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매뉴얼 요약/정조 꿈이 서린곳/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매화줄기의 끝자락에 맺힌 꽃망울 같은 형상/창경궁과 분리 :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두 궁궐의 후원에 담장을 쌓아 지금처럼 분리 됨. 전당(왕,왕비,상왕,대왕대비)합각(전당의 부속건물)/재현(왕실가족)누정.
- 아시아 3대 아름다운 궁전 : 중국의 이화원(6대, 청 건륭제, 서태후, 1750년, 1998년 세계문화유산)/일본 계리궁(경도, 17세기)
- 후원 해설 처음 한사람 : 정조(1782년) - 3정승 및 신하들 대상/마름모 담장문양(일본식), "ㅁ"자 문양(한국전통문양)/창덕궁 공사 감독관 문인/건축과 조경에 인문정신을 담으려는 왕들의 깊은 속내 뜻.
1. 후원 들어가는 인사말
창성한 덕 밝은 덕이 있는 궁궐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이곳 창덕궁 후원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매우 아름다운 정자와 연못이 어우러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평 : 건축물이 자연적 배경과 훌륭하게 조화된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탁월한 유산이다.)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90분동안 후원 관람을 함께 할 우리문화 숨결 궁궐길라잡이 양은석입니다.
후원의 연못과 정자는 직접 찾아다니면서 즐기셔야 힐링에 도움이 됩니다.
단 어린이를 동반하신 보호자분들은 안전한 관람이 되도록 연못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2. 후원의 개요
후원은 태종 6년 1406년 해운정을 짓기 시작, 세조때 본격적으로 확장(동쪽 민가 73채, 북쪽 58채 헐음), 성종때 창경궁 영역까지 확장하였고 임란때 모두 불타고, 1610년 광해군 때 재건, 인조 때 완공했습니다. 그후 숙종, 정조, 순조, 순종 때 개보수, 증축 해 오늘에 이르고 있음. 숙정순순
후원은 창덕궁 총면적 145,000 여평 중 95,000평, 수종 160여종 중 70수가 300년이 넘는 고목, 누각 18채와 정자 22채와 기타 연못 5개, 화계, 취병 등이 있으며 백악산의 응봉(매봉우리) 아래 자리하고 있는 왕실의 정원, 임금이나 세자 공부(글을 읽고 학문연마), 궁중문학의 산실, 휴식공간(임금의 휴식처)입니다.
3. 후원의 명칭
조선초에는 제왕의 숲으로 상림원이라고 했고 궁의 뒤쪽에 있다 해 후원, 궁안의 정원이라 내원, 임금의 허락없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정원 금원, 고종 때 관청이름으로 비원(집원), 일제강점기 비원(광무8년 1904년 7월 15일), 궁 북쪽에 정원 북원, 임금의 정원 어원 등 다양하게 불리어지나 후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시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럼 주합루 영역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4. 주합루와 부용지 일원/정조(1776년 3월 10일~1799년 6월 28일)
정조가 1776년 9월 즉위 후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백성의 삶을 세심히 밝히고자 왕권강화를 뒷받침 할, 인재 양성 중추기관을 만들어, 개혁정치(새로운 정치와 문화)를 펼치고자 조성했음. 일제강점기 연회장(1904년 러일전쟁 자축연 행사장)으로 활용되는 등 수난 겪음./내규장각 1781년 전각으로 이전(이유 : 후원에 있어 이용이 불편)
가. 주합루(宙집주合합할합樓다락루, 종부시 소속관서, 족보관장)와 규장각 : 1776년 9월건립, 현판은 25세때 정조글씨/강화 외규장각(1782년,1866년병인양요 도난, 2011년 154년만에 반환)
1층 규장각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으로 왕실도서관이자 학술, 출판기관으로 8만여 장서를 열고관, 계유와, 서고 등에 함께 보관. 2층 주합루는 천지 우주가 통하는 집(우주가 하나되다)으로 당저(그 당시 임금, 정조)의 어진을 모신 곳입니다.
나. 취병 :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타리로 주합루담장. 나무는 대, 사철, 향, 주목,측백나무 대사향주측
다. 어수문(魚고기어水門)/촉의 유비(현덕)와 제갈량 고사인 "수어지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원은 水魚之交, 즉 임금과 백성,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물없이 살 수 없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임. -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문임 /삼국지, 위조조, 오손권, 촉유비(관우,장비,제갈량,27세)/유비(촉)에게 제갈공명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다.
- 화계 중앙에 어수문을 만들어 주합루로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어수문 가운데는 임금이 좌우 소문은 문, 무반이 통행
- 문이 낮은 이유는 허리를 굽혀,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의미.
- 한마리 잉어부조상 : 중국 황화상류에 용문이라는 깊은 협곡이 있는데, 이 협곡을 올라서야만 잉어가 용으로 승천한다는,등용문전설.
