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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인터뷰] 1년에 800권, 읽고 쓰다 ‘소셜 권력자’ 되다
By 피렌체의 식탁
엄마는 태아인 그를 떼어내려고 물구나무를 섰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재능을 인정해 양딸로 삼겠다고 하자 부모는 거부했다. 딸이 공장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었다. 적빈의 시공간에서 읽기를 놓지 않았다. 거친 환경은 그에게 일찌감치 동화를 졸업하고 어른들 책을 보게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먹고 살기 위해 30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마쳤고, 이제야말로 읽고 싶은 책을 원 없이 읽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페이스북에 올린 그의 서평이 눈에 띄고 입을 타기 시작했다. 흔히 좋은 작가가 되려면 독특한 경험, 쓰라린 체험이 필수라고 한다. 김미옥 서평가를 보면 서평가도 경험과 체험이 필수 아닌가 싶다. 그의 서평에는 인생이 묻어난다. 그리고 여전히 마이너다. ‘평론 권력’이란 게 있다면, 그걸 가진 이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읽고 쓰는 것 하나로 지식계의 귀퉁이에 늦깎이로 진입한 김미옥을 만났다. [편집자 주]
✔ 서평가 김미옥 씨, “소셜 권력? 문단 문법 비껴간 ‘아웃사이더’라 벌어진 일”
✔ 너무 빈곤해도 눈에 띄어… “페이스북으로 주목받을 줄 나도 몰랐지요”
✔ 초등학생 때 읽은 <탈출기>… “우리 집 얘기잖아” 공감하며 어른들 이야기 남독
✔ 어린 시절 선생님이 권한 독서… “무거운 돌멩이가 인생의 금덩이로”
✔ 좋은 책의 기준? “몇 사람에게라도 감동 주면 그것도 좋은 책 아닐까요?”
자신을 ‘활자 중독자이며 고급 독자를 지향한다’고 소개하는 김미옥 서평가
한 달 도서 구입비만 120만 원… 하루에 한 권은 기본
신혜선: 반갑습니다. 페이스북에 자기소개를 하셨지만 다시 여쭤요. ‘김미옥, 당신은 누구인가?’ 묻는다면요.
김미옥: 글쎄요. 한마디로 단정 짓기 힘든 복합적인 인물인데, 굳이 말하자면 읽고 쓰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
신혜선: 역시 ‘기승전 책’으로 통하네요. 먼저 ‘김미옥의 독서 습관’을 풀어보겠습니다. 1년에 책을 얼마나 읽는지 파악되나요? 독후감을 쓰시니 정확히 기록될 것 같아요.
김미옥: 어떤 책은 정독해야 하고 어떤 책은 속독으로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나눴어요. 오전에는 정독, 밤에는 속독. 소설은 하루에 2~3권도 읽어요. 남들은 ‘작가가 신중하게 써서 책을 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읽느냐.’ 그러는데 오랜 세월 책을 읽다 보니 축적됐어요. 작가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빨리 알게 되더라고요. 잘난 척이 아니라 세월의 힘이에요. 건방질 수 있지만, 나중엔 통찰까지 되더라고요. 많이 읽을 때는 1년에 800권 정도 읽었어요. 요즘은 하루 한 권 정도 읽습니다.
1일 1권은 기본, 연간 대략 800권의 책 읽기, 쓰는 시간은 30분~1시간, 한 달 도서 구입비는 120만 원(6월 기준). 보내오는 책도 많을 텐데, 사기도 많이 산다. “들어오면 나가는 책이 있어요. 한 번 보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으면 기증하거나 다른 사람한테 주기도 하거든요. 집에 방이 네 개인데 방 세 개가 다 책이에요.”
2018년, 출퇴근 노동에서 ‘은퇴한’ 조건에서 가능한 일이지만 이 정도면 전업 작가와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순간에 만들어진 습관이 아닐 듯하다.
신혜선: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책을 읽으세요?
