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화접 1권 제2장 나도 사내대장부란 말이요!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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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을 활용한 정원 사이로 구불구불한 소로를 지나 당도한 곳은 백양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한 채의 누각이었다.
중년여인은 누각의 삼층에 있는 한 방문 앞으로 안내한 후 물러갔 다.
철화접은 서슴없이 방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년여인의 말이 맞았다. 아영은 얼굴을 치장하랴 옷매무새를 다 듬으랴 거울 앞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아영아, 오랫만이야."
"......!"
아영은 거울을 통해 철화접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차츰 커지더니 동그랗게 굳어졌다. 잠시 후, 그녀는 홱 몸을 돌렸다.
"너.... 너로구나! 네가 날 찾아왔구나?"
기루의 여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청순한 인상에 맑은 눈빛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격동으로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잘 지냈냐?"
철화접은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짐짓 태연하게 방 한가 운데 놓여있는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아영은 그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난 네가... 평생 날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어?"
"네가 날...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 여겼거든. 또 그리 여기는 게 당연하고."
"짜식, 별 시답지 않은 소릴 다 하고 있네. 그런 생각 해본 적 없 어, 임마."
철화접은 아영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가슴이 뜨끔하였다. 경멸까지 는 아니라 해도 기루에 몸을 던져 취객들에게 웃음을 팔고 살아가 는 아영을 그간 기억 속에 지워버린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아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 괜찮아. 솔직히 말해도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이렇게 살아가는 날 경멸할 자격이 있어. 너만큼은......."
"아, 글쎄 아니라니까 그러네."
"후후....... 됐어.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이렇게 지금 네가 내 눈앞에 있으니 난 이걸로 족해. 정말 반가워. 고마워.... 날 잊지 않고 찾아와 주어서."
아영은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을 떨군 후 철화접의 맞은편에 앉았 다. 철화접은 그녀의 진심 어린 환대에 함께 기뻐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마음대로 안되었다. 그저 어색하게 웃는 것이 전부였다.
"그간 내가 무심했지? 한곳에 살면서 팔 년만에야 널 찾아왔으니 말야."
"난 네 얘기를 꾸준히 듣고 있었어. 철화접이란 여걸이 유명해졌 을 때 단번에 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굳이 알려하지 않아도 이 곳을 드나드는 주객들이 네 얘기를 어찌나 해대는지......."
철화접은 눈을 크게 떴다.
"사람들이 내 흉 많이 보나보지?"
"왜 찔리는 게 있어?"
아영이가 곱게 눈웃음을 지었다.
"아니 뭐 내가 찔릴 게 뭐 있나?"
그동안 근 백 명에 달하는 사내들을 피곤죽으로 만들어버린 살벌 한(?) 해결사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철화접이었다. 그녀는 시치미 를 뗐다.
아영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호호호! 그래, 네가 언제 남을 의식하며 산 적 있니? 늘 네 뜻 대로 당당하게 살았지."
한참을 웃어대던 아영은 웃음끝에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참! 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의 수가 오십 명도 넘는다며?"
"응. 나까지 치면 모두 오십팔 명이란 대식구지."
"그 많은 애들을 너 혼자 어떻게 다 먹여 살리려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마구잡이로 일을 벌린 게 아니야. 삼 년 전인가? 내가 막 해결사 일을 시작할 때 뒷골목에 버려져 있던 세 살, 다섯 살짜리 남매를 데려다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하나둘 거리에서 헤매는 아이들을 챙기다 보니 금방 머릿수가 늘어나더라 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십칠 명은 너무 많지 않니?"
"많기야 많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 년 전 물난리가 났을 때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백 리도 더 떨어진 곳으로부터 맨발로 걸어온 고아녀석들이 있었지. 그 수가 삼십 명도 넘었어. 그땐 정 말 막막했어. 하지만 피골이 상접한 몸에 땟국물이 자르르 흐르는 그놈들을 도저히 돌려보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지금의 대식구 가 된 거야."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지만 철화접의 말 이면에는 감동스런 면이 깔려 있었다. 아영은 가슴이 찡해왔다.
"참 넌... 여전하구나. 어릴 때도 그랬어. 아무리 우악스런 사내 아이도 끝내 무릎을 꿇릴 정도로 강한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한편 으론 나처럼 주변머리 없어 쫄쫄 굶고 다니는 아이들 끼니를 일일 이 챙겨주곤 했지. 넌 참 잔정이 많았어."
"후후, 내가 그랬었나? 워낙 오래 전 일이라 통 기억이 안 나는 걸."
철화접은 소싯적 기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 아영을 힐끗 바라 보았다.
그녀는 이런 대화가 마땅치 않았다.
과거란 얼마나 남루한 것인가? 그녀의 뇌리에 남아있는 과거란 온 통 굶주림, 추위, 모멸감, 분노, 증오 등... 한결같이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회상에 젖는 일을 가장 싫 어했다. |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고향설 시인님의 좋은글 "철화접 1권 제2장-5"와 아름다운 영상 즐감하고 갑니다.
오늘은 마음가는 곳 마다 즐거움과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