라. 부용정(芙 연꽃부연꽃용亭정자정)/내전(內殿대궐전) 역할을 한 곳. 상량문 정조(1776,3~1779,6)가 직접 씀/택부/보물 1763호
- 연못에서 피어난, 한송이 연꽃에 비유되는 정자로 정자를 위에서 보면 亞. +자형
- 숙종(1674~1720) 33년 1707년 택수재로, 정조 1776년 개축하면서 부용정으로 부름
- 1795년 종친과 산하들을 초청 혜경궁 홍씨 회갑연/정자 높은곳(임금자리),낮은곳(당상관자리), 흙바닥은 당하관자리
- 지붕에 항아리 모양 절병통/희우상련(喜기쁠희,雨賞상줄상蓮연밥련),희우정에서 부용정에 핀 연꽃감상,상림10경), 어수범주(魚물고기어水泛뜰범舟배주) 숙종의 시(어수문 앞 부용정에서의 뱃놀이,상림10경)
* 부용정 상량문 : 대장괘(大壯장할장卦점괘괘)의 견고한 상(象)을 취했다고 적혀 있음. 대(大)은 양(陽볕양)을 장(壯)은 왕성하다는 뜻으로 부용정이 "임금의 자리" 임을 의미. 나머지 공간은 "가인괘(家人卦)의 한 집안 안팎이 모두 바른 상을 견주었다." 적혀 있음.
가인은 한 집안 사람들을 즉 "신하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개축된 정자."
마. 부용지(부용:만개한 연꽃,池연못지,정조1776년):300여평(34.5X29,4m) 연못. 화강암 장대석을 쌓아 만듬
- 천원지방(天圓둥근원地方) 사상(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 하늘(우주, 天)을 상징하는 둥근 섬, 땅(地)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에, 인간(人)을 상징하는 정자가 발(탁족 - 내 잘못이다. 두다리를 물에 담그고 발딲음)을 담금-천지인 사상(천원지방의 동양적 우주관 반영)/ * 천원지방 사상 : 임금의 흉대는 원형이고 신하의 흉대는 네모짐.
- 혜경궁 홍씨 화성 행차 후 연회, 정약용 활쏘기(잘못 쏨, 벌로 둥근 섬에 놓여짐), 시짓기(정조와 오제순 등 규장각 관원 27명)
- 부용지 한 귀통이 물고기 : ① 물과 물고기 - 임금과 신하의 위계질서 표현 ② 어변성룡 : 변변치 못한 사람이 자라 큰 인물이 됨을 표현한 부조상 ③ (과거 응시자들이)잉어 부조상을 보며 장원급제를 빌었음/부용지에는 원래 우물이 있어 물이 솟았다 함.
- 상화조어연(賞상줄상花꽃화釣낚시조魚고기어宴잔치연) :꽃을 구경하고 고기(4마리 잡음)를 낚는일/채주금범(彩채색채舟배주錦비단금帆돛범):채색이 아름다운 비단 돛배 2척, 동궐도상에 부용지에 떠있는 배 2척을 말함.
바. 영화당(映비칠영花堂집당)/꽃과 어울리다./편액 60세 영조 30년 1754년 어필/ 조선후기 대표적인 전시 과거시험 장소/"춘당대시"
- 1610년 광해군 때 건립(이 일대 건물 중 가장 오래 됨)후 숙종 18년 1692년 재건.
- 왕이 친림 특별과거 시험장소(차일치고 300명 응시)로 알성시 등 문무과 전시 과거시험장소.
- 영화당 춘당대는 1. 정조 이전 왕과 왕실, 신하들의 연회와 휴식공간, 2. 임금, 신하, 병사들의 활쏘기 연습장소. 3. 망배례(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 또는 연고가 있는 쪽을 향해 절하는 예의), 4. 기우제 등 국가의 공식, 비공식 행사를 치르는 야외 공간이었고 호위는 북영(훈련도감) 군사들이 함.
- 이몽룡의 장원급제 시제 : 춘당춘색고금동(春塘못당春色古옛고今이제금同)
봄에 연못과 빛깔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 임금의 은혜가 예나 지금이나 같다.
- 궁궐지 선조, 효종(춘덩대만궐래), 현종, 숙종의 편액 걸려 있다고 전하나 현재 무. 선효현숙편
- 영화당 담장 회문양, 구름문양(신선들이 사는 곳), 용과 박쥐(복)의 기와/영춘문 담벼락모양 - 콩떡 담벼락.
- 정조 활쏘기(문무에 탁월) : 50발 중 49발 명중. 일부러 한발은 맞추지 않음.
- 서총대(瑞상서로울서蔥파총臺돈대대) : 연산군 12년 1505년, 석대와 정자를 짓다 중종반정(1506년 9월 2일)으로 완공하지 X, 높이 3m, 1000명이 앉을 수 있는 경회루 같은 정자.
- 다산 정약용(2등) , 초정 박제가(1794년, 북학의) 장원급제 장소가 춘당대 임
사. 서향각(書香향기향閣누각각): 서향은 책의 향기, "책향기가 나는 집." 초기에는 이안(移옮길이,安)각(신주나 어진을 옮겨 모신다)으로 부르다, 정조 1776년 9월 서향각으로 개칭.