김미옥: 하루 독서 시간을 말하기 위해선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야 해요. 저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았어요. 본가(친정)에서 유일하게 공부했던 사람이었거든요. 옛날에는 딸들이 ‘잉여 인간’이었잖아요. 그래서 돈을 버는 데 굉장히 집중했어요. 그러다 식량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읽고 쓰고 듣겠다고 생각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8년 12월부터예요.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일을 그만뒀거든요. 집에서 읽고 쓰면서, 이런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독서 시간이 얼마냐 묻는다면 잠자는 시간은 빼고 거의 책을 읽어요.
신혜선: 페이스북에 독후감을 거의 매일 올리세요.
김미옥: 읽는 건 금방이에요. 하지만 ‘작가가 뭘 말하고자 하는가’, ‘그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그런 것을 쓰다 보니 생각을 모으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려요. 쓰는 것은 30분? 1시간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 보고 어떻게 그렇게 쓰냐고 하는데, 저는 잃을 게 없어요. 작가도 아닌 일반인이었고 내가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신혜선: 사는 책, 받는 책 등 책이 굉장히 많으실 텐데, 독후감을 쓰고 페이스북에 소개하는 책을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을까요?
김미옥: 출판사에서 책이 오거나 가끔 작가들이 ‘제 책 나왔습니다.’라든가 ‘그동안 책을 여러 번 출간했지만 알아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보내시는 경우도 있어요. 다 참고하는데, 제가 책을 고르는 결정적인 기준은 국회도서관 메일이에요. 국회도서관에서 선정한 책들이 좋더라고요. 수준 있는 분들이 책을 선별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절약돼요.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지 않겠다는 마음, 책을 통해 배워
신혜선: ‘내 인생의 책 3권’을 꼽는다면요?
김미옥: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우선 꼽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인간의 품위와 자존심에 관해 배웠어요. 살면서 삶의 지표 혹은 방향을 정할 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려요. 나쁜 마음이 들거나 혹은 모질어야 하는 순간에 기준이 돼준 거죠. 마지막 한 권은, 한 권이라기보다는 한 작가인데요. 슈테판 츠바이크를 참 좋아했어요. 츠바이크가 주로 한 인물에 대한 전기를 썼잖아요. 가장 흥미 있게 읽은 게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다양하고 다면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사람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짓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게 그 세 권의 책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인 것 같아요.
신혜선: 그 외에도 좋아하는 작가는요?
김미옥: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슈테판 츠바이크 좋아하고요. 도스토옙스키 좋아해요. 스탕달도 좋아합니다. 국내 작가는 인간적이면은 빼고 오정희 씨 좋아했어요. 최명희 작가도 상당히 좋아했습니다.
김미옥 서평가가 뽑은 내 인생의 책. 죽음의 수용소(사진: 청아출판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사진: 문학동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사진: 푸른숲)
페이스북 독후감의 순기능과 역기능
신혜선: 주로 페이스북에 독후감을 올리시죠. 글을 쓰시면서 ‘내가 이 맛에 한다.’ 이런 사연들도 있을 것 같아요.
김미옥: 제 독후감을 보고 사람들이 책을 사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서 책을 읽기를 원하고요. 실제로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됐는데 제 글을 보고 책을 사기 시작했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게 기쁘죠. 한 출판사 관계자분이 ‘이십 년 전에 낸 책인데 좀 봐주시겠습니까?’라고 하셨어요. 한보리 시인의 시집이었는데, 읽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서평을 썼어요. 20년 동안 창고에 쌓여 있던 책이 다 팔렸다고 하네요.
신혜선: 반대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이거 뭐지?’ 싶게 불편하셨던 적은요?
김미옥: 제 글을 가져가서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 사람이 있었어요. 누가 알려줘서 봤는데 제 글 반, 다른 작가의 글 반으로 책을 냈는데 밉다기보다 측은하더라고요. ‘자기 이름으로 뭔가를 갖고 싶어 하는구나.’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로 끝냈어요. 또 제가 서평을 쓴 책의 작가를 공격하는 일도 있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그건 누군가를 비난하는 그들의 문제죠. 제가 글 쓰는 건 한결같으니까요.
