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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揭示板) 스크랩 일엽스님 일당슨님에 대하여(직지사 중암 방문기)
일강 추천 0 조회 155 12.05.04 20: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일당 스님의 행적을 찾아

 

      ㅇ   일엽스님  약력요약(일당스님의 어머니)_

          . 출        생 :1896. 4. 28-1971.1.28

          . 본        적 :평남 용강

          . 본        명 :김    원  주(金  元  周)

          . 법        명 :一    葉(1933년수덕사에서 득도 출가)

          . 학        력 :진남포 삼승여학교,  이화학당

          . 직        업 :승려, 시인, 수필가.여성사회운동가

          . 문학활동:잡지신여자(1920년)

          . 기고글: 단장, 애욕을 피하여외다수

          . 저        서:청청춘을 불사르고, 어느 수도의화상, 행복과 불행의갈피

          .가족관계:부(목사)김용겸, 모;이마대

            -모는 일엽의나이 14세에 사망, 부는 19세에사망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은  사망하고 무남독여

          .남        편: 일본인 오다세이조

          .아        들:일   당 (김   태   신)

 

   ㅇ   일당(日堂)스님의 약력요약

          .출  생  지:일본(1922년생)

          .부:일본인  오다세이조(일본의 명문가오다도캔의 후손)

          .모:김원주(일엽슨님)

          .부모는  연애결혼 하여 아들 (오다마사오ㅡ현 일당슨님)을 출생하였으나,

             당시의 여건상  오다 도캔가문의 반대로  양부모 결별  고아가됨.

             부 오다세이조는 3세된 아들을 데리고 조선에 귀국하여 일가를  이루려

             하였으나  모가 이미 출가한 후라  조선친구 황해도 송기수씨께 입양.

          .그후 부 오다세이조는 독신으로 프랑스 일본 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타

           타계함

          .학     력:일본 최고의미술대학  국제 미술학교 졸업

 

          . 삶의여정

          (낳아준 부모 ,입양부모, 남한에서 김씨호적 부모,그림을 사서한부모,)

         -황해도 입양부는  생부의 친구  송  기  수

         -호적입적 부 김천 김봉율

         -그림사사 부모 이당 김은호 화백

         -일본에서 그림  지도를 하여 주신분(이또신스이와 데라찌마시메이-일본 화단의대가)

         .저       서: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어머니라 부르지마라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출      가:1989.6.6일 67세에 미국뉴뇩 소재 원각사에서 설촌 큰슨님의 수계로

                       일당 법명받아  출가

         .김청인 음악선생과 결혼  삼형제를 둠

         .고태법을 바탕으로한 석채화가로 세계적으로 명성이높으신 분으로  어머니를 따라

          입적후 한국을 위하여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화가요 슨님며  작가이시다.

         .6.25직전 북한체류시 김일성대학  김일성 초상화등  수많은 걸작품이있음.

         . 일본화단에 남긴 걸작품: 망향 ,  장구 ,  승무등50호 크기의 대작이있음

 

 

 

         나는 일엽슨님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은바있어 이분에 대한 글을 읽다가 외동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이 모자분이 쓰신  몇권의 책을 구입하여 탐독하고 깊은 감명과  두 모자분의

         고매한 인격과  삶의 애환을  공감하고  생존하신 일당슨님의 행적을 따라  김천 직지사  중암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 시대에 어느누가 애환이 없었으리오만  이 모자분은  시대적 애환과 고통 , 절망, 극기, 사랑은

         세인들의 가슴을 뭉클 하게한다. 일엽 슨님의경우 자전적인 산문이라 하더라도 갈등을 통한 귀의는

         존귀의 극치에 미치고 있으며,부모의 모습도 모르시고 살아오신 일당슨님은 모정에 대한 목말랐던 어린시절,

         사랑과 애증,휘몰아치는 삶의 고뇌, 역사의 소용돌이는 마치 대하 소설을 대하는듯 하다.

         특히 일당 슨님은 인생과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잃지 않으신 굳은 의지와 생에대한 담논 , 더우기

         67세의 연세에 어머님의 길을 따라  가족을 떠나 불가에 귀의하신 효성과 큰 뜻은 가슴에 담고싶다.

 

         3월 13일 김천 직지사 중암 방문을 계획하고 준비하던중  중암에 연락한바 일당 스님께서 통도사로

         가시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뭇거리다 3월9일  일기가 좋아 불현듯  짐을챙겨 중암으로 출발했다.

 

         김천 직지사는 십수년전 한번 다녀온 일이있다. 그당시 불사 중창 중이라 어수선하고 사찰 경내를

         답사라기 보다  그 모습만 담아왔다.  이번 방문으로 직지사의  새롭게 건립된 모습은 천고의 세월을

         담은 가람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듯 했다.

 

         산문은 수리중에 있어 절을 우측에 두고  좌측  도로를 따라 중암을 향했다. 산문 입구에서 2.5키로

         란 안내도를 보고 걸름을 재촉했다.  산문 입구 양쪽의 어른 키보다 더큰 진달래꽃나무,  계속이어지는

         도로 양측의 잣나무는  김천 직지사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듯 했다.

 

         계속되는 오막길을 40여분  개울을 따라 몇구비처 오르니  황악산 칠부능선에 자리잡은  중암의 지붕이

         보였다.  중암은 중건된 건물인지   주변 정돈과 건물 자체가  깨끗하고  암자라기보다. 그 규모가

         작은 사찰크기였다.

 

         근일  그곳에는 눈이와서 뒤편 황악산  산머리에는 흰눈이 덮여있고, 멀리 보이는 맞은편 덕대산에는

         흰눈에  흐릿한 안개가 가려있어  사진에본 알프스를 방불케한다.  탁트인 정면에는 김천 시내가

         한눈에 드러오고 그 위치와 경치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곳이 일당 스님이 기거 하시던 곳이라 생각하니  더욱 새롭고  경내의  소나무 몇그루는  일당 스님의

        모습을 닮은듯  굳굳하고  휘어저 내린 가지는  세월의 시름을 담은듯 유연하게 느러 뜨려 운치를 더해준다.

        그러나  일당 스님을 뵈올 수 없어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진달래 꽃 필쯤  연락을 드리고  다시 찾기로 하고  발길을 돌였다.

 

                                이천십이년  삼월  구일    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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