- 어진과 어필, 어제(임금이 지은 글)등을 4개월마다 말리던 포쇄(폭서)소, 서고 , 체험공간(정조 비가 친잠례를 하던 곳-누에치던 곳, 1911년 일제는 양잠소라는 안내판)으로 사용, 친잠권민(親친할친蠶누에잠,勸권할권民백성민) 현판 있음.
* 정조(1776년 3월10일~1799년 6월28일)의 부인들 : 효의왕후 김씨, 의빈성씨(문효세자1782~1786,4세 죽음), 수빈박씨(순조)
아. 천석정(天石亭, 1776년 이후) : 누마루에 제월(비갠날 달)광풍(맑은 바람)관(정조글씨 추정) 현판, 천석은 백성의 풍년기원, “풍년이 든다”는 의미, 정조,신하들과 독서, 효명세자 공부공간/제월광풍 : 비갠날의 달과 맑은 바람(도량이 넓고 시원시원 함)
자. 사정기비각(四井우물정記기록할기陣진칠진)/4개의 우물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열무당 - 봉모당 지음(1792,어필 보관)
- 세조 6년 1460년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며 열무정(세조5년 1459년건립) 부근에 좋은 물이 있으리라 판단, 조카 영순.오산군과 네 왕자에게 우물을 찾도록 지시. 부용지 부근에서 4개(마니,파리,유리,옥정) 우물 발견, 왜호란때 2개는 없어지고 2개만 남아 숙종 16년 1690년 2개 우물을 보수, 정비하고 그 이유를 비각에 새겨 건립(옛 술성각 자리)한 비각. 비각 옆 용두문양과 오얏꽃문양이 있음. 숙종의 "사정기"를 비각에 새김. 큰우물(세조),작은 우물(숙종)
* 많이 파니 유리같은 옥이 나왔다.
5. 애련(연꽃을 사랑하다)지 일원/숙종(1674~1720, 18년 1692년 - 연경당 장락문 밑에가 우두합, 운경거, 애련정/군자의 성품을 닮은 경치에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상림10경중 한곳./인경왕후 김씨,인현왕후 민씨,인원왕후 김씨(희빈 장씨,숙빈 최씨(연잉군),명빈박씨(연령군))
가. 불로문(不老門, 늙지 않는 문, 임금의 불로장생,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 숙종 때 건립) : 하나의 화강암 통돌을 깎아 세운 문, 홈을 팠던 흔적은 예전 문을 달았던 것. 지금은 메워 짐. 임금 평균 수명 47세. 임금 단명 이유(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한번 통과시 60년 수명 연장(1갑자).경서체(유교경전을 찍어냈다 해 경서체임(선조 때), 바깥이 둥근 것은 하늘, 네모짐은 땅.
나. 금마문 : 의두합 정문, 한나라 미앙궁에 있던 문 중 하나로 문옆에 금(金)으로 만든 말(馬)이 세워져 있어 붙은 이름 , 안에 왕세자가 있음을 상징. 순종 때 차가 통행할 수 있게 만듬/금마문은 원래 환관을 관리하는 부서의 문.
다. 애련정(愛蓮연밥련亭정자정)/숙종 18년 1692년 건립. 편액명은 송나라 주돈이 애련설에서 인용.
- 정자 이름 붙인 이유 : 숙종은 “애련정기”에서 “연꽃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 밝힘.
- 원래는 연못 한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하나, 현재는 섬이 없고 정자는 연못 끝에 걸쳐 있고,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이야기가 서려있는 아름다운 정자.
-기둥 위쪽과 창방 아래에 아름다운 낙양(각)장식(액자 역할)이, 문양은 당초문(넝쿨)(기둥 위쪽과 창방 아래에 붙인 파련각(연꽃 물결이나 구름 모양이 연속되는 조각)의 장식 물)/안에서 보면 액자 역할
라. 애련지(愛蓮연밥련池못지)/숙종 18년 1692년 만듬, 숙종이 이름 붙임.
마. 어수당(광해군 때 건립) – 봉림대군이 송시열과 북벌정책 논의 장소. 애련지와 작은 못 사이에 있었음
- 인조반정과 어수당 일화 : 광해군 비 문성군 유씨는 미리 반정 낌새를 알아차리고 궁녀들과 몰래 어수당에 숨음.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어찌할 수 없다 판단한 유씨는 보향이라는 궁녀를 시켜 어수당에 있음을 알리고 반군대장에게 “반정이 의거다 "라며 어찌 전왕의 비를 굶겨 죽이려 하오 ? 라고 하자 대장이 인조에게 보고 유씨에게 음식을 후하게 차려 주었다고 하는 얘기.
바. 의두합(倚기댈의,의지할의,斗(북두성),閤쪽문합,기오헌)/이안재(숙종18년 1692년) 자리에 재건(효명세자 1827년), 북향
북두(칠)성에 기대어 번성하고 화려한(경화京華- 번화(번성하고 화려한)한 서울)한양(서울)을 바라보다/고종때 "동국여지비고
* 경화 : 번화한 서울, 서울의 번화(번성하고 화려 함) 함/이안(易쉬울이安),기오(寄부칠기傲거만할오) - 도연명의 귀거래사 "의남창이기오 심용슬지이안" 에서 인용/의두합 뒷편 돌에 "추성대, 초연대 새겨 있음.