신혜선: 오프라인 활동을 안 하셨던 걸로 알았는데, 요즘은 왕성하세요.
김미옥: 코로나19 이후로 3년간 책만 읽고 운동을 안 했어요. 몸무게가 늘어난 거예요. 근데 만나고 싶다는 사람은 많아서 살을 좀 빼려고 했더니 안 빠지더라고요. 절 두고 신비주의란 말도 있고, 집 밖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신혜선: 최근에는 ‘선생님 안 오면 북토크 안 하겠다.’ 이런 말을 하는 저자도 있어서 출판사가 선생님께 매달린다는 말도 들었어요.
김미옥: 무명 시인이나 작가는 신간을 내고 북토크를 한다고 해도 사람이 안 모이니까. 김미옥이 진행을 한다든가 패널로 참석한다든가 하면 신청자가 좀 많더라고요.
‘소셜 권력’의 가운데서 “조언과 충고도 좋지만 결국 자신의 판단”
신혜선: 얼마 전 ‘소셜 권력’ 사건의 주인공이 되셔서 한바탕 시끄러웠어요. 영향력이 점점 커져서 벌어진 일일 텐데, 지난 4월 한 평론가에게 ‘권력 놀이’를 조장한다며 이른바 ‘저격’을 당하셨죠? 서로 사과하고 정리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김미옥: 저를 공격한 평론가이자 시인의 사고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제가 문단이라든가 문학에 대한 형식 자체를 파괴한다는 겁니다. 제가 쓰는 글은 서평이 아니라는 거죠. 기득권의 문제더라고요. 그들만의 리그에 엉뚱한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저는 아웃사이더니까.
신혜선: 선생님께도 교훈이 남았겠지만,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있으실 것 같아요.
김미옥: 교훈이라기보다 모든 판단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조언이나 충고로 자기 주관이 흔들리면 그 사람 인생도 이상해져요. 모든 생각이나 판단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어야 해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혜선 미디어본부장과 인터뷰하는 김미옥 서평가
‘책’, 가난과 외로움의 돌파구
신혜선: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어떻게 책을 처음 접하게 됐는지, 어떻게 책과 친해졌는지요.
김미옥: 학교에서 문예반장을 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는 학교에 책을 가져오라고 애들한테 시켰어요. 그러면 부모들이 읽던 책을 보내는데 19금 이런 것도 막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 그걸 간추리는 걸 저보고 하라 그러더라고요. 책을 분류하려면 이 책이 나쁜 책인지 좋은 책인지 읽어봐야 해요. ‘한국단편문학선’이라고 아주 오래돼서 누런 책이었는데, 거기에 있던 최서해의 <탈출기>를 읽고 충격받았어요. 극한의 빈곤, ‘이거 우리 집이잖아’ 그랬어요. 그때부터 책에 빠져들었어요.
아버지는 갓 태어난 아이 김미옥을 집어 던졌다. 오빠는 커서 “너 아기 때 날개가 있었어.”라고 말했다. “탯줄도 채 정리가 안됐으니, 그게 어린 오빠 눈에 날개로 보인 게 아닌가 해요.” 던져진 아기는 물이 담긴 고무 대야에 빠져, 다행스럽게도 죽지 않았다.
“엄마는 생활이 어려웠고 저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엄마가 임파선 결핵이었는데 옛날에 연주창이라고 했거든요. 삼십몇 킬로그램이었대요. 그런데 제가 들어온(임신) 거예요. 저를 버리려고 병원에 갔는데 안 된다, 위험하다 해서 한약도 드시고 거꾸로 서기도 하셨대요. 그랬는데 제가 태어난 거죠.”
