숫자가 아닐까요?
저도 공감되는 부분 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는 각각숫자가 있는데
당시 요한사도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려 했으나
그 이름을 언급하게 되면 곤란하므로 숫자로 말한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흉악한 [ 네로 ] 의 이름에 가이사 를 숫자로 합하면
666 이 됩니다
@나팔 소리 공감합니다
베리칩이 666이 아니다라고 하는글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글인것같네요
하지만 본문의 글과 비슷하게 해석하면서 베리칩이 666일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글 또한 설득력이 있더라구요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전혀 설득력도 없고 공감도 안가네요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