- 의두합 마루 상단 기오헌(奇부칠기傲거만할오,軒추녀헌, "거(오)만한 기개를 맡긴다")이라는 현판/원래는 의두합으로 현재는 기오헌(마루부분만 지칭)으로 부름. 책 수만권 보관
- 효명세자 대리청정(익종, 문조로 추존, 정전에 모셔짐) 당시 독서공간으로 세워./의두합십경시 전함
- 할아버지 정조를 닮으려는 효명세자(11세 즉위, 논어를 떼고 맹자 학습, 1809~ 1830) 자취가 남아 있음.
* 효명세자 : 정조 다음으로 조선후기 개혁정치, 노론혁파, 실추된 왕권회복 위해 노력, 문예 부흥노력, 궁중음악(영지, 온화무, 정재무,춘앵무)정리, 각혈로 22세로 단명(대조전 출, 희정당 망)/대리청정:1827~1830/헌종 8세 즉위(1834~1849,6,6, 중희당 죽음)
* 순조 11세 즉위 : 안동김씨 세도정치 60년(권력집중, 민란초래), 노론에 시달림, 순원왕후(순조) 김씨(김조순), 풍양조씨(신정왕후(헌종) 조씨, 조만영)/붕당정치(호평 : 세력 균형) : 동서남북인,노소론
사. 운경거(韻운치운磬경쇠경 살,居있을거) :“시(詩시시)와 음악(音소리음樂)이 있는 집“. 정면 1칸 반, 측면 1칸짜리 백골(白骨)집으로 궐내에서 제일 작은 팔작지붕 건물. 마루밑 5개 구멍 나있음, 책과 악기 보관, 궁중제례악 정리 등 공간으로 활용-효명세자가 독서 및 음악을 즐기며 휴식을 취한 공간.
6. 뽕나무 : 400년 천연기념물/신선원전 다래나무 : 600년
- 조선 농상(農농사농,桑뽕나무상)장려. 농은 농사, 상은 뽕나무상, 친잠, 누에를 쳐서 비단을 짜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김.
7. 관람지(觀볼관纜닻줄람池연못지,반월지)/고종(관람지,관람정), 순조(폄우사,승재정), 인조(존덕정)때 건립
- 관람의 의미 “닻줄을 내려 놓고 경치를 감상하다.”(배타고 나가고 싶다)
- 후원 영역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곳으로, 장방형 연못 2개와 원형의 1개 연못 있었으나, 고종 21년 1884년 고종이 뱃놀이(배를 띄워 놀이를 할려고)를 하려고 하나로 만든 이후 곡선형 한반도형 모양으로 변함. 명칭 반도지에서 관람지로(고종 21년 1884년),
- 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역행적 구조의 연못.
가. 관람정(선좌정, 1884년,고종 추정) :부채꼴형 정자로 합죽선을 편 듯한 모양, 관람정 편액 관람정이 나뭇잎 모양. 부채선, 부채좌, 여섯개 기둥, 장마루(송판이 길게 느러진 판), 평난간(무늬가 없는), 낙양장식, 이국(청나라)적인 정자
나. 폄우사(돌침폄,愚어리석을우,榭정자사,1827년 건립) : 편액(건물 이름)명 폄우는 “어리석은 자에게 돌침을 놓는다”(어리석음을 고치다)는 뜻으로, “임금이 자신을 되돌아 봐 어리석음을 깨우쳐 덕을 높이라.” 는 의미내포. 효명세자 독서, 공부공간. 정조의 폄우사 사영시, 효명세자 시./마루방과 온돌방.
다. 승재정(勝이길승,在있을재,亭정자정) : 경치가 빼어나다./효명세자
- 1820년 초정/1820년 후 전각 세워짐. 1830년 동궐도에 보이지 않음. 궁궐지 1907년에 보임. 농수정(연경당)과 비슷함.
라. 존덕정(尊높을존,德큰덕,亭정자정)/인조22년 1644년 건립, 육우정, 육면정- 존덕정으로/만주족 건축양식
- 1636년 병자호란때 청에 볼모로 잡혀 같다가 온 봉림대군(효종,1649)이 심양의 고궁 대정전(1625년)을 보고 온 뒤 건립.
- 봉림대군이 인상적으로 봄. 인조 그대로 반영 해 건축.
- 이중지붕(겹처마) 구조, 이중마루(안마루-우물마루, 평난간, 바깥마루–장마루, 亞자 난간), 24개 기둥.
- 우물반자 보개천정, 천정 중앙에 쌍룡(황룡과 청룡)이 여의주(용의 턱밑에 있는 영묘한 구슬)를 희롱하는 그림.-왕권의 지엄함상징.