엄마는 어린 시절의 그에게 ‘재수 없다’는 말을 늘 했다고 한다. 그는 엄마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엄마가 왜 그렇게 ‘재수 없다’는 말을 했나, 커서 생각해 보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우고 싶었던 거예요. 돈을 벌어서 오빠들 공부시키는 순한 딸을 만들려고 했는데 기가 너무 셌던 거죠.” 실제 그는 그렇게 살았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는 부산에서 서울로 야반도주했다. “가난했고, 전학을 다섯 번 이상 다니다 보니 친구가 없어 책이 돌파구가 됐다”는, “현실과 너무 다른 동화책이 재미없었다”는 아이는 그렇게 고급 독자가 됐다.
신혜선: 정말 힘든 시절을 보냈는데, 책을 그렇게 좋아하셨으면 등단에 대한 꿈을 키우거나 출판 관련된 일처럼 쓰는 행위 쪽으로 진로를 정하실 법도 한데 공무원이 되셨어요?
김미옥: 책을 쓰는 건 돈이 안 되더라고요. 출판일을 해서 부자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저는 돈을 벌어야 했잖아요.
신혜선: 여전히 가계에 대한 책임이 있으셨군요.
김미옥: 네. 게다가 우리 식구들은 저 같은 스타일이 아니에요. 좌절하면 그대로 주저앉는 스타일이에요. 근데 그게 한두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닥치는 대로 읽었다…평생 짊어진 가방 속 무거운 돌멩이가 금덩이 돼
신혜선: 저도 어릴 때 책을 좋아했는데 선생님 두 분 정도가 계기를 만들어주셨어요. 선생님께서 문예반장을 시키셨는데, 소극적이었던 저를 발현시켜주셨어요. 주변에 그런 친구나 스승이 있으셨나요?
김미옥: 6학년 2학기 여름방학 때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학교에 가지 말라 그러더라고요. 교과서를 안 사주셨어요. 그런데 사람이 긴급한 상황이 되면 사진을 찍게 되더라고요. 학교 짝꿍은 교과서를 갖고 있잖아요. 그럼 쉬는 시간에 그 책을 넘겨요. 그러면 사진처럼 찍혀서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6학년 때 담임이 저를 눈여겨보셨어요.
근데 애가 학교에 안 나오니까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셨어요. 저는 공장을 나가고 있었던 거죠. 선생님이 엄마한테 저를 양딸로 달라고 하셨어요. 근데 엄마가 ‘얘 돈 벌어야 한다’고 거절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제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굳이 졸업을 안 해도 된다. 공부할 방법은 많다’고. 그러면서 강의록을 주셨어요. 또 책을 많이 읽으라고도 하셨어요.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독서 스승이 없으니 남독을 했죠. 이 책이 좋다 나쁘다에 관해서는 스스로 판단하게 되더라고요. 어릴 때는 이해를 못 하고 넘어간 부분도 커서 ‘아, 바로 이거였구나. 작가가 이걸 얘기한 거구나’라는 식으로 알게 되기도 했고요. 뻔한 얘기인데 하나님이 돌멩이가 든 가방을 모든 이에게 나눠줬는데 무거우니까 버린 사람들이 많았다죠. 하지만 그 무거운 걸 끝까지 들고 가서 나중에 열어보니 금덩이가 돼 있더라. 그런 경우였어요. 선생님은 그 뒤로 몇 번 찾아뵙기는 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신혜선: 살면서 아무도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미옥: 그렇죠.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나타나요.
공장을 다니느라 학교에 나가지 않은 그를 찾아온 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다.
책의 물성과 평범해지고 싶다는 마음
신혜선: 어렸을 때 닥치는 대로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게 있나요?
