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불교적 죽음관에 근거하여 실제 죽음을 앞둔 이들을 향해 사찰과 스님이 하고 있는 역할을 조명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죽음을 앞두고 불교를 찾아가는 이들이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줄어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신도의 임종을 함께 맞이하고 유족과 함께 죽음을 애도하는 불교의 역할은 미미한 실정이다.
죽음준비 기획시리즈 마지막으로 불교신문은 지난 6월29일 이범수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와 하지원 불교여성개발원 웰다잉운동본부장과 함께 ‘현대사회의 불교적 죽음준비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대담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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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라는 의식과 사성제 중도와 같은 불교 핵심사상을 기반으로 자신을 바로보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선행된다면, 죽음도 온전하게 맞이할 수 있다. 하지원 불교여성개발원 웰다잉운동본부장(사진왼쪽)과 이범수 동국대 교수. |
하지원 본부장=“불교적 웰다잉이란 잘 죽기 위한 대비교육이 아니다. 삶의 가치기준을 제대로 놓고 성숙하게 살다 생을 잘 마감하기 위한 여정이다.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탐욕이 인간관계를 해체하고 무리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게 하며 지구환경 파괴로까지 번져나간다. 불자들도 평생 법문을 듣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면 뭐하나. 내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범수 교수=“몇해 전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웰다잉교육’을 한 적이 있다. 현행 49재를 현대적인 법문으로 새롭게 바꿔야 하고, 유족을 치유해주고 상실감을 회복시켜주는 49재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49재란 영가와 유족을 위한 구조화된 집단상담이다. 영가만을 위주로 한 기존의 재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부처님께서는 일찌감치 대중들에게 생사해탈을 위한 웰다잉 죽음교육을 선보이셨다.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신 것이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2500년 전 부처님이 깨달은 바를 오늘날 이어오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이범수 동국대 교수
극도의 죽음불안 집착도 문제
쉽고 친절한 죽음매뉴얼 필요
백중 생전예수재 현대적 활용
영가-유족 구조화된 집단상담
이=“죽음을 준비하라니까, 죽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들도 있다. 극도의 죽음불안에 휩싸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법당에서 기도만 하면서 부처님에 매달려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 영적인 세계가 발달된 사람은 자기존재와 세상을 잘 연결시켜 죽음불안을 극복할 뿐아니라, 보시행을 실천하고 봉사활동도 활발하다. 죽음의 그림자에 눌려 사는 준비가 아니라, 죽음을 바로 알고 이를 넘어서는 삶이 진정한 죽음준비다.”
하=“일본이나 독일, 미국, 스웨덴에선 100년 전부터 유년기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어린 아이들은 웬만하면 장례식장에 동반하지 않는다. 어린시절부터 교육을 통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죽음이 온다는 것을 깨치게 해줘야 한다.”
이=“요즘 젊은 대학생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다. 죽음은 내안에 있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죽음을 내재화하고 수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죽음이 저승사자가 오는 것이라 생각하는가.(웃음) 죽음이 오면서 육체는 어떻게 노화되고 어떤 마음이 오는가 제대로 자각해야 하는데, 불안정한 상상의 나래로 인해 죽음불안만 커진다.”
하=“불교는 죽음 관련 수승한 교리를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도, 이웃종교에 비해 죽음교육에 뒤처지는 현실이다. 기독교 가톨릭은 교회 성당의 신도가 몸이 아프기만 해도 끊임없이 집에 찾아가 집단적으로 예배를 하고 미사를 올리면서 사후세계에 편안한 영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위안을 준다. 임종순간은 물론 임종예배와 장례식에 이어 입관절차까지 책임져 준다.”
하지원 불교여성 웰다잉본부장
잘 죽기 위한 대비교육 아니라
삶의 가치기준 제대로 놓는 길
‘죽음에 대한 보장’ 역할 기대
자리이타행 실천 출발점 돼야
이=“번뇌를 끊고 생사를 초월하는게 불교라고 할 뿐, 우리 불교계 스님들은 친절한 죽음교육에 서투르다. 가톨릭에서 임종심리상담이 발달돼 있고, 기독교도 부목사제도가 있어 담임목사가 챙기지 못하는 신도들의 죽음문제를 보살펴준다. 서울 송파구 불광사의 경우엔 광덕스님 생전인 40여년 전부터 사찰 상조문화가 잘 발달돼 있어서 지금까지도 신도회 유대감과 결속력이 뛰어나다. 오늘날 불광사로 자리매김한 원동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60대가 되면 사람은 노동력을 상실하고 몸이 늙어가고 자기 삶 한가운데 죽음이 자리잡는다. 이 때 종교의 역할은 바로 ‘죽음에 대한 보장’이다. 죽음 순간까지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면서 내 곁에서 나를 관리해줄 도반이 있다는 안심을 종교가 해줘야 한다. 그럴 때 자기삶을 충실히 하고 봉사하고 보시하는 삶을 살 것이다.”
이=“죽음의 실체 외에도 임종과 장례 유족심리 등 죽음을 전후해서 불교가 해야 할 영역은 넓다. 사찰별로 관음회와 지장회 등을 만들어 죽음 전후 신도들을 관리하는 시스템도 보완했으면 한다. 49재는 유족과 영가는 물론 친인척들에게 한자리에서 불교정신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상당한 포교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하=“49재를 열심히 지내고 나도, 유족들에게 죽음을 물으면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다. 형식적인 의례에 그치기 때문이다. 영가를 향한 미안함과 아쉬움을 49재로 해소하려는 유족들도 적지 않다. 미안함과 아쉬움을 덜어내기 위한 웰다잉 죽음준비는 사후 49재보다 더 가치있다. 후회없는 죽음,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온전하게 함께 하는 행위다. 불교가 사후세계에 너무 치중하고 현재의 삶은 그저 공(空)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죽음준비를 지금 삶의 한가운데서 건질 수 있어야 한다. 불교의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불교에선 생전예수재라는 가장 좋은 죽음준비시스템이 엄연히 존재한다. 불교교리의 핵심사상이랄 수 있는 공(空)과 중도(中道)의 바른 지혜를 토대로 자아통합능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자아통합력이란 과거의 삶에서 잘했던 못했던 간에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과거의 사별이나 싸움, 갈등과 아픔 등 트라우마성 사건들을 극복해야 한다. 고집멸도(苦集滅道)와 같은 사성제를 통해 이를 제대로 해결하고 온전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불교신문3118호/2015년7월4일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