- 현판 글씨 : 현종 글씨(현종 심양에서 출생, 존덕정 지은 해 귀국)
- 존덕정 창방에 게판(54 줄)/정조(1776~1799) 말년 1798년 12월 3일 쓴 만천명월주인옹(정조 호)자서 : 의미는 “ 모든 하천에 달이 뜨지만, 하늘에 있는 떠있는 달은 하나이고, 그 달이 나(정조)니까, 왕권은 지엄하다.”는 것.
- 정조의 개혁정치 상징물 : 태극(달)과 물, 품계석(1777년), 물과 물고기(임금과 신하는 상하관계, 위계질서, 부용지 물고기 양각과 어수문)/정조 11세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 접함, 붕당정치 폐해 보고 자람(노론 벽파가 심함)
- 일영대 : 해시계를 받쳤던 것(존덕정 바로 석교 옆)/왕자 걸음 시범/은행나무 300년/석교 : 홍예교, 동자주 연봉
마. 취규정(聚모일취,奎별이름규,亭정자정.인조18년 1640년) : 임금과 신하(규장각 학자)들 휴식과 독서공간
취규는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 들다. ” 학자(인재)들이 모이다. "인재(학자)들이 모여 들어 천하, 나라가 태평해짐"를 의미.
규성은 28개 별자리 중 하나. 초익공,홑처마,팔작지붕,우물마루,우물천장
- 남명초 : 정조 애연가. 담배를 농가에 보급할 방안 시험문제 출제. 후원에 담배 농사/ 정조 깍두기 즐겨먹음, 깍두기 해독작용, 냉면에 무,배,수박 넣은것은 메밀에 독성을 제거 하려고/정조재위24년(1776,3~1799,6) :나들이 66회 중 화성행차 13회
- 인정(28번 타종-28개 별자리에게 주무시겠다 알림)/파루(33번 타종-부처 33개 :하루를 편하게 살게 해달라 알림)
- 임오화변(영조38년 윤 5월 13일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21일. 9일만에 죽음(정조 11세), 경기 화성 현륭원(융릉)에 묻힘.
8. 옥류천 영역/인조14년 1636년 가을에 조성, 1636년 음력 11월에 병자호란 일어남/내원상화계축쟁재축(1793년, 3월)
임금의 휴식공간이자 신하들과 연회(유상곡수연, 소요암(인조 1636년 병자호란 직전 가을 조성 추정)를 가졌던 곳으로, 어느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정원.
가. 취한정(翠모을취寒찰한亭정자정, 찬기를 모으는 정자)/소나무 숲이 울창해 여름에도 한기가 도는 정도로, 경치가 좋고 아름답다는 뜻. 퇴계 이황 맑고 깨끗함.
- 숙종 46년 1720년 이전 건립추정 :숙종의 어제(임금의 글)취한정제(제목제)영(읊을영)시-숙종이 취한정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
정조의 시가 전함.
- 원래는 마루바닥에 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무, 개방된 형태. 홑처마 팔작지붕
- 임금이 옥류천 우물에서 약수를 마시고 돌아갈 때 쉬었다 가는 용도(독서와 휴식)로 지어진 소박한 정자.
나. 농산정(籠/대그릇농,山,亭, 인조14년 1636년 건립) : 농이 짙은 푸르름(숲,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정자. - 휴식공간이자 신하들 학문시험 장소
- 정조 농산정에서 4번 재숙(정조16년 20년 1792년 3월 18일, 1796년 3월 18일)
- 정조 1796년 3월 19일 명황제 의종 기신제(능에서 제사) 지냄. 신종(임란시 원병파견),의종(명 마지막황제)
- 1. 화성행차 준비, 2. 순조 음관의 학문 시험장소, 3. 혜경궁 홍씨 회갑기념 화성행차 가마메는 연습 후 수라간 생과방에서 과일, 음료, 떡 등 대접, 온돌방이 있어 양측 방화벽 있고, 굴뚝 있음, 순조,효명세자 시 전함
- 내원상화갱재축(內苑나라동산원賞살줄상花賡이을갱載실을재軸굴대축정조 1792 임자년 3월 21일, 1793 계축년 3월 20일 옥류천 소요암)- 정조가 규장각 관원들과 술잔을 주고 받으며 나눈 시문을 모은 두루마리(꽃구경, 낚시, 술잔을 띄워 놓고 시를 읊음)
- 내원상화임자 갱재축(신하 27명과 시를 읊음, 농산정과 택수재에서, 오재순 등), 내원상화 계축갱재축(소요암에서, 40여명 시를 읊음, 정미시, 서정수 등)
다. 태극정(太클태,極다할극,亭정자정,인조14년 1636년)/운영정(雲구름운影그림자영亭)-태극정으로
- 숙종의 상림3정기에서 태극정 경치 평하길 “곁에는 못을 파서 물을 대고, 돌을 뚫어 천류를 끌어 들였는데, 규모는 크지도 사치스럽지도 않으나, 경관은 쇄려하다”고 극찬/사방에 문이 달려 있었으나 현재는 무, 평난간, 절병통.