김미옥: 옛날에는 책의 물성에 관해서 생각을 안 했어요. 내용이 중요했어요. 그러다가 110년 된 영시집을 보고 충격받았어요. 독일에서 만든 건데 중세 영어 시집이었어요. 그 지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 뒤로 책의 물성에 대해서 생각해요. 책은 복합 디자인이더라고요. 이거야말로 예술이 아닌가 싶어요. 유명한 작가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인간이 만든 예술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건축’이고 그다음에 ‘책’이라고 그랬거든요. 그럼 건축과 책을 합치면 서점 아니냐, 출판사라든가 또는 도서관. 그런 생각도 했었죠. 책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함부로 만들면 화가 나요.
신혜선: 선생님의 책을 내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김미옥: 출판 제의가 온 곳이 사십 군데가 넘었더라고요. 그런데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아요. 책도 인구구조처럼 피라미드로 되어있어요. 그런데 제가 책을 쓰면 피라미드의 하부에 들어갈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살면서 늘 생각했던 게 ‘평범해지고 싶다’는 거였어요. 화려하고 독특해서 눈에 띄는 경우도 있지만 너무 빈곤해도 눈에 띄거든요. 어렸을 때 오빠들 옷을 물려 입고 머리도 집에서 잘랐어요. 집에 이발사가 세 명 있었거든요. 오빠 셋이 가위로 머리 자르다가 큰오빠가 귀찮다고 놀러 가면 둘째가 자르고 셋째가 마무리를 해주는데 영구 머리였죠. 그리고 오빠들 늘어진 스웨터라든가 남자 운동화 신고 전학을 가면 애들이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쓰는 것도 싫고 누가 제 이름으로 책을 내준다고 해도 거부 반응이 들더라고요. 내가 만약 글을 못 쓴 책을 냈다면 그것도 눈에 띄거든요. 잘 썼다고 해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페이스북 하면서 띌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저자를 알아보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신혜선: 책을 읽기 싫어하거나 읽는 게 어려운 분들이 있는데요. 그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김미옥: 책이 너무 어려워서 못 읽겠다면 그 책을 쓴 저자에 대해 알아보세요. 가령 김수영 시인의 책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도저히 모르겠대요. 재미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은 그 사람의 인생을 한번 알아보라는 거죠. 그다음에 시를 볼 때라든가 글을 볼 때 이게 어느 시기에 나왔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왜 썼는지 보이면 독자가 되고 팬이 돼요. 그리고 책의 서문이 중요해요. 책을 읽을 때 서문부터 읽습니다. 서문은 쉽게 쓰인 게 아니에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게 서문에 들어가 있어요.
신혜선: 기회를 기다리는 무명의 저자들에게도 말씀해 주시죠.
김미옥: 악평이라든가 아무도 몰라준다는 것에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 없어요. 외부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면 돼요. 제가 살아보니까 인생에도 ‘임계점’이란 게 있더라고요. 어느 것이든 임계점에 올라가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그걸 지나면 잘 풀릴 거예요. 많이 사유하고 많이 쓰고 많이 읽고 타인에게 신경 쓰지 말고 힘내세요.
신혜선: <피렌체의 식탁>에서 곧 칼럼을 연재하십니다. 어떤 코너를 준비하고 계시는지 살짝 알려주시죠.
김미옥: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고 나이가 들면 책을 안 읽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책을 왜 안 읽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모르겠다’, ‘금쪽같은 시간을 눈 아파 가며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럼 서평을 읽어보라니까 서평이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서평에는 특정한 형식이 있고 이론이 있잖아요. 그들만의 리그에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어야 해요. 서평을 읽고 ‘아, 나도 그랬어’라든가 ‘이건 궁금해’처럼 말이죠. 제 서평을 읽으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구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처럼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좋은 책의 기준을 묻는 말에 “몇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주면 그것도 좋은 책”이라고 답하는 김미옥 서평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책이 훗날 아주 좋은 책일 수도 있기에 (비판에) 좀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김미옥 서평가는 좋은 책의 기준을 묻는 말에 “몇 사람에게라도 감동을 주면 그것도 좋은 책”이라고 답했다.
대담=신혜선 메디치미디어 미디어본부장
사진=백범선 메디치tv PD
정리=김동희 <피렌체의 식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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