- 태극(太極) : 하늘과 땅이 나눠지기 전의 세상, 만물의 원시상태. 정조의 태극정시 전함.
라. 청의정(淸맑을청,義옳을의,亭정자정,인조14년, 1636년, 맑은 잔물결)/어정 고종 때 만듬
1. 청의는 “맑은 물결, 물이 맑다”는 뜻. 주자의 시 “맑은 물결을 감상하는 정자”에서 인용
- 장방형 논 가운데 초정 설치, 2. 천원지방 사상(초정은 원형, 논은 네모짐)
- 궁궐에서 3. 유일한 초가지붕, 팔각(지)의 초가지붕 정자/ 천지인 3요소 구비 : 원형지붕(천), 팔각(지), 방형(인)/ 1830년대 동궐도 : 4. 16채의 초가와 연못 보임
5. 창경궁 춘당지 11개 내농포와 정자 앞에 논 조성 : 임금이 직접 벼 이앙 및 수확 후 볏짚으로 지붕 이엉 함 :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과 농사의 풍,흉년을 가늠 해 보는 목적 등/친경례(親耕밭갈경 禮) : 백성들에게 농사 권장하는 례
- 상림삼정(제왕(황제와 임금)의 숲에 정자 3개) : 청의정, 태극정, 소요정
- 정조 시 2편과 선조 어필(현판)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 않음/ 천장 중앙 연화문양, 초석에 파련문양의 화려한 연화문양
마.소요정(逍거닐소遙멀요亭정자정, 인조14년 1636년) : 탄서정에서 소요정으로 .
소요는 “구속없이 천천히 노니다.”/탄서정(歎읊을탄逝갈서) : 물처럼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을 탄식하다/숙종의 “소요관천”, 정조의 “소요정과소요정유상”, “소요정기“, 순조의 “소요관천” 등 소요정의 경치를 읊은 시 남김.
바. 옥류(옥처럼 맑은 물)천 소요암(위이암) 주변/후원영역 중 가장 깊숙한 지역, 인조 14년 1636년 가을 조성. 고종이 이등방문 초정 연회 베푼 장소/ 임금이 신하들과 유상곡수연 등 각종 연회와 휴식을 취한 공간/소요(임금이 국사를 다 잊고 천천히 거닐며 해방된다 - 구속없이 천천히 노닌다)암에 새겨진 “옥류천” 글씨 : 인조의 친필.
- 유상곡수연 : 상류층의 유희로,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짓는 것, 벌주 : 잔이 앞에 올 때 까지 짓지 못하면 한 잔 더 마심.
- 옥류천 계곡 바닥에 태극무늬(석교 아래), 옆에 주목(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나무)(택솔성분 - 항암치료제, 당뇨, 담, 막걸리 담글 때 잎 줄기 사용, 수나무는 흰꽃, 암나무 앵두같은 열매, 태백산맥 서식)/ 위이암 : 강세황의 "호가유금원기" - 정조와 후원 관람이야기를 적은 글
- 숙종(1674~1720, 19대, 숙종16년 1690년)의 오언절구 어제시 : 옥류천 일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음.
飛(날비)流(흐를류)三(석삼)百(일백백)尺(자척)/옥류천 폭포에 흩날리는 물은 삼백척(약 80m)높이
遙(멀요)落(떨어질락)九(아홉구)天(하늘천)來(올래)/저멀리 떨어지는 물은 구천(하늘)에서 내리네.
看(볼간)是(바를시)白(흰백)虹(무지개홍)起(일어날기)/떨어지는 물을 보니 흰 무지개 일고
翻(날번)成(이룰성)萬(일만만)壑(골학)雷(우뢰뢰)/골짜기마다 천둥과 번개소리 가득하네.
* 참고) 오언절구 : 기승전결의 4구로 된 오언시/숙종의 감성, 호연지기를 알 수 있음.
- 심한 과장적 표현(물줄기 삼백척, 물이 하늘에서 내린다)/ 골짜기마다 천둥소리 : 숙종의 장희빈에 대한 애증 표현이 아닐까나 ?
9. 능허정(凌능가할늘虛빌허亭정자정,숙종17년 1691년)/상림(제왕의 숲)원에서 가장 높은 산정상,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 쌓여 외부와 격리된, 장식이 거의없는 사모지붕의 소박한 정자
- 능허는 “허공에 오르다”는 뜻으로 "정신세계가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능허모설 : 능허정에 해질녘 눈내리는 광경.
* 산단 : 산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산단을 모셨고, 인조 기우제(항아리에 물과 도룡뇽 넣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지냄.
10. 청심정(淸맑을청心亭)/취규정지나 좌측위치 비공개, 숙종14년(1688) "천수정"에서 청심정으로
- 임금이 밤에 달구경도 하고, 시를 지었던 정자임.
- 숙종이 사계절을 노래한 “사시제영”, 정조가 비갠 날 밝은 달을 노래한 “청심제월(淸心薺月)”
- 순조가 밝은 보름달을 노래한 “청심완월(淸心玩月)”
- 석연지인 "빙옥지(氷얼름빙玉구슬옥池연못지) : “ 얼음처럼 차갑고, 맑은 물이 고인다.”는 뜻
거북이는 정자를 바라보고 들어가는 형상, 꼬리는 힘찬기상, 등에는 빙옥지라는 글자가 음각돼 있음
11. 가정당(嘉아름다울가靖꾀할정堂집당)/대조전,경훈각 뒤편에 있음/덕수궁에서 1920년 옮겨 옴
- 임금 국사처리, 경사시 몇몇 신하와 소연 행사장소, 순종 병상에 있을 때 쾌차기도 올림(1926년 4월).
12. 연경당(演멀리흐릴연,慶경사경,堂집당,보물 1770호) 영역/예전 "진장각" 터
- 경사스러운 것을 연출하다"의미.
- 예전 진장각 터에, 효명세자(1809~1830)가 아버지 순조에게 진작례-진찬(進나아갈진爵벼슬작禮예절례,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며 가무를 공연하던 행사(영지무, 온화무, 정재무, 춘앵무), 왕권강화책 일환)을 올리기 위해, 1828년 사대부집을 모방해 지은, 122칸의 민가형식의 집으로 단청하지 않음. 궁가(宮家)양식에 가까운 집. 대리청정(1827~1830년)
- 주자가례에 따라 남자공간인 사랑채, 여자공간 안채, 독서,서고, 손님접대 공간 선향재, 외국사신 접대공간 농수정으로 구성.
- 일반 사대부집과 다른 점 : 가묘 없고. 안방 옆 부엌없고 반빗간이 설치 된 점.
- 고종 연간(1865) 증축, 외국공사 접견, 연희공간 등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 됨, 순원왕후 김씨(순조의 계비, 효명세자 모,안동김씨, 김조순) 탄신 40주년 진작례(내진연), 효명세자 사후(1830) 순조(1800~1834)가 말년 지냄
* 참고) 주자가례에 따라 남자들의 공간인 사랑채와 안주인의 공간인 안채, 선향재(善착할선香향기향齋재걔할재) 는 독서,서고 겸 손님(문인)접대 공간, 농수정(濃짙을농,繡수놓을수,亭정자정) 은 외국사신 접대 공간(이등방문) 등으로 구성.
* 참고) : 1. 가묘(家廟사당묘,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제사 지내는 사당)가 없고, 2. 안방 옆에 부엌이 없고 3. 반빗간(통벽문 안, 음식준비, 빨래)이 설치된 점이 일반 사대부 집과 다름.
* 참고) 진연(進나아갈진宴잔치연) : 조선후기 궁중잔치의 하나로 외진연은 왕의 생일, 내진연은 왕비나 대비 등 내명부 축하잔치.
* 궁중잔치의 종류 : 진작, 진찬, 진연 등
가. 장락문(長樂門, 긴 즐거움, 장수)/연경당 정문옆 풍기대/달의 정령 : 석분에 토끼와 두꺼비
- 장락(長樂)은 "오래도록 즐거운 삶을 누리는 월계의 문" 의미로(신선처럼 아무런 근심 걱정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염원)
- 현판 글씨는 (중국 전설에 불사약을 가진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살던) 달나라에 신선의 궁궐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작자미상. 도교사상. 연경당을 신선이 사는 집으로 비유한 셈. 솟을대문(자동차나 말 통행)
- 석교는 오작교, 흐르는 물은 “은하수”, 석합 윗면 네모서리에 달의 정령 두꺼비(달나라, 신선세계) 4마리( 3마리는 들어오는 모습, 한마리는 나가는 모습)가 놓여 있음. * 정령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
나. 장양문(長陽볕양門) : 오래 볕이 드는 문, 좌측은 화장실, 마굿간, 외벽는 나무판벽, 오른쪽은 사랑채(남자공간, 현판은 장양문, 솟을대문, 온돌, 불발기창), 안사랑채(수인문, 여자공간, 평대문), 남자 사랑채와 여자 안사랑채 사이 주름접이문(외부 손님이 왔을 때 확인하는 용도와 여자가 쉽게 여닫을 수 있게 가볍게 만듬), 사랑채와 안채 구분 담장이 있고, 연경당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사랑채와 누마루는 온돌이고, 사랑채와 안채는 방이 내부로 연결 되어 있다. 안채는 마루방(여름)과 온돌방(겨울)
- 노둣돌(하마석) : 말에서 내릴 때 내딛는 돌/길상문 합각 : 수,복 문자 무늬/행랑에는 청지기 거주
다. 선향재(善香齋, 독서의 향기, 좋은 향기, 선한 향기) : 1865년 건립(고종) 추정. 1. 독서, 2. 서재 겸 응접실 : 문인(손님) 접대, 3. 벽장 : 서고 (서책 보관)
- 1884년 갑신정변 당시 고종과 명성황후 잠시 피신한 장소.
- 청나라풍의 전벽돌을 사용한 벽 : 좌우벽 문양(테두리 회(뇌)문, 안은 연화문)전 장식, 아래는 온돌 사용한 함실아궁이 설치.
- 러시아식 동판 지붕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서향집)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 도르래식 차양/러시아 기술자가 만듬/ 청수정사 : 문인들 공간,/석연지 :사랑채 앞마당. 연꽃 재배, 현재는 무.
- 머름위에 있는 문(창문), 머름 없는 것은 : 문/困 곤할곤,閑 한가할한,막을한
라. 농수정(濃繡亭,1865년 건립추정) :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 같이 날렵한 모습으로, 농수란 " 짙은 빛으로 수를 놓다."는 뜻. 늘 녹음에 감싸여 있는, 아름다움을 빗댄 말.안에 향로 2개, 바로 너머에 승재정 있음.
- 외국사신 접대(이등방문 등), 고종 23년 1886년 고종(이명복)과 왕세자 순종(이척)이 농수정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첩이 있음.
마. 희우정(喜기쁠희,雨비우亭정자정, 인조23년 1645년 초당으로 건립한 취향정) ; 임금의 열람실, 휴식공간. 김홍도(1791년) 정조 어진 그림(얼굴은 다른 화가(김득신)가 그림. 취향정에서 희우정으로,
- 숙종16년 1690년 가뭄(3월 말)이 심해 기우제(4월 28일)를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되자 이를 기념, 지붕을 기와로, 정자 이름을, 희우정으로 개칭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 부용지에 핀 연꽃감상, 상림10경중 하나.
* 강세황 : 조선후기 화가이자 평론가로 김홍도의 스승, 영조의 부름 받아 61세 정계 입문. 호가유금원기, 진경산수화, 인물화,서양화법 적극 수용.
13. 요금문, 경추문
가. 요금문(서정문) : 내시, 궁녀들이 병이 들거나 늙어, 내관.궁녀 생활을 마감하고 퇴궐할 때 나가는 문, 갑신정변시 경우궁(1일), 계동궁(1일, 청 원새개에게 민비 군사요청)으로, 고종,명성황후 피신시 사용, 운현궁 행차시, 인현왕후 폐서인(왕비에서 서인으로 강등)출.입궁(인현왕후 민씨의 무언의 항거 표현으로 봄), 궁궐에 쓰일 얼음 들어오는 문, 왕실살림을 관장하던, 궁내부대신 이왕직(일본 관서 명칭)장관 관사/사망 한달전 내보냄/시신, 무수리, 하인들 통행
나. 경추문(秋, 서문) : 평상시 닫아 놓고, 비상시 군사동원시 개방하는 문.
다. 금호문 : 일반신하들(승정원, 홍문관 관리) 통행 문, 갑자사화(1504,3), 인조반정(1623,3,21), 임오군란(1882년 6월 10일), 송학선 의거(1926, 4월 순종 인산일 사이토총독 저격) 등이 발발한 곳.
라. 건무문(북장문, 광지문) : 갑신정변시(1884년 12월) 개혁파가 도주한 문.
마 .영춘문 : 불로문앞,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바. 자시문(후원입구, 성정각 동문), 망춘문(朢보름망, 후원입구, 성정각 동문)
14. 천연기념물 194호 향나무 : 수령 750년, 2010년 9월 2일 콤파스 태풍, 최대풍속 40m/초당, 선원전 제례(향기가 강해서)에 쓰임. 원숭이 얼굴 형상 : 북쪽 죽은 나무가지. 바닥에 닿은 부분. 높이 6m, 둘레 4.3m , 1830년 동궐도 보임, 현재 향나무는 창덕궁 창건당시 커다란 향나무를 옮겨 심은 것임/향나무 750년 이면 원숭이로, 1000년이 되면 용이 됨.
* 향나무의 3가지 속설 : 향기가 정신을 맑게, 뿌리는 물을 맑게, 잡귀. 액운을 물리침.
* 창덕궁 천연기념물 : 회화나무(돈화문), 600년 다래나무(신선원전), 400년 뽕나무(관람지)
15. 의풍각(儀거동의,豊풍년풍,閣집각) : “-” 자형 맛배지붕, 왕실창고, 재궁(梓宮, 왕실에서 미리 제작하여 준비 해 두었던 장례용 관) 등 제사용품(제사용 그릇, 도구 보관) 보관 - 장례용 관(황장목-노란빛을 띤 소나무) 보관.
* 재궁 : 황제, 왕, 황후, 왕의 관으로, 2005년 7월 22일 언론 공개(이구(영친왕 아들) 장례식과 영친왕 부인 이방자 여사 장례식 때 쓰임. 재궁은 장생전에서 제작, 의풍각에 보관, 황장목 관을 수십번 옻칠 함.
이상으로 창덕궁 후원영역의 해설은 여기까지 입니다.
후원 관람은 즐거우셨는지요 ? 우리문화 숨결은 창덕궁을 비롯 해 경복, 창경, 경운, 경희궁, 종묘에서도 무료해설을 하고 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들어 오시면 해설을 예약 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궁궐길라잡이